브만사 인터뷰 연구자
[가정의 달 기획] 나는 엄마·아빠 연구자입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정민경, 김정연, 김세미, 이재훈
- 자기 소개 및 연구 소개
- 연구자로서 아이가 태어나고 달라진 점
- 임신 중 위험 물질을 다뤄야 했던 경험
- 육아와 연구 병행 중 가장 힘들었던 기억
- 자녀들이 엄마·아빠 과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 자녀가 바이오 분야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면?
- 육아하는 연구자에게 필요한 제도가 있다면?
현역 연구자를 직접 만나는 브만사 기획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엄마·아빠 연구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엄마·아빠 연구자가 연구와 육아를 어려움 없이 병행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개선하는 작은 출발점이 되길 기대합니다.
‘불행히도, 아이 낳기 좋은 시기는 없다‘ 메리 앤 메이슨 외 3명의 저자가 쓴 책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원제:Do babies matter?)’에 등장하는 말이다. 10년 동안 전미 지역, 대학원생부터 교수까지 여성 연구자가 처한 환경에 대한 방대한 조사(Survey of Doctorate Recipients, SDR, 2021) 끝에 나온 결과라고 한다. 우리나라 엄마·아빠 연구자라고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실험실에서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를 쌓는 시기는 임신과 출산, 육아의 최적기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 시간을 우리 연구자들은 어떻게 치열하게 보내고 있는지,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는 연구자들을 만났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우리의 제도와 환경은 어떨지,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들어본다.
Q. 안녕하세요. 하고 있는 연구와 자녀를 소개해 준다면?
정민경 (이하 민경) :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엄마이면서, 바이러스 면역 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로 진행하는 연구는 바이러스 면역 연구인데요. 백신 및 백신 접종 이후 감염되는 돌파 감염에 의해 생성되는 면역반응 연구를 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재훈 (이하 재훈) : 저는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10살과 6살인 딸 둘이 있고요. 석사학위를 받을 때 첫째를 낳았고, 박사 논문 디펜스를 이틀 앞두고 둘째 딸이 태어나서 현재 연구와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아빠 과학자입니다.
김세미 (이하 세미) : 저는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9살 쌍둥이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실제 바이러스를 다루며 바이러스를 분리하고 환자 샘플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정연 (이하 정연) : 여기서 저희 아이가 가장 막내겠네요. 저는 3살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고요.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포닥(Post-Doctor)으로 바이러스 면역 연구소에서 다양한 시퀀싱 데이터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모두 지금 한창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고 계시는데요. 아이가 태어나고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민경 : 사실 결혼 전후는 제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거든요. 남편과 집안일의 분담도 잘되어서 집안일이 어렵지 않았고, 그런 남편이 아이가 생기면 육아도 집안일처럼 기꺼이 함께 할거라 생각했어요.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우리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아기는 엄마를 더 원하고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애를 낳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고 나선 한마디로 전쟁 같은 삶, 또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고, 계획대로 진행하기도 어려운 삶이 당연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 달라진 점이에요.
세미 : 저는 박사과정 수료하자마자 출산했는데요. 쌍둥이를 임신해서도 전 자발적으로 거의 매일 밤 10시 11시에 퇴근할 정도로 연구를 좋아했어요. 논문을 쓰고 실험 결과를 도출하고 이런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자마자 정말 3개월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쌍둥이 케어도 케어지만, 동시에 울기 시작하면 정말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잠도 잘 못 자고 그러다 보니 깨어있어도 정신이 안 차려지고 한마디로 미친 사람처럼 지냈어요. (웃음) 그렇게 16개월 정도 일을 쉬었는데 그러다 보니 그렇게 연구를 좋아하던 사람인데도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두렵고 굉장히 망설여졌던 게 생각나요.
정연 : 저는 박사 1년 차 때 결혼하고 바로 아이가 생겼어요. 배가 불러올 때 준비하던 논문이 있었는데 출산 당일 논문 revision 결과가 나온 거예요. 아침에 병원에 가서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낳고 정신을 살짝 차릴 때쯤 바로 휴대전화로 논문 revision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떨어졌더라고요. 아기를 출산한 날이지만 그 와중에도 교수님께 Reject 메일 원본을 보내달라고 연락드렸어요. 왜 거절됐는지를 알아야겠다는 마음이었죠. 침대에 누워서 메일 내용을 분석하며 울었던 기억이 나요. 저는 원래 감정적인 편이 아닌데, 출산 후 호르몬의 변화라는 게 대단하더라고요. 그때 우는 제 모습을 보고 남편이 정말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revision은 육아하면서 준비했는데 뭐든 육아와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었어요.
재훈 : 와... 엄마들 앞에서 제가 육아 얘길 한다는 것이 좀 부끄럽네요(웃음). 저는 아빠가 되고 나서 생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게 달라진 점인 것 같아요. 아이가 생기면서 생계에 대한 많은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두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결과가 결코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계획을 더 한다고 해서 인생이 계획대로 가지도 않고, 실험이야 뭐 원래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요즘 결혼하려는 분들이 결혼이나 육아에 대해 제게 조언을 구하면 ‘모든 변수를 계산할 수 없다.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다양한 상황을 함께 헤쳐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결혼을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도 결혼과 육아에 대해 잘 모르고 결혼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Q. BRIC에서 임신부 연구자 실험 환경 설문조사를 19년도에 실시했었는데요. (결과보기 링크) 5년 전 결과긴 하지만, 임신 기간 중 유해 물질을 다뤄본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76%의 연구자들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임신과 육아 기간에 위험한 물질을 다뤄야 했던 일이나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민경 : 제가 임신했을 당시 Melanoma(흑색종)를 연구했어요. 실험용 쥐에 Melanoma를 Injection 시켜서 암의 증식과 전이를 조절하는 걸 보는 실험이었는데,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심각한 Melanoma Metastatic stage의 실험용 쥐를 옮기다가 손끝을 쥐한테 물린 거예요. 침착하게 산부인과에 전화해서 “제가 마우스 피부암 세포주가 조금 몸에 들어갔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어서 간호사분이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괜찮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불안하니까 구글링해서 찾아보면서 아이에게 미안해했던 순간이 생각나요.
세미 : 저는 고병원성 바이러스를 다루는 실험을 하는데요. 대부분 생물안전 3등급 시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감염의 우려는 없어요. 보호구를 다 착용하고 실험하고 음압 시설이어서 공기오염도 없지만 나올 때 에어 샤워도 하고 물로도 샤워하거든요. 그래서 다행히 감염의 우려에 대한 걱정은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연구가 동물 실험을 많이 하거든요. 전엔 제 일이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일인데 엄마가 되어서일까요. 이상하게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던 게 기억나요.
[(좌측부터) 정민경·김정연 박사(바이러스 면역 연구센터), 김세미(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 이재훈(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사진=BRIC]
Q. 연구와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나날 중,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되는 날이 있을까요?
민경 : 육아가 힘든 이유 중 단연 최고는 돌발 사건이 많다는 거예요. 지난해 IBS에서 대한면역학회와 함께 ‘IBS-KAI 바이러스 심포지움’을 개최했어요. 우리 기관이 호스트다 보니 행사 준비에 해외 석학들의 차량 픽업까지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콘퍼런스 시작 하루 전날, 아이가 입이 아프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비타민 먹고 빨리 자, 입병일 거야 라며 애를 다독이고 재웠는데 다음 날인 행사 당일 아침에 더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아이 입을 보니까 혀 밑에 혀가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부어올랐는데 처음 보는 상태였어요. 느낌이 안 좋았지만 저는 약속된 해외 연사 픽업을 나갔고 친정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병원을 갔는데, 일하던 중에 전화가 오더라고요. 직감했어요. ‘이건 응급 상황이다’라는걸요. 일의 마무리를 다른 분께 맡기고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갔더니 타석증이라고 침샘이 막혀서 부어오른 건데 신경절 옆에 있으면 엄청 아프고 말 하기도 힘들고 물도 못 삼킬 만큼 고통스럽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수술해야 한다고 해서 상사분께 오늘은 행사장에 못 있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 아들을 수술시켰어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그다음 날 발표를 해야 했다는 거예요. 발표 하루 전에는 마음을 차분히 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과연 발표를 무사히 진행할 수 있을까 고민 하던 차에 발표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셔서 바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우리 아이 때문에 발표를 펑크 내게 되면, 나중에 아이가 ‘엄마가 나 때문에 일을 못 했다’라고 생각할 것 같아 남편에게 휴가를 내달라고 하고, 저는 어떻게든 발표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아이가 수술하고 나오니 얼마나 아프겠어요. 마취가 풀리고 나면 아프다고 울고불고, 진통제가 들어가면 또 괜찮아지고 하길 밤새도록 했는데 전 아이가 잠든 짧은 시간에 틈틈이 발표 준비를 하며 밤을 새웠습니다. 그날 새벽에 병원에서 창밖을 보는데 교회 십자가가 보이더라고요. ‘왜 저에게 감당 못 할 시련을 주시나요’라는 생각도 들었지만(웃음), 정신없이 준비 해서 다음날 발표했어요.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게 발표를 마쳤는데, 난리 중에 했던 발표치고는 무사히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끝나고 병원에 돌아가서 아이한테 ‘고맙다. 너 때문에 엄마가 오늘 이 모든 걸 무사히 끝내고 왔다’라고 말해 줬던 게 기억에 남아요. 정말 힘들었고 최근에 제 한계를 시험해 봤던 시간인 것 같아요. 또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해요.
세미 : 저는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짠했던 경우들이 있는데, 우리 쌍둥이들이 전체 어린이집 아이 중 가장 늦게 집에 가는 아이들이었어요. 그래도 둘이 함께 있어서 다행일 수 있었는데 일 마치고 데리러 가면 어린이집 신발장에 신발이 딱 두 켤레만 남아 있거든요. 그럴 때 정말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어요. 어른들도 아침에 가서 저녁까지 있으면 힘든데, 아이들도 어른만큼 어린이집에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너무 힘들었겠다.’ 얘기하면 애들이 해맑게 ‘아니야 난 선생님들 단독으로 차지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미안함과 기특함이 함께 느껴지는 감정이었어요. 그리고 쌍둥이들의 그 말이 일하는 엄마로서 엄청 힘이 됐던 기억이 있어요.
Q. 자녀들이 엄마·아빠 과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지 궁금해요.
재훈 : 먼저 걱정되는 부분은 있어요. 저는 첫째가 자라면서 최근 아빠가 뭘 하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어요. 동물실험을 한다는 건 알지만,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연구 관련 포스터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거기 쥐의 뇌가 그려져 있었어요. 그때 아이가 머릿속에 있는 뇌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하고, 굉장히 구체적으로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제 고민은 이걸 어디까지 대답해 줘야 할지, 그렇다고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동물을 희생하면서 실험한다는 걸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어요. 또 다른 시선으로는 제가 수상을 하거나, 연구 관련 보도자료가 배포 되거나 하면 그게 큰아이에겐 큰 동기부여를 주는 것 같아요. 아빠가 되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조금만 박수를 받아도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구뿐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 관련 활동들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 같아요.
세미 : 저는 몰랐는데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엄마를 소개할 때, 우리 엄마는 바이러스 연구하는 사람이야 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한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학교에서도 미생물과 바이러스에 대해 많이 배우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오면 저보다 더 유창하게 알고 물어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뿌듯하기도 하고 그래요.
민경 : 우리 아들은 팁, 파이펫 이런 것 되게 좋아해요. 가끔 아이가 엄마 실험실에 따라올 때, 칼리브레이션 잘 안된 것을 쥐여주면 엄청 잘 가지고 놀거든요. 아마도 엄마의 모습을 보고 따라 해 보는 거겠죠. 또 아이가 내성적인 편이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것을 즐겨하는 성격이 아닌데, 지난해 학교에서 진행된 스피치 대회에서 상을 받아왔어요. 저는 정말 놀랐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엄마도 학회 가서 발표했잖아. 그래서 나도 그렇게 따라 해봤어’라고 하더라고요. 언젠가 학회에 따라와서 제가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그랬나 봐요.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 모습을 아이가 다 보고 있구나 했습니다.
정연 : 저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우리 아이 눈에 엄마는 매일 학교에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육아 선배님들의 얘길 듣다 보니 좀 더 자라면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긴 하네요.
Q. 아이들이 이런 엄마 아빠를 따라 바이오 분야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 꿈을 지지해 줄 건가요?
세미 : 저는 사실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과학 하지 마’거든요. (웃음) 그래서일까요. 아이 중 하나가 저한테는 꿈이 요리사라고 했는데, 학교에 가서 보니까 꿈을 적는 칸에 과학자라고 적었더라고요. 꿈이 과학자구나 알게 됐지만 시킬 생각은 없어요. (웃음) 너무 힘든 길인 것 같아 이 길을 안 걸었음 좋겠지만 본인이 나중에 정말 원하고, 제가 처음 바이오를 선택할 때처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면 제가 막을 방법이 없지 않을까요.
재훈 : 제 아내는 아이들에게 ‘네가 과학을 하고 싶으면 하되, 바이오는 안된다. 요즘 떠오르는 컴퓨터나 AI 같은 걸 해라. 바이오는 너무 힘들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조금은 웃픈 이야기죠. 하지만 만약 제가 이 일을 좋아하는 것만큼 아이가 바이오를 재미있어 한다면 지지해 주고 싶어요. 그래도 제가 한번 겪어 봤으니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딸과 함께 과학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민경 : 다들 비슷하네요. 저희 아이도 장래 희망이 과학자긴 해요. 물론 과학 말고도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지만요. 아이가 ‘엄마 나는 학교에서 지금 배우는 과목 중에 과학이 제일 재밌어’라고 말하면 저는 겉으로는 ‘그래’, 그러면서 속으론 ‘네가 진짜 과학을 몰라서 그래. 진짜 알아봐야...’ 이렇게 생각해요. (웃음) 그럼에도, 아이가 지금의 이 막연한 호기심을 넘어 과학을 정말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땐 지지해 주려 합니다.
[IBS에서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과학자들, 이들은 엄마·아빠 과학자가 더 많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사진=BRIC]
Q. 육아하는 연구자로서 이런 제도가 뒷받침되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 있으신가요?
재훈 : 전 경제적인 육아 부담이 줄어든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박사 졸업할 때(2022년)쯤부터 개인 과제를 받으면 일부 대학에서는 포닥 임금을 따로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막 생겼거든요. 연구비에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포닥 임금을 따로 신청해서 주는 그런 시스템이었는데, 이런 제도가 확장된다면 육아하는 연구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의 경우 한국에서 박사하고 포닥하면서 경제적으로 정말 녹록지 않았거든요. 이 모든 걸 감당하면서 일을 할 수 있던 건 이 일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육아 하는 과학자를 위해서라도 임금 지원 방안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민경 : 한국은 아직 엄마라는 존재는 직장 내에선 조금은 민폐 같은 존재가 되는 경향이, 제가 경험한 미국 사회보단 좀 더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늘 마음의 빚 같은 게 구성원들에게 있어요. 여성 대학원생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대학원생의 비율이 아니라 학위과정 이후 연구 현장에서 엄마 과학자의 비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위 과정 이후 포닥부터 여성 과학자, 정확히는 엄마 과학자 비율이 확 줄어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건 실제 여성 과학자들이 엄마가 되면서 연구와 육아의 병행이 어렵다고 판단돼 결국 연구를 내려놓는 것이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도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아이 초등학교를 알아보는데, 선택에서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하교 시간이었어요. 지금 선택한 학교는 대전에서 하교 시간이 제일 늦어요. 연구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서 시간을 유연하게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이것들이 타당하게 제도로 용인되길 바라고 있어요. NIH(미국 국립보건원)에 있을 당시와 비교하자면, 그곳에선 대부분 연구원 평균 퇴근 시간이 5시였고, 아이가 학교에 다녀온 후에 집에 와서 한 시간 정도 후면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생활이 루틴이었어요. 어떤 분들은 일찍 퇴근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이 잠든 후에 다시 출근해서 실험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물론 한국에서도 양해해주셔서 이런 생활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일하는 시간을 융통성 있게 조절할 수 있는 실제적인 제도들이 생겨나서 많은 분들이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미 : 저는 육아 단축 근무시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저희 연구소의 경우는 근무기간의 1년 동안,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하루에 2시간씩을 제하면서 아이가 만5세 이하일 때까지 사용할 수 있거든요. 근데 이게 실험해야 하는 엄마 과학자들이 이용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고, 연령 제한도 조금만 더 확대가 되면 엄마 과학자들이 많이 도움받을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엔 늘봄 교실이라고 해서 아이를 6시까지 봐주는 제도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이가 저학년일 때는 사실 가장 필요한 것이 가족과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학교에 있는 시간을 늘려준다고 해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쓸 수 있게 해 준다면, 엄마 연구자 입장에선 타 연구자들에게 배려받아야 해서 생기는 마음의 빚도 없고 업무시간에 일에도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연 : 저는 남성 육아 휴직이 좀 더 자리를 잡으면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사회 전반적으론 아직 남성 육아 휴직이 드문 일이잖아요. 육아라는 건 가족 내에서도 팀 프로젝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남성 육아 휴직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 일을 부모 중 한쪽에 기대지 않고 나눠서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재훈 :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제가 아빠 과학자가 되기까진 아내의 헌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걸 항상 느끼고 있었는데, 오늘 인터뷰를 통해 더욱 크게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엄마 과학자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엄마 과학자들을 잘 대우해 주고 여러 제도적 지원이 이어진다면, 결국 좀 더 많은 사람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 형편과 상황 때문에 엄마가 되면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성 과학자들에게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부러워할 정도의 지원을 해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른 직업에 있는 여성들도 과학에 관심을 갖고, 많은 훌륭한 여성들이 과학 분야에 들어오면 우리나라 과학이 더욱 발전할 거라 생각해요.
이 인터뷰를 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엄마 연구자 중 한 분은 학교에서 아이가 다쳤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실험실에선 치열하게 고민하는 연구자로, 그와 동시에 (전쟁 같은) 육아를 묵묵히 병행하고 있는 엄마·아빠 과학자들이 연구와 육아 양립이 좀 더 쉽게 가능한 환경이 될 수 있게 BRIC도 지켜보며 응원하겠습니다.
취재 : 생물학연구정보센터 박유미
본 게시물의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하며, 일부 내용 인용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관련 문의 : interview@ibri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