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만사 인터뷰 연구자
뇌 건강 관리 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목표 '하고 싶은 연구를 적극적으로 하는 분들이 많아지길'
Stanford University 이진형 교수
- 전자공학도 출신의 뇌 과학자로서의 삶
- 연구 소개
-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연구,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 했던 힘의 원천
- 미국의 뇌연구 동향
-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와 후배 연구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 앞으로의 계획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제대로 정신 나간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킨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분야의 연구는 성공한다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기대도 받지만 과연 이게 될까 하는 의심도 동시에 받는다. 그리고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증명하고, 설득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뇌 신경망을 전자회로처럼 구현한 뇌 회로도를 통해 뇌 질환을 치료하겠다는 연구를 하는 이진형 교수도 의심과 기대 사이 경계에 서 있다.
이진형 교수는 전자공학 전공자로 박사후 연구원일때 뇌 연구로 연구 분야를 바꿔 전자회로처럼 뇌 회로도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2019년엔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혁신적인 연구를 하는 과학자에게 주는 권위상인 파이어니어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의대와 공대 종신교수이기도 하다. 뇌과학자 이진형 교수를 만나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진형 교수가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
Q. 안녕하세요. 이진형 교수님은 전자공학도 출신의 뇌 질환 연구자라는 특별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자공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후에 전공을 바꿔 뇌 연구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첫 시작은 외할머니의 뇌졸중이었어요. 외할머니가 쓰러지셨을 때 저는 당연히 회복으로 가는 답이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해답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왜 답이 없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죠. 여기에서 제 전공이 등장하는데 각 학문마다 트레이닝의 과정에서 생기는 사고방식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는 전자공학의 사고방식대로 시스템을 설계하고 디버깅(debugging) 하는 방법을 뇌 질환에 적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 뇌 질환 치료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뇌 기능 회복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능 회복을 위해선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동작을 해서 지금 이런 현상을 만들어내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뇌 회로의 동작과 기능의 관계를 밝혀내서 뇌 기능을 측정·진단하고 치료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게 단순히 전자공학도로서 든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기술이 실제 있는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여쭤봤습니다. 아직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Q. 현재 이진형 교수님이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전기 회로처럼 뇌 신경망들이 서로 연결된 뇌 회로도를 만들어서 뇌의 작동 방법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땐 몰랐는데 요즘 말로 하면 바로 뇌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컴퓨터에 현실 속 사물의 쌍둥이를 만들고,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기술, 위키백과 인용)을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어떤 분들은 말을 해요. 전기 회로도하고 뇌 신경망하고는 완전히 다르다고요. 다르죠.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뇌 회로를 이해하는 방법은 달라야 하지만 신경망은 그 자체로 망이거든요. 신경망 회로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저희(스탠퍼드대 이진형 교수 연구실 ‘Lee Lab’, 창업한 기업 ‘LVIS’)가 현재 완벽하진 않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만들 수 있단 것을 확인한 상태입니다.
또 앞으로는 개입(intervention)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나중엔 직접 실험하지 않고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진형 교수는 뇌를 회로처럼 진단하는 기술이 세상에 없다는 말에 내가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
Q. 처음 전자공학에서 뇌과학을 공부해 보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제가 뇌 회로도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가 전자공학으로 박사 후 연구원을 시작했을 때였어요. 그동안 엔지니어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완전히 바이오틱 한 일로 방향을 바꾸겠다고 했더니 일단 지도 교수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무모하다, 너 완전히 망가질지도 모른다”라고 하셨는데 위험부담이 큰일을 제자가 하지 않길 바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일 거예요. 응원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그런 부정적인 반응을 막상 들으니 집에 와서 많이 울었습니다. 이후로도 전자공학과 뇌 연구 분야 양쪽 모두에서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연구에 대한 의심을 받아야 했어요.
그렇게 울다가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는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나라는 질문이었어요. 전 아무리 생각해도 제 생각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렸고, 제 판단이 틀리면 제가 책임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둘째는 제 연구 목표는 뇌 질환의 치료인데, 저희 외할머니도 그랬지만 실제로 뇌 질환이 있는 환자를 보다 보면 너무나도 절실한 마음이 듭니다. 꼭 해내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요. 사실 그전까진 저는 공부를 하면서 명확하게 이루고 싶은 꿈이 없었어요. 배움의 즐거움에 공부에 몰두했을 뿐이었는데 어느 날 꼭 이루고픈 절실한 목표가 생긴 거예요. 이 두 가지가 명확해지니까 ‘그래, 내가 책임지면 되지, 해보자’라는 용기가 생겼어요. 그리고 책임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Risktaking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Q.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연구였지만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아 과제 지원을 받고 또 2019년엔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최고 영예의 상인 파이어니어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없던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연구에 대한 확신일까요?
연구는 사실 어떻게 100% 성공을 확신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한번 베팅해 볼 만한 정도의 확신은 있었어요. 이거 한번 해볼 만하다고 선택을 했고 그냥 하나씩 해봤어요. 하다가 진짜 죽어도 못하겠구나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어요.(웃음) 그런 과정에서 지원금을 받아서 힘을 내보기도 하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꾸준히 해보다가 예상한 데이터가 하나 딱 나오면 ‘역시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이러면서 아주 조금씩 확신을 얻고 그런 힘으로 해나가고 있어요. 아마 많은 연구자들이 저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이 과학자를 바라보며 하는 큰 착각 중 하나는 연구자는 하고 싶은 대로 마음먹은 대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연구를 하기 위해선 이런 연구를 하겠다고 제안서를 써서 연구비를 지원받아야 하고, 또 연구성과가 계속 나와주고,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도 해야 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에 놓이게 되죠.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일, 유행하고 있는 연구를 할 때는 장벽(barrier)이 낮아요. 그런데 다른 길을 가려 하면 굉장한 반대에 부딪히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설득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 미국의 뇌 연구 동향은 어떤가요?
뇌 연구에 대해 지원 규모를 여러모로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건 단순히 정책적 의미라기보단 뇌질환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이 너무 많은 것이죠.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뇌질환 중에 치매 하나만으로도 2050년이 되면 GDP의 6~7%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요. 그리고 이건 치료를 하는 비용이 아니라 환자를 케어하는데 드는 비용이기 때문에 NIH를 중심으로 뇌질환을 치료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 분야는 더 확대될 겁니다.
Q. 이진형 교수님은 한 인터뷰에서 ‘내 인생을 요약하자면 사서 고생한 이야기로 축약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연구를 하면서 늘 유행을 피해 다닌 것 같아요. 연구에서도 유행하는 흐름이란 게 있는데, 제 생각은 그건 다른 분들이 잘하고 계시니, 전 제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마음으로 합니다. 그래서 힘든 길을 걷고 있죠. 연구자 입장에선 유행을 따라가야 상도 많이 받을 수 있고 연구비도 많이 받을 수 있고, 논문도 많이 쓸 수 있고 한데 그런 길 말고 다른 길을 가려고 하니까 많은 분들이 제게 물어보세요. “네가 특별히 천재도 아닌데 왜 너만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느냐”라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저는 제가 가고 싶은 길을 갔기 때문에 이 길에서는 제가 제일 잘 알 거라고 생각하면서 해요. 그리고 저와 같이 해보고 싶은 연구를 적극적으로 하는 분이 많아야 연구 생태계가 더 건강해진다고도 생각해요. 왜냐면 세상엔 풀어야 할 문제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죠.
Q. 미국에서 한인으로, 또 여성 연구자로 살아가는 일도 만만치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학생 일 때까지만 해도 힘듦이나 차별은 잘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주류로 올라갈수록 차별은 심해집니다. 일단 저는 외부에서 다른 분야(전기공학)를 하던 사람이란 것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핍박을 받았고요. 또 여성이라는 점, 또 한인이라는 점도 유리한 조건은 아닌 게 확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액티브하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팔로알토 리더십 포럼을 출범해서 한인 리더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국제사회에서 한인 과학자들이 굉장히 약자가 되는 이유 중 하나가 한인 커뮤니티가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인 이유도 있거든요. 좀 만만한 상대로 보이기도 하고 그런 것으로 고생을 많이 한 과학자들도 많기 때문에 이제 우리 세대는 이런 걸 좀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Q. 후배 과학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과학자는 기술로 많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기술이 꼭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위한 기술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슴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과학자의 가치관이 잘못됐을 때는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죠. 과학의 힘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목표로 사람들에게 좀 해가 되어도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많으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 끔찍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 BRIC의 독자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과학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일을 열심히 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할 때, 언젠가 세상은 그 진심을 알아준다고 믿습니다.
Q. 이진형 교수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단기적으론 저희가 만든 연구성과들을 통해서 직접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뇌전증을 진단할 수 있는 플랫폼이 나올 것 같고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연구 단계에서 이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Next stage로 넘어가는 스텝을 몇 년간 밟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스테이지의 변화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요. 지금은 뇌질환이 생기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힘들고 더 나아지기가 힘든, 그야말로 그냥 참고 버텨야 하는 게 뇌질환입니다. 앞으로는 뇌 건강을 관리하는 세상,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제가 죽기 전에는 꼭 되도록 할 예정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습니다.
-----------------------
이진형 스탠포드대 교수
Affiliation : Stanford Neurosurgery
Stanford Electrical Engineering
Wu Tsai Neurosciences Institute
Association for Korean Neuroscientists
Honors & Awards :
NIH/NIBIB K99/R00 Award, NIH/NIBIB (2008/2010)
NIH Director's New Innovator Award, NIH (2010)
Okawa Foundation Research Grant Award, Okawa Foundation (2010)
NSF CAREER Award, NSF (2011)
Alfred P. Sloan Foundation Research Fellowship, Alfred P. Sloan Foundation (2012)
취재 : 생물학연구정보센터 박유미
본 게시물의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하며, 일부 내용 인용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관련 문의 : interview@ibri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