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 커뮤니티에는 아직도 2005년 줄기세포 논문 조작에 대해 학술적 토론에 참여한 수많은 익명의 연구자들과 그들의 목소리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연구 윤리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 이 사건의 제보자였던 류영준 교수를 만나, 20년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와 연구 윤리에 남긴 의미를 돌아보고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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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교수님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 교실에서 연구와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류영준입니다. 저는 줄기세포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고 병리학 전문의기도 하지만, 추가로 의료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해 의학사, 의료 윤리, 신경윤리 등을 함께 강의하고 있습니다. 의료인문학이란 분야가 다소 생소한 분들도 계실 텐데요. 쉽게 말씀드리자면 의학의 역사와 윤리적 판단, 그리고 과학적 사유의 기초가 되는 철학적 토대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의사과학자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인간과 자연을 향한 깊은 이해를 갖추도록 돕는 다리 역할을 하는 학문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사진 : BRIC]
Q. 류 교수님은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의 공익 제보자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는 관점에는 변화가 있을까요?
그 시절 제 심경을 당시의 일기장에서 다시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더 이상 한국에서 못 살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의사로서의 삶도, 과학자로서의 커리어도 모두 끝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제보자는 어떤 조직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것으로 알았던 것 같아요. 사건이 보도되고 제보자가 전직 연구원이라는 기사들이 나오면서 기자들이 집과 직장 앞에 진을 치고 있었어요. 결국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가족이 지방의 모처로 내려가 숨죽여 지내야 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비자발적 실업 상태로 지내며, 한국에서 연구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강원대학교 교수가 되어 연구도 이어가고 학생도 가르치며, 다양한 사회적 활동까지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공익 제보자가 국립대 교수가 되는 건 그야말로 판타지와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익 제보를 고민하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꼭 전합니다. 제 사례는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이니, 저를 모델로 삼지 말라고요.
이 기적 같은 반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가 제보한 이 사건이 운 좋게도 과학계라는 필드에서 일어난 학문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여러 이해관계와 사회적 담론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지언정, 학문적 관점에선 명확했습니다. 데이터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과학계의 객관적인 검증 결과에 따라 학술적 판단이 내려졌으니까요. 과학계 특유의 자정 시스템 덕분에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운 좋은 사례였다고 생각합니다.
Q. 그 이후 의료인문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엔 미국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시의 저는 한국 사회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서울대 조사위에서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공식 발표를 했음에도 여전히 황 박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제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습니다. 내 지식의 깊이와 실력으로는 이런 기이한 현상을 해석해 낼 길이 없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떠난다면 평생 조국을 원망하고 싫어할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내가 앞으로 한국을 이해하든 하지 못하든 이곳에서 이 사람들을 끌어안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든 도망치지 않고 끌어안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은 이 사회를 그리고 한국 국민을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이 제 공부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도 공부하고 법률과 철학, 윤리도 공부했어요. 또한 이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의 진실을 온전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 필력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사실을 왜곡 없이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 역사기술법까지 공부했어요. 당시 지도교수였던 서울대 황상익 교수님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문을 통해 시대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한국 사회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이 모든 비이성적인 현상이 인간사에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며 한국 사회의 구조적 한계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특히 전쟁 직후의 극심한 궁핍 속에서 생존 자체가 도전이었던 세대들에게는 생존, 즉 살아남는 것이 곧 윤리였던 겁니다. 그 처절한 연대기를 이해하고 나니 진실보다 국익과 황 박사에게 맹목적 믿음을 보이던 대중의 심리가 어느 정도 이해됐어요.
[사진 : BRIC]
Q. 그동안 우리나라 과학계는 얼마나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시스템적으론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건 하면 안 되겠다’, ‘이건 지켜야 한다’와 같은 연구 윤리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고 봅니다. 지금 젊은 과학자들은 연구 윤리를 필수 강의로 이수하고 있고 실제로 그들의 윤리의식도 과거에 비해 꽤 높아졌어요. 적어도 지금은 당시 황 박사처럼 과감하고 노골적으로 데이터를 조작하는 행위는 사실상 힘든 시대가 되었어요.
그러나 이런 외형적 변화와 달리 냉정하게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사건 발생 10년 차에 AP통신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도 한국 연구계는 변한 게 없다고 말했는데 20년 차 되어도 변한 게 없다고 진단합니다. 여전히 수많은 과학자가 논문 데이터 조작의 유혹 앞에 내몰려 있어요. 시스템은 촘촘해졌을지언정,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도태되는 냉혹한 구조가 그대로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논문 조작에 대한 처벌이 미미한 것도 제도적 허점이라고 보입니다.
연구 윤리의 외형은 갖춰졌으니 이젠 내실 있게 해야 할 때입니다. 내실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접하며 자라난 MZ세대가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레 연구 결과를 조작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을 테니까요.
이제 한국은 전쟁과 IMF 시대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해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실제 R&D 예산 규모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어요. 하지만 정작 연구 환경의 내실은 약화하고 있어요. 단적인 예로, 우수한 젊은 인재들은 더 이상 국내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으려 하지 않고 해외로 떠나고 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지방 대학원은 이미 외국인 학생들로 채워진 지 오래됐어요. 이런 상황에서 예산은 늘어나다 보니 연구자들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실적을 채우는 데 급급해집니다.
사실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처음부터 철저히 의도된 계획에서 나오는 경우가 드물어요. 하늘을 묵묵히 보다 보면 별도 보이고 달도 보이고 그런 것을 끈질기게 관찰하다가 우연히 뜻밖의 발견을 마주하는 것이 과학적 발견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연구 주제, 테마, 소재까지 국가가 정해서 자꾸 탑다운으로 내려옵니다. 제한된 연구비와 시간에 선진국을 따라가야 하는 현실이 그것을 막고 있지만, 국가가 과제를 주도하는 지금의 탑다운 방식으로는 연구자의 자발적인 탐구 정신을 키울 수 없어요. 연구자 중심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자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생태계, 보고서에 기재할 실적의 양보다 질적 가치를 존중하고 기초과학 연구를 중시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비로소 건강한 연구 생태계가 조성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과학자로 어떤 순수한 희열이나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과학자로서 보람을 느낀 것은 몇 가지 순간이 있었는데요.
첫째는 제가 남들이 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최초로 발견하고 증명해 냈을 때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몸 곳곳에는 줄기세포가 여럿 존재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학계와 의료계에서 지방 조직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환자까지 치료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거예요. 병리학자로서 봤을 때는 지방 조직에 별것 없는데, 어디에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의심했어요 ‘도대체 지방의 어느 부위에서 무엇을 빼내 치료한다는 걸까?’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럼, 그동안 사람들은 어떻게 지방 줄기세포를 사용하고 있던 걸까요? 모르고 썼던 겁니다. 효과가 있으니까요. 원래 의학사를 보면 정체와 기준을 몰라도 효과가 있으면 일단 임상에 쓰고 그 원인은 나중에 규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다행히 지방 줄기세포의 경우 환자 자신의 것을 사용했기에 면역반응이 없어서 안전했던 겁니다. 아무도 던지지 않았던 질문의 답을 병리학자로서 증명해 냈을 때의 희열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보람을 느낀 순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가 뇌 은행 설립에 기여한 일입니다. 당시 한국뇌연구원에 국내 최초의 뇌 은행을 구축하는 국책과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부검 전문가이자 관련 법률 전문가로, 서울대 지제근·박성혜 교수, 아산병원 김종재 교수를 비롯해 과기부 관계자들과 함께 국가 뇌 은행을 만들었어요. 한국 과학계의 거목들과 함께 뇌과학 연구의 핵심인프라인 뇌 은행의 기틀을 닦았다는 사실에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셋째는 신경윤리 분야의 과제 단장을 맡아 이공계 신경과학자들과 인문학자를 융합시켜야 하는 난제를 풀어냈던 일입니다. 같은 한국 사람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이공계와 인문학에 속한 사람들은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더라고요. 두 세계의 거리가 그만큼 멀었던 겁니다. 아시다시피 고대엔 철학자가 곧 과학자였고 과학자가 곧 철학자였잖아요. 최고 학위를 뜻하는 Ph.D. 역시 라틴어에서 유래된 Philosophiae Doctor의 약자잖아요. 이 멀어진 두 세계를 융합시키는 연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두 학문의 융합 방법론을 데카르트가 수학과 기하학을 융합하는 좌표계를 통해 계량화해 고안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정 60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 의학 연구 윤리의 최고 지침인 헬싱키 선언의 역사적인 재정비 작업에 한국 대표로 참여한 일입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의료윤리학자들이 모인 자리에 한국에선 저랑 서울대 김옥주 교수가 초청되어 참여했는데요. 저는 이 자리에서 황우석 사태의 뼈아픈 교훈을 반영하고 연구 윤리 부분을 최초로 넣었습니다. 세계 의학 윤리 기준을 바꾸는 아주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여했다는 것 등이 연구자로서의 보람입니다.
류영준 교수가 참여한 2024 헬싱키 선언 Springer 출간물 표지 [출처 : Springer 홈페이지]
Q. <세포조직 병리의 이해>라는 주제의 BRIC 웨비나를 처음 기획하고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에는 20년 전의 저처럼, 병리학을 정말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데 마땅히 배울 곳이 없는 연구자들을 위해 시작했습니다. 20년 전에도 국내 연구 환경에서는 병리학 프로토콜을 제대로 배우기 어려웠는데, 놀랍게도 그 공백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더라고요. 누구도 선뜻 나서서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먼저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며
BRIC 웨비나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뜨거운 반응이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단 하루 만에 600명의 정원이 모두 마감되었고, 재강연 요청이 계속 이어지면서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마다 강연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2년째 강의를 지속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제 강연을 신청하는 수강생의 3분의 2가 현직 교수나 박사급 연구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현장의 갈증이 깊었던 것이죠.
신약 및 연구 개발 업계에서 병리 형태학 접근은 필수적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바이오 선진국들은 신약 물질을 스크리닝하거나 독성 실험을 할 때, 병리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도록 시스템화되어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의정 갈등 사태 장기화로 인해 병리 전공 레지던트의 유입마저 완전히 끊겨버린 상태입니다. 대학병원에 남아 있는 병리 교수들은 밀려드는 환자들을 진단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에 차고, 저처럼 평생 연구와 실험 분야에 매진해 온 병리학자도 국내에는 극히 드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연구 현장에는 제대로 된 프로토콜이 존재하지 않고 실험실 표준화 시스템도 없습니다. 많은 연구자가 실험실 선배에게 주먹구구식으로 어깨너머 배운 방식에 의존해 실험하고 있어요. 일례로 실험에 필수적인 Paraffin block이 있습니다. 글로벌 표준 프로토콜 상 당연히 관리된 실온에서 보관해야 하는 물질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국내 실험실에서는 선배들이 해온 방식 그대로 이를 냉장고나 냉동고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영하 20도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그런 환경에서 조직이 손상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단적인 예만 보더라도 우리 과학계가 국제 표준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내실이 얼마나 척박한지 알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이런 오류들이 얼마나 산재해 있겠습니까. 어디에서도 명쾌하게 배우지 못했던 진짜 병리학을 배우기 위해, 전국의 수많은 연구자가 이 메일 주소를 등록하고 황금 같은 시간을 내어 제 웨비나에 접속하는 것입니다. 그 갈급한 마음을 잘 알기에, 제가 할 수 있는 힘이 닿는 한 이 교육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Q. 교수님의 현재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병리학자로서는 국내 신약 및 연구 개발 업계에 조직 병리 전문가가 부재하다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축 하나가 빠진 채 외국과 경쟁하고 있는 셈입니다. 실험실 표준화와 형태학 교육은 단번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록 소수 정예일지라도 잘 양성한다면 그 저변이 반드시 확대될 것입니다. 제가 BRIC 웨비나에 정성을 쏟는 이유기도 합니다. 현재 학교에서도 실습으로 소수 정예 학생을 심도 있게 지도하고 있는데, 제가 알고 있는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이것이 제가 병리학자로서 인생을 매듭짓는 방식이 될 거예요.
사회적으로는 대중과의 접점을 더 넓혀가려고 합니다. 또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아요. 대중과 언론이 과학적 진실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개인적으로는 제가 몸담은 강원도를 더 깊이 알아가고 싶어요. 강원대 교수로 오랜 시간 지내면서도 정작 강원도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 작은 오토바이를 한 대 마련했는데, 이를 타고 강원도 곳곳을 속속들이 살펴볼 계획입니다. 얼마 전에는 태백을 다녀왔는데 참 좋더라고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배경이 된 영월과 정선 오일장을 둘러보고 진부령 고개도 넘어보았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강원도의 숨은 풍경을 탐험하며 삶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제 소박한 목표입니다.
[출처 : 류영준 교수 제공]
Q. 마지막으로 후배 과학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정말 하고 싶은 연구가 있다면, 멈추지 말고 계속해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실 연구를 포기해야 할 핑계나 이유는 대려면 100가지도 넘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잘 견뎌내며 본인이 진짜 갈망하는 것을 쫓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기를 바랍니다. 높은 저널에 내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기본을 잘 지키는, 강한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10년 동안이 아주 중요한 이유입니다. 젊은 날 품었던 순수한 꿈의 시기는 인생에서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니까요.
설령 환경의 제약으로 인해 꿈의 형태를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본질만큼은 놓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여 보길 바랍니다. 무대가 미국이든, 일본이든, 혹은 한국이든 상관없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뜻을 펼치기 어렵다면 관련 기업이나 연구소로 눈을 돌려 돌파구를 찾으면 됩니다. 어디에 있든 내가 알고 싶은 진리를 계속해서 탐구하겠다는 그 학문적 순수성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지금 교수가 되어 어쩌면 한국 사회가 흔히 말하는 기득권의 중심부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안에서 안주하기보다 기꺼이 이방인으로 남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남은 삶의 꿈 역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경계에 서서 순수한 과학적 순수성으로 연구하는 후배들을 격려하며 나이 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