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이 정밀한 관찰의 시대를 넘어, 생명현상에 직접 개입하고 이를 재설계하는 조정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볼티모어(David Baltimore)는 “나는 관찰의 시대(era of observation)의 끝자락에서 성장했지만, 이제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의 시대가 수 세기 동안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설계와 조정이 주도하는 시대의 핵심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안전이다. 특히 광유전학(Optogenetics)은 생명체에 물리적, 또 영구적 손상을 입히지 않고도 세포 기능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유전학을 활용해 세포 내 분자를 관찰하고 제어하는 것을 넘어 차세대 치료제 개발까지 나아가기 위해 매진하는 연구자 KAIST 허원도 교수가 있다. 허 교수를 만나 광유전학이 열어갈 새로운 세계와 연구 여정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Q. 안녕하세요. 교수님과 연구를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빛과 합성생물학을 활용해 RNA, 단백질, 그리고 세포의 기능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세포생물학 및 뇌과학 기초 연구에 적용하고 있는 KAIST 생명과학과의 허원도 교수입니다. 저는
Optogenetics and RNA Therapeutics Lab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세포 내 mRNA, DNA, 단백질 등 다양한 분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빛으로 세포의 기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분자 광유전학 및 차세대 RNA 치료제(RNA Therapeutics)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실 초기에는 현미경 분석을 통해 세포 내 분자의 기능과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관찰 중심의 연구에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단순히 세포를 관찰하는 것을 넘어, 세포의 상태를 파악하고(Read), 빛으로 기능을 제어하며(Writer), 최종적으로 질병의 원인을 교정하는(Repair) 전략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저와 연구실은 이런 단계적인 접근을 통해 파킨슨병이나 치매 그리고 난치성 유전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광유전학 및 RNA 의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분자 광유전학 연구를 통해 차세대 RNA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허원도 교수를 KAIST에서 만났다. [사진 : BRIC]
Q. 교수님의 연구가 2025년 국가 연구개발 우수성과에서 생명해양부문 최우수 성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선정된 연구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번에 최우수 연구로 선정된 연구는 신경생물학 및 뇌과학 분야의 난제를 해결한 핵심 기술 개발 연구입니다.
우리 뇌의 무수한 신경세포(Neuron)는 학습과 사고 과정에서 서로 연결되면서 뇌에 기억을 저장합니다. 그 연결 지점을 시냅스(Synapse)라고 하는데 기억, 학습,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작은 유닛이에요. 시냅스가 어떻게 연결되고 떨어지고 변하는지에 따라 기억이 저장되는 곳과 행동 방식 등이 조절되기 때문에 시냅스를 정밀하게 관찰하는 것은 뇌과학의 오랜 과제였습니다.
기존 기술은 쉽게 설명하자면 시냅스의 찰나를 포착하는 사진과 같았습니다. 한 장씩 캡처된 사진만으로 역동적인 시냅스를 온전히 이해하기엔 한계가 명확했어요. 저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시냅스의 변화를 실시간 동영상으로 찍는 기술을 개발했고, 시냅스(Synapse)를 스냅샷(Snapshot)으로 찍는다고 해서 두 단어를 합쳐서 '시냅샷(SynapShot)'으로 이름 지었습니다.
기존 연구에서 시냅스를 관찰하기 위해선 ‘분할 형광 단백질(Split FP)’을 이용했는데요. 한 번 결합하면 다시 떨어지지 않는 비가역성 때문에, 시냅스가 강화되거나 약화하는 다이내믹한 과정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었어요.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역성(Reversibility) 구현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환경에 따라 가역적으로 반응하는 ‘이합체 의존성 형광 단백질(ddFPs)’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시냅스가 형성되거나 강해지면 형광이 밝아지고, 반대로 약화하거나 끊어지면 형광이 즉각 꺼지게 설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실제 살아있는 생쥐가 러닝머신 위를 뛰거나 학습 할 때, 뇌 속 시냅스가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소멸하는 역동적인 변화를 최초로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연구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8년 전, 시냅샷이란 멋진 이름을 먼저 만들고 이 이름에 매료되어 아이디어를 구상한 직후 당시 신입생이었던 제자에게 연구를 제안하며 시작했어요. 7년이 걸렸는데 실제로 구현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1마이크로미터(μm)에 불과한 미세한 시냅스를 현미경으로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형광 신호로 구현하는 작업은 상상 이상의 고행이었습니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실패가 반복되었어요. 저에게도 힘든 일이었지만 성과를 내야 하는 학생에게는 더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때마다 저는 “시냅샷이라는 이름이 너무 멋지지 않니? 조금만 더 해보자”라며 제자를 다독이고 끈기 있게 매진한 끝에 마침내 불가능해 보였던 결과를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 학생이 지금 IBS에 연구원으로 가 있는 손승규 박사입니다. 그리고 연구의 마침표는 존스홉킨스대 권형배 교수님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찍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투포톤 이미징 전문성이 결합하지 않았다면 시냅샷은 결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7년의 인내와 글로벌 공동연구가 만들어낸 결실(
2024년 Nature Methods지 논문 발표)입니다.
SynapShot 기술 개발에 참여한 손승규&이진수 박사 졸업식에 랩 멤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 허원도 교수 연구실 홈페이지]
Q. 광유전학은 2005년에 학계에 처음 등장했는데요. 어떻게 연구 주제를 광유전학으로 잡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광유전학의 시작은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칼 다이서로스(Karl Deisseroth) 교수가 Nature Neurobiology 저널에 빛으로 신경세포 활성을 제어할 수 있다는 연구를 처음 보고하면서 알려졌습니다. 당시 저도 스탠퍼드 대학교에 머물고 있었지만 연구분야가 달라서인지 그런 혁신적인 연구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초기에는 미처 알지 못했어요.
제가 광유전학을 제대로 접하게 된 것은 2008년에 KAIST에 부임하면서부터입니다. 새로운 연구 주제를 고민하다가 세포의 기능을 단순히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세포의 기능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광유전학을 제대로 알게 된 겁니다.
칼 다이서로스 교수의 광유전학 기술은 주로 전기적 신호에 의해 활성화되는 신경세포와 근육세포를 조절하는데 국한돼 있어요. 저는 세포생물학자로서 암세포를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세포를 연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칼 다이서로스 교수와는 다른 방식, 즉 세포 내의 다양한 분자를 빛으로 제어하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었어요.
이 기술의 핵심은 식물이나 단세포에서 유래한 광수용체 유전자를 추출해 동물의 단백질에 융합한 기술입니다. 즉, 동물세포 내 존재하는 분자에 빛에 반응하는 식물의 광(光) 엔진을 달아주는 셈입니다. 이를 통해 빛이라는 자극만으로 특정 분자의 움직임과 기능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의 연구는 일반적인 광유전학을 넘어, 분자 수준의 정밀 제어를 실현하는 분자 광유전학(Molecular Optogenetics) 기술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Q. 보통 임용 초기에는 박사나 포스닥 시절 전공했던 익숙한 분야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생소했던 광유전학을 연구 주제로 채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 역시 처음에는 기존에 연구하던 분야의 연장선을 고민했습니다. 저는 경상국립대학교에서 식물세포의 신호전달과 생화학을 전공하며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동물세포에 대한 강한 호기심으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토비어스 마이어(Tobias Meyer) 교수님 연구실에서 동물세포의 신호전달 네트워크와 바이오 이미징을 연구했습니다. 식물과 동물이라는 서로 다른 생명 시스템을 두루 경험한 셈입니다.
2008년 KAIST에 부임하며 연구의 방향성을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단순히 세포의 기능을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 빛으로 그 기능을 직접 제어할 수 있다면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생소했던 분자 광유전학의 잠재력을 믿었고, 이 기술이 향후 뇌과학과 세포생물학 분야에 거대한 파급력을 가져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박사학위 동안의 식물생명과학 연구배경과 포스닥 기간의 동물 세포생물학의 연구 경험이 제 머릿속에서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던 순간이었습니다. 칼 다이서로스 교수의 1세대 광유전학이 미생물의 채널로돕신을 활용했다면, 저는 조금 다른 상상을 했습니다. "포유류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식물의 광수용체 단백질을 동물세포에 도입한다면, 세포 내 다양한 분자들을 빛으로 정밀하게 조종하는 혁신적인 도구가 되지 않을까?" 이 강력한 호기심이 바로 현재 제가 개발해 온 수많은 분자 광유전학 기술 개발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쌓아온 서로 다른 연구 경험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광유전학을 선택한 이유는 생물학 연구를 관찰의 차원을 넘어선 다음 단계로 이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현미경 너머로 지켜보는 것에 머물지 않고, 빛을 매개로 특정 단백질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직접 제어하는 그 역동적인 가능성이 저를 광유전학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토비어스 마이어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 허원도 교수 연구실 홈페이지]
Q. 경상국립대에서 학위를 마친 후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를 거쳐 KAIST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소위 지방대 출신의 성공 신화로도 불리는데 당시 미국행을 결심하고 기회를 잡았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를 움직인 건 언제나 생명에 대한 호기심이었습니다. 경상남도 고성의 시골 마을에서 자란 저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키우는 게 너무 좋았어요. 나중에 커서 큰 목장을 경영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주말이면 주변에 있는 목장을 방문하고 그 꿈을 키워갔습니다. 저에게는 학창 시절, 교실에서 책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자연에서 생명을 대상으로 공부하는 게 휠씬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부화기로 병아리를 부화하고, 비둘기, 꿩, 칠면조, 거위, 오리, 새, 공작, 토끼, 개, 등 안키워본 게 없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동물을 직접 키우면서 동물의 특이한 행동, 질병, 번식 등 다양한 경험으로 생명과학에 대한 더욱 강한 호기심이 생겼어요. 목장주의 꿈은 버리고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3 때부터 대학 진학을 준비해 경상국립대 환경생명화학과(당시 농화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학부와 석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생명과학 연구의 즐거움에 빠져들었고, 박사과정 연구로 식물생명과학 분야에서 꽤 의미 있는 논문도 썼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물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더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1999년 당시, 저는 정말 단순하게 동물생명공학 분야 최고의 대학 10곳을 정하고 그 안에서 생명과학 분야에서 저에게 가장 매력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교수 10명씩 선정해서 100통의 이력서를 이메일로 보냅니다.
놀랍게도 하버드, 스탠퍼드, 버클리 같은 유수의 대학으로부터 10개 이상의 오퍼 연락이 왔어요. 하지만 정작 제가 가장 연구하고 싶었던 동물세포를 바이오이미징 기법으로 직접 관찰하면서 연구를 진행하는 듀크 대학교의 토비어스 마이어 교수님은 묵묵부답이었죠. 저는 포기하지 않고 그 분께 다시 메일을 보냅니다. ‘나는 이미 하버드, 스탠퍼드, 버클리 대학에서 Job Offer를 받았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받아준다면 그 모든 기회를 제쳐두고 당신의 연구실로 가겠다. 다시 한번 검토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이 비장한 메일에 교수님은 전화 인터뷰를 하자는 메일을 주셨어요. 식탁 위에 예상 질문과 답변을 가득 펼쳐놓고 서툰 영어로 간절함을 쏟아냈습니다. 다음날 저에게 미국으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훗날 교수님께 나를 뭘 보고 뽑았느냐고 물어봤더니 전화로 들리는 목소리에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뜨거운 열정이 보여서 뽑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아내와 생후 6개월 된 첫째 아이를 한국에 남겨둔 채 반드시 자리를 잡고 성공하면 부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비장한 각오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막상 듀크 대학교에 갔더니 연구실이 듀크에서 스탠퍼드로 6개월 뒤 이전을 앞둔 어수선한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자리를 빨리 잡아야 했던 절박했던 저는 여유가 없었어요. 특히 식물 연구에서 동물 연구로 넘어온 터라 배울 실험들이 산더미였고 하루에 단 4시간만 자면서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보통 현지 포스닥들이 한 달 걸려 완성하는 유전자 클로닝을 저는 석 달 만에 300개를 해 냈습니다. 지금이야 기술이 발달해 비교적 수월해졌지만, 일일이 제한 효소로 자르고 수작업으로 염기서열을 분석해야 했던 당시로서는 감히 엄두조차 내기 힘든 작업량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 스스로도 어떻게 그 엄청난 일들을 다 해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한국 출신의 무명 연구원을 뽑았던 교수님은 실력과 성실함을 인정해 주시고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그 결과 1년 만에 연봉이 2배, 3년 차에는 선임연구원으로 임용돼 연봉이 세 배에 달하는 파격 대우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인정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연봉이 2배가 된 1년 만에 가족을 미국으로 불렀습니다.
지방대에서 미국의 좋은 학교에서 포스닥을 하고, KAIST에서 교수를 하는 저를 보고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때마다 저는 호기심과 끈기를 말합니다. 호기심과 끈기를 가지고 달려온 저의 이 투박한 경험이 꿈꾸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작은 예시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Q. 교수님 연구의 Eureka Moment를 소개해 주신다면?
제 연구 인생에는 잊을 수 없는 두 개의 Eureka 순간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포스닥 시절, 3개월 동안 300개의 클로닝에 매진하며 얻은 결실입니다. 그걸로 두 개의 논문을 썼는데
Cell (DOI: 10.1016/S0092-8674(03)00315-5)표지논문과
Science(DOI: 10.1126/science.1134389)에 게재됐습니다. 특히
Cell 표지로 나왔던 논문은 저자가 저랑 토비어스 마이어 교수 이렇게 딱 두 명이에요. 1 저자와 교신저자밖에 없는 논문입니다. 저 혼자 모든 실험을 해서 나온 결과로 만들어진 논문이지요. 당시
Cell에 투고하고 자꾸 리젝(Reject)되는 위기를 맞았는데 리뷰어 3명 모두가 다 부정적인 반응이었어요. 저희는 다른 저널에 투고하는 방법 대신 집요하게 실험을 보완하며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다가 두 단백질의 핵심적인 부분 하나를 상호 교체하자 마법처럼 두 단백질의 기능이 서로 뒤바뀌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고 결국 해당 논문은
Cell의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그때가 제 연구의 첫 번째 Eureka 순간이었고요.
두 번째는 KAIST 부임 후, 광유전학 연구의 가능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에요. 우리 연구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첫 번째 광유전학 원천 기술인 라리아트(LARIAT, Light-Activated Reversible Inhibition by Assembled Trap) 실험 날이었어요. LARIAT는 식물의 청색광 수용체인 CRY2와 결합 단백질인 CIB1, 그리고 다중체 단백질(MP, Multimeric Protein)을 융합해 만든 기술입니다. 마치 카우보이가 올가미를 던져 동물을 잡듯, 빛을 쬐어주면 세포 내에 거대한 단백질 복합체(클러스터)가 형성되면서 표적 단백질 잡아서 기능을 억제하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날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두운 현미경 실에 학생들과 둘러앉아서 현미경으로 살아있는 세포를 관찰하고 있었죠. 현미경의 파란색 빛(488nm 레이저)을 켜는 순간, 세포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던 단백질들이 빛을 받자마자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순식간에 눈부신 점들(클러스터)로 뭉치며 응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경이로웠던 것은 빛을 끄자마자 그 단단해 보였던 단백질들이 다시 스르르 풀려나가는 완벽한 '가역성(reversibility)'을 보여주었다는 점이었는데요. 살아 있는 세포 내 단백질이 빛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그 경이로운 광경은 과학자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었고, 머릿속 가능성으로 시작했던 연구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잊지 못할, 그리고 가장 눈부셨던 순간이었습니다.
빛을 이용해 세포 내에서 단백질 응집 현상을 저희 실험실에서 최초로 구현한 것은 2010년의 일입니다. 당시에 우리가 클러스터(cluster)라고 부르며 국내외 학회에서 처음 소개(
2014년 Nature Methods 논문 발표)했던 이 네트워크 형성 메커니즘이, 재미있게도 바로 지금 세포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화두로 떠오른 상분리(Phase separation) 및 생체분자 응집체(Biomolecular Condensates) 현상입니다.
Q. 광유전학 권위자라는 명성만큼 학내에서는 거위 아빠라는 친근한 직함으로도 유명합니다. 어떻게 거위 아빠가 되어 거위들을 돌보게 되었나요?
KAIST에 부임해서 보니, 학교 연못에 거위가 있더라고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어린 시절 동물 키우는 게 좋아서 목장 경영을 꿈꾸던 사람이지 않습니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본능적인 애정 때문에 직접 사료를 사다 나르며 거위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교수셨던 이광형 총장님께서 거위를 데려와 정성껏 돌보고 계셨더라고요. 제가 거위 밥을 챙겨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한 5년 전 이광형 총장님께서 ‘이제 교수님이 정식으로 거위 아빠를 맡아 달라’며 기쁘게 그 자리를 물려주셨어요.
지금도 매일 거위들의 끼니를 챙기고 있는데요. 학교 측에서 사료비를 지원해 주겠다는 제안도 했지만, 제가 좋아서, 또 거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 만큼 정중히 거절하고 지금까지 사비로 사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거위들에게 신선한 채소도 필요한 만큼 배추 등을 직접 사서 손질해 가져오기도 합니다. 조금 있으면 거위들이 알을 낳는 산란기인 만큼 거위들이 에너지 보충이 중요해 최근엔 하루에 두 번씩 밥을 챙겨줍니다.
재미있는 건, 매일 밥을 주다 보니 거위들뿐만 아니라 참새와 비둘기들까지 저를 알아보고 날아옵니다. 캠퍼스를 오가는 수많은 학생 속에서도 멀리서 들려오는 제 목소리와 저의 얼굴을 기억하고 달려오거나 날아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형용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낍니다. 그 작은 생명들이 보여주는 신뢰와 반가움이 저에게는 큰 책임감이 되어,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사료를 챙기게 됩니다.
카이스트 2대 거위 아빠로 불리는 허 교수가 연못 주변에 나타나면 목소리를 알아듣고 거위들이 몰려든다. [사진 : BRIC]
Q. 생명현상을 관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제어하고자 하는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 교수님의 연구실은 꼭 가고 싶은 곳이 될 것 같은데요. 인재를 선발할 때 교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희 연구실(HEOLAB)은 화려한 스펙보다 협력, 끈기, 그리고 호기심이라는 세 가지 핵심 역량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술은 혹독한 검증을 거쳐야 완성됩니다. 내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동료가 만든 도구의 첫 번째 사용자가 되어 엄격하게 테스트해 주는 끈끈한 유대감이 위대한 기술을 만듭니다. 그래서 협력이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리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은 필연적으로 실패 위험(High-risk)이 크고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유행을 좇기보다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묵묵히 버텨내는 단단한 마음의 근육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가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험 기술은 연구실에 들어와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미지의 영역을 파고들고자 하는 순수하고도 강렬한 열망은 가르칠 수 없는 본연의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구 문화를 바탕으로 우리 연구실은 현재까지 29명의 박사와 5명의 석사를 배출했습니다. 졸업생들은 하버드, MIT, 스탠퍼드 등 세계 최고 대학에서 활약하거나 서울대, 컬럼비아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내외 유수 기업에서 질병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는 호기심만 안고 오신다면, 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공부하며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는 길을 함께 열어 가겠습니다.
Q. 쉼 없이 달려오신 교수님의 향후 계획과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궁금합니다.
정년이 7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다행히 KAIST의 '정년 후 교수 제도' 덕분에 역량이 허락하는 한 연구를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남은 여정 동안 제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건강을 유지하면서 학생들과 교감하는 행복한 연구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영감은 마음이 가장 평온하고 자유로울 때 찾아온다고 믿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설레는 질문을 던지고 즐겁게 몰입할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또 새로운 도구를 테스트해 주는 친근한 파트너로도 제자의 곁을 지키려고 합니다.
둘째는 연구자 허원도로서 우리 연구실의 성과를 실제 임상에 적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온 혁신적인 광유전학과 RNA 제어 및 치료의 원천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우울증, 유전병과 같은 난치성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새로운 의학 패러다임을 의료 현장에 안착시키는 것을 보는 것이 마지막 소명입니다.
Q. 마지막으로 꼭 나눴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분자 광유전학의 연장선에서 현재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차세대 '시공간 RNA 생물학 및 치료 기술(Spatiotemporal RNA Biology and Therapeutics)'에 대한 지원과, 우리 사회가 연구자를 대하는 시선에 대해 짧게 당부드리고 싶어요.
최근 우리 연구실은 유전체를 영구적으로 훼손할 위험이 있는 기존 DNA 유전자 가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크리스퍼(CRISPR-Cas13) 시스템과 분자 광유전학을 융합하는 고도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특정 RNA만을 표적으로 삼아 빛을 이용해 원하는 시간과 부위에만 정밀하게 제어하고 교정하는 혁신적인 mRNA 광유전학 기술(mRNA-LARIAT, mRNA-RELISR, paCas13 등)과 최초의 mRNA를 세포와 생체에서 아세틸화 가능한 dCas13-eNAT10 입니다. 이른바 시공간 기능 전사체학(Spatiotemporal Functional Transcriptomics)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들은 RNA 교정의 안정성과 정확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이런 원천 기술이 RNA 생물학 분야 및 치료제로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려면, 당장의 단기적 성과나 가시적인 지표에 연연하지 않는 국가 차원의 장기적이고 든든한 기초 연구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이런 지원을 바탕으로 연구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수십 년을 내다보는 원천 기술을 만들고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해 주길 바랍니다.
2024년 경암교육문화재단의 경암상 수상시 랩 멤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 허원도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