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에 대한 인식은 그동안 큰 변화를 겪어왔다. 과거에는 비만을 개인의 식탐이나 운동 부족과 같은 의지의 문제로 치부했지만 1994년 제프리 프리드먼(Jeffrey Friedman) 박사가 렙틴(Leptin, 식욕 억제 호르몬)을 발견하며 생물학적·내분비학적 질환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후 2000년대 렙틴의 뇌 조절 기전이 밝혀지고, 2010년경 식욕을 생존 본능이 아닌 쾌락과 보상의 관점에서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비만 연구는 뇌과학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서울대 최형진 교수는 내분비내과 의사 시절 대사질환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비만에 대해 심리학과 뇌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식욕이 비만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넘어, 인간 욕망의 근원적 기전을 탐구해 현대 사회의 난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최형진 교수를 만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Q. 안녕하세요. 교수님과 연구를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비만과 식욕,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연구하는 서울대 뇌인지과학과/해부학교실의 최형진입니다. 우리 연구는 욕망 중에서도 식욕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요. 식욕이 어떻게 작용해 비만으로 이어지는지 그 뇌신경 기전을 규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식욕의 근본적인 작용 방식과 원인을 알아내서 식욕과 욕망을 어떻게 진단하고 또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를 찾아내고 나아가 새로운 식욕억제제나 전자약, 뇌 조절 디바이스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의 기틀을 만드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즉,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함께 연구하면서 식욕의 원리를 밝히고, 실제 식욕 억제 치료제나 기기를 만드는 분들을 돕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Q. 비만치료제(위고비 등 GLP-1 계열 약물)가 어떻게 뇌에 작용하고 식욕을 억제하는지 그 기전을 밝혀낸 연구로 Science에 게재되기도 했는데요. 구체적인 기전을 설명해 주세요.
명절에 전을 부치다 보면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부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이것은 뇌가 음식의 냄새와 시각 정보를 수집해 곧 음식이 들어올 것이라 판단하고 미리 준비하는 사전대응기전(Feedforward Inhibition) 때문입니다. 이 기전은 일종의 안심 장치로서 사전에 배부름을 만들어서 과잉 식사를 하지 않게 과도한 배고픔을 미리 안심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기전을 연구하던 중, 이와 같은 섭취 전 배부름(인지적 배부름)을 만드는 신경회로에 GLP-1 수용체가 밀집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요. 광유전학(Optogenetics)과 칼슘 이미징 처리 기법을 활용해 이것이 언제 켜지고 꺼지는지, 일부러 켜면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작동 원리를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마우스 실험을 통해 GLP-1 수용체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면 식사량이 줄고, 억제하면 더 먹게 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는데요. 치킨을 나눠주고 난 후, 치킨을 씹기만 하고 삼키지 않은 상태에서도 배부름 수치가 올라가는 것을 과학적인 수치로 증명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위고비 같은 GLP-1 계열 비만치료제는 이 인지적 배부름 회로를 극도로 민감하게 만들어서 음식을 보거나 조금만 씹어도 뇌가 강력한 포만감을 느끼게끔 유도하고 결과적으로 과식을 막도록 작동한다는 원리를 제시했습니다. 이 내용은 2024년에
Science 지에 게재되며 큰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2013년부터 10년 넘게 차근차근 밝혀온 기전의 결실입니다.
우리 연구는 이런 배고픔 신호부터 포만감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잘 이해하는 것이 목표고요. 그래서 비만을 치료할 수 있는 더 좋은 약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현재의 비만치료제는 모든 음식에 대한 욕구를 떨어뜨려 극단적으론 영양실조와 같은 부작용을 불러 올 수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약은 영양가 있는 건강한 밥은 삼시 세끼 잘 먹고, 디저트나 야식과 같은 쾌락 때문에 먹는 음식은 선택적으로 안 먹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양질의 음식은 먹고 불필요한 욕구만 다스리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 우리 연구의 궁극적인 지향점입니다.
최형진 교수는 비만 연구 너머 인간의 욕망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한다. [사진:BRIC]
Q. 비만 치료를 식욕 억제가 아닌 뇌 문제로 접근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13년 동안 진료 현장에 있었고, 특히 전신 생리학과 대사 질환을 다루는 내분비내과 전문의로 수많은 비만 환자를 진료 현장에서 마주해 왔습니다. 그때 든 생각들은 무엇이 비만 치료의 본질적인 해답이 될 것인가 였어요.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인 심혈관질환이 최근 50년 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요.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일어난 이 일의 원인을 추적해 보면 결국 먹는 것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고 그로 인해 비만이, 그리고 그 비만이 심혈관질환의 폭발적 성장에 기인했다고 결론 내리게 됐어요. 그리고 이렇게 비만 환자가 계속 늘어난다면 이것이 언젠가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되어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 직감했습니다. 이런 재앙을 막으려면 결국 먹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즉 뇌의 신호를 조절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뇌과학적 접근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믿던 중, 뇌의 신호 조절로 식욕을 조절하는 약인 위고비가 2년 전 나오면서 더욱 확신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비만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사회적,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 내도록 뇌과학적 근거를 계속해서 찾고 제시해 나갈 예정입니다.
Q. 13년 동안 몸담았던 임상 현장을 떠나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어요. 안정적 삶에 대한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데 제 대답은 늘 같습니다. 조금도 아쉽지 않아요. 물론 의사가 하는 일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봉사하는, 숭고하고 보람찬 일입니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런 상황이 지적 도전 의식과 창의적인 시도를 갈망하던 저에겐 다소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의사로 환자를 진료할 때 ‘이 환자는 이러이러한 컨디션이니까 이렇게 치료를 시도해볼까’라는 식으로, 창의적으로 일 처리를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안전하게 법의 보호를 받지만, 저 같은 사람은 그게 매우 싫었습니다.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사람이 있고 가이드라인을 바꾸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래도 전자는 아닌 것 같아서 저를 대상으로 비교 실험을 해봤습니다. 일주일의 절반은 환자를 만나 진료하고 절반은 연구해 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하루는 환자를 만나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네요. 이 약 드시고 세 달 뒤에 봅시다.’라고 가이드라인 따라 일을 하고, 그다음 날은 연구실에 앉아서 황당한 연구 계획서를 쓰는 거예요. ‘내가 욕망 그중에서도 식욕으로 욕망의 중심을 밝히겠다.’라는 허황되지만 원대한 꿈을 꾸면서 연구비에 지원하고 떨어지길 반복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한 거에요. 연구비 지원에서 떨어져도 별로 안 괴롭고, 지원이 결정되면 엄청나게 기뻐하는 걸 보면서 나라는 사람은 연구의 길이 잘 맞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제가 분석한 나라는 사람은 내 행복을 위해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지적 행복이 중요한 것 같았어요.
호기심 충족이 연구의 가장 큰 동기라고 말하는 최형진 교수는 2015년부터 진료 현장을 떠나 연구자의 길을 걷는 의사과학자다. [사진제공:최형진 교수]
Q. 처음 연구자의 길을 걸을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제가 의사를 그만두고 해부학 교실로 온 게 2015년이었는데요. 내분비내과 의사를 하다가 뇌과학을 하겠다고 분야를 바꿔서 온 것이다 보니까 저를 향한 시선은 기대보단 우려가 컸어요.
과학계 모임을 가면 흔히 박사나 포닥은 어디서 했는지, 지도 교수님은 누구인지 묻곤 합니다. 저는 ‘내분비내과 의사였고 그래서 내분비 지도 교수는 있지만 뇌과학 지도 교수는 없고, 정파(正派)의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자수성가형 사파에 속한다’ 이렇게 말하면 당황하는 게 느껴졌어요. 사람들은 뇌과학에 대한 정식 교육도 받지 않은 임상의가 우주처럼 복잡한 뇌를 연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보였어요.
연구 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구비나 연구 인프라가 확실한 치매, 기억, 시냅스 등 연구를 하냐고 물었지만, 저는 연구 파이가 적어 지원받기도 힘든 식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답해요. 여러 가지로 그분들 눈에 미덥지 않았을 거예요. 한번은 제약회사에서 발표했는데 '똑똑해 보이는 분이 왜 이런 식욕 같은 주제를 연구하고 있냐, 유망한 항암제 연구하자'는 소리를 들기도 했고, 저를 아끼는 분들로부터 지금이라도 뇌과학 연구실에서 포닥 과정을 밟아보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런 얘길 계속 듣다 보면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보장된 미래를 두고 와서 무모한 도전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어요. 2015년에 해부학교실로 왔고 제 연구를 증명할 만한 논문이 나온 게 2023년이었으니까 그 시간이 8년이나 되더라고요. 이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돌아보면 전 제가 품고 있던 질문의 답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믿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여겨집니다. 설령 좋은 논문을 내지 못하고 연구비가 끊겨도 이 질문의 답을 찾고 싶다는 갈망이 더 컸어요. 그 사이 안 흔들렸냐고요?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중간에 연구비가 너무 부족 할때는 솔직히 치매 연구비에도 도전해 봤어요. (웃음) 당연히 떨어지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떨어진 게 다행입니다. 만약 치매 연구비를 받았다면 당장은 연구비 갈증이 해소됐을지 몰라도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식욕 연구에 대한 집중력은 흐려졌을 것 같아요.
Q. 자신을 이토록 명확히 파악하고 계신 비결이 궁금해집니다. 자신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자기 성찰을 많이 하라고 말합니다. 의대생 시절부터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오면서 저는 몸의 대사조절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걸 명확하게 풀어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늘 있었어요. 저는 이런 자기 성찰에 대해 Research가 아닌 ‘나(Me)를 중심에 둔 연구라는 의미에서 Me-search라고 부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목적의 연구가 있겠죠.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누군가는 배운 게 이것뿐이어서, 혹은 단순히 논문을 내기 위해 잘될 것 같은 주제를 선정해 연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 혹은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고요.
특히 식욕은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소하면서도 거대한 욕망입니다. 모두가 하루에도 몇 번씩 욕망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에 대해 얘기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점점 더 연구의 핵심으로 다가가게 되는것 같아요. 사실 GLP-1 기전 연구 역시 약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호기심에 직접 맞아본 Me-search에서 출발했어요. 정말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배가 안 고프더라고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식당에 갔는데 음식 냄새를 맡자마자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이건 확실히 효과가 있다. 기전을 파고들어 보자’라고 결심하게 되었죠. 내가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떤 호기심에 이끌리는지 이런 Me-search의 시간을 쌓다 보면 독창적인 연구도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Q. 교수님의 연구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Eureka Moment를 소개해 주신다면?
보통 사람은 배가 고파서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배고픔과 식욕을 분리해야 한다고 굉장히 오래전부터 생각했어요. 2015년경, 학계에서는 배고플 때 활성화되어 식욕을 촉진하는 AgRP(Agouti-Related Peptide, 아구티 관련 펩타이드) 신경세포에 대한 발견들이 많이 나왔어요. 당시 논문의 메시지는 먹을 것을 눈으로 보기만 해도 식욕을 촉진하는 AgRP 신경세포의 신경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는데 많은 화제가 됐습니다. 왜냐하면 음식을 실제 섭취했을 때 위장이나 혈액에서 감지된 신호를 받아들여 AgRP 신경세포가 꺼진다고 생각했던 통념을 깨뜨렸기 때문이에요. 실제 먹지 않고 음식을 보기만 해도 곧 먹을 것이라고 안심하게 되면 AgRP 신경세포 신호가 꺼진다는 것을 발견한 기념비적인 해이죠. 그런데 저는 뭔가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필요(Need)와 욕망(Motivation)이 별개인 순간에 대해선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을 연구해서 2024년에 논문으로 발표했는데요. 그게 제 연구의 Eureka Moment라고 볼 수 있어요.
사람이 밥을 배불리 먹고 나면 필요는 없어진 건데 그런데도 우리는 달콤한 디저트를 갈망하고 반대로 아주 큰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밥때가 되어도 입맛이 뚝 떨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뇌가 상황을 미리 판단해 조절하는 예측 기전(Anticipation)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어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에 매달렸고 결국 배고픔을 담당하고 신호를 보내는 AgRP신경세포와 욕망을 조절해 섭취 행동으로 이끄는 LHA LepR (LHA 렙틴 수용체) 신경세포가 분리되어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AgRP 신호가 배고픔 해결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두 개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때론 배가 고파도 먹지 않는 섭식 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겁니다. 이 논문에 대해 어떤 분들은 잘 증명했다고 하기도 하고요. 어떤 과학자들은 그게 뭐 다 비슷한 거 아니냐고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저에겐 제 머릿속 생각만으로 존재했던 심리적인 이론을 실험적인 데이터로 증명한 순간이어서 의미있고 소중한 발견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철학과 그걸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논문 에디터가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논문에 실어주었던 이 순간이 제겐 Science 게재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A normative framework dissociates need and motivation in hypothalamic neurons. Science Advances. Nov 2024 [한빛사 논문 보기]
최형진 교수는 배고픔과 식욕을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생각을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었던 순간을 Eureka Moment로 꼽았다. [사진제공:최형진 교수]
Q. Science지 논문 게재를 앞두고 스쿱(Scoop, 경쟁자 연구 결과가 먼저 발표되는 것)의 위기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공동 연구로 전환될 수 있었나요?
세계 섭식 학회(Society for the Study of Ingestive Behavior, SSIB)는 아주 오래된 전통 있는 학회인데, 섭식에 대해서만 깊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1년에 한 번 모이는 아주 진지하고 온갖 섭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제겐 마음이 통하는 동아리나 친정 같은 학회예요. 2023년에 그곳에서 포스터를 쭉 돌아보다가 제 논문 제목과 결론이 똑같은 케빈 윌리엄스 교수의 포스터 제목을 봤어요. 과학자라면 제일 무서운 순간입니다. 말로만 듣던 스쿱의 위기였어요. 게다가 논문을 곧 투고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분들이 1등이 되고, 우린 후속으로 발표되어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겠구나 싶어 너무 무서웠어요.
내용을 자세히 읽어봤는데 다행히 실험이 겹치지 않았어요. 윌리엄스 교수팀 연구에서는 전기 생리학적 실험이 탁월했고, 세포 단위 시험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마우스와 사람 행동 데이터가 독보적이었어요. 그때 두 가지 마음이 싸웠는데 지금 당장 돌아가 호텔방에서 밤을 새워 먼저 투고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공동발표를 제안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두 연구를 합쳐 하나의 큰 그림처럼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꾸 들었어요. 그래서 케빈 윌리엄스 교수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조사를 시작했어요. Joint Paper를 제안하는 순간 제 연구도 오픈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분이 거절하고 바로 투고해버리면 정말 큰일 나는 것이니까요. 주변 평판을 통해 신뢰할 만한 인물임을 확인한 후에 용기를 내서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구 주제와 결론이 같지만, 우리가 가진 무기가 서로 다르니까 합치면 더 좋은 논문이 될 것 같다’고 제안했어요. 그분이 조금 생각해 보더니 쿨하게 그러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Science 게재라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분이 최종 교신 저자 자리까지 저에게 양보해 줬습니다. 한국이란 섭식 연구 변방에서 온 제 진심을 믿어준 그분의 품격 덕분에 자칫 경쟁으로 묻힐뻔 했던 두 연구가 꽃을 피울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Q. 교수님 연구실에 합류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연락이 오면 교수님은 어떤 점을 가장 유심히 보시나요?
저는 학생들에게 연구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인생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긴 아무 숙제도 없고 남이 정해준 목표도 없다, 그건 네게 정해서 하는 거다. 연구자는 스스로 궁금증을 찾고 질문을 던지고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장이나 창작활동을 하는 시인과 닮아 있다'고 말합니다.
인턴 과정을 통해 학생을 선발해 유심히 관찰합니다. 2~3개월 동안 함께 지내면 자기 모습을 속이지 못해요. 크게 인성과 연구로 나눠 평가하는데요. 연구 부문에선 과학적 인생 목표의 선명성이 가장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면 실험 테크닉이나 학문적 지식이 필요한 실험 수행 능력은 제일 아래에 위치해요. 자기성찰을 하고 인생의 목표가 뭔지, Me-search하는 사람, 실패해도 괜찮고 궁금하면 계속 파고드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졸업한 김규식 학생이 이 자기 주도성이 가장 높은 학생이었어요. 적극적이고 인생 목표가 뚜렷한 사람, 내버려두면 혼자서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실험이나 공부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 사람들이 좋은 성과가 나더라고요. 이런 게임의 룰을 이해한 사람이 오면 지도 교수가 출근하든 말든, 눈치를 보거나 눈도장을 찍는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선명한 목표와 궁금증의 답을 찾느라 바쁠 테니까요.
김규식 학생은 현재 Harvard Medical School에서 포닥 과정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최형진 교수 연구실 홈페이지]
Q.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인생 목표, 그리고 연구 목표를 알려주세요.
저는 연구자로서는 욕망의 원리를 밝히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기억이나 통증의 원리는 많이 밝혀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욕망의 원리는 아직 도파민이란 단어 뒤에 숨어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고 있어요. 전 욕망의 원리를 잘 밝히면 인류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요. 그리고 욕망을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주제가 식욕인 것 같아요. 사람, 원숭이, 개, 심지어 초파리나 예쁜꼬마선충도 다 식욕이 있습니다. 여러 욕망 가운데 가장 Fundamental한 기본 구조가 식욕인 것 같고 그래서 식욕을 시작으로 욕망의 원리를 밝히겠다는 게 학문적인 목표입니다.
두 번째는 좋은 연구실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처음 랩 만들 때 좋은 연구실을 만들자는 목표아래 연구실원을 뽑고 지금까지 모든 것을 자율에 맡기는 실험 중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다간 망할 것이라고 했거든요. (웃음) 휴가도 마음대로 가고, 연구도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결국엔 하는 척만 하는 사람이 나올 거고 그러다간 모두가 그쪽으로 가서 망할 거라고요. 또 지도 교수에게 디테일한 지도를 바라는 학생도 있기 때문에 나중에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실험은 아직 진행 중인데요. 아주 잘된 케이스도 있고, 또 어려운 점도 있어요. 결국 건강한 실험실 문화를 조성하고 싶어요.
저는 학계라는 분야가 자랑스럽거든요. 종종 학부생들에게도 금융권이나 법조계, 일반 기업보단 학계가 건강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냥 본인의 연구를 열심히 하면 그와 비례해서 정직하게 성공하는 거 같거든요. 부모가 누구고 어떻게 도와줘서 성공하는 것이 훨씬 적다, 그래서 정직한 곳이라고요. 그렇게 건강한 연구실, 건강한 학계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최형진 서울대학교 교수
학력
1996-2002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학사
2006-2011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내과학 석사
2011-2013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분자유전체의학 박사
경력
2002-2003 서울대학교병원 수련의
2003-2007 서울대학교병원 내과 전공의
2007-2009 국립목포병원 공중보건의
2009-2010 국립보건연구원 유전체센터 공중보건의
2010-2012 서울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전임의
2012-2013 충북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진료교수
2013-2015 충북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임상조교수
2015-2019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조교수
2019-2024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부교수
2024-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정교수
2024-현재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뇌인지과학과 정교수
글 : 생물학연구정보센터 박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