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논문
Abstract
논문소개전체 설명
신경계는 다양한 종류의 세포들이 서로 협력할 때 비로소 제대로 기능한다. 따라서 발생 과정에서 신경계가 형성될 때 각각의 신경세포는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형태와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정교한 발달 과정을 통해 인간의 뇌에는 수천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신경세포 유형이 만들어진다.
반면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의 신경계는 훨씬 단순하다. 이 작은 선충은 단 118개의 신경세포 종류(neuron classes)만으로 신경계를 구성하고 있어 신경 발달을 연구하기 위한 대표적인 모델 생물로 널리 활용된다. 신경계 전체가 이미 완벽하게 지도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유전자 기능을 빠르고 쉽게 분석할 수 있으며, 많은 유전자가 인간까지 진화적으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코헤신(cohesin)이라 불리는 단백질 복합체가 신경세포의 정체성(neuronal identity)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코헤신은 선충과 인간 모두에서 유전체의 3차원 구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이번 연구는 유전체 구조가 신경세포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 직접 관여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본 연구는 특정 유전적 돌연변이로 인해 일부 신경세포가 정상보다 많이 생성되는 선충을 분석하면서 시작되었다. 아드레날린성 신경세포(adrenergic neuron)는 특정 신경전달물질을 이용해 다른 신경세포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선충이 외부 환경과 자신의 내부 상태에 적절히 반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상적인 C. elegans에는 RIM 신경세포 두 개와 RIC 신경세포 두 개, 총 네 개의 아드레날린성 신경세포만 존재한다. 그러나 연구팀이 발견한 돌연변이 선충에서는 RIM과 RIC 신경세포가 모두 정상보다 많이 생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Horvitz 연구실의 전 연구원인 Takashi Hirose가 2007년에 처음 관찰했다. 이후 후속 연구를 통해 coh-1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선충에서 이러한 이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coh-1은 코헤신 복합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가운데 하나를 암호화하는 유전자이다. 또한 코헤신 기능을 저해하는 다른 돌연변이들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관찰되었다. 즉, 코헤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면 RIM과 RIC 신경세포가 과도하게 생성되는 것이다.
이후 이어진 일련의 실험을 통해 코헤신이 신경세포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자적 기전을 규명했다. 그 결과 코헤신은 EOR-1이라는 유전자 조절 단백질(인간에서는 PLZF)과 협력하여 일부 신경세포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를 사용하는 신경세포로 분화하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코헤신은 유전체의 3차원 구조를 재배열함으로써 EOR-1과 같은 전사 조절 단백질이 DNA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바꾼다. 실험 결과, 코헤신 또는 EOR-1 가운데 하나라도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면 원래 GABA 신경세포가 되어야 할 세포가 대신 아드레날린성 신경세포로 분화했다. 이는 특정 신경세포에는 두 가지 가능한 운명이 존재하며, 코헤신이 그중 어느 운명을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분자 스위치(molecular switch)'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세포핵 안에서 유전체 DNA의 3차원 구조가 신경세포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코헤신 돌연변이 선충에서는 아드레날린성 신경세포 증가 외에도 다양한 발달 이상이 관찰되었다. 코헤신은 신경계뿐 아니라 몸 전체의 세포와 조직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선충은 성장 속도가 느리고 운동성이 떨어지며 생식에도 이상을 보였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특징은 희귀 유전질환인 Cornelia de Lange 증후군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과 매우 유사하다. 이 질환은 코헤신 관련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발생하며, 신체적·인지적·행동적 발달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이번 연구는 코헤신 돌연변이가 선충의 발달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으며, 앞으로 C. elegans를 이용해 Cornelia de Lange 증후군의 발병 기전을 규명하고 새로운 치료 표적을 발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후속 연구에서도 이미 유망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연구팀은 선충에서 가능한 신속한 유전학적 스크리닝을 통해 코헤신 기능 저하의 영향을 상쇄하고 돌연변이 선충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억제 돌연변이(suppressor mutation)를 발견했다. 현재는 이러한 돌연변이가 어떤 유전자에서 발생하는지를 규명하고 있으며, 해당 유전자들이 인간에서도 새로운 치료 표적이 될 수 있는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코헤신이 다른 종류의 신경세포 운명 결정에도 관여하는지, 그리고 코헤신과 함께 발달 과정을 조절하는 새로운 분자들이 있는지도 계속해서 탐색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MIT의 H. Robert Horvitz 연구실에서 수행되었다. Horvitz 교수는 MIT의 David H. Koch 생물학 교수이자 McGovern Institute for Brain Research와 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HHMI)의 연구원이다. 그는 유전자가 프로그램된 세포사(programmed cell death)와 기관 발달(organ development)을 어떻게 조절하는지를 규명한 공로로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 존 설스턴(John Sulston)과 함께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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