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전립선의 상피세포는 다분화능 줄기세포(multipotent stem cell)로부터 발달하는데, 성인이 되면 기저세포 (basal cells)와 루미날 세포 (luminal cells)라는 각각의 계통으로만 분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다양한 연구에서 종양 억제 유전자인 Pten을 성체의 기저세포에서 결실을 시켰을 때, 세포의 다분화능이 유도된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Pten의 결실과 기저세포의 가소성(cell plasticity) 증가 및 종양 생성 간의 연관성을 밝히고자 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립선 기저세포에서 발생한 Pten 결실이 어떻게 기저세포의 가소성을 조절하고 종양을 유발하는가에 대한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전립선 기저세포에서의 Pten 결실이 세포의 재프로그래밍과 종양 형성에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 현상들은 전립선을 구성하는 부위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터루킨-1(IL-1), JAK–STAT 신호전달 경로 및 NF-κB가 Pten 결실로 인해 가소성을 갖는 세포에서 활성화가 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해당 신호전달 경로를 약물학적으로 차단하거나 NF-κB 유전자의 결실을 일으켰을 때, Pten 결실로 인한 기저세포의 가소성과 세포 재프로그래밍을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전립선암의 조기 진단 및 치료를 위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논문을 마치기까지 수많은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2023년 이 즈음, 연구실에 들어온 두 개의 리뷰 요청에서 저희와 완전히 같은 주제로 연구를 하는 분들이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저널 에디터가 논문을 48시간 내에 만들어 오면 특별판으로 세 개를 모두 고려 해 주겠다 해서, 베네치아에 놀러갔다가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논문만 작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에디터는 모두의 논문을 거절하였었고요. 2024년에 완성도를 높여 다른 저널에 제출했던 때는, 어필 레터와 두 번의 리비전을 거치고도 올 해 4월에 결국 게재 거절을 받았었습니다. 거절을 준 이유를 물어봤지만, 에디터도 리뷰어도 모두 ‘너희 스토리에 흥미가 떨어졌어’라는 대답만 돌아왔었고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빛을 봤으니,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Université Libre de Bruxelles (ULB) 의 Laboratory of Stem Cells and Cancers 소속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저희 학교는 1834년 '자유로운 학문의 추구'를 핵심 가치로 설립된 역사 깊은 연구 중심 대학입니다. "Scientia vincere tenebras" 즉, "지식으로 어둠을 이겨내자"는 철학 아래 학문의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국가나 종교적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 학교는 유럽연합의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물론, ERC를 비롯한 다양한 재단의 지원을 받은 다수의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연구실은 Cédric Blanpain 교수의 지도 아래, 줄기세포 생물학 및 암 발생 메커니즘에 대한 선도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피부, 전립선 등 다양한 기관에서 줄기세포의 재생 및 분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줄기세포의 비정상적 변형에 의해 유발되는 암 형성 과정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암 치료 및 예방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연구를 하고 논문을 내는 과정이 일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쉽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새로운 결과를 얻어 내고 논문이 공개될 때 느끼는 감정은 다른 곳에서 얻기 쉽지 않은 정도의 희열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특히 지난 해 11월과 올 해, 전립선 및 유선 줄기세포에 다양한 스트레스를 주었을 때 다능성 재프로그래밍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발생하는지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내가 해냈다’는 느낌을 정말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매일 좋은 결과만 뽑아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닙니다. 제 연구의 대부분의 시간은 제가 분석한 데이터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 지와 새로운 분석 패키지를 이해하고 실제 연구에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 씨름하며 보냅니다. 사람이 참 아이러니한 동물인게, 이 과정이 힘들다 못해 질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다 가도 어려움을 한 발씩 극복해 나가면서 조금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에서 또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또 하나의 큰 보람은 연구실 안팎에서 협업을 하며 시너지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분석을 하고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병원에 계시는 병리사 분들이나 역학 연구를 하시는 분들, 또는 수학과 물리학을 하시는 분들과 협업을 하곤 합니다. 그 속에서 저는 제가 단순히 연구로서 대업을 만든다는 생각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관점과 지식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연구자로서 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많이 배운다는 게 아니라, 항상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로감을 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일이라고 하면 분명 매력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연구를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은 물론 연구가 생각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걸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때로는 이러한 순간이 내가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느껴지곤 하는데, 이럴 때 마다 실패했다고 느끼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해결책을 찾지 못해 돌아가야 하더라도, 나중에는 그 모든 것이 경험에서 우러나는 지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또한, 연구를 시작할 때 자신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고, 각자가 가진 잠재력과 능력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본인의 페이스대로 연구를 잘 해 나가는 게 멘탈 관리에서나 실제 연구 현장에서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지금도 같은 연구실에서 세 개의 연구에 참여하고 있고, 아무래도 이 프로젝트들을 잘 마무리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계획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 번째는 이번 인터뷰에서 소개드린 논문과 유사한데, 유방암과 연관이 있는 PIK3CA의 변이에 대한 연구입니다. 이 변이가 유선의 루미날 세포에서 일어났을 때, 유방암 환자군에서 왜 각기 다른 조직형이 생기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동료가 진행하는 피부 상피세포의 분화가 왜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가에 대해 연구에서 유전체와 전사체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 종양 유래 세포주에서 CRISPR 스크리닝을 하여 어떤 메커니즘으로 epithelial-to-mesenchymal transition이 발생하는지 규명하려는 연구에서는 시퀀싱 데이터 분석 및 통계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졸업 논문 초안을 모두 작성해서 부활절 직전에 교수님께 드렸습니다. 아마도 빠르면 올 해 하반기, 늦으면 내년 상반기 중에 학위 청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끝이 좋아야 하는 만큼 졸업 논문도 학위 청구도 멋있게 마무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일단 저는 진짜 같이 일하는 분들에 대한 운이 꽤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어디 가서도 구하기 힘든 좋은 조합을 테크니션 선생님들부터 협업을 해 주신 병리과 교수님들까지 모두 다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나서 이렇게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단순히 생물학적 지식 뿐 아니라, 병리학과 교수님과 병리사 선생님들을 통해 관련 지식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 지도교수님인 Cédric Blanpain (가운데)과 저와 두 개의 논문을 함께한 Chen Jiang 박사 (오른쪽)과 이 수고와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학자로든, 사람으로서든 배울 점이 많은 분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건 꽤나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연구실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행정원 선생님 Marylène Poelaert 덕분에도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벨기에 땅에서 한인 과학자로 만나, 정말 그 누구보다 좋은 친구이자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 길을 이미 겪은 선배들의 조언과 후배들의 응원은 정말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UCB의 멋진 선임 연구원이자 제일 좋은 친구인 채희영 박사님과 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의 조승현 박사님 같은 좋은 선배들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같은 길을 걷고 있어 어려움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소형, 희수, 태우 조합도 어디서 얻기 어려운 소중한 존재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시작해서 벨기에를 거쳐 영국까지 연이 닿은 홍유래 박사님이 보고 싶네요.
그리고 타 국가에서 지내면서 만난 친구들이 제일 많이 생각이 납니다. 아무래도 유학생 내지는 외국인 노동자 신분이라 서로를 응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콜로라도에서 11년 전에 같은 유학생 신분으로 만나 이제는 제 팬을 자처하는 Nishesh, 차로 두 시간이면 닿을 거리에 있는 소중한 인연인 정주, 일로 만났지만 이제는 할 이야기가 매우 많아진 동한이까지.
모두의 격려 덕에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여름 동안 숨을 조금 고르고, 이제 또 달려볼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전립선암
# 줄기세포
# 세포 재프로그래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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