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이 연구가 시작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귀찮음’이었습니다. 96-Puddle Paper plate (PPP)를 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종이 센서를 만들기 위해 펀처(puncher)를 사용해 6mm 크기의 종이 조각을 하나하나 뚫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방식은 단순해 보이지만, 같은 조건의 실험을 반복하려면 수십, 수백 개의 종이를 수작업으로 준비해야 하고, 각각을 따로 수거하고 관리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험 과정에서 가장 난감했던 순간은 고가의 시약이 날아가거나 기기가 고장 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수로 숨을 한 번 내쉬었을 때, 정성껏 준비된 종이들이 산들바람에 날려 흩어졌던 그 장면이었습니다. 멍하니 흩날리는 종이를 바라보며 ‘언제 다시 실험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저는 "정형화된 플랫폼으로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질문이 바로 96-PPP의 출발점이었습니다. 96개의 반응 지점을 하나의 시트에 통합하고, 펀칭도 필요 없고 숨도 참을 필요 없는, 실험실 안팎 어디서나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귀찮음 회피’에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재현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고처리량 플랫폼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 계기가 지금의 논문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 흩날렸던 종이들은 제 연구 인생에 꽤 의미 있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Lab-on-Paper(LoP) 기술은 얇은 종이가 단순한 기록 도구를 넘어, 단백질 반응부터 대사물질 분석, 형광 기반 질환 진단 등 다양한 실험을 수행하는 하나의 ‘실험실’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 플랫폼입니다. 초기에는 단순한 비색 분석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후에는 전기화학, 형광, SERS 등 다양한 기법과 결합되며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특히 George M. Whitesides 연구진이 LoP 개념을 체계화하면서, LoP는 저비용, 휴대성, 현장진단(POCT)에 적합한 분석 플랫폼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최근 진단기기 분야에서는 저비용, 휴대성, 간편한 사용성을 갖춘 플랫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μPADs와 LoP 기술이 보건, 환경 모니터링, 현장 진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정성적 색 변화 판독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정량성, 다중 분석, 고처리량 분석이 가능한 고도화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향후에는 LoP 플랫폼이 LAMP 기술과 같은 유전자 증폭 기술과 결합하거나, 스마트폰 기반 AI 판독 시스템과 연계되어 스마트 시티 내 디지털 헬스케어 진단 시스템의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생명정보공학과 생체나노공학연구실(BiNeLa)은 생체재료, 나노기술, 분석화학의 융합을 통해 복잡한 생물학 현상을 정량화하고 시각화하는 연구를 수행합니다. 또한, 일상 속에서 관찰 가능한 현상을 창의적으로 과학적 탐구에 접목합니다.
본 연구실은 환경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나노생명공학 기술을 지향하며, 다음의 세 가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Research 1. Atomic Force Microscopy of Biomaterials
• Research 2. Lab-on-Paper Diagnostics
• Research 3. Chemistry and Physics of Amyloids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피라미드는 사람이 만들었다’, ‘우공이산’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저는 누구보다 똑똑하거나, 한 번에 모든 걸 완벽히 해내는 천재형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고, 무시당하거나 낮은 평가를 받았을 때 ‘좋아, 정말 만족할만한 결과로 보여주지’라고 마음먹는 스타일입니다. 연구라는 일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지루하고, 때로는 버거운 일의 연속이지만, 그러한 과정 끝에 논문으로 한 줄 한 줄 성과가 기록되고 쌓이는 것은 정말 큰 보람입니다.
돌이켜보면, 거창한 아이디어보다도 무너진 실험대 앞에서 다시 시도해보는 근성, 예상치 못한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포기하지 않고 "한 번만 더 해보자"라고 했던 순간들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저에게는 제 방식대로 ‘피라미드’를 쌓아올리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연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제가 연구를 오래한 것은 아니지만, 연구를 하며 느낀 점은 단 한 번에 성공하는 연구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자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연구 과정에서 실패는 피할 수 없는 일부이며, 결국 그 실패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기보다, 밑거름 삼아 차근차근 다시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또한, 실험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예상보다 결과가 나쁠 때, 지나치게 자책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후배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잠시 멈춰 서서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취미 활동을 통해 생각을 전환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연구는 마라톤과 같기 때문에, 자신만의 회복 루틴을 갖고 꾸준히 나아가는 자세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실패를 견디는 힘은 결국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힘’으로 바뀐다고 믿습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아직 LoP 개념은 국내에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LFA 기술을 기반으로 한 SARS-CoV-2 신속항원검사 키트가 전 세계적으로 활용되며, 종이 기반 진단 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입증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종이 기반 플랫폼은 긴급 상황에서 빠르고, 간편하며, 대중에게 접근 가능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LoP 기술이 분자진단, 단백질 분석, 약물 반응 평가 등 고도화된 분석이 가능한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연구를 확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제가 개발한 96-PPP 플랫폼처럼 기존 장비와 호환 가능한 고처리량 시스템이 상용화에 근접할 수 있도록 자동화 및 데이터 기반 분석과의 연계도 모색할 예정입니다. 더 나아가, 종이 기반 진단 기술이 감염병, 만성질환, 환경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내 기술 생태계 안에서 그 기반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연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Impact Factor 10이 넘는 저널에 논문이 게재되어, 한빛사에 소개될 수 있게 되어 무척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성과는 결코 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항상 아낌없는 조언과 지도를 해주신 이규도 교수님, 그리고 곁에서 함께 고민하고 실험하며 응원해준 연구실 동료들, 묵묵히 응원해준 가족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석범, 정다연, 강다인 대학원생, 그리고 실험을 끝까지 성실하게 마무리해준 서영준 학부생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성과를 발판 삼아 앞으로도 더 나은 연구를 이어가겠습니다.
#96-Puddle Paper Plate
# Lab-on-Paper
# Applied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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