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제가 수행한 논문은 식품 시스템 전반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GHGEs)과 국민 식습관, 건강 간의 연관성을 분석하기 위해 개발된 식품 시스템 기반 온실가스 배출계수 데이터베이스(Food Systems-related Greenhouse Gas Emissions Factor Database, FS-GHGEF-D)에 관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단순히 기후변화라는 환경 이슈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일상적 선택이 개인의 건강은 물론 지구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통합적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그동안 한국에는 식품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 과정(Life Cycle) 기준으로 정량화한 국가 차원의 데이터나 지표가 전무했기 때문에, 국민 식단의 기후영향을 수치화하거나 정책적으로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26,000편 이상의 논문을 검토했고, 그중 약 20,000편의 제목과 초록을 일일이 읽은 후, 1,000편 이상의 본문을 직접 분석하여 920편의 논문으로부터 데이터를 추출하여, 최종적으로 3,894개 식품 항목에 대한 FS-GHGEF-D를 구축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문헌 리뷰가 아니라 ‘지구를 위한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수십 편의 논문을 읽고 정리하다가 밤늦게 연구실을 나서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저를 계속 책상 앞에 앉게 만들었습니다.
식품 시스템에서 온실가스 배출계수를 정량화하는 일은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일반 산업에서는 주로 제조공정이나 에너지 사용에 따른 직접 배출량을 중심으로 측정하는 반면, 식품의 경우 농업 생산, 수확 후 처리, 가공, 유통, 조리,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포함한 복합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소고기 1kg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단지 도축장의 배출량뿐 아니라, 사료 재배 및 수입, 가축의 장내 발효, 냉장 유통, 가정 내 조리 과정까지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같은 식품이라도 생산 지역, 계절, 재배 방식, 유통 거리, 조리 방법에 따라 배출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단일한 수치를 산출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와 함께 측정 기준과 데이터 표준화의 미비 역시 식품 분야 GHGE 연구의 큰 장벽입니다.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GHGE 데이터베이스들도 대부분 특정 단계만 반영하거나 대표 품목만 포함하고 있어, 식품 시스템 전체를 반영한 정량 데이터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소비 단계에서는 조리법이나 섭취 형태도 매우 다양하여, 예를 들어 생감자, 감자튀김, 감자칩처럼 동일 원재료라도 탄소배출량은 전혀 다릅니다.
이러한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저는 기존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통합 분석하고, 품목별 평균 배출계수를 산출함과 동시에 통계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방법론을 도입했습니다. 단일 국가가 아닌 전 세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제적 비교와 응용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하였습니다.
이 논문을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은 제 학문적 성장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환경 보호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시기에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지속되는 가장 중요한 분야는 무엇일까’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이 ‘음식’이라는 데 도달했고, 한양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한 영양소 연구보다는 수학과 과학,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적 접근을 원했고, 그러다 ‘영양역학(Nutritional Epidemiology)’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영양역학은 식품, 건강, 환경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고, 한국에서는 역학연구 기반이 다소 부족했던 만큼, 처음에는 미국 유학도 고려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의 김미경 교수님을 만나 석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박사과정, 박사후연구원으로서도 같은 연구실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석사과정에서는 메타분석, 통계모델, 머신러닝 기반 지수 개발 등 다양한 분석기법을 배우며 실전 역량을 키웠고, 박사과정부터는 1년차에 환경부의 젊은 과학자 지원사업과 2년차에 한국연구재단 박사과정생 연구장려금에 선정되어 본격적으로 제가 설계한 연구를 단계별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연구를 수행한 곳은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이며, 동시에 건강사회연구소(Institute for Health and Society)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방의학교실은 공중보건, 환경보건, 역학, 영양학 등이 융합된 학제 간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는 곳으로, 특히 우리 연구실은 수년간 국내외에서 영양역학 및 식품 기반 건강지표 개발 분야의 선도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도교수님이신 김미경 교수님은 통계 및 정량적 분석 역량이 탁월하신 분으로, 석사 입학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연구자가 연구를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교수님 연구실 책상 앞에서 마주 앉아 한 줄 한 줄 어떤 적절한 표현을 써야하는지, 같은 문장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고찰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셨고, 석사 졸업을 앞두고는 꿈에서까지 교수님과 밤 늦게까지 촛불을 켜고 논문을 쓰는 장면을 꿨던 기억도 납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연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보람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고, 인간이 매일 마주하는 식품이야말로 건강과 지구 환경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식품과 환경을 별개의 문제로 보지만, 사실 우리가 매일 선택하는 음식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고, 그 영향은 결국 우리의 건강으로 되돌아옵니다. 이 논문은 그 신념이 구체적인 결과물로 구현된 첫 번째 작업이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제가 만든 데이터베이스는 단순히 한국 식품에 대한 배출계수를 모은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91개국의 연구자료를 토대로, 생산, 가공, 유통, 조리, 폐기물 처리 등 식품 시스템의 전 과정을 포함한 풀 시스템(full-system) 기반 온실가스 배출계수 데이터입니다. 특히 식품은 국가 간 수출입이 많고, 개인에 따라 소비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 국가의 값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나라의 값을 평균화한 이 데이터는 전 세계적으로도 활용 가치를 지닙니다.
해외에서도 이처럼 수천 개의 식품 항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례는 드물며, 저의 연구는 이러한 점에서 세계 학술 커뮤니티로부터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진로를 고민할 때 저는 항상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가 겹치는 지점을 찾는 것이 진짜 진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지만,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식품, 환경, 건강의 교차점에서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한국에는 아직 이 분야의 기반이 약할지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점입니다. 중요한건, 저에게 좋은 연구 환경과 멘토가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본인이 원하는 분야의 교수님을 직접 찾아가고, 배움을 구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멘토를 찾고, 연구 역량을 차근차근 쌓아가며, 국제적인 시야를 갖고 성장하면 분명히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중요합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저는 연구를 통해 지속가능한 식단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과학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현재 전 세계 80억 인구의 식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2030년까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0%를 감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푸드 그린 택소노미(Food Green Taxonomy)’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자 합니다. 해당 내용은 작년 한국경제ESG에 칼럼으로 실은 적이 있습니다(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5263492i). 기존의 식품 분류체계는 동식물학적 기준이나 영양소 중심의 체계에 머물러 있지만, 이제는 환경 영향을 함께 고려하는 다차원적 분류체계가 필요합니다. 푸드 그린 택소노미는 식품의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온실가스 배출, 수자원 사용, 토지 이용, 생물다양성 영향 등 푸드 시스템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틀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연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보 기반의 정책 수립과 규제 개발, 그리고 소비자 행동 변화까지 연결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인을 위한 지속가능한 식이 패턴을 푸드 그린 택소노미 기반으로 식별하고, 그 식단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면, 국민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식단을 바꾸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기후를 위해 식단을 바꾸라”는 추상적인 메시지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추가적으로, 향후에 국제 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이 분류체계와 데이터베이스를 보건 연구와 정책에 실제로 적용하고, 글로벌 수준에서 통용 가능한 지속가능 식단 가이드라인과 산업 전환 정책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식품산업 전반의 전환을 위한 정량적 데이터 기반의 로드맵을 구축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건강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기후위기와 건강위기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음식을 먹지만, 그 음식은 동시에 지구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며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밥을 먹는 일’이 단순한 생존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인간관계와 사회를 연결하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믿어왔습니다. 가족, 친구, 동료들과 함께 나누는 식사는 정을 나누고 마음을 보듬는 소중한 시간이며, 밥상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어떤 날은 기념이 되며,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먹느냐’는 단순히 건강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 있는 주제를 연구할 수 있도록 성장시켜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연구자로 이끌어주신 김미경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은 제가 연구를 스스로 설계하고 주도할 수 있도록 한 걸음 한 걸음 인내심 있게 가르쳐 주셨고, 논문 한 줄, 문장 하나까지 함께 고민해주셨습니다. 지식을 넘어 연구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신 스승이십니다. 또한 언제나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성장해온 연구실 동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지칠 때마다 서로 의지하고, 기뻤던 순간은 함께 나누며 이 길을 걸어왔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저의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고 싶은 길을 믿고 묵묵히 응원해 주셨고, 흔들릴 때마다 마음의 뿌리가 되어주셨습니다. 부모님의 응원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 걸어갈 예비남편에게도 언제나 옆에서 응원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속가능한 식단
# 식품시스템 온실가스 배출계수
# 기후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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