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인터뷰
POSTECH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지구 생태계의 발전과 진화를 이끈 것은 관다발식물의 진화입니다. 관다발(Vascular bundle)은 지지조직으로서 식물이 몸집을 비관다발식물에 비해 크게 키울 수 있고, 물질 통로로서 뿌리를 이용해 빨아들인 물과 지상부에서 광합성으로 만든 양분을 식물체 곳곳으로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입니다. 최초의 관다발식물은 실루리아기 말 데본기 초에 등장하였고 데본기 말부터 수 미터 이상 높이로 자라는 나무들이 등장했습니다. 관다발식물은 관다발조직의 다양화로 수 센티미터부터 수십 미터에 달하는 다양한 크기를 가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육상 식물상은 다양한 층위(strata)를 형성하여 단위 면적당 광합성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관다발을 통해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뿌리가 길어지면서 지하수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수원(水原)에서 먼 곳까지로 서식지가 넓어졌습니다. 관다발식물의 등장은 육상 생태계를 질적∙양적으로 확장시켰고, 지질과 기후를 변화시켜 데본기말, 석탄기말 두 번의 대멸종에 직간접적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관다발에 이어 나타난 혁신적인 식물 진화는 바로 속씨식물, 꽃 피는 식물의 등장입니다. 속씨식물은 현재 지구 생태계 육상 식물종 다양성의 90%를 차지하는 분류군으로, 백악기에 등장한 이후 사실상 식물 진화의 종착지처럼 간주되고 있습니다. 속씨식물은 꽃이라는 혁신적인 번식 기관으로 곤충, 조류 등의 동물을 매개로 수정과 종자 확산을 하고 열매로 종자를 보호합니다.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은 전체 식물계에서 종 수에서 속씨식물이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율을 보고 ‘지독한 수수께끼(Abominable mystery)’라고 칭한 바 있습니다. 백악기 속씨식물의 등장과 번성은 백악기 대멸종과 함께 일어난 백악기말 고진기초 육상 대혁명(K-Pg terrestrial revolution)을 이끈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식물은 지구 생물권의 생물학적 요소 중 미생물과 유이하게 기후와 지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일례로, 데본기에 관다발 등장으로 식물 뿌리 길이가 증가하여 지표면의 풍화가 가속화되면서 해양 무기물의 농도가 올라가 데본기말 대멸종의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석탄기에 관다발식물이 번성하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하게 내려가 빙하기가 시작되어 석탄기 열대우림 붕괴(Carboniferous rainforest collapse)가 일어났습니다. 이 때 대규모로 발생한 관다발식물 사체는 현재 인류가 이용중인 석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요약하면, 식물 진화에는 지구 기후의 급격한 변화를 야기하는 원인에 대한 비밀들이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다가오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식물과 그 진화를 연구해야 합니다.
저희 실험실에서는 속씨식물 애기장대에서 관다발 중 체관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인 JULGI를 발견하였고, JULGI가 SMXL4/5 (SUPPRESSOR OF MAX2 1-LIKE4/5)의 mRNA 내 5′ UTR (untranslated region, 비번역영역)에 결합하여 번역을 억제함을 밝혔습니다. 저희는 JULGI와 SMXL4/5의 발현 조절 관계가 관다발식물 진화 과정 중 어느 단계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봤습니다. JULGI는 모든 관다발식물에 보존되어 있었고, SMXL4/5는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에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JULGI가 5′ UTR을 통해 SMXL4/5를 조절하는 관계는 속씨식물에서만 발견되었습니다. 속씨식물 진화 과정에는 꽃 말고도 관다발을 포함한 다른 여러 혁신적인 변화들이 있었던 듯합니다.
관다발식물을 큰 분류군으로 나누면 석송류, 양치류, 겉씨식물, 속씨식물이 있습니다. 이 중 겉씨식물 연구 대상 식물체를 구하지 못해 고민하던 중 어떤 논문에서 자기 학교 내에 있는 은행나무를 재료로 사용했다는 것을 봤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고 마침 가을이어서 교내에 은행나무 밑에 가서 은행 열매들을 주워다가 실험실에서 싹을 틔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학교 길가에 떨어진 은행을 줍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 시선에 곤혹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 실험실에서 주워 온 은행을 까는 동안 냄새가 너무 심해 구성원들에게 원망을 샀습니다. 결국 실험실에서 쫓겨나 화장실에서 은행을 마저 깠는데 오만 생각이 다 들더군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심은 은행 중 약 30%가 잘 발아하여 핵산 추출, 조직 발현 확인 등 각종 실험에 살뜰히 사용했습니다.

그림 1 관다발식물 분류군 별 관다발 구성 대표 사진과 모식도.

그림 2 (좌) 실험실에서 싹 틔운 은행나무와 (우) 경주 하곡리 마을회관 앞 은행나무.
(2024년 11월 촬영) 어떻게 이렇게 작은 새싹이 수백 년 동안 자라는 나무가 되는 것일까?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발달신호네트워크 실험실(Developmental Signaling Network LAB)은 황일두 교수님 지도 하 박사 후 연구원 세 명, 통합과정 대학원생 여섯 명, 연구원 두 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희 실험실에서는 범용 연구 식물인 애기장대를 포함하여 담배, 토마토, 콩 등 다양한 식물에서의 체관 발달 조절 기작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세포 배양, 유전자 편집, 유전체 분석 등의 최신 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식물종에서 돌연변이체와 형질전환체를 확보하고, 분자유전학 및 생화학적 분석을 통해 체관 발달 조절 네트워크를 규명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국적으로는 체관 발달 조절 네트워크가 다양한 식물종에서 보존되어 있음을 전제로 작물 생산성 향상 기술로 응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 결과 또한 JULGI-SMXL 조절 모듈이 다양한 종에서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기작임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결실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연구실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dsn.postech.ac.kr/)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식물학은 생명과학 분야 중에서 가장 투자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투자 주체들이 주로 관심있어 하는 인간 질병 치료와 가장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식물이 직접적으로 인류 문명에서 담당하는 식량 생산에 관한 문제는 보통 투자를 하기 어려운 국가에서 일어납니다. 마지막으로 식물학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기업과의 연계가 어렵기 때문에 연구자 개인에게 있어 진로 설정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제 지도교수님과 저와 실험실 동료들이 식물을 연구하는 이유는 이 연구가 지구와 인류 문명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효율적인 식량 생산을 통해 인류를 1차적 생존 문제에서 해방시키고 대기중 이산화탄소 제거로 절체절명의 기후 위기에서 구해낼 수단은 바로 식물입니다. 이러한 사명감이 저희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입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저희 실험실은 분자유전학과 생리학에 특화되어 있지만 틈새 분야인 진화발달생물학을 연구한 저는 약간 독특한 경험을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진화발달생물학은 다른 wet-lab 분야에 비해 낭만적인 면이 있습니다. 먼저 ‘생물 진화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우선 하게 됩니다. 저는 천주교 신앙인이어서 글을 써서 잡지에 투고를 할 정도로 꽤나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가톨릭평론 2021년 겨울호) 분류학과 계통학을 공부하면서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식물들의 모습들과 그 서식지들을 보다 보면 어느 새 비글호에 탑승하여 다윈 옆 자리에 앉은 기분이 듭니다. 연구 대상 식물을 하나에 국한하지 않고 여럿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점입니다. 속씨식물만 해도 30만 종이 넘습니다. 여러 식물들을 키우다 보면 좀 더 식물과 가까워지는 경험도 되고 다양한 생활형(habit)을 보면서 사고의 저변도 넓어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연구를 지속하다 보면 계통학, 생물정보학, 분자유전학, 생리학, 그 외 여러 분야들을 자동적으로 섭렵하거나 그 전문가들과 협력하면서 다재다능하고 박학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박사(博士)의 모습이지 않을까요?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후속 연구로는 먼저 속씨식물 외 다른 분류군에서 발견한 JULGI와 SMXL의 기능을 탐색해야 합니다. 연구 과정에서 JULGI-SMXL4/5 유전자 모듈의 기능이 체관 발달뿐만 아니라 분지(branching) 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되어 이에 관해서도 연구할 계획입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우선 실험실에서 말썽쟁이였던 저를 믿어주시고 아껴주신 지도교수님이신 황일두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연구를 함께 설계해준 조현섭 박사님, 중요 실험들을 함께 해준 남호영 박사님, 충북대 임유경 학생, 충북대 조현우 교수님, 성균관대 조충현 박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다른 실험실 멤버들과 수많은 실험을 가르쳐주신 박중혁 박사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논문 검수를 해 주신 한림대 김영동 교수님께도 감사 말씀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긴 공부 하러 떠난 아들을 믿어주신 부모님과 할머님, 그리고 곧 가족이 될 수영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등록일 202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