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유전자 전사과정 (transcription)을 조절하는 DNA 결합 단백질과 유전체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여 유전자 발현 조절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은 생명과학 및 생물공학 분야의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매개하는 핵심 단백질인 전사인자 (transcription factor)의 유전체상 결합 부위를 발굴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은 염색질 면역 침전 (Chromatin Immunoprecipitation, ChIP) 실험법을 폭넓게 활용해 왔습니다.
최근, ChIP 실험법에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next-generation sequencing)과 엑소뉴클리아제 (exonuclease) 처리를 접목하여 정밀도와 해상도를 한층 더 높인 ChIP-exo가 개발되었습니다. 해당 기술은 세포 내에서 특정 전사인자가 결합하는 위치를 1bp (base pair) 수준의 초고해상도로 동정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ChIP-exo 실험법은 복잡한 실험과정과 엑소뉴클리아제 처리로 인해 대량의 초기 세포(1010-1011)와 높은 실험 비용을 필요로 하는 본질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숙주 내 감염 병원균처럼 세포 가용성이 극히 제한적인 연구에서는 이러한 DNA-단백질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이러한 한계점을 뛰어넘기 위해, 저희 연구팀은 기존의 ChIP-exo의 실험법을 바탕으로 극소량의 세포에 호환이 되는 최적화 실험법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먼저, 점진적으로 세포의 양을 감소시켜 기존 ChIP-exo의 병목구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결과, 극소량 세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DNA 단편화 과정, 초기세포양에 따른 최적의 시약 사용량, DNA 분리과정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약 200회 이상의 테스트 실험을 통해 찾아낸 최적의 개선점을 적용하여 극소량·저비용의 ChIP-exo 실험법인 ChIP-mini를 개발하였습니다. ChIP-mini는 기존 ChIP-exo 실험법에 비해 최대 5,000배 낮은 세포양 (4.8x106)과 12배 낮은 실험비용 (약 2만원)으로 초고해상도 DNA 결합 프로파일을 유지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러한 최적화 기술을 활용하여, 기존에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대식세포 내부에 극소량으로 감염한 살모넬라균 (Salmonella Typhimurium)의 DNA 결합 단백질을 타겟으로 한 실험에 적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살모넬라균 병원성 유전자의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두 가지 DNA 결합 단백질인 H-NS와 RpoD의 결합 프로파일을 대식세포 내·외부의 살모넬라균을 활용하여 고품질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살모넬라균의 H-NS는 대식세포 내부로 감염할 때 다양한 병원성 유전자의 프로모터 영역에서 결합이 특이적으로 감소하여, 프로모터에 전사를 개시하는 RpoD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상호작용을 규명했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병원균의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감염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병원성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해당 실험법은 상피세포와 같은 다른 종류의 숙주 세포 내부의 살모넬라균에서도 성능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해당 기술의 범용성과 효율성을 한 번 더 입증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사 조절 네트워크를 규명하는 오믹스 연구에서 세포 가용성은 실험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며, 이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오믹스 데이터 접근 및 활용에 있어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본 연구가 다양한 숙주세포 및 병원균을 타겟으로 하는 감염연구 뿐만 아니라 세포의 양이 제한되는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미생물의 전사 조절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연구의 첫 단추가 되었으면 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본 연구는 제가 박사과정을 수행한 울산과학기술원 화학공학과 김동혁 교수님과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이은진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수행하였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울산과학기술원 시스템 생물학 및 머신러닝 실험실 (https://sites.google.com/view/systemskimlab)은 다양한 오믹스 실험 (ChIP-based experiments, RNA-seq, TSS-seq 등)을 통해 생산된 데이터를 머신러닝 및 genome-scale metabolic model (GSM)과 융합하여 미생물의 생명현상의 전반적인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본 연구는 제가 박사학위 주제로 진행한 연구로, 최적화 실험의 개발부터 실제 감염된 숙주 내부의 살모넬라균으로부터 데이터를 생산하기까지 총 3년이 넘는 시간 끝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ChIP-exo 실험법은 3일이라는 긴 실험시간과 복잡한 실험 절차로 인해 숙련된 연구자도 한 번에 8개의 샘플밖에 처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실험 개발과정에서 수많은 테스트 실험을 저와 공동1저자인 장민창 학생 2명이서 약 200회가 넘는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실제로, 유의미한 단서를 발견할 때까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점점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다" 며 서로를 긍정적으로 격려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낸 것 같습니다. 또한, 감염 실험을 고려대학교에서 수행해야 했기에 울산에서 서울로 출장을 갈 때, 많은 양의 실험 장비와 아이스박스를 캐리어에 담아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구경을 한다며 행복해하던 민창 학생의 모습을 보며 저 또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 최적의 실험 방법을 개발하고 성공적으로 실제 감염 연구에 도입하여 학술지에 게재되었을 때의 기분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좌절하고 방대한 양의 재료비를 소진하고 있을 때에도, 너희는 할 수 있다고 항상 웃으며 조언 및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김동혁 교수님 덕분에 실패의 두려움 없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오믹스 연구분야는 컴퓨터공학과 접목되어 인공지능을 통한 융합연구의 최전선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연구를 위해서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짧지 않은 학위과정 동안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일 들에서 마주하게 되는 실패들이 자신을 괴롭혀도 꾸준히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조급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배우면 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연구를 수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학회나 공동연구 등을 통해 쌓아가게 될 많은 연구자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믹스 연구의 특성 상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은 서로의 연구를 더 넓고 깊게 지식을 탐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연구에서도 저희 실험실에서 수행할 수 없는 감염연구를 고려대학교 이은진 교수님 실험실에서 수행해주신 덕분에 더욱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이 이미 우리의 삶 곳곳에서 혁신을 만들어가고 있듯이, 저희 연구실에서도 오믹스와 인공지능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흥미로운 여정에 많은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현재 바이오파운드리 (biofoundry)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대규모 바이오 부품을 발굴 및 설계하여 고부가가치 화합물을 생산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전사인자의 결합 부위인 프로모터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최적의 유전자 회로 설계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부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모터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ChIP-exo 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혀 발전 속도가 더딘 편에 속합니다. 그렇기에, 박사 후 과정에는 저비용으로 96-well plate에서도 수행할 수 있는 ChIP-mini의 강점을 통해 바이오파운드리의 자동화 장비와의 호환성을 확보하는 연구를 수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여러 분야의 연구실들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숙주세포 및 병원균에 ChIP-mini 실험법을 적용하는 연구 또한 꾸준히 수행 하려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연구를 진행하며 저를 믿고 끝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해 주신 저의 지도교수님 김동혁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살모넬라균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감염 실험의 처음과 끝까지 전담해주신 고려대학교 이은진 교수님과 최은나 박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학위 과정의 처음부터 저의 부사수로 함께 열심히 연구를 수행해준 민창학생 덕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연구를 잘 매듭지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항상 연구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의견들로 이번 연구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었던 실험실 식구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가 처음으로 연구자라는 꿈을 품을 수 있도록 해 주셨던 저의 아버지 박양재 교수님, 항상 뜨거운 햇빛을 피해 쉴 그늘이 되어 주셨던 어머니 이선숙 여사님, 그리고 묵묵히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는 박진영 형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학위기간 동안 연구에 지칠 때에도 해맑은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맞이해주는 친구들 지석, 민규, 경제, 용진, 성우, 건호에게도 항상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미생물학
# 감염미생물학
# 유전자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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