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담도암(또는 담관암)은 보통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쓸개즙)을 십이지장까지 수송하는 관의 안쪽을 둘러싸는 상피세포에서 발생하는 암을 의미하고, 이러한 담즙의 수송 시스템인 담도계 (biliary system / biliary tree)는 간 안쪽의 현미경으로 겨우 보이는 작은 간내 담도부터 직경이 크게는 1cm에 이르는 간외 담도 (총담관), 그 옆에 주머니처럼 붙어 있는 담낭 (쓸개)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담도계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 해부학적 구조는 간단치 않아서 수많은 혈관, 림프관, 신경, 연조직과 더불어 간, 췌장, 십이지장이 복잡한 3차원 구조를 형성하고, 이는 일단 암이 발생하여 자라나게 되면 수술의 난도를 굉장히 높게 만드는 데다가 많은 경우 수술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진단받게 되는, 예후가 매우 나쁜 암을 만드는 인체 장기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예후가 나쁜 담도암은 필연적으로 DNA/RNA 수준에서의 연구 수요가 높지만, 수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히 획득할 수 있는 인체 종양 조직의 양이 적고, 주변 장기인 간과 췌장에서 발생하는 간세포암이나 췌장 관 선암종에 비해서는 낮은 발생률로 인해 그 치명도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였습니다. 더욱이 수술 조직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전암 병변 (종양 세포가 주변 조직으로의 침범을 하기 전 단계)의 조직은 더욱 확보하기 어렵고, 그에 따라 이를 이용하여 담도암의 발암 과정을 DNA/RNA 수준에서 연구한 결과는 제가 파악하기로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사실 처음 이 연구를 기획하던 4년 전에는 담도계 중에서도 담낭암만을 대상으로 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연구를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담도계에서는 보통 병리학적으로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비슷한 모양의 종양이 자라나는데, 아직까지 담도계 전체에서 담도암이 비슷한 모양을 가지는 것만 잘 알려져 있을 뿐 그 기저에 어떤 유전자 변이나 발현 이상이 숨어있는지는 대규모 코호트에서 분석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연구의 규모를 키우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 결정이 결국 주효하였고, 저희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연구자들과 임상 의사들이 담도계 전암 병변의 전체 풍경과 그 발암 기전을 한 눈에 보기를 원했다는 것을 이번 결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선 저에 대한 소개를 잠시 드리자면, 저는 생명과학과 학부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이후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병리과 레지던트를 마쳐 병리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그 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에서 밟고 있던 박사학위과정을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을 통해 생물정보학을 연구하는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에서 이어 나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이번 연구가 저의 박사 학위 주제입니다.
병리학은 인체에 발생하는 병의 종류와 그 진행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면서, 동시에 병원에서 환자의 치료 방침을 결정할 수 있도록 병을 눈으로 (현미경으로) 보고 진단을 내려주는 의사로서의 일도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병리학 연구실에서, 또 병원 판독실에서 저는 암이나 병든 조직을 정상 조직과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형태학적 분류를 익히고, 단백질 발현이나 때로는 유전자 수준에서의 (분자병리학) 실험을 진행하여 보면서 종양 발생 기전을 밝혀내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는 종양 세포의 모양이나 그 자라나는 방식을 기술하는 것만으로는 그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알 수는 없으며, NGS와 같은 새로운 기법은 병리의사에게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간극을 메워준 것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의 중개유전체정보학연구실로, 여기에서는 NGS 기법 자체가 갖는 통계학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실제 데이터에 적용하는 법을 연구하기에 제가 획득한 담도암의 NGS 원시 데이터로부터 아주 낮은 빈도의 유전자 변이도 가장 높은 민감도와 특이도로 검출할 수 있는 최적의 파이프라인을 설계하고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병리학적 관점에 생물정보학적 통찰이 더해져 굉장히 시너지가 높은 협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세상 모든 연구가 그러하고 또 저보다 수백 수천 배의 노력을 투입하고 좌절을 겪으시기도 하신 분들이 훨씬 많으시겠지만, 이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과정은 제게 연구를 구상하고, 적합한 환자군을 선정하고, 유리 슬라이드를 하나 하나 현미경으로 확인하여 연구에 적합한 전암 병변이 있는지 살피고, 실제 시퀀싱을 진행할 파라핀 블록을 점검하고, DNA/RNA quality check 결과를 확인하고, 수 테라바이트에 이르는 염기서열 데이터의 신뢰성을 검증하고, 변이를 탐지하고, 최적의 필터링 조합을 적용하고, 나온 결과의 중요성을 판별하고, 지도교수님들과의 수십 번의 미팅을 거치고, 논문 초고를 작성하고, 만족스러운 figure를 그려내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절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때로는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처음 병리학을 접한 레지던트 1년차 때 고요한 한밤중의 판독실에서 현미경 속 세상에 경이로움을 느끼던 순간을 떠올리고, 그때 머릿속에 들어오던 의문점들을 바로 지금 내 손으로 밝혀내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판독실에서 환자들의 실제 조직을 현미경 너머로 바라보며 스쳐지나가는 의문점을 스스로 붙잡고 해소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 소중한 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전국의 많은 의과대학들이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임상적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제 경우에는 기초의학으로 분류되는 병리학이었지만) 의사들이 자신이 평소 가진 의문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이러한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자신의 역량의 폭을 넓혀 보기를 적극 권장합니다. 더욱이 이러한 길에 있어서 정부와 각 대학의 연구비 등 지원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자신의 커리어 경로를 구상함에 있어서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저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 병리학교실에 임상조교수로 재직하며 병리 진단 업무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저의 주 관심사와 연구 아이디어는 아마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현미경 속에서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제가 현재 주로 진단하는 간암/담도암 종양 조직으로부터 그 진행 과정을 따라가는 유전자 수준에서의 연구와 새로운 치료 표적을 발굴해내는 연구를 계속하여 수행하고자 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이 자리를 빌려 저의 두 분의 지도교수님이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박영년 교수님과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김상우 교수님께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박영년 교수님은 그 경험과 병리학적 통찰로 제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셨고, 동시에 이번 연구에 모든 지원을 그야말로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단 한 가지 사항도 확실히 이해되고 납득되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 교수님의 날카로운 지적은 제가 연구자로써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양분이 되었습니다. 김상우 교수님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연구 토의를 한 번씩 마칠 때마다 제게 걱정이 자신감으로 뒤바뀌는 경험을 주었습니다. 중개유전체정보학연구실에서의 경험은 교수님의 생물정보학 뿐만 아니라 종양학 및 분자생물학 전반에 걸친 깊고 넓은 이해로 제가 가진 병리학적 관점이 몇 차원 더 확장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연구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선생님, 선후배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고, 그들이 없었다면 연구는 시작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정은 박사님, 오승호, 원정수, 박지호 학생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오랜 시간 제 곁에 있어 주며 저의 정신건강을 책임진 친구들, 그리고 저의 큰 버팀목인 어머니, 아버지, 누나에게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와 논문 작성으로 바쁘다며 병원과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 없이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출근해 두 아이를 돌보아 준 초인적인 아내와, 논문의 기여도로 보아 공저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으실 (?!), 헌신적으로 손녀들을 돌보아 주신 장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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