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이 연구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생명연) 내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KOBIC)에서 시작됐습니다. 어느 날 KOBIC에서 일하고 있던 박지환 박사(현 아주대학교 조교수)님이 연락을 주더라고요. 당시 최첨단 DNA 염기서열 분석 기법인 롱리드 시퀀싱 데이터를 생산할 계획인데, 그 분석을 좀 같이 하자는 이야기였죠.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았거든요.
당시에 저는 선충이나 진화 연구를 주제로 논문 쓰고 연구비를 계속해서 쓰고 있었는데, 3년 가까이 선정된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연구비가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장 새해에는 인건비도 한 푼 없는 상황이었어요. 어떻게든 연구비를 따고 자리를 잡지 않으면 학계에서 생존하는 게 막막해보였습니다.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했죠. 그런 상황에서 눈길을 돌린 곳이 사람 연구였습니다.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라는 책도 썼지만, 역시 그러고 사는 게 쉽진 않더라고요. 제가 하던 연구로는 연구비 따는 게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제 실적과 실력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결국 한국에서 좀 더 공동연구할 사람이 많고, 어떻게든 연구비를 함께 딸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분야로 옮기는 게 학계에서 유일하게 시도해볼만한 기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 박지환 박사님이 준 연락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연구는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원래 그 전까지 선충에서 하던 분석 방법론을 사람 데이터에 그대로 적용하기만 하면 됐거든요. 고품질 DNA 서열 정보를 활용해 한국인 3인에 대한 개인맞춤형 인간 유전체 지도 작성을 진행했습니다. 데이터 받고 분석하는 데는 며칠 안 걸렸어요. 그 뒤로는 기존 기법으로는 확인할 수 없고, 고도화된 기술로만 확인할 수 있는 DNA의 특징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구조 변이(structural variant)를 살펴보는 일이었어요. 특히 DNA 손상과 회복이 가장 크게 일어나는 게 확실했던 염색체 끝부분, 텔로미어 지역을 살펴봤습니다. 역시나 선충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DNA 손상과 회복, 그리고 그로 인해 형성된 구조 변이가 선명하게 드러나있었습니다. 선충 연구하면서 쌓은 전문성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이었죠. 그렇게 제가 쓸 수 있는 부분을 종합해서 빠르게 KOBIC 박사님들께 공유 드렸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논문은 혼자서는 쓸 수 없는 논문이었습니다. KOBIC에 계신 정말 많은 분들이 논문을 완성해주셨어요. 특히 구조 변이에 대한 검증과 인구 집단 분석을 비롯해서 논문을 훨씬 더 풍성하게 채워주셨고, 초안이 나왔습니다. 구조 변이 확인 및 인구 집단 분석에는 양진옥 박사님, 김상옥 박사님, 그리고 조수복 박사님이랑 박지환 박사님이 특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이직하게 됐고, 논문도 투고됐죠. 동료평가를 받았을 때는 좀 당황하긴 했습니다. 추가 실험을 엄청나게 요청했거든요. 구조 변이 검증과 관련된 추가 실험에는 김선영 박사님과 여민경 교수님, 박종열 박사님이 정말 고생 많이 해주셨습니다. 기존에 구축해둔 것을 기반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추가하게 됐고, 한두 번 더 고치라는 연락을 받은 다음 게재 허락을 받았습니다. 23년 5월에 첫 투고하고 24년 12월에 수락됐더라고요. 오래 걸리긴 했네요. 지긋지긋할 때쯤에라도 발표돼서 다행입니다.
연구 시작하고 함께 고생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 그림 설명
(왼쪽) 한국인 3인의 DNA를 확보하고, 이를 대상으로 고도화된 유전체 해독 기법인 롱리드 시퀀싱 기법을 활용함. 해당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맞춤형 게놈 프로젝트를 수행해 유전체 지도 제작을 성공함. (오른쪽) 이후 각 유전체 지도에 존재하는 변이를 검출하였으며, 염색체 끝에서 총 19개의 거대 돌연변이를 확보함. 해당 돌연변이 인근에 존재하는 DNA 화석 증거를 기반으로 복구 방식을 규명하는 데 성공함.
- 그림 출처: Highly accurate Korean draft genomes reveal structural variation highlighting human telomere evolution (https://academic.oup.com/nar/article/53/1/gkae1294/7945385) 논문 그림을 일부 수정하고 문구 또한 국문으로 변경함. (CC BY-NC 4.0)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연구 시작할 때쯤 생명연에 있었는데요, 생명연 정말 좋은 기관입니다. 기관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그런 연구를 꾸려갈 수 있는지, 내가 무슨 일을 해서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참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직해서 다른 기관에 있긴 하지만, 생명연에서 배운 것들이 지금 제가 살아가는 방식을 많이 바꿔낸 것 같습니다. 가까운 만큼 자주 찾아가며 계속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네요.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한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런 이유가 있더라고요. 진화나 선충 연구하는 건 분명 중요한 일이었겠지만, 연구비 등을 고려했을 때 제가 더 하긴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진짜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보다 실적도 실력도 좋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분들도 고생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정도 실적도 실력도 없어서 취미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연구실에 학생도 많아져서 이 양반들 먹여살리는 게 더 중요해졌으니까요. 앞으로는 좀 더 안정적으로 연구실 운영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이제는 제가 직접 분석하고 논문 써서 1저자로 들어가는 일도 점점 거의 없어질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성장하려면 저보다 더 많이 직접 분석하고 논문을 써야 하니까요. 제가 할 일이 바뀌어야 연구실이 굴러가겠더라고요. 학생들이 좀 더 편하게 연구하고 논문 쓸 수 있도록 좋은 주제 물어오고, 돈이랑 데이터를 가져오고, 논문 쓰는 법 지도하고 글 고치도록 하는 게 제가 할 일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지금도 열심히 해주고 있어서, 좋은 논문으로 좋은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 같이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자부심이자 보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다들 모쪼록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랄 뿐입니다. 저도 똑바로 못 살고 허겁지겁 살고 있는데 무슨 말을 더할까 싶어요.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이러저러한 연구들 덕분에 지금은 자리도 잘 잡았고, 연구실에서 이 논문과 비슷한 연구도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하고 있던 다양한 동식물의 유전체 연구도 조금씩 해치우고 있고, 사람의 암세포에 대한 유전체 연구도 잘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희귀질환 연구도 마무리하고 있어요. 사람 포함해서 연구를 하려고 보니 공동 연구할 기회가 훨씬 많긴 하더라고요. 연구비는 여전히 없지만, 차츰 잘 풀려나가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좋은 분들과 연구 잘 하고 있으니 재밌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운 좋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만큼,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가득할 따름입니다. 아마 올해 이런 인터뷰 두세 편은 더 낼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쪼록 잘 마무리하면 좋겠네요.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한국인 유전체 지도
# 게놈 프로젝트
# 텔로미어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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