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저희는 대규모 펩타이드 라이브러리를 활용한 염증질환 치료제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톨유사수용체(Toll-like receptor, TLR)의 염증 신호를 억제하는 펩타이드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TLR 신호전달의 핵심 도메인인 TIR 도메인 패밀리 서열로부터 19만 개의 펩타이드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초고속 탐색 플랫폼을 활용해 TLR 신호 전달을 억제하는 다수의 펩타이드 후보 물질을 발굴했습니다. 펩타이드 후보들을 이용하여 면역세포에서 뛰어난 염증신호 억제 효과를 확인하였고, 특히 건성 황반변성을 유도한 마우스 모델에서 점안제 형태로 투여한 결과, 망막 세포를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킨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황반변성은 노년층 실명의 주요 원인으로, 망막 중심부인 황반의 이상으로 인해 시력이 저하되는 질환입니다. 이 질환은 증상에 따라 건성과 습성으로 나뉘며, 전체 환자의 약 90%는 건성으로 경미한 시력 손상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건성 황반변성 환자 중 약 30%는 습성으로 진행되며, 습성 황반변성의 경우 증상이 심할 때는 1년 내 실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건성 황반변성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 개발이 절실합니다. 현재 건성 황반변성 치료제는 2023년에 FDA 승인을 받은 두 종류의 주사제가 전부로, 시력 회복에 대한 효과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주사 치료에 따른 합병증 우려도 존재합니다. 2027년까지 건성 황반변성 치료제 시장은 6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점안제 형태의 새로운 치료제 개발은 이 분야에서 혁신적인 돌파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널의 속표지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저희는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제약사와 협력해 황반변성 혁신신약 개발을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또한 저희 연구실에서는 이번 연구를 통해 발굴한 수백여 종의 TLR 신호 억제 후보 펩타이드를 이용하여, 퇴행성뇌질환, 암, 감염병 등 여러 염증질환 모델에서 적응증 확장을 위한 국내 및 글로벌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향후 다양한 펩타이드 치료제 파이프라인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천연물연구소는 국내외 여러 기관과 협력하여 천연물 소재의 발굴부터 신약 개발까지 전 과정을 수행하는 연구기관입니다. 특히, 2024년 9월에 출범한 KIST 천연물신약사업단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지역 거점 연구소가 되기 위한 임무로써, 첨단바이오 융합을 통해 암과 안과질환에 대한 글로벌 신약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KIST 천연물연구소가 위치한 강릉이 천연물 바이오 국가산업단지로 선정되면서, '천연물로 인류에 행복을'이라는 비전을 국가적 차원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견고한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반을 통해 천연물연구소는 천연물 소재를 활용한 신약 개발과 산업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랩노트를 꼼꼼히 작성하는 것은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습관입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작업치료를 전공했기에 대학원에서 뇌·인지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기초 지식과 실험 경험 모두가 부족했습니다. 처음 실험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그때부터 모든 것을 랩노트에 세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는 것이 많았던 1년 차에는 파이펫 잡는 법까지 그림으로 그려 넣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실험이 성공하거나 실패했을 때 원인을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실험 자체는 비교적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지만, 실험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고 다음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한 계획을 짜는 작업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랩노트에 실험 과정과 관찰 결과를 상세히 기록해두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10년 넘게 꾸준히 수행한 실험 방법도 몇 달간 쉬고 나면 기억이 희미해질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셀 패스처럼 단순한 실험도 때때로 프로토콜을 다시 확인하며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험이 끝난 후 30분에서 1시간까지 시간을 투자해 랩노트를 작성하며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기록들이 미래의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졸업 후, 제가 남긴 랩노트를 참고한 후배에게서 연락이 와서, "선배가 남긴 꼼꼼한 랩노트 덕분에 실험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을 때 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랩노트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연구자의 성장뿐만 아니라 후속 연구를 위한 소중한 자산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연구를 처음 시작하거나 진행 중인 누구에게나 랩노트 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학위 과정 동안 실험 자체는 성공했지만,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지 못한 경험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학위 초반에는 열정만 넘쳤을 뿐 데이터를 깊이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중요한 결과를 단순히 네거티브 데이터로 간주하고 지나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험 방법과 결과를 꼼꼼히 기록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검토하며 분석하는 습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실패라고 여겼던 결과가 나중에 핵심 데이터를 제공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건강 관리는 연구 성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잠시 멈추고 재충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밤샘 실험을 하기보다는 충분히 잠을 자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유익합니다. 저 역시 학위과정 초반에는 교수님과의 미팅에 데이터를 준비해 가기 위해 밤을 새운 적이 많았지만, 밤샘의 결과는 수면 부족으로 인한 실수 연발과 실험 실패로 이어졌을 뿐입니다.
학위 과정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항상 120%의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80%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꾸준히 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도 중요하지만, 연구를 지속하려면 나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아울러, 아무리 바빠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습관을 들이길 바랍니다. 운동은 체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회복탄력성에도 도움이 됩니다. 운동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깝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운동을 통해 기른 체력은 연구 효율을 몇 배로 높여줍니다. 잘 자고, 꾸준히 운동하며 체력을 관리하면, 실험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됩니다. 건강을 잘 유지하며 연구에 전념하면, 반드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현재는 대장암에서 TLR4의 과발현이 관찰된다는 문헌 결과를 바탕으로, 이를 표적으로 하는 펩타이드를 활용한 대장암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TLR4를 억제하여 대장암 치료에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가오는 12월부터 테니스 레슨을 다시 시작해 체력을 기르며 연구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2년 전 KIST 천연물연구소 분원장배 테니스 대회 직관을 계기로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으나, 올해 초 업무가 많아지면서 잠시 중단했었습니다. 이제 운동을 재개해 체력을 단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연구를 이어가 대장암 치료제 개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건강한 몸과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이 연구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전진하겠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저는 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를 졸업하고 작업치료사로 일하다가,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에서 뇌·인지과학을 전공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한국원자력의학원에서 대장암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면역항암 연구를 수행했고, 현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단백질 공학 연구실에서 TLR4 억제 펩타이드를 이용한 대장암 치료법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걸어온 길은 모두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늘 즐거웠습니다. 여러분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시도하지 않아 후회하는 것이 더 큰 아쉬움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의욕은 넘쳤지만 실수가 잦고 덤벙대던 제가 박사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스승님과 동료들 덕분입니다. DGIST에서 저를 믿고 지도해주신 김은경 교수님, 학위 과정 동안 실험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준 동기 조한채 박사님과 선배 전윤정 박사님, 그리고 과학자의 네 가지 핵심 가치인 “원리, 논리, 정리, 윤리”를 알려주신 이재면 박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현재 KIST에서 제 연구를 이끌어 주시는 PI 서문형 박사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칸트처럼 철저한 시간 관리로 누구보다도 효율적인 일정을 소화하시며, 항상 통찰력 넘치는 조언을 주시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KIST 천연물연구소에서 의미 있고 흥미로운 연구를 할 기회를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연구를 이어가겠습니다.
#펩타이드 치료제
# 황반변성
# 대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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