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University of Michigan, 현 Translational Research Institute, AdventHealth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혹시 운동을 통해 다이어트, 정확히는 체중 감량에 성공하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축하드립니다! 체중 감량과 지방량 감소에 성공하셨다면, 높은 확률로 심폐 및 대사 건강(cardiometabolic health)이 증진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체중 감량에 실패했다면 대사 건강에는 변화가 없을까요? 이번 연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인간의 피하지방조직(subcutaneous adipose tissue)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피하지방조직은 인간의 복부에 가장 많이 분포하며, 흔히 우리가 적으로 규정하고 경계하는 대상이지만, 대사 건강에 있어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과도하게 영양을 섭취할 경우, 초과한 에너지를 지방으로 저장해야 하는데, 피하지방조직만이 유일하게 이 지방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장기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피하지방조직이 지방 보관 능력(lipid storage capacity)을 상실하면, 이를 열량으로 소모하지 않는 한(예: 운동) 에너지는 몸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 지방은 혈류를 통해 내장 지방, 간, 심장, 근육 등의 다른 장기에 축적됩니다. 문제는 지방의 주 요소인 지방산 (fatty acid)은 매우 bioactive하며 각 장기의 인슐린 신호전달을 방해함으로써 당뇨병을 유발하는 인슐린 저항성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피하지방조직의 지방 보관 능력이 높을수록 다른 장기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줄일 수 있으며, 이는 전반적인 대사 건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여러 약리학 실험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예: 당뇨병 치료제로 많이 사용된 TZD 계열 약물). 주의할 점은 높은 지방 보관 능력이 체중 증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체중 증가는 영양 과다 섭취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피하지방조직의 양이 많다고 해서 지방 보관 능력이 항상 높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과체중이나 비만일 경우, 피하지방세포의 지방 보관 능력이 저하되어 내장 지방과 지방간이 관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산소 운동이 대사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유산소 운동이 피하지방조직에 어떠한 구조적 또는 분자적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피하지방조직이 체중의 50%에 육박하기도 하는 비만인의 경우, 유산소 운동이 피하지방조직을 ‘건강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 기전은 운동 프로그램을 더 발전시키는 데 활용되거나 의약학적으로 응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연구는 최소 2년 이상 꾸준히 유산소 운동을 해온 비만인과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비만인의 지방조직을 채취하여 구조적 및 분자적 차이를 비교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두었습니다. 연구 수행 시 저희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대조군과 실험군(운동하는 비만인)의 지방량을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방조직의 많은 유전자, 단백질, 조직 구조가 지방 총량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므로, 그룹 간의 지방 총량이 조금이라도 다를 경우 발견된 결과를 운동의 독립적인 효과로 해석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대조군(N=16)과 실험군(N=16)의 피험자들은 성별과 지방량에 맞춰 1:1로 짝을 맺는 특수한 연구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비교 결과, 운동을 해온 비만인의 피하지방조직은 1) 모세혈관이 더 많았고, 2) 조직을 둘러싸는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의 섬유화 과정이 덜 진행되었으며, 3)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대식세포의 양이 적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비만일 경우 흔히 목격되는 지방 조직 특성(예: 적은 모세혈관, 조직의 섬유화, 과도한 면역세포 축적)과 대조적이므로, 운동이 피하지방조직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근거로 해석되었습니다. 또한, 프로테오믹스를 통해 운동한 비만인에게서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단백질과 인산화 단백질들을 규명했습니다. 주로 리보솜, 미토콘드리아, 지방 대사에 관련된 단백질의 양이 운동한 비만인의 피하지방조직에서 더 많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흥미로운 ex vivo 실험을 추가로 진행했습니다. 피험자들의 지방조직을 작게 잘라 10일간 혈관생성에 도움이 되는 인자들을 제공했더니, 운동한 비만인의 지방조직에서 더 많은 모세혈관이 생성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지방 줄기세포가 분포한 stromal vascular fraction을 원심분리하여 한 달 동안 3D 오가노이드를 생성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운동한 비만인에게서 형성된 오가노이드의 지방 보관 소포(lipid droplet) 크기가 비운동인보다 더 컸습니다. 또한, 운동한 비만인의 지방 오가노이드에서 지방 보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자들의 RNA 양이 더 많았습니다. 종합적으로, 본 연구는 비만인이라도 규칙적인 운동을 오래 한 경우 운동하지 않은 비만인에 비해 피하지방조직이 더 건강할 수 있다는 근거를 발견하였으며, in vivo로 확인하기 힘든 지방 보관 능력을 간접적으로 확인하여 운동이 피하지방조직의 지방 보관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이 연구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학교의 정책상 운동 트레이닝 실험(피험자 모집 후 몇 달간 꾸준히 운동시켜 운동 효과를 평가하는 연구)이 불가능해지면서 지도 교수님과 머리를 맞대고 고안한 단면(cross-sectional) 연구였습니다. 단면 연구가 가진 한계점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항상 연구를 발전시킬 방법을 고민한 집념이 이번 논문 게재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연구가 인류 건강 증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연구는 제가 박사과정을 밟았던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Dr. Jeffrey Horowitz 가 이끄는 기질대사연구실 (Substrate Metabolism Lab, School of Kinesiology,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운동생리학은 미시간 대 운동학과 (School of Kinesiology)에서도 전통적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어 온 전공이며, Dr. Horowitz는 특히 운동과 식단이 비만인구의 근육 및 지방건강을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는지 세포/분자수준에서 규명하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이 연구실은 피험자 모집부터, 샘플 채취 (Dr. Horowitz가 직접 근육 및 지방 biopsy를 합니다), wet-lab분석까지 bench to bedside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중개연구 (Translational research)를 주 목적으로 합니다. 저는 Dr. Horowitz의 지도 아래 석사 및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현재는 노화와 운동이 인간의 지방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 어드벤트헬스 중개연구소 (Translational Research Institute, AdventHealth, Orlando)에서 박사 후 과정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저는 임상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제가 도출한 실험 결과가 직접적으로 인간 건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번에 Nature Metabolism에 게재된 논문의 결과가 CNN, NBC, NPR 등 세계적인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것을 보고 예상치 못한 반응에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제가 걷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중개연구자로서 세포 및 분자 수준에서 도출한 연구 결과를 과학적 배경이 없는 일반인들(많은 피험자들이 이에 해당합니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저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때, 그 순간이야말로 연구자로서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종사하는 규모가 작은 한국인 운동생리학자로서, 세계 보건과학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저는 국내에서 체육교육과 학부를 졸업하였고, 운동생리학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운동생리학이 주로 체육과에서 가르쳐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운동생리학은 운동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의학과 생리학이라는 포괄적인 학문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운동생리학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미국이나 북유럽 국가들의 학교 및 연구소에서는, 의과대학이나 보건대학에서 운동생리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시고 운동이 '어떻게'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고 싶으신 학생들에게 운동생리학은 매우 흥미로운 학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활동 중 하나이지만, 아직도 '어떻게' 또는 '왜' 운동이 우리 건강을 증진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2010년대 중반, 미국 국립보건연구소(NIH)에서 운동의 건강 효과를 대규모로 규명하기 위해 2500억 원 이상의 연구비를 투입해 1000마리의 쥐와 2000명 이상의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된 10년 장기 프로젝트인 Molecular Transducers of Physical Activity Consortium (MoTrPAC) (www.motrpac.org)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제가 학업을 진행한 미시간 대학교와 현재 박사 후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어드벤트헬스 모두 MoTrPAC에 참여하고 있는 기관이기에, 저는 이 프로젝트가 가져오는 변화를 가까이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미국 전역에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진행 중인 MoTrPAC은 운동생리학 연구의 장기적인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이며, 이를 분석하고 해석할 많은 과학 인재들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유학이나 박사 후 과정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분야에 과감히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인간의 피하지방조직은 주로 비만과 관련하여 많이 연구되었지만, 최근에는 노화 과정에서도 피하지방조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저는 박사 후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째, 피하지방조직은 지방을 보관하는 데 특화된 조직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호르몬(일명 아디포카인, Adipokine)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관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노인들 사이에서는 피하지방조직의 양과 기능적, 인지적 능력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가 관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피하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이 변화하고, 이 호르몬들이 근육이나 뇌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 하에, 저는 노인들에게서 채취한 지방조직의 conditioned media 실험과 시스템 유전학을 융합하여 피하지방조직의 내분비 효과를 규명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방조직의 절대적인 부피는 지방세포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세포 수로 따지면 지방세포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즉, 지방조직 생리학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별 세포 수준에서의 분석이 필요합니다. 저는 현재 싱글셀 기법(single nuclei RNAseq)을 사용하여 노인들에게서 채취한 지방조직을 분석하고 있으며, 세포 종류 및 각 세포에서 발현되는 RNA가 임상 데이터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규명하고자 합니다.
셋째, 싱글셀 기법의 등장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싱글셀 데이터를 기반으로 bulk RNAseq 데이터를 'deconvolute'(역변환)하여, 생물정보학적 접근을 통해 싱글셀 정보가 없는 bulk 데이터에서도 각 세포의 양을 추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팀은 피하지방조직의 싱글셀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방조직 맞춤형 deconvolution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많은 지방조직 연구자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어떠한 아이디어나 제안을 가지고 가더라도 항상 진심으로 함께 고민해주시는 저의 박사 지도교수 Dr. Horowitz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운동생리학을 비롯한 응용생리학 연구는 메이저 학술지에 자주 소개되지 않아 학계와 대중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운동생리학이 연구에 어떻게 활용되고, 유의미한 지식을 산출해낼 수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소개해드릴 수 있어 매우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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