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인터뷰
성신여자대학교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만약 어떤 사람이 새로운 마을로 이사를 갔고, 옆집 이웃이 이사를 환영한다며 쿠키를 선물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이 사람이 그 이웃에게 앞으로 어떻게 대할 것이라고 기대하시나요? 상호호혜성(reciprocity)의 원리는 우리의 기대에 얼마나 반영될까요? 저희는 이 질문을 15개월 영아들에게 던졌습니다.
15개월 영아들은 먼저 두 여성(행위자1, 행위자2)이 등장하여 서로 상호작용하는 장면을 관찰하였습니다. 먼저 행위자1은 행위자2에게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행위자1은 행위자2에게 쿠키를 나누어 주거나, 혹은 행위자2의 쿠키를 빼앗아 먹었습니다. 이후, 행위자1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행위자2는 행위자1을 돕거나, 도움이 필요한 행위자1을 무시하거나, 혹은 행위자1에게 해를 가하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저희는 이 세가지 장면(도움, 돕지 않음, 해를 가함)에서 영아들의 응시시간을 비교함으로써 영아들이 어떤 행위를 용인되는 행위로 간주하는지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저희 연구는 크게 두 가지 주요 결과를 밝혔습니다. 첫째, 15개월 영아들은 상호호혜성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아들은 행위자1이 행위자2에게 긍정적으로 행동한 이후, 행위자2가 행위자1에게 해를 가할 때 놀라워하였습니다. 반대로 영아들은 행위자2가 행위자1에게 부정적으로 행동한 이후, 행위자2가 행위자2를 도울 때 놀라워하였습니다(그림 1). 즉 이러한 연구 결과는 영아들이 행위자1의 최초 행동을 통해 행위자2의 상호호혜적 반응의 한계를 설정함을 보여줍니다. 영아들은 행위자2가 자신에게 좋게 대해준 사람을 해치지 말 것을 기대하고, 또한 자신에게 나쁘게 대해준 사람을 돕지 않을 것을 기대합니다. 영아들은 이러한 반응들이 상호호혜성과 비일관적인 행동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용인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나아가 저희들은 그렇다면 영아들은 과연 어떠한 행동들이 상호호혜성과 일관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기존의 많은 연구자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의 상호호혜성에 초점을 두고 연구해왔지만, 저희는 Travers 등과 같은 고전적인 이론에서 논의한 보다 미묘한 상호호혜성에 주목하였습니다. 이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상호호혜성은 동등한 파트너쉽 또는 우정과 같은 관계의 시작과 유지에 기여한다고 봅니다. 즉, 행위자1이 행위자2에게 선물을 주거나, 혹은 어떤 긍정적 행동을 할 경우, 행위자2는 이 우정의 시작을 받아들여 행위자1에게 역시 긍정적 행동을 하고, 이러한 긍정적 상호작용이 시간에 따라 반복되며 두 사람 간 긍정적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상호호혜성 또한 비슷한 논리에 따라 적대적인 관계가 시작되고 유지되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행위자2가 행위자1의 최초 행동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거나 혹은 중성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선택이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즉, 행위자2는 행위자1이 비록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친구가 되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으며, 행위자1의 공격을 꼭 되갚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의 연구 결과는 영아들 역시 이러한 가능성을 알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저희 연구의 결과, 영아들은 행위자2가 행위자1의 긍정, 적 행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지만, 중성적으로 대하거나 혹은 꼭 돕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행위자2가 행위자1의 부정적 행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행위자2가 도움이 필요한 행위자1을 돕지 않는 정도의 행동을 하더라도 이를 용인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15개월 영아들이 “약간의” 상호호혜성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아들은 행위자1이 행위자2에게 긍정적인 행동을 한 경우, 행위자2가 행위자1을 해칠 때 놀라워하고, 행위자1이 행위자2에게 부정적인 행동을 한 경우, 행위자2가 행위자 1을 도울 때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영아들은 행위자2의 반응이 반드시 행위자1의 최초 행동과 반드시 동일한 가치를 가질 것을 기대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생애 초기부터 상호호혜성이 파트너 통제(partner control)보다는 파트너 선택(partner choice)의 기제로 작동함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저와 공동연구진을 포함, 여러 발달심리학자들은 최근 20여년동안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도덕적 기대는 과연 무엇인지를 활발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집단 안에서 생존해온 인간의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과연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하여 어떠한 기대와 이해를 갖추도록 진화하였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어린 영아들은 우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사회문화적 경험이 적기 때문에 영아 대상 연구는 인간의 본질적 기대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에 큰 도움을 줍니다.
연구 도중 에피소드라기보다는 여러분들께서 아마 상상하다시피 영아 연구는 매우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연구에는 총 160명의 15개월 영아들이 참가하였고, 파일럿 연구를 포함하여 이 연구를 수행하는 데에는 약 10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 연구는 제가 박사과정을 들어가며 시작한 연구 중 한 연구입니다.

그림 1 Jin et al. (2024, Nature Communications) 연구 결과 요약. 15개월 영아들은 행위자1과 행위자2의 상호작용을 관찰할 때 행위자의 2의 행동이 용인되거나(초록 √), 혹은 용인되지 않는다고(빨간 X) 생각함. 조건에 따라 행위자1은 이전에 행위자2에게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거나(첫번째 가로줄), 행위자2에게 쿠키를 나누어주거나(두번째 가로줄), 혹은 행위자2의 쿠키를 빼앗음(세번째 줄).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연구는 제가 박사 및 박사후 과정을 수행한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 Urbana-Champaign)의 영아인지연구실(Infant Cognition Lab, https://infantcognition.web.illinois.edu/)에서 수행한 연구입니다. 저명한 영아 연구자인 Dr. Renee Baillargeon이 이끄는 연구실로 이 연구실의 연구 결과들은 심리학 연구로는 사실 게재하기 쉽지 않는 Science와 같은 세계적 저널에 논문을 게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연구실에서는 어린 영아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해 폭넓게 연구하고 있으며, 저희 연구실과도 자매 연구실(sister lab)이라고 서로 부르며 활발히 공동연구를 진행중입니다. 저는 현재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아동발달연구실(https://krchildlab.weebly.com/)을 운영하고 있으며, 영유아 대상 사회도덕성 발달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영아 연구는 특정 연령대의 영아의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도전적인 연구입니다. 이 연구 역시도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고요. 제 주변의 저를 아끼시는 많은 분들이 그런 연구로는 제가 교수직을 구하거나, 연구비를 수주하거나, 혹은 재임용과 승진 평가 시 불리하니 연구 주제를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하셨고, 저 스스로야 말로 누구보다도 같은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불안과 의심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연구자의 역량이 정해진 시간 안에서 정량적으로 평가되는 시스템 안에서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지 질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짧다면 짧고 또 길다면 긴 저의 연구의 여정에서 저는 제가 정말 알고 싶고 궁금한 것에 아주 조금씩 다가갈 때 느끼게 되는 희열과 보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호기심 없이는 제가 가진 최대 역량과 노력을 쏟아붓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 호기심이야말로 연구자로서의 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원래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며, 결국 이 세상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그 불확실성을 감내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였고요. 지금도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진행 중인 저의 여러 실험들이 또 언젠가는 세상에 나올 날이 있기를 기다리며, 그 시간이 비록 오래 걸리더라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아주 약간의 진실을 밝힐 수 있다면 저는 행복할 것 같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위에서처럼 말씀드리면 마치 제가 수도자의 길을 걷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사실 저희들이 하고 있는 발달심리학 연구 방법은 코로나-19 기간을 통해 크게 개선된 측면도 있습니다. 많은 실험을 온라인 연구로 전환하게 되면서 이제 한국에서도 해외 아동들의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손쉽게 수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서울 시내에 거주하는 만 3세 아동들만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다면 지금은 전국 각지의 아동들이 온라인을 통해 저희 연구실의 연구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데이터 수집의 용이성 뿐 아니라 연구 결과의 일반화 가능성에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발달심리학 연구는 인간이 어떠한 상태로 태어나며, 또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 밝힌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큰 매력을 가짐과 동시에, 교육, 보육, 그리고 개입과 치료 등의 분야에도 응용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학문입니다. 제 주변의 심리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이걸 어릴 때부터 가르쳤어야 하는데” 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기도 합니다. 그만큼 어린 시기에는 어른에 비해 많은 것들이 보다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성장과 변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발달심리학 연구를 꼭 접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또한, 현실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여타 사회과학 학문을 포함하여 심리학 분야 안에서도 저는 외국인이 유학을 가서 연구를 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한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 연구 방법론이 존재하지만, 발달심리학의 경우 실험 연구가 많기 때문에 정량적 데이터를 잘 다루는 학생들이라면 이 학문이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또한 최근 10-20년 동안 심리학에서는 기존의 미국을 필두로 한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 Rich, Democratic) 사회에서 수집된 데이터에 국한된 심리학 연구 결과의 일반화 가능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심리학 그리고 발달심리학 분야에 현재 새로운 다양한 시각과 관점, 그리고 데이터에 대한 큰 요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저는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 이 질문은 저의 평생 화두로 저의 연구를 이끌어갈 것 같습니다. 물론 개별 연구는 이러한 큰 질문을 한 번에 다룰 순 없고 작은 질문들로 쪼개어 접근하게 될 것이고요. 현재 저희 연구실인 성신여자대학교 아동발달연구실에서는 크게 두 개의 연구과제를 수행 중입니다.
첫째, 저희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논문에서 다룬 것과 마찬가지로 어린 영유아들의 사회도덕성 발달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를 EEG등의 뇌과학 방법과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영아들은 아직 어른처럼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물론 성인들조차 이게 늘 쉽지는 않습니다만), 최근까지 저를 포함, 여러 연구자들은 영아의 응시 시간이나 시선 방향 측정 등의 간접적 방법을 통해 영아의 인지를 측정해왔습니다. 최근 눈부시게 발달한 뇌과학의 측정 방법들은 발달심리학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봅니다.
둘째, 저희 연구실에서는 현재 성별 등과 같은 사회집단에 대한 아동의 고정관념 발달 및 이에 대한 개입방안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개인의 개별적 특성과 관계없이 “남자가 여자보다 더 똑똑하다”, 혹은 “백인은 흑인보다 우수하다.”라고 믿는 것과 같은 사회적 고정관념이 어떻게 발생하며, 아동의 동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이러한 고정관념과 이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어떻게 하면 완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의 경우 국내외 공동연구진과 협업을 하고자 노력하며, 해외의 경우, 현재는 주로 미국의 University of Illinois, University of Chicago 그리고 캐나다의 University of Toronto의 연구자들과 협업 중입니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제가 가진 지식과 방법론에서 나아가 보다 더 발전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저는 인간 도덕성에 대한 진화적 관점을 토대로 연구를 하기 때문에 생물학과 동물행동학에 늘 관심을 가지고 한빛사를 동경하고 눈여겨 왔습니다. 여러분들께 이렇게 발달심리학의 논문을 소개할 기회를 갖게 되어 영광이며, 논문에 대한 궁금증이나 피드백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등록일 202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