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현재 밝혀진 많은 물질대사 경로는 수많은 노선이 얽힌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처럼 출발점과 도착지를 잇는 여러 선택 가능한 경로가 존재합니다. 저의 연구는 마치 지하철역 하나가 폐쇄되었을 때 이용객들이 어떤 다른 경로를 가장 많이 사용할지 살펴보는 것과 같이, 선천성 대사이상 (inborn errors of metabolism)에 관련된 효소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전체 물질대사가 어떻게 재구성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세기 중후반까지 대부분의 아미노산, 지방, 탄수화물 등 영양소 및 물질들의 세포내 대사 경로가 연구되어, 현재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는 경로들이 잘 밝혀져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현재 물질대사 연구는 여러 다른 조건에서 어떻게 물질대사가 재구성되어 세포와 생명체에 에너지와 바이오매스 공급, 대사 부산물 및 폐기물 처리를 수행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러 다른 조건이란 단순한 하나의 유전자 돌연변이에서부터 복잡하게 변화된 암세포 유전체 환경, 각종 화학물 노출, 장내 미생물-숙주 생물과 같은 이종 간 물질대사 상호작용, 각종 질병 및 노화 관련 질환 등을 모두 의미합니다. 이런 물질대사 연구를 수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재구성된 물질대사가 요구하는 기질, 생성물, 또는 조효소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즉, 물질대사의 재구성이 이루어졌을 때 새롭게 요구되거나 결여되는 기질, 조효소, 그리고 생성물을 안다면 이를 통해 물질대사 재구성이 이루어진 조건에 외부에서 해당 화합물을 처리함으로써 개입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각종 질병과 질환 조건에서 재구성된 물질대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해당 대사 경로를 표적으로 치료 또는 예방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의 연구는 이러한 연구 방향성을 가지고 물질대사의 재구성을 전체 개체 수준에서 이해하고, 미생물을 대상으로 고속 대량 스크리닝 (high-throughput screening)을 수행하여 그 화합물로부터 재구성된 물질대사에 필요한 물질을 찾아 물질대사에 개입하는 연구입니다. 이 중 미생물을 사용한 스크리닝 실험을 수행한 데에는 작은 일화가 있습니다. 먼저 유전자 돌연변이 조건에서 재구성된 물질대사를 이해한 후, 저는 재구성된 몇몇 대사 경로의 역할을 검증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모든 가설이 실험에서 기각되었고, 결국 프로젝트가 그 시점에서 중단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저는 연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외부 조건을 활용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용하는 예쁜꼬마선충의 먹이가 되는 미생물을 몇몇 다른 속(genus)의 미생물로 바꾸어 제공해 보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테스트 조건에서 먹이 미생물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숙주 반응을 관찰하였고, 이를 계속 연구하여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포닥 과정을 보낸 곳은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 (Worcester)에 위치한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의과대학 (UMass Chan Medical School)입니다. 미국의 다른 의과대학 연구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기초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병 치료에 적용 가능한 응용과학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연구기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의과대학임에도 불구하고 마우스와 인간 세포주 모델뿐 아니라 제가 사용한 예쁜꼬마선충, 초파리, 지브라피쉬, 이스트, 다양한 미생물 등 여러 모델 시스템을 사용하는 연구실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교내 세미나에서 다양한 모델을 사용한 연구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큰 장점은 학교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로서, 학과와 소속기관을 넘어서 의사, 간호사, 행정직원, 교수, 포닥 연구원, 대학원생, 연구원들이 모두 친밀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학교 자체가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연구 성과가 유출될 걱정 없이 여러 연구기관이 다양한 공동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입니다. 이러한 연구환경은 높은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유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우수한 연구 성과를 발표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자신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찾아 연구 주제에 접근할 때, 연구를 즐겁고 재미있게 지속할 수 있으며,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족할 만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았을 때, 그동안 들인 노력이 보람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연구란 무엇보다도 스스로 느끼는 재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제가 질문을 탐구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함께 흥미를 느끼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연구자로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연구와 그 과정을 나눌 수 있는 동료의 존재가 연구의 발전과 성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스스로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분야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물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새로운 분야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는 즐거운 취미나 다양한 건전한 삶의 재미도 함께 추구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 미국에서의 포닥 경험이 외국 유학을 준비하는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말씀드리면, 연구자가 재미있는 주제와 좋은 동료를 만난다면, 언어의 장벽도, 생활환경의 변화도, 문화적인 차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언어 소통 능력도 향상되고, 일상 생활도 익숙해지며, 문화적 차이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영어로 말하고 듣고 쓰는 것에 대한 큰 부담을 안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 간의 의사소통은 영어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직장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 생활을 통해 훈련받은 분들이라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유학생활을 충분히 감당하고 즐길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저는 생명체의 물질대사에 개입하여 생명현상에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물질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포닥 기간 동안 수행한 연구를 통해, 숙주의 물질대사 이상에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을 발견하고, 이를 유전학적으로 분석하여 미생물 내에서 생산되는 대사물질을 찾아내는 방법이 이러한 목표에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이 방법을 활용하여,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에 공통적으로 보전되어 있는 물질대사 경로를 조절하는 물질을 미생물로부터 발견하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물질을 이용해 유전자 조작 없이도 재구성된 물질대사를 조절함으로써, 여러 질환과 질병의 치료와 예방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무엇보다도, 미숙했던 저를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건국대학교 시스템생명공학과의 심용희 교수님, 일본에 계신 가와사키 이치로 교수님, 그리고 KAIST의 이승재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를 포닥 연구원으로 받아주시고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UMass Chan Medical School의 Marian Walhout 교수님, 그리고 공동연구를 함께 수행한 Cornell University의 Frank Schroeder 교수님과 Dr. Bennett Fox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박사 및 포닥 과정에서 많은 생각과 조언을 나누어 주신 실험실, 학과, 의과대학 내 동료들, 그리고 포닥 과정 중 만난 UMass와 뉴잉글랜드 지역의 훌륭한 한인 커뮤니티에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과학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서 큰 힘이 되어 주신 모든 분들이 저에게 얼마나 소중한 만남이었는지를 다시금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귀한 자리를 허락해 주신 BRIC과 관계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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