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Institute of Botany, Chinese Academy of Sciences (CAS), 현 서울대학교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식물의 진화 역사에서 다배체화(polyploidization or whole-genome duplication) 현상은 중요한 진화적 요인입니다. 실제로, 피자식물(angiosperms)과 나자식물(gymnosperms)을 포함하는 종자식물(seed plants)의 공통 조상(common ancestor)에서도 배수체 현상(zeta ploidy; ζ)이 발생했고, 피자식물의 공통 조상에서도 epsilon (ε) ploidy, 진정쌍자엽식물(core eudicots)의 공통 조상에서도 gamma (γ) ploidy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배체 현상은 동일 종 내에서 발생하는 동질배수체화(autopolyploidization)와 서로 다른 종 간에 발생하는 이질배수체화(allopolyploidization)가 있는데, 이러한 다배체화를 통해 유전적 다양성이 증가하게 되고, 가용할 수 있는 유전적 자원이 많아지면서 기존과는 다른 형태를 갖거나, 극한 환경에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되어 식물 진화에 매우 중요한 매커니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본 연구는 관속식물(vascular plants or tracheophytes) 중 기저 그룹(basal group)에 속하는 석송류(lycophytes)의 가장 큰 과(family)인 부처손과(Selaginellaceae)를 대상으로 한 연구로서, 부처손과는 다른 관속식물로부터 약 4억 년 전(400 million years ago; Ma)에 분화하여 매우 긴 진화 역사를 가지며, 지금껏 다배체 현상을 겪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매우 특이한 세포소기관 유전체(엽록체 및 미토콘드리아) 특성을 보이고 있어 관속식물의 진화 연구에 아주 흥미로운 식물입니다. 본 연구는 RNA-seq을 통해 얻은 대량의 핵 유전자 정보와 모계 유전의 엽록체 유전체 정보를 토대로 부처손과 내 주요 그룹들의 계통유연관계를 파악해보려 하였으나, 부처손과 내 특정 그룹에서 서로 다른 핵 유전자 간, 또 핵과 엽록체 유전체 간에 극심한 계통학적 불일치(phylogenetic incongruence) 현상을 확인하였고, 여러 진화적 요인들 중 어떤 요인이 이들 그룹의 계통학적 불일치 현상을 초래하였는지 밝혀보고자 하였습니다. 최초 다배체 현상 발생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약해지고 희미해지는 유전적 증거들을 다양한 접근을 통해 확보하고, 외부형태학적, 주사전자현미경을 이용한 미세구조학적, 세포학적 접근 등으로 확보한 모든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들 그룹이 서로 다른 종 간에 발생한 고대 이질배수체화(paleo-allopolyploidization) 기원임을 밝혀내게 되었습니다.
그림. 본 연구에서 밝혀낸 고대 이질배수체화 기원(보라색) 식물(Kang et al., MBE 2024).
고대 이질배수체화 현상을 밝혀내는 것보다 어려웠던 점은 이 현상이 발생한 시기를 추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사용되는 분화 시기 추정 방법은 진화 역사가 반영된 계통구조(topology)를 고정시킨 후, 돌연변이율을 계산한 다음 각 주요 분기지점마다 실제 화석 자료들을 토대로 보정(calibration)하는 방식인데, 이 방법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bifurcating) 계통구조를 이용한 분석법으로, 망상형(reticulation)인 잡종화 현상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분석법으로 염기서열 치환율을 이용한 분석법이 있는데, 이는 코돈의 서열 변이 중 아미노산 치환을 일으키지 않는 synonymous substitution rate (Ks)을 이용하여 분화 시기를 이미 알고 있는 두 종 간의 Ks를 기준으로, 분화 시기를 구하려는 두 종 간의 Ks를 이용하여 계산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유전자 복제(gene duplication) 이후 오직 돌연변이의 축적만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정확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고대 이질배수체화 기원 그룹 내 많은 핵 유전자들 중 부계와 모계의 유전형을 갖는 유전자를 각각 구분한 후, 첫 번째 분화 시기 추정 방법을 이용하여 각 부모계로부터 어느 시점에 분화하였는지 추정하였고, 고대 이질배수체화 기원 그룹이 부계와 모계로부터 분화한 시기가 약 2억 5천만 년 전(250 Ma)으로 동일함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모계 유전의 엽록체 유전체 정보를 이용한 분화 시기 추정에서도 고대 이질배수체화 기원 그룹과 모계 그룹의 분화 시기가 동일한 시기인 것으로 확인되어, 약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 말기 대멸종(Permian-Triassic mass extinction) 직후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어 현재까지 밝혀진 관속식물 내 이질배수체화 기원 중 가장 이른 시기인 것으로 나타나 관속식물 진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본 연구는 제가 중국과학원(Chinese Academy of Sciences; CAS)에서 박사과정 중 수행한 연구로, 중국과학원은 중국 최고의 국립 기초과학, 자연과학 연구기관으로 12개의 분원, 100개 이상의 분야별 연구소, 3개의 대학교로 구성된 거대한 연구 기관입니다. 제가 실제 연구 활동을 했던 중국과학원 식물연구소(Institute of Botany, CAS; IBCAS)는 100여 개의 연구소 중 식물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는 연구소로서, 1928년 설립된 이후 현재 식물계통 및 진화 연구센터, 식생 및 환경 변화 연구센터, 식물분자생리학 연구센터, 광합성 및 광생물학 연구센터, 식물자원 연구센터 등 총 5개의 연구센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저는 식물계통 및 진화 연구센터에 속하여 연구 활동을 했고, 이 연구센터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식물 표본관인 중국 국립 식물표본관(China National Herbarium; PE)이 있어,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다양한 식물 종들의 표본을 관찰할 수 있어 저와 같은 식물 계통·분류학자에게는 좋은 연구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림. IBCAS의 중국 국립 식물표본관(herbarium PE).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저는 “Science probes, it does not prove”라는 말을 좋아하고, 제 연구 분야와도 딱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 현상과 진화 패턴을 탐구하고 이해하고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분석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며, 확보된 여러 증거들을 토대로 임시적인 결론을 내릴 뿐, 최종적인 “증명”을 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업데이트되거나, 기존 가설과 모순될 경우 새로운 증거까지 반영하여 기존 가설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가설을 수립해야 합니다. Ph.D. defense 당시, 본 논문의 결론과 또 다른 챕터로 이미 출판된 다른 논문의 결론에 대해 한 심사위원께서 모두 사실이냐고 질문하셨을 때, 제 답변은 “지금까지 확인된 모든 증거를 토대로 판단한다면 그렇게 보입니다”라고 답하였고, 이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 기존 가설과 모순된다면 수정될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끊임없이 탐구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연구 활동을 통해 또 다른 자연 현상에 대해 탐구하며 보람을 느끼고자 합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기초과학 분야 중에서도 식물분류학은 아주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며, 식물 연구의 기초가 되는 필수적인 학문입니다. 더운 날씨에 힘들게 산을 올라 야생식물을 관찰하고 여러 지역에서 식물을 수집하는 것이 기본인 학문이라 한때는 3D라고 기피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 발달로 일부 유전자 수준을 넘어 유전체 정보를 연구에 활용하면서, 최근에는 기존의 식물 분류·계통 연구에서 본 연구와 같은 종 분화(speciation)나 기원 연구 등 진화 역사를 밝히는 연구들이 수행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많은 선배님들이 쌓아온 분류·계통학 기반 위에 최신의 유전체 정보를 활용한 진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좋은 연구 환경이 갖춰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생물자원을 이용한 바이오산업의 성장과 함께 해당 생물자원의 정확한 동정과 분류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분야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식물과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하고, 과학적 호기심과 지식의 진보에 관심이 있다면, 보람을 느끼며 연구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본 연구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관속식물을 대상으로 진화 기작을 밝히는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외부 형태 관찰부터 최신 분석기법을 이용한 유전체 분석까지 다양한 접근을 통해 현재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증거들을 토대로 현재의 결론을 내리는 연구를 수행하고 싶습니다. 또한, 피자식물 계통연구 그룹(Angiosperm Phylogeny Group; APG)처럼 양치식물 계통연구 그룹(Pteridophyte Phylogeny Group)이 2016년 PPG I system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에 대한민국 학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종자식물 뿐만 아니라, 양치식물 연구도 꾸준히 수행하여 다음 PPG II system에는 당당히 대한민국 학자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석사과정 기간 동안 식물분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올바른 과학적 사고를 갖고 연구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강원대학교 유기억 교수님, 석사 졸업 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구에 대한 접근 방식, 지식의 교류에 대한 깨달음을 주신 국립생물자원관 곽명해 연구관님과 이병윤 부장님, 박사과정 동안 부족한 저를 믿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셔서 지금의 결실을 맺고 한 명의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IBCAS의 Xian-Chun Zhang 교수님, 순수과학 마인드에 갇혀 있던 저에게 연구가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이유를 직접 보여주시고 대한민국 생물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서울대학교 양태진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훌륭한 분들께 가르침을 받은 만큼 더 나은 과학자가 될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끝으로, 항상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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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ylogen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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