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이번 연구는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의 히치하이킹 행동에서 나타나는 자연적 변이에 관한 논문입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137개 야생 품종의 히치하이킹 능력 차이를 확인하고, 그 기저에 있는 유전적 기반을 규명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은 하나의 대표적인 야생형을 이용하여 실험실 안에서의 유전학적 연구 모델로 주로 활용되지만, 세계 각지에서 채집된 다양한 야생형을 바탕으로 자연에서의 생활사와 자연 변이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시퀀싱 기술의 발전은 바이오 연구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를 바탕으로 예쁜꼬마선충 연구에서도 다양한 야생 품종의 유전체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와 표현형의 자연적 변이에 대한 양적유전학 연구 등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제 연구도 이러한 배경을 기반으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닉테이션은 척박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다우어’라는 특정한 발달단계에서만 보이는 히치하이킹 행동으로, 자연에서 선충의 생활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능동적으로 관리하며 좋은 환경에서 배양하는 실험실과 달리, 자연에서는 선충들은 다우어로 접어들기 쉬우며 실제로 채집된 선충들이 다우어로 발견되는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닉테이션은 사람이 누워 있다가 일어서는 것처럼 선충이 몸을 세워서 흔드는 행동입니다. 다우어 상태의 선충은 이 히치하이킹 행동을 통해 근처의 다른 동물에 올라타 척박한 환경을 효율적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후 더 나은 환경에 도달한 다우어들은 발달을 재개하고 번식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준호교수님 연구실에서는 닉테이션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를 최초로 시도하여 닉테이션을 조절하는 신경세포를 규명하였고, 또 영국 선충과 하와이의 선충을 비교 연구하여 piRNA가 닉테이션 행동에 관여한다는 것도 밝혀냈습니다. 저는 인턴과 학위과정 초반동안 저의 사수셨던 이대한 박사님의 영국/하와이 선충 연구에 참여하면서 자연변이를 이용한 양적유전학적 연구 방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제가 연구 주제를 고민하던 시기에, 앞선 논문에서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던 Erik Anderson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다양한 예쁜꼬마선충 야생형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닉테이션 연구에 이를 활용해 genome-wide association study를 시도할 수 있었고, 자연의 선충 생활사에서 닉테이션의 역할을 고려할 때, 실제로 채집된 다양한 야생형과 자연 변이를 이용해 더 흥미로운 분석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137가지 야생형의 닉테이션을 비교하여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고, genome-wide association study를 통해 닉테이션의 변이와 연관된 염기서열 범위가 있음을 확인하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반부터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였지만, 이후 예상치 못하게 연구가 오랜 기간 정체되었습니다. 원인이 되는 유전자의 후보 범위를 아무리 좁혀도 결국 특정해내지 못한다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였고, GWAS이후 원인 유전자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연구기간의 대부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진전이 있을 때도 보통 소소한 정도에 그쳐 큰 성취감을 잘 느끼지 못했고, 유전자를 특정하지 못하면 다른 방향으로 연구를 확장시키기도 힘든 상황이라 막막했습니다. 닉테이션 실험을 계속 하다 보니 우스개소리로 실험실에서 ‘닉기(닉테이션 기계)’라고 불리기도 했고, 눈을 감을 때면 다우어들로 가득한 배지가 눈앞에 펼쳐지곤 했습니다. Near-isogenic line(NIL), CRISPR, RNAi, reciprocal hemizygosity test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여 각고의 과정 끝에 nta-1이라 이름 붙인 특정 유전자의 서열변이가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전자를 확인한 후에는 여러 방향으로 질문하며 연구를 더 즐겁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 그려두었던 논문의 흐름을 유전자를 찾은 뒤에야 실현할 수 있었고, 마치 흩어져있던 퍼즐의 조각이 맞춰지듯 논문이 정리되어 갔습니다. 프로모터 부분의 서열변이가 glia에서의 발현을 좌우함에 따라 닉테이션이 조절됨을 확인할 수 있었고, 마지막에는 연구의 출발을 함께했던 이대한 박사님과 협업하여 유전체 분석을 시도하였는데, 해당 유전적 변이가 균형 선택(balancing selection)의 영향을 받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 직전까지 논문 마지막 리비전을 진행하며 정신없었는데, 신혼여행에서 귀국 직전에 논문이 수락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던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연구를 시작할 때를 돌이켜보면 시기적절한 도전적인 연구를 시도했었다는 생각도 들고, 반대로 관심사에 맞는 연구주제를 잘 진행해서 연구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기에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논문에서는 특정 세포에서 nta-1 유전자의 발현이 닉테이션을 조절한다는 사실은 확인하였지만 그 세세한 분자적 기작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와 같은 연구들이 축적되고, 분자적 기작에 대한 수수께끼도 풀리게 된다면, 행동의 자연 변이와 그 진화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님의 유전과 발생 실험실에서 박사과정동안 이번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유전과 발생 연구실에서는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서 발생, 신경, 행동, 노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를 진행해왔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채집된 다양한 선충의 유전체 연구, 쥐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기전 연구, 예쁜꼬마선충 다우어의 커넥톰 연구 등 여러 분야와 모델로 확장한 연구도 시도해 왔습니다. 교수님께서 다양한 주제와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으시며, 각자가 원하는 연구를 하도록 장려하시기도 하셔서 구성원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도전적으로 시도하며 성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주제의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험실 내에서 다양한 주제의 연구 과정을 직접 접하며 그 자체로 다양한 정보를 이해하는 훈련이 되기도 하며, 본인의 주제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최신 동향과 지식을 생생히 얻을 수 있었기에 과학자로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이번 연구는 제 학위과정의 대부분을 함께한 주제였는데, 무엇보다 정말 끈기가 필요했다고 생각하고 오랜 기간 포기하지 않고 이를 마칠 수 있었다는 점 자체에 보람과 감사함을 느낍니다. 아마 제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혹은 중간에 포기했다면 한동안은 드러나지 않았을 지식을 알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연구자로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끝맺음의 보람은 연구활동에서 너무나 찰나의 순간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지난 여정을 되돌아봤을 때, 마지막 결실에서 얻는 성취감과 기쁨만을 기다리기보다는 대부분의 시간에 해당하는 과정과 그 경험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힘든 순간도 많았고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는지 고민한 적도 없진 않았지만, 결국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기에 동력을 얻으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질문하고 답하고, 때로는 넘어지고 부딪히며 연구했던 순간들을 보내온 자체가 가장 보람차게 느껴집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먼저, 각자 본인에게 맞는 연구실과 연구 주제를 잘 찾으셔서 즐겁게 나아가시길 응원합니다. 연구자들마다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느꼈는데, 본인의 강점을 잘 살리면서 부족한 부분은 도움을 받아가며 보완한다면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또한, 연구활동을 하는 동안 기술이 학문과 연구의 흐름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체감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유전학 분야에서는 유전자 편집과 시퀀싱 기술의 발전 덕분에 더 다양한 종들에 대한 연구 접근성이 높아졌고 빅데이터의 활용이 눈에 띄게 증가하였습니다. 이처럼 연구활동 중에 자신의 질문에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기술이나 접근법을 접하신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탐구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행동과 신경, 진화라는 테마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고, 앞으로 포스닥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연구에 도전해보고자 합니다. 현재 아내와 함께 뉴욕으로 건너와, 예쁜꼬마선충 행동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연구실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평소 잘 접하지 못했던 연구 주제와 방법론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연구가 잘 풀리지 않을 때라도 항상 저를 물심양면 지지해주시고, 동시에 또 깊은 통찰으로 이끌어주신 이준호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 쌓아두신 실험실 분위기 아래 다른 걱정 없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시는 교수님의 제자로 연구를 하며 연구자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저는 비교적 성격이 무던한 편임에도, 연구가 잘 풀리지 않는 기간에 처음으로 슬럼프라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더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것 못지않게 주변과의 소통도 중요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여러 발상들이 모여 연구에 도움이 된 것은 물론, 비슷한 고민들과 잔잔한 위로들을 나눈 시간들 자체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모든 연구실 구성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사적으로도, 연구에서도 저를 아껴주시고 도움을 주신 이대한 박사님이 계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큰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또 언제나 저를 믿어주는 우리 가족들, 그리고 저와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무한한 행복을 주는 저의 아내 현수에게 깊이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과정들을 겪어오시고 지금 이 순간도 연구에 매진하고 계신 모든 연구자 분들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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