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베이지(beige)지방세포는 매우 재미있는 세포입니다. 백색지방세포와는 확실히 다르고, 갈색지방세포와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세포는 분명 아닙니다. 베이지지방세포의 전구세포가 무엇인지, 분자적 성질은 어떤지, 또 사람에 있는 열생성지방세포가 갈색지방세포인지 베이지지방세포인지에 대해서는 알다가도 모르는 것들이 더 많아보입니다. 베이지지방세포가 백색과 갈색지방세포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최근 기술인 단핵/단세포/공간전사체까지 동원되고 있지만, 여전히 잘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고, 그래서 저에게는 더 흥미롭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수행한 연구도 갈색지방세포와 백색지방세포가 어떤 면에서 다른지, 그리고 어떤 기전으로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밝힌 연구입니다.

사실 이 연구의 시작은 갈색과 베이지지방세포의 차이를 밝히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험실 선배께서 물려주신(?) RNF20 (Ring finger protein 20, E3 ubiquitin ligase)라는 유전자의 역할을 다양한 조직에서 살펴보다가 연구의 흐름을 잡은 것이죠. 제 사수였던 이재호 박사님은 간과 신장암에서 RNF20의 역할을 규명한 후에, 쥐를 남겨주고 가셨습니다. 저는 백색지방조직에서 RNF20의 역할을 밝혀서 논문 하나를 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갈색지방조직에서 RNF20의 역할을 규명하고 RNF20 연구 4부작의 마무리를 지으려 했습니다. 생쥐가 추운 환경에 노출되면 갈색지방조직에서는 빠르게 열을 생성하는데, 갈색지방조직에서 RNF20 단백질 양이 매우 빠르게 감소하는 양상을 관찰했습니다. 마치 RNF20이 열생성을 억제하는 인자처럼 보였죠. 이 생각과 일치하게도 RNF20 결손 생쥐와 갈색지방조직 특이적 RNF20 녹다운 생쥐에서 열생성이 증가하는 양상을 관찰했습니다. 기전적으로 저희는 RNF20이 미토콘드리아 생성에 중요한 전사인자인 GABPA의 분해를 촉진하여 열생성을 억제하는 것을 밝혔습니다.

여기서 논문을 마무리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저 궁금해서 베이지지방세포 생성에 RNF20의 역할을 살펴보았던 것이....... 연구의 재미와 고통을 동시에 주는 일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베이지지방세포는 추위에 오래 (생쥐의 경우 2~3일) 노출되면 피하지방조직 내에서 생성되는 세포입니다. 추위 자극이 오래 지속되면 피하지방조직 내에서 RNF20은 서서히 증가하였습니다. RNF20이 결손되면 베이지지방세포는 덜 생성된 반면, RNF20을 피하지방조직에 과발현하면 더 많이 생성되었습니다. 믿고싶지는 않았지만 이건 분명 두 지방조직에서 RNF20의 역할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재밌긴 했습니다. 분명히 재밌기는 한데, 이 복잡한 현상 저 너머에 있는 분자적 기전을 제대로 밝힐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실 이 논문이 나온 지금도 제가 이 복잡하고 어려운 현상의 1/10이나 밝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도교수님이신 김재범 교수님께서 끝까지 해보라고 지지해주셨고, 다른 교수님 분들과 실험실 선후배분들도 적극적으로 논의해주시고 여러 아이디어들을 제공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알게된 것은 신기하게도 피하지방조직 내에서는 RNF20이 GABPA를 분해하기 보다는 NCoR1의 분해를 촉진함으로써 베이지지방세포 분화에 핵심적인 PPARG의 활성을 적극적으로 촉진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여전히 왜 RNF20의 기질선호도가 두 지방조직에서 다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희가 제안했던 것은 GABPA는 피하지방조직 내에서는 발현이 매우 적고 갈색지방조직에서는 많으니, 이러한 단백질 농도 차이가 RNF20의 기질선호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했었습니다. 이걸 본 리뷰어 중 한 분이 그렇다면 GABPA를 피하지방조직에서 과발현하면 RNF20이 GABPA 분해를 촉진할 것이지 않느냐고 제안하셨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 리뷰어가 시키는 대로 실험을 했는데, 리뷰어가 말한 그대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Western 결과를 얻었던 그 순간이 이 연구를 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저희 연구는 추위 자극에 반응하여 체온을 유지하는 기전 중 하나를 제안합니다. 갈색지방세포는 추위에 대항하는 빠르고 강력한 1차 방어선을 형성합니다. RNF20은 추위 자극 시 빠르게 감소하여 GABPA 축적을 돕고, 이를 통해 미토콘드리아 생성과 열생성을 촉진합니다. 추위 자극이 지속되면 갈색지방조직 내 열생성만으로는 부족하기에 피하지방조직내에서도 열을 생성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RNF20은 발현이 증대되어 NCoR1을 분해함으로써 베이지지방세포의 생성을 자극하게 됩니다. 종합적으로 RNF20는 개체의 체온 유지를 위해 갈색과 베이지지방세포의 활성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했지만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RNF20 단백질 양을 어떻게 조절되는지, RNF20이 다양한 기질을 인식하고 결합하고 분해를 촉진하는 기전은 무엇인지, 왜 이러한 기질특이성이 나타나는지, 더 나아가 갈색지방세포와 베이지지방세포의 특성을 결정하는 분자적 기전은 무엇인지, 논문이 나왔지만 해결한 질문보다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이 훨씬 더 많아보입니다. 제 능력이 닿는대로 이 질문들을 하나하나 풀어보고 싶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김재범교수님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도교수님의 훌륭한 지도와 치열한 랩미팅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들을 많이 논의하고 공유하는 것이 저희 연구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것은 저희 연구실보다 한 주당 랩미팅 시간이 긴 실험실은 없을 것입니다. 덕분에 자신의 연구를 말로 글로 표현하고, 건설적인 비판을 자주 주고 받는 것이 연구에서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저희 연구소 건물 내에는 좋은 현미경 장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연구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현상 너머에 있는 것들을 제가 주체가 되어 밝히는 능동성과 자율성이 있다는 점이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좋은 부분입니다. 제가 풀고 싶은 질문을 해결하는데, 이게 지식의 진보와 인류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진짜 조금이기는 합니다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자부심이고 보람입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실험실 후배들을 보면서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연구를 오래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관성적으로 쉬운 논문만 읽고, 익숙한 실험만 하고 있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후배들이 본인이 풀고자 하는 질문을 위해 새로운 연구기법을 도입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데이터를 바라고, 실험실에서 해보지 않았던 분석을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기특한 감정도 느끼지만, 제 연구유연성이 매우 낮아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학회에 가봐도 저보다 연차가 어린 과정생 친구들이 기발하고 놀라운 연구들을 하는 것들을 보면서도 많은 자극을 받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후배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고 싶어요. 그러니 부디 조급해하지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저보다도 훌륭한 친구들을 항상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고자 합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이전 연구에서 베이지전구세포의 특성 중에 아주 일부분만 밝혀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베이지전구세포의 분자적 특성이나 생성 원리, 분화 기전에 대해서는 규명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현재 활발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흥미로운 결과들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좋은 논문으로 결실을 맺어서 다시 한 번 한빛사 인터뷰도 하고 웨비나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가장 먼저 실험실 식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김재범 교수님의 열정적인 지도가 없었다면 논문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연구의 시작점을 잡아주신 이재호 박사님과 일일히 열거하지 못할만큼 수 많은 선후배 실험실 동료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연구에 큰 도움을 주셨던 많은 교수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도 이 도움을 갚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셨지만, 제가 쿼카라는 브릭에 쿼카라는 필명으로 당신의 논문 동료를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이 논문을 한창 리비전 할 때 였는데, 연재 글을 작성하면서 리비전으로 답답했던 마음에 숨통에 트였었습니다. 연재 기회를 주시고 편집과 업로드를 해주신 브릭 담당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가족분들께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항상 저에게 후회없이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말씀 항상 지키고자 합니다. 이 논문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아프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이제는 아프시지 말고 평안히 지내시기를 바래요. 그리고 저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시는 엄마, 누나, 매형, 조카들과 장인어른, 장모님, 처제에게도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저를 아껴주고, 좋은 연구자로 거듭나고 있는 아내 이소은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