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사람을 포함한 사회성 동물들은 집단을 이뤄 생활하며, 그 안에서 상호 교류하기도 하고 경쟁을 하기도 합니다. 경쟁은 음식, 공간 등 제한된 자원 때문에 발생하고, 그 결과 개체들 사이에 서열이 형성됩니다. 동물이 다른 개체를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쟁심을 느끼는 것 역시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지만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가장 확대된 것이 전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은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 발표된 2024년 수학능력시험 점수 역시 명문대 혹은 의대라는 제한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회적 경쟁과 그에 따른 서열 형성은 최근 사회신경생물학(social neuroscience) 분야에서 주목받는 연구 분야 중 하나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사람 및 영장류의 뇌영상 연구들을 통해 이 행동에 관여하는 뇌 영역들이 밝혀지고 있으며 (Karafin et al., J Cogn Neurosci (2004); Marsh et al., J Cogn Neurosci (2009); Zink et al., Neuron (2008)), 설치류 실험동물 모델을 이용한 세부 기전 연구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Dwortz et al., Philos Trans R Soc B (2022); Wang et al., Trends Neurosci (2014); Zhou et al., Curr Opin Neurosci (2018)). 제 연구는 그 흐름 중의 하나라고 소개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전전두엽(medial prefrontal cortex, mPFC)이 사회적 서열 형성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뇌 영역이라고 알려진 뒤, 전전두엽의 시냅스 기능 및 신경세포 활성을 제어하면 사회적 서열이 바뀐다는 두 편의 논문이 제 연구의 시발점입니다 (Wang et al., Science (2011); Zhou et al., Science (2017)). 하지만 전전두엽의 모든 신경세포들이 사회적 서열 행동에 관여하는지, 그리고 승리와 패배 모두 이들의 작용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이 부분을 밝히는 것을 저의 박사후 연구 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 논문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한 튜브 테스트(투명한 아크릴 튜브의 양 쪽에 생쥐를 넣고 그 안에서 서로 밀고 뒷걸음질치는 등의 경쟁을 통한 승패를 확인하는 행동실험)를 이용하여 생쥐들의 서열을 확인하고 이런 저런 조작을 가하는 실험들을 하던 중에, 튜브 테스트에서 상대방 쥐를 밀 때(이기려는 행동)와 뒷걸음질칠 때(지려는 행동) 전전두엽 내 서로 다른 신경세포들이 활성된다는 논문이 발표되어 약간 김이 빠졌습니다 (Kingsbury et al., Cell (2019)). 하지만 이 논문 역시 이들의 분자 및 해부학적 정체를 밝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저는 이 부분을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경쟁에서 승리한 쥐들은 중격의지핵(nucleus accumbens, NAc)으로 출력을 보내는 전전두엽 신경세포들(mPFC-NAc)이 많이 활성화되는데 반해, 경쟁에서 패배한 쥐들은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 VTA)으로 출력을 보내는 전전두엽 신경세포들(mPFC-VTA)이 많이 활성화된다는 해부학적 정체를 확인한 뒤, 이 두 전전두엽 신경회로망을 광유전학적으로 자극했을 때 반대 방향으로 사회적 서열이 바뀌는 결과를 확인했을 때의 감동은 몇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 연구의 다른 한 축은 사회적 서열 형성에 관여하는 전전두엽 신경회로망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유전자들을 찾는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사회적 서열 형성에 관여하는 전전두엽 신경회로망을 밝히는 것’과 ‘사회적 서열 형성에 관여하는 전전두엽 내 유전자를 찾는 것’이 독립적인 연구 주제였습니다만, 다행이도 두 주제의 접점을 찾을 수 있어서 하나의 연구로 엮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을 진행해주신 서울의대 최무림 교수님과 전형석 선생님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회적 서열 형성에 관여하는 전전두엽의 특정 신경회로망 내 유전자 후보군들이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을 통해 확인한 뒤, 이를 검증하기 위해 단일 신경세포의 세포질(cytosol)을 뽑아 정량 PCR 실험을 수행하여 결과를 얻었습니다만, 이를 다른 방법(fluorescence in situ hybridization (FISH))으로 검증하라는 리뷰어의 요청이 처음에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이미 정량 결과를 확인했는데 왜 다른 방법으로 또 검증을 하라는거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논문이 풍성해졌기 때문에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중 하나였던 FISH 실험을 리비전 기간 동안 세팅하여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것이 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동물행동 실험에서 출발해 고배율 현미경 이미징을 통해 신경세포 내 특정 puncta의 수를 측정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신경과학 연구의 모토인 ‘from genes to behavior’를 미세 수준인 유전자(micro-scale) – 이를 연결하는 신경회로(meso-scale) – 최종 결과물인 행동(macro-scale)의 다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여러 모로 뜻깊고 보람찬 일이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연구의 대부분은 한국뇌연구원 정서•인지질환 연구그룹 구자욱 박사님 연구실에서 진행되었으며,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은 서울의대 최무림 교수님 연구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한국뇌연구원은 ‘뇌 분야에 관한 연구 및 그 이용과 지원에 관한 기능을 수행하고 뇌 분야에서 학계, 연구기관 및 산업계 간의 유기적 협조체제를 유지·발전’을 목적으로 대구에 설립된 연구소입니다. 이 글을 2023년 12월 15일에 작성하고 있는데 어제가 설립 12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연구본부 내 8개의 연구그룹이 있고, 연구전략실의 한국뇌은행, 첨단뇌연구장비센터, 실험동물센터에서 연구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최첨단의 연구시설과 장비, 그리고 다양한 연구 지원을 통해 풍족한 연구 환경에서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소속된 구자욱 박사님 연구실(행동신경후성유전학 연구실 (Behavioral Neuroepigenetics Lab, BNL))은 다양한 정서, 인지 행동 및 신경정신질환에 대한 신경회로 및 분자 기전을 밝히는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 주제로는 사회성 행동, 스트레스 및 우울증, 약물 중독, 각종 신경정신질환 등이 있으며, 광유전학(optogenetics), 화학유전학(chemogenetics) 등의 신경세포 및 회로 활성 조절, 양광자 현미경(two-photon microscope), 초소형현미경(miniscope), 섬유광도법(fiber photometry), 생체 내 및 뇌절편 전기생리학(in vivo or ex vivo electrophysiology) 등의 신경세포 및 회로 활성 측정, 뇌조직 수준 또는 단일세포 수준 전사체, 후성유전체 분석과 같은 다양한 최신의 연구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저와 연구는 애증 관계 같습니다. 실험을 계획하고 진행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희열을 느끼지만, 그 과정이 때로는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행동실험을 하다 보면 주말과 휴일도 없이 실험동물실에서 일과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게 되는데,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목과 허리에 통증을 달고 살고 비염 때문에 코감기약이 필수품입니다. 연구 특성 상 생쥐의 뇌에 바이러스 벡터나 약물을 주입하거나 광섬유를 삽입하는 등의 수술을 많이 하는데, 제 연구는 하나의 n 수를 얻기 위해 두 마리 또는 네 마리가 필요해 그 만큼 수술을 훨씬 많이 해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연구를 계속 하는 이유는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의 희열과 때로는 우연히 얻게 되는 흥미로운 발견들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것들이 질병의 원인 기전을 밝혀 치료에 적용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솔직히 제 연구가 이런 거창한 목표에 크게 기여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원 때 전기생리학을 중심으로 한 시냅스 기능 연구를 주로 하였습니다. 박사과정을 하는 도중 광유전학을 이용한 신경회로 기능 연구에 매료되어 ‘시냅스 = 회로’라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시냅스 생리학 지식을 행동 분야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박사후 연구 주제를 행동에 대한 신경회로 기전 연구로 정하게 되었는데, 무식해서 용감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 재학 중에는 동물행동실험을 포함한 동물을 많이 다루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던 탓에,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땐 미쳐 알지 못했습니다. 포닥을 시작하면서 생쥐들과 친해지고 훈련을 시키는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배우는 것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돌이켜보면 생쥐들이 도망가기도 하고 여러 차례 물리기도 하는 등 고생 꽤나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백그라운드가 시냅스 생리학인 점은 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경회로를 ‘회로’ 관점에서 단순하게 접근하면 On & Off로 생각하기 쉬운데, 생명 현상이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할 만큼의 사람은 되지 못합니다. 다만 제가 잘 하지 못하거나 종종 놓쳐서 아쉬운 부분들을 말씀드리자면, 건강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포함됩니다. 공부 및 연구와 관련된 부분은 이 글을 읽는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이 저보다 훨씬 잘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이 논문을 준비하면서 앞으로는 사회적 서열 연구는 그만 하고 다른 더 좋은 연구 주제를 빨리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튜브 테스르를 이용한 사회적 서열 연구가 흥미로운 주제이고 연구 방법도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쉽사리 시작하지만, 연구를 하면 할수록 물리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운 점들이 있기도 하고 연구를 수행하면서 새롭게 갖게 된 흥미로운 질문들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후속 연구들을 계획하고 일부는 진행 중입니다. 이 결과들을 통해 다시금 ‘한빛사’에 소개되길 바랍니다.
이 외에도 사회성 행동을 포함한 다양한 행동의 신경회로망 기전에 관심이 있어 앞으로 연구 주제를 더 확장하고 싶고, 연구에 필요한 새로운 방법론들을 배워 연구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한빛사에 소개되는 것은 두 번째인데, 한빛사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개인적으로 한 번은 꼭 하고 싶었는데, 이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한빛사 인터뷰를 통해 제 연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연구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저희 포스닥 멘토이신 구자욱 박사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정말 오래 기다리주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구자욱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에 많은 도움을 주신 서울의대 최무림 교수님과 전형석 선생님, 분석 초기에 많은 도움을 주신 강병수 선생님께도 다시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그리고 이 연구에 도움을 주신 정세진 선생님, 김엄지 선생님, 김정섭 박사님, 정윤하 박사님께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에 많은 도움과 아이디어를 주신 한국뇌연구원 행동신경후성유전학 연구실 구성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으로 제가 신경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던 박사학위 지도교수님이신 서울치대 최세영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시냅스네트워크 실험실 선후배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전기생리학 사수이면서 인생 멘토이신 DGIST 서진수 교수님, 가천의대 김용호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훌륭한 연구 동료인 서울대 노경철 박사, 유펜 최규현 박사, 식약처 임형섭 박사에게도 큰 감사를 전합니다. 추가로 감사드릴 분들이 생각나면 직접 감사를 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저를 믿어주시는 가족들(아버지, 어머니, 누나)께 감사합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내년 연구비 삭감과 관련하여 많은 연구자 분들이 불안감을 느끼시리라 생각됩니다.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고 함께 파이팅 하면서 연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연구를 이어온 우리들이지 않겠습니까? 모든 연구자 분들 파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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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회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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