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약 5억 년 전 식물은 큐티클이라는 불투과성 막으로 표면을 전부 덮음으로써 수중 환경과 상반되는 육상의 건조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큐티클은 광합성에 필요한 기체 교환까지 막는 문제가 있었고, 식물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와 외부를 잇는 작은 통로인 기공을 고안합니다. 한 쌍의 공변세포로 이루어져 있는 기공은 기체 교환뿐 아니라 체온 조절과 물의 순환에 중요한 증산 작용을 매개하는 진화적으로 굉장히 성공적인 기관이어서 현존하는 거의 모든 식물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뭄과 같은 상황에서는 기공을 통해 다량의 수분 유출이 초래되며, 병원체에게는 내부로 통하는 침입 통로로 악용되는 구조적 한계점을 지닙니다. 따라서 식물은 가뭄과 병원체, 이산화탄소, 오존 등 다양한 환경 요소에 반응하여 기공을 닫기 위해 여러 조절 장치들을 진화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이산화탄소와 온도의 급증이 기공의 정교한 조절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공의 조절 과정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기공의 등장과 함께 진화해 온 음이온 채널인 SLAC1 (SLow Anion Channel-associated 1)은 기공을 조절하는 마스터 스위치로 chloride (Cl-)와 nitrate (NO3-)의 유출을 통해 공변세포의 탈분극을 일으킴으로써 기공의 폐쇄를 유도합니다. SLAC1의 첫 발견 후, 지난 15년 간 많은 선행 연구를 통해 환경적·비환경적 스트레스로 유도되는 여러 인산화효소가 SLAC1의 다중 부위 인산화를 매개함으로써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다중 부위 인산화는 다양한 스트레스 신호를 종합하여 기공의 폐쇄를 결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현상이지만 어떻게 채널의 활성화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저희 연구 이전에는 비활성화 상태의 bacterial SLAC1 homologue 혹은 plant SLAC1의 구조만이 규명되었고, 인산화에 의한 채널 활성화에 대해 억제 이완(Inhibition release) 가설과 결합 활성화(Binding activation) 가설이 제기된 바 있었으나 제한적인 설명만이 가능할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다중 부위 인산화에 의한 SLAC1 활성화 기작을 밝히기 위해 애기장대 SLAC1의 활성화 상태와 비활성화 상태 구조를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을 통해 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두 선행 가설을 모두 수용 가능한, 억제 이완-결합 활성화라는 두 단계로 이어지는 활성화 과정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연구는 intracellular domain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산화 부위가 활성화 과정의 두 단계에 서로 다르게 적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SLAC1이 어떻게 다양한 스트레스를 종합하여 기공의 정교한 조절을 가능케 하는지 여러 후속 연구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연구를 시작하던 시점에서 저희 연구실은 막단백질에 대한 연구 경험이 전혀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식물의 스트레스 신호 전달 체계에 대해 연구하다가 SLAC1에 매료되어 무작정 막단백질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기존의 연구방법과 많이 다르고, 조언을 구하기 쉽지 않아 여러 부분에서 우여곡절을 거듭한 것 같습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쳐 그 당시 알려지지 않은 plant SLAC1의 비활성화 구조가 발표되면서 저희 연구를 더 보강해야만 했던 순간들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험들을 통해 연구자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본 연구는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Lab. of Biomolecular Architecture에서 이상호 교수님의 지도 하에 진행하였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현재 여러 구조생물학적 기법(X-ray crystallography, cryo-EM, SAXS)을 활용하여 단백질을 비롯한 생체분자(biomolecule)들이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여 생명체라는 거대한 설계(architecture)를 이루는지 다양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생명체가 생겨난 이래 단순한 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시작된 생명현상은 마침내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고로 밝혀진 생체분자의 구조들을 통해 복잡한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가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구조가 미지에 남아있는 와중 조금이나마 이러한 일에 기여했다는 점에 보람을 느낍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생체분자들을 직접 관찰하고 작동원리를 살피는 구조생물학이라는 분야는 생명현상의 근원을 실제로 들여다보고 탐구하는 순수학문이자 생명현상을 조절하기 위한 응용의 시작이기에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AlphaFold2와 RoseTTAFold 등 진화적 정보를 기반으로 한 구조 예측 방법들이 단백질의 구조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어 이 분야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하는 후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 구조생물학의 많은 연구들은 단순한 삼차원 구조가 아니라 생체분자들의 시간과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생체분자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에 관한 시간적인 부분과 이들이 위치한 생체환경에 따라 어떤 부분이 달라지는지 보는 공간적인 부분을 연구하는데 적합한 구조생물학적 분석기법들이 개발되고 있고, 다양한 성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정확히 예측된 구조들은 오히려 저희가 연구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아직 발전할 여지가 많은 분야이기에 망설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최근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논문이 게재되어 시간적 여유가 조금 생긴 가운데 남은 연구들을 마무리하며, 박사 후 연구 과정에서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모든 연구 과정을 같이 고민하며 시도 때도 없는 논의를 즐겁게 받아 주신 지도 교수님과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무너지지 않게 지지해준 저희 연구실 동료들,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신 한국뇌연구원의 임현호 박사님과 정현성 연구원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전성훈 박사님 덕분에 무사히 연구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항상 저를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Cryo-EM
#Ion channel
#Stomatal reg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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