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제가 연구하는 곤충계통분류학에서는 한 연구당 수십~수백 종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합니다. 그래서 “연구 목적에 맞는 여러 종의 샘플을 확보하는 일”은 저희 분야에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샘플의 상태”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계통분류연구가 형태적인 특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더듬이는 몇 마디로 되어있나?”, “더듬이 두번째 마디는 세번째 마디보다 긴가?” 처럼요. 따라서 400년이 지난 먼지 쌓인 표본이건, 포르말린에 담긴 표본이건 상관없이 연구할 수 있었죠. 최근 들어서는 DNA서열들이 계통분류학에 적용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NGS data를 기반으로 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샘플의 상태가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1) 다양한 샘플을 2) DNA가 잘 보존된 상태로 채집/보관해야하는 것은 곤충계통분류학자의 숙명이 되었고, 앞으로는 더욱 중요해 질 것입니다.
“윈도우 트랩”은 다양한 곤충을 채집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아마 교외지역 창틀에서 많은 벌레들이 죽어있는 것을 보신적이 있을겁니다. 정확히 그 구조를 숲 속에 설치하는 트랩입니다. 곤충이 투명한 판에 부딪혀서 아래에 있는 채집용액으로 떨어지는 것이죠(그림 1-2). 보통 1주-1개월정도의 텀을 두고 수거하는데 수백~수천마리의 곤충들이 채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트랩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창틀(곤충이 채집되는 부분)에 물이 찬다는 것이죠. 비와 이슬 때문인데, 이는 특히 곤충이 가장 많은 열대지역에서 가장 심각합니다. 물에 빠져 죽은 곤충은 엄청나게 빠르게 상해버립니다.
가장 효율적인 채집방법인데, 이 방법으로 채집한 샘플을 연구에 쓰지 못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논문은 트랩의 구조를 살짝 바꿈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물은 따로 빠지고, 곤충은 100%순도의 보존용액으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이죠(그림3). 결과는 눈으로 봐도 매우 좋았습니다. (그림4) 이를 이용해 기존 트랩보다 눈에 띄게 높은 DNA 퀄리티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COI이라는 loci의 PCR성공률과 NGS QC에 주로 쓰이는 DIN으로 이를 확인했습니다(그림5).
이 트랩은 특히 비가 많이 오는 열대지역 곤충들의 DNA서열 확보에 엄청난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열대지역 곤충들의 유전정보는 상대적으로 훨씬 덜 알려져있는만큼, 이 트랩으로 샘플링하면 더 많은 고품질의 곤충 DNA데이터가 쌓이게 될 것입니다. 트랩의 이름은 논문의 공저자인 Alfried Vogler선생님이 지었는데, “물을 막아주는 WET 트랩”이라는 아재개그적 이름이 개인적으로 아주아주 마음에 듭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연구는 제가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대학교 농생대 곤충학전공 이승환 교수님 연구실에서 시작했습니다. 저희 랩은 필드에서 곤충을 직접 채집/관찰하는 것을 연구의 기본으로 하는만큼 자연에서 생물을 마주하며 아이디어를 얻을 기회가 아주 많은 실험실입니다. 구성원들은 탄탄한 분류학 지식을 기반으로 자기 입맛에 따라 분자계통학, 개체군유전학 같은 여러 분야로 연구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중국과학원(Chinese Academy of Sciences, 이하 CAS)의 동물계통진화학 중점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CAS는 단연 중국 최고의 연구기관이고요, 제가 경험한 바, CAS의 가장 큰 장점은 엄청난 규모의 펀딩, 넉넉한 연구 인원, 높은 자유도입니다. 연구환경은 당연히 랩바랩이겠으나, 저 같은 경우 원하는 연구를 아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지원받고 있습니다 (谢谢大哥….). 저희 랩에만 석박사과정생이 20명이 넘어서 여러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있고요, 출퇴근 및 근무시간도 매우 유연합니다. CAS만의 장점은 아니지만, 중국의 시퀀싱 비용이 한국의 절반 미만이라는 것도 아주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곧 영국 임페리얼 컬리지 런던으로 이직하는데요, CAS는 이직 후에도, 한국에 자리잡은 뒤에도 매우 긴밀한 공조를 이어나가고 싶은 기관입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사실 이 트랩 연구는 결과가 아주 잘 나온 사이드 프로젝트이구요, 본업은 당연히 계통진화학 그 자체입니다. 요즘은 “하늘소들의 육아와 알 크기의 상관진화”, “풍뎅이의 무기(weapon) 진화” “하늘소의 기주식물 진화와 계통지리” 같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생물학적 근거를 복합적으로 사용해서 거시적인 진화사를 추론하는 것은 정말 소름돋을만큼 재미있는 일입니다. 연구에서 얻는 자부심이나 보람도 없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는 재미가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곤충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많이 좋아했는데, 아직까지도 재밌어서 너무 다행이고, 나름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매번 드는 생각인데요, “아니, 이렇게 재미있는 걸 하는데 돈까지 준다고?”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생물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계통분류학 연구가 가장 말초적인 즐거움을 줄 분야 중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생물들을 찾아 열대우림을 누비고, 책에서만 보던 생물을 자연 속에서 직접 마주하는 것은 너무너무너무너무 짜릿하고 낭만적인 일이죠. 물론 복잡한 실험과 귀찮은 글쓰기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건 과학자라면 분야와 관련없이 누구나 응당 맞서야 하는 문제이니까요(….)
진학(특히 유학)과 관련해서는 국가, 지역, 학교보다는 “어떤 연구를 하는 랩인가” 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계통분류학은 수요와 공급이 둘다 매우 적은 분야이기 때문에,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진학시기에 펀딩, 학교의 명성, 대상 생물 같은 여러 요소를 동시에 모두 만족하는 자리는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아내셔야 현명한 진학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계통진화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응당 해야하는 연구들(신종, 미기록종 발굴, 분자계통학 등)을 잘 해나갈 생각입니다. 여기에 더해, 저는 요즘 “MicroCT를 이용한 근육 구조와 행동의 상관진화 연구”, “Eye Tracking을 이용한 곤충분류학자의 곤충 인지 연구” 같이 곤충계통분류학에 다른 분야들을 융합한 연구들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야의 고수들과 협업하는 것이 재미와 성과 두 가지 면에서 모두 성공적이라,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연구를 계속 하고 싶습니다.
또 요즘 미디어를 통해 외래성 침입 곤충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뉴스를 많이 보셨을텐데요. 사실 제가 이 분야도 관심이 아주 많아서 노랑알락하늘소, 유리알락하늘소, 벌집꼬마밑빠진벌레 같은 유명한 침입성 해충들이 제 논문으로 인해 밝혀진 녀석들입니다. 한반도 아열대화와 국제무역 증가로 외래해충 침입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침입해충학 분야에도 좀 더 힘을 쓸 생각입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지숙님께는 특히 더 감사드립니다.
#생물다양성
# 채집방법
# 곤충계통분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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