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뇌과학은 신경생물학, 인지과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의 융복합적 성격이 강한 분야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마음의 특정 기능(의식, 지각, 운동, 기억 등)이 발현되는 원리를 규명하는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동시에, 뇌의 다양한 구조물들의 기능을 회로의 관점에서 규명하는 시스템신경과학(systems neuroscience)적 접근도 동시에 사용하며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KIST 최지현 박사님 연구실에서 저희가 주로 사용했던 방법론은 생쥐의 뇌전도(EEG, electroencephalography) 였고, 학위과정 동안 저는 뇌에서 발생한 뇌파(brain rhythm 또는 neural oscillations)가 인지과정의 발현과 뉴런을 통한 정보처리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규명하고자 하였습니다.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의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은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정보처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려준다는 기초과학으로서의 가치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분야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식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뇌에 있는 특정 회로에서 발생하는 특정 신호가 마음의 어떤 절차를 표상하는지 알아내 ‘마음 읽기(mind reading 또는 brain decoding)’에 활용하기도 하고, 특정 신경활동을 인위적으로 생성해내 주의력/기억력을 증진시킨다거나 기분을 제어하고, 또는 더 나아가서 성격까지도 바꿀 수 있는 ‘마음 쓰기(mind writing)’에도 활용할 수 있겠죠.
많은 신경생물학자들은 이온채널, 단일세포활동 등 미시적(microscopic) 기전을 밝혀 뇌기능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뇌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보다 큰 중/거시적(meso-/macroscopic) 기전에 주목합니다. 이는 뇌파 연구가 현행 뇌자극 기술들이 직접적 타겟할 수 있는 마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마음 쓰기 분야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배경이 됩니다. 다른 한 편, 많은 심리학자/인지과학자들은 특정 뇌 영역의 활성화를 추론해 관찰할 수 있는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뇌의 어떤 영역에서 표상되는 정보가 어떤 정보처리를 반영하는지 이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뇌파는 단일신경세포들의 발화(firing)와의 연관성이 보다 직접적이기 때문에, 미시적 기전에 대한 설명력이 훨씬 높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뇌파에 대한 연구가 미시적 방법론들이 많이 사용되는 신경생물학과 거시적 방법론들이 많이 사용되는 (인지)심리학 사이에서 두 분야를 잇는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신경과학/인지과학 전체를 놓고 보면 뇌파 연구는 아직 마이너한 분야이지만, 그 가치와 응용방법이 명확해서 기술도 시장도 점점 더 커질 전망입니다. Job opening도 더 많아지면 좋겠네요!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 성북구 소재의 KIST 뇌과학연구소 최지현 박사님 연구실(https://www.jeelab.net)에서 대부분의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최지현 박사님의 성함을 딴 JEELAB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데, JEELAB은 생쥐를 이용한 뇌파 연구로는 독보적인 입지를 보유한 연구실입니다. 저는 이 연구실에서 뇌가 정보처리를 하는 과정에 대한 직관적 이해를 키울 수 있었고, 최지현 박사님께서 가지신 측정/분석방법론에 대한 선구자적 통찰력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연구실에서 자체개발한 고해상도뇌파전극(hdEEG), 에지컴퓨팅 기반의 무선헤드스테이지(CBRAIN)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석학들도 군침을 흘리는 앞선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물리학/심리학/생물학 등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있어 창의적인 연구환경이 자연스레 조성되어 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본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학문후속세대 과제 <설명가능한 뇌자극 기법을 통한 방어행동 제어 연구>의 진행 과정에서 나온 첫 논문입니다. 이 과제의 제목은 제가 생각하는 뇌파 연구의 진정한 가치(i.e., 설명가능성)를 함축하고 있는데, 저는 뇌파를 통해 뇌 정보처리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뇌파의 신경회로 내에서의 역할 규명을 통해 뇌 정보처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는 저희 연구실이 국내 최고, 더 나아가서는 해외 최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라는 자부심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저 뿐 아니라 JEELAB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일 것인데, 이 자부심은 제가(그리고 저희가) 늘 즐겁게 연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과학자의 참된 덕목에 대한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다른 곳에 많을테니 여기서는 생략하고 싶습니다(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조금 파격적일 수 있겠지만, 저는 21세기 연구자 역할의 본질은 컨텐츠 크리에이터적인 측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연구질문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 본인의 연구가 중요한 이유를 타인들에게 납득시키는 능력, 그리고 효과적인 writing/presentation으로 투자자/협업자들을 매료시키는 능력이야말로 연구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핵심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아직 저는 부족하지만요). 이 분야로 들어와 고군분투하는 후배들에게는, 내가 제공하는 연구 서비스가 어떤 고객의 어떤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과학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나 기본적인 태도, 또 각 분야 기초지식과 수학/코딩/자료분석 능력 등 실무적인 능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기꾼에 지나지 않겠지만요.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이 논문이 나온 2023년 9월, 저는 미국 MIT의 Earl K. Miller 연구실(https://ekmillerlab.mit.edu/)로 이직하였습니다. 여태까지는 쥐의 뇌에서 뇌파의 역할을 연구했다면, 앞으로는 원숭이의 뇌에서 비슷한 연구를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또, 스스로 설정해뒀던 기초분야로서의 한계를 조금씩 허물고 응용분야 연구자로서의 역량도 함께 갖춰나갈 계획입니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뇌파를 측정해 뇌 정보처리의 비밀을 밝히면서도, 뇌자극을 통해 뇌파를 바꾸어 원숭이의(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BCI 기술을 개발하여 기초/응용 양 분야에서 뇌파 연구에 대한 제 열정을 쏟고 싶습니다.
지금은 뇌파에 집중하고 있지만, 학자로서 저의 최종적인 목표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현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입니다. 학창시절 경영학/신학 등을 복수전공하며 깨달은 것은,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고 미래에 대해 정확히 예측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특정 패러다임에서 그 예측은 인격신과 초월적인 힘의 형태로 성립하기도 했고, 보다 현대의 패러다임에서는 과학기술의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 과학 등의 인간현상은 인간이 가진 인지구조(e.g., 특정 형태의 심상, 언어, 물리 규칙에 대한 이해 등)에서 기인하는데, 학자로서 제 궁극적인 목표는 이 인간현상들의 기저에 있는 인지체계의 특성과 기능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인지체계의 구성요소들을 뇌과학적 요소로 환원시켜 이해하고, 그 작동 원리를 모든 ‘인간 현상’이라는 큰 틀에서 탐구해 나가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한빛사에 제 연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한빛사에 소개될 좋은 논문들 팡팡 많이 많이 쓰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JEELAB에서 저의 멘토가 되어주신 최지현 박사님, 그리고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선후배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더불어, 학위과정과 논문 작성에 아낌없는 도움을 주신 은사님들; 연세대학교 김민식 교수님, KAIST 정용 교수님, IBS 신희섭 박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결코 짧지 않았던 학위과정 기간(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를 앞으로의 유학 기간),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에게도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하겠습니다.
#뇌파
# EEG
# 인지신경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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