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저는 사람의 생활 방식이나 감염, 혹은 질병 같은 외부 환경이 일으킨 세포 단위의 후성유전학적인 변화가 사람의 면역 반응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1900년대부터 BCG 접종 관련 역학조사에서 BCG 접종이 결핵과는 무관한 감염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줄인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2010년대부터는 단핵구, 대식세포, 자연살해세포 등의 선천면역세포들이 과거의 면역 반응에 따라 세포가 재설정되어 이후에 같거나 다른 자극원에 대해 더 크거나 약화된 면역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보여졌습니다. 이는 세포의 대사 변화와 면역반응과 관련된 유전자의 히스톤 변형, DNA 메틸화, lncRNA, 염색질 접근성 변화 등의 후성유전학적 메커니즘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결과와 현상을 선천면역계도 적응성면역계처럼 과거 면역 반응을 "기억"하는 개념으로 해석하여, 현재는 선천 면역 기억(innate immune memory), 후성유전학적 면역 기억(epigenetic immune memory), 혹은 Mihai Netea 교수를 중심으로 한 훈련 면역(Trained Immunity) 등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는 조혈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로 확장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역학 연구와 동물실험에서 이러한 현상이 수개월 또는 1년 이상 지속될 수 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선천면역계를 구성하는 호중구, 단핵구, 그리고 자연살해 세포들은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어 몇 주 내외로 제한된 기간 동안 존재합니다. 이로 인해 조혈줄기세포의 지속적인 생성이 강조되었고, 2018년에는 BCG, 베타글루칸, 고지방 식단 등의 면역 자극이 쥐의 골수에서 장기적인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유발하며 조혈줄기세포의 기능과 단핵구의 면역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이 분야는 다양한 면역 자극에 의한 선천면역 기억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억이 감염이나 암에 대한 저항성을 향상시키거나 면역 관련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더 연구가 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는 박사과정 프로젝트로 유전적 소인이 밝혀지지 않은 소아 염증 질환의 발병과 재발을 조혈줄기세포의 후성유전학적 변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환자의 골수 채취 없이, 혈액에서 극소량으로 존재하는 CD34 발현 조혈줄기세포를 ATAC-seq을 활용하여 염색질 접근성을 조사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연구가 궤도에 오르려던 시점에 팬데믹이 발생하여 뉴욕시가 폐쇄되며 모든 프로젝트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중증 COVID-19 환자들이 염증 반응을 보이는 것을 관찰하였고, 이로부터 오는 장기적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더불어 미국에서 처음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 전에 신속하게 COVID-19 회복 환자의 혈액 샘플을 수집함으로써 데이터 분석 시 COVID-19 백신의 영향을 배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단일 세포로부터 전사체와 염색질 접근성 정보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연구 플랫폼인 10X Multiome이 출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 ATAC-seq를 수행할 때보다 염색질 접근성을 전사 조절과 더 밀접하게 연관지어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연구는 중증 COVID-19의 중요한 마커 중 하나인 IL-6이 장기적 회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환자 데이터와 동물 실험을 통해 입증하였습니다. 환자 데이터의 분산이 크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는 요소를 하나하나 비교하다 우연히 IL-6R 저해제인 Tocilizumab의 투여 여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단 1회의 투여가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과, 샘플 크기를 고려하여 처음에는 결과를 의심했지만, 동물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종합적으로, 저희 연구는 중증 COVID-19이 환자의 조혈줄기세포에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유발하며, 이 변화가 조혈줄기세포의 기능과 분화된 단핵구의 면역 반응에 영향을 미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급성 감염 도중 IL-6 신호 전달을 억제하여 감소시킬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COVID-19 유래의 선천면역 기억 메커니즘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COVID-19의 장기적 영향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중증 환자, 회복 환자 및 후유증 환자들의 치료 방법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혈액에서 조혈줄기세포의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관찰하는 방법이 선천면역기억을 연구하는 중요한 방법론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있는 와일 코넬 의과대학은 뉴욕 맨해튼 어퍼 이스트에, 뉴욕장로병원의 한 축인 와일 코넬 메디컬 센터 병원과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좁은 길 하나를 두고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와 락펠러 대학을 마주보며 Tri-I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기관들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다양한 연구 자원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작은 지역 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세미나에 접근할 수 있어서 연구의 아이디어를 얻거나,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만들어가기에 이상적인 환경입니다. 연구소 동쪽으로는 아름다운 강이 보이고, 서쪽으로 잠시 걸으면 센트럴파크가 나와서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틔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뉴욕시는 이색적이고 다양한 음식, 미술, 음악 등의 문화생활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뉴욕에서의 연구생활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이 연구는 저자 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듯이 많은 연구자들과의 협력이 필요했습니다. 환자 정보와 샘플의 관리, 데이터의 생산과 분석, 그리고 동물 실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팀 내에서 큰 책임을 느끼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연구하는 방법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연구는 COVID-19와 관련되어 있어, 출판 전후로 대외적으로 소개되며 일반 대중의 반응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연구 내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섣부르게 COVID-19의 후유증이나 백신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과학자의 언어와 대중과의 소통에 얼마나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학생들은 대학원 유학을 나오면서 훌륭한 커뮤니티, 연구 시설, 연구 문화, 높은 삶의 질 등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대체로 사실이지만, 제 경우에는 이런 것들을 완전히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야 할 부분들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질문을 잘 못했습니다. 서툰 영어 실력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지식의 부족함이 드러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생성해야만 연구의 방향성이 명확해지고, 연구의 돌파구를 떠올리고, 연구의 빈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질문을 나누는 것을 통해 연구자들끼리의 친밀감이 증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유학 생활에서 언어는 큰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 것은 문화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언어가 연구에 지장을 주지 않더라도, 동료들과 공유하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는다면, 스몰톡이나 실험실 밖에서 과학과는 무관한 대화를 통해 관계를 확장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되면 큰 커뮤니티에 있더라도 실제로 속한 작은 커뮤니티는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구를 즐기는 동시에 연구 이외의 삶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경험상 유학 생활 동안 많은 연구자들을 보면, 연구 시간과 성과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꾸준한 운동과 일상에서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며 자신의 연구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는 것이 연구의 장기 질주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저처럼 가정이 있다면 연구와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앞으로 메모리얼 슬로안 케이터링의 Rachel Niec 실험실에서 연구를 이어가게 될 예정입니다. (현재 포닥 모집 중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암 환자들이 치료 중 겪게 되는 염증성 질환의 발병 기작을 연구하게 됩니다. 제가 기존에 수행하던 혈액 단일세포 분석에 조직 내의 공간 전사체 및 후성유전체 데이터 분석을 통합하여 염증성 질환의 발병 기작을 체계적으로 분석해보려 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제가 좋아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지속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먼저,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신뢰하고 맡겨주시고 어려운 순간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신 지도 교수님인 Steven Josefowicz에게 감사드리며, 여러 실험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 실험실 동료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미국 유학으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신 건국대학교 천세철 교수님과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이정원 교수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해외 생활을 하며 부모님은 항상 물질적,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도 제 선택을 존중해주시고 지원해주셔서 매우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또한, 제 가족은 뒷바라지가 아니라 저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아내와 효림이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남편과 아빠로 거듭나겠습니다.
#COVID-19
# 선천면역기억
# 후성유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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