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저희는 이전에 발표했던 논문에 이어서 생쥐배아줄기세포를 모델로 대안적인 텔로미어 유지기전(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 ALT)을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ALT는 15% 정도의 인간 암에서 텔로미어 유지를 담당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세포가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하는 능력 없이 계속 분열하게 되면 세포 주기의 정지 상태인 세포 노화에 들어가거나, 세포자연사(apoptosis)에 이르게 됩니다. 암세포는 무한히 분열하기 위해 텔로미어 길이 유지 기전을 획득해야만 하는데, 크게 텔로머레이즈와 ALT 둘 중의 하나의 활성화에 의존하게 됩니다. 암세포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개체가 텔로머레이즈를 사용하지 않고 텔로미어를 유지하는 종도 있는데, 이는 정의상 ALT로 텔로미어가 유지되고 있는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논문에서는 두 가지 유형의 ALT를 multi-omics 기법으로 비교하는데 집중했습니다. 1형 ALT는 텔로미어가 원래 가지는 단순 반복 서열이 아닌 다른 서열(생쥐배아줄기세포의 경우에는 mouse template for ALT를 줄여서 mTALT로 명명)을 가지는 경우이고, 2형 ALT는 여전히 단순 반복 서열로 텔로미어가 유지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저희는 두 가지 유형의 ALT 라인들에 대해 whole genome sequencing, RNA sequencing, quantitative proteomics, ATAC sequencing을 적용해서 어떠한 특징들이 두 유형을 구분하는지 찾고자 했습니다.
우선 proteomics와 RNA-seq 분석을 통해 어떤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의 변화가 각 ALT 유형을 대표하는지 살펴보았을 때, 유형 1 ALT는 염색질 리모델링, 유형 2 ALT는 DNA 수리 관련 유전자 세트들이 많이 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유형 1 ALT는 후생유전학적 조절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유형 2 ALT는 특정한 DNA 수리 기전이 중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ATAC-seq을 통해 유전체 전반의 열림 정도를 관찰했을 때, 유형 1 ALT가 훨씬 더 많은 수의 열린 영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열린 방향으로 변화한 영역에 결합할 것으로 예측되는 전사인자들의 수도 유형 1 ALT에서 훨씬 많게 나타났습니다.
텔로미어의 구조에 한정해서 살펴보면, 유형 1 ALT의 텔로미어는 상대적으로 닫혀 있으면서 많은 양의 RNA를 생산했고, 유형 2 ALT의 텔로미어는 반대로 열려 있으면서 RNA를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기존의 ALT 필드에서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합의인, ‘ALT가 활성화되면 텔로미어가 더욱 느슨해지고 RNA가 많이 생산된다’는 설명과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ALT 텔로미어의 heterochromatin 구조가 텔로미어 유지에 중요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는 만큼, 텔로미어의 구조와 ALT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고 저희의 결과도 중요한 사례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유형 2 ALT에서 DNA 수리 관련 유전자들의 발현이 높았는데,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유전체를 잘 수리하며 관리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이 뒤따랐습니다. Whole genome sequencing 결과를 기반으로 단일 뉴클레오타이드나 copy number를 기준으로 돌연변이가 일어난 영역의 수를 세어보면 유형 1 ALT가 훨씬 더 많은 변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유형 1 ALT의 경우 DNA 수리에 관여하는 유전자 자체에도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유전체의 불안정성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텔로미어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유형 1 ALT의 텔로미어는 높은 수준의 텔로미어 손상 마커를 보이는 반면, 유형 2 ALT의 텔로미어는 상대적으로 훨씬 안정적인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실질적으로 텔로미어의 복제를 조절하는 유전자들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찾다가 유형 1 ALT에서는 SLX4, 유형 2 ALT에서는 BLM이라는 유전자가 각각 핵심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두 유전자는 대표적인 DNA 수리 유전자들인데, 상동 재조합(homologous recombination)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인 결과물을 cross-over 또는 non-cross-over 형태로 내놓을지 결정하는데 핵심적인 기능을 합니다. 각 유전자에 대한 knock-down 이후 텔로미어의 표현형을 관찰한 결과, 실제로 유형 1 ALT는 SLX4의 knock-down에 유형 2 ALT는 BLM의 knock-down에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현재까지 포유류 모델에서 두 유형의 ALT를 모두 발견하고 비교한 연구는 저희의 논문이 최초입니다. 특이하게도 인간 암세포의 경우 현재까지 유형 2 ALT만이 발견되었고 아직까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형 1 ALT를 찾기 위해서는 whole genome sequencing 결과를 기반으로 비-텔로미어 서열이 염색체 말단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러한 분석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유형 1 ALT가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고, 대량의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서 인간 암세포에서도 유형 1 ALT를 발견하고 연구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또한 이 논문에서 진행한 multi-omics 이외에도 세포 내 유전체의 3D 상호작용을 관찰할 수 있는 chromatin capture 기반의 Hi-C 실험 및 분석을 진행중이며, single cell RNA-seq을 통해서 ALT 활성화 전후의 세포가 가지는 heterogeneity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연구의 시작 단계에서는 단순히 서로 다른 유형의 ALT 세포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양한 기술들을 접하고 익히며 둘을 자세하게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이 커져가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결과들이 핵심 메시지와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리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님 연구실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이번 논문을 정리했습니다. 이준호 교수님께서는 제가 학부생 아르바이트생 시절부터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기울여 오셨고, 예쁜꼬마선충을 모델로 해서 다양한 유전학적 연구를 진행해 오고 계십니다. 현재 가장 주력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중에는 예쁜꼬마선충의 대안적 발생 단계에서 특이적으로 관찰되는 신경 세포들의 연결을 전체적으로 관찰하는 connectome 연구와 특정한 유전자 돌연변이로부터 유발되는 신경세포 특이적인 노화현상에 대한 연구 등이 있습니다. 텔로미어 연구도 처음에는 예쁜꼬마선충의 텔로미어 결합 단백질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텔로미어와 수명의 관계, 그리고 개체 수준에서 ALT를 통해 텔로미어를 유지하는 선충 모델 연구로 점차 관심 분야를 넓혀왔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채집된 다양한 선충들의 whole genome 정보로부터 텔로미어 반복서열을 찾고 텔로미어 결합 단백질들 사이의 차이를 관찰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한마디로 이런 연구를 하는 곳이라고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개별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주제에 깊이 몰입하고 있으며, 공유할 만한 테크닉이나 최신 연구 동향에 대해서는 서로 도와가며 즐겁게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주제를 함께 연구하는 데서 오는 시너지는 팀 단위로 얻는 편이고, 랩 전반적으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이번 연구는 텔로미어 팀으로 함께 일했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김천아 박사님과 삼성 바이오에피스에 근무중인 김은경 박사님과의 협력 연구를 통해 완성했습니다.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연구를 진행하는 것에 있어서 좋은 팀으로서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실험을 가르쳐 주고 배움을 받던 관계였던 적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과 적성이 뚜렷해지기 시작하면서 각자가 특색 있는 연구자가 되려고 했던 욕심이 있었습니다. 한 논문 안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다 보니 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고 실험 및 분석 결과에 대한 논의를 거친 후 다음 방향을 논의하는 방식이 효율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서로의 장점을 살려서 시너지를 내고, 서로의 단점은 보완해줄 수 있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니, 혼자 많은 짐을 떠안고 시간만 많이 걸리게 되는 경우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훌륭한 팀을 갖추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가 훌륭한 팀원으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고 또 구체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여전히 저 또한 성장해 나가는 중인 연구자로서 많은 것을 배우는 중인 입장입니다. 이번 논문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노력과 의지를 조금씩은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대학원생이 처음 되었을 때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한 유전학 실험을 기반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연구 모델을 생쥐배아줄기세포로 바꾸기도 했고, 이번 논문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다양한 omics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면서 얻게 된 것입니다. 해보지 않았던 것을 처음부터 배운다는 것이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정말 나에게 필요하거나 중요한 일이라면 도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 또한 친절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아직까지 ALT 분야에는 많은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 암세포에서 유형 1 ALT를 발견하는 것도 오랜 시간 가지고 있던 질문입니다. 지금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세포의 운명을 리프로그래밍하는 방법론과 원리에 관한 것입니다. 생쥐배아줄기세포에서 얻은 ALT 라인들은 텔로머레이즈가 망가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배양한다면 대부분이 죽음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의 세포가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고 살아남은 것이 ALT 라인들입니다. 텔로머레이즈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ALT로 묶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전자 네트워크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다른 특징들을 보입니다. 아직까지 ALT를 활성화시키는 유전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생쥐배아줄기세포만 하더라도 또다른 형태의 ALT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ALT 자체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암발생 과정이나 유도만능줄기세포의 경우와 같이 세포의 운명이 극적으로 바뀌어 나가는 현상들의 근원을 파헤치는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세포의 가소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한다면,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도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연구를 한다는 것은 오랜 기간의 고생 끝에 잠깐의 달콤함을 맛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과정의 반복인 듯합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대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연구를 하는 도중이든 아니면 다음 연구를 준비하는 과정이든 충분한 에너지가 나온다고 느낍니다. 방황한다고 해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많은 연구자에게 각자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어떻게든 잘 이겨내시길, 그리고 그 끝에는 조금 더 달콤한 열매가 있길 기원합니다.
#텔로미어
# 리프로그래밍
#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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