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소뇌는 인간의 뇌가 포함한 뉴런들 중 70% 이상을 지닌 뇌 부위입니다. 전통적으로 균형, 운동조절 등의 기능으로 알려져 왔는데, 최근에는 언어, 사회성 등 다양한 인지기능 및 신경인지질환에 관여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폭넓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특히 자폐증의 경우, 신생아에서 소뇌손상은 이후 자폐증 위험도를 40배 정도 높이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소뇌피질 신경회로에 대한 이론은 이미 70년대부터 정립되기 시작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다른 뇌영역들은 이끼섬유를 통해 소뇌에 인풋을 전달하고 신경회로의 처리과정을 거쳐 푸르키네 세포가 이 인풋이 적합한 행동으로 이어질 것인지를 판별해 최종 아웃풋을 냅니다. 만약 이 판별이 정확하지 못했다면, 올리브핵에서 올라온 등반섬유가 푸르키네 세포에 에러신호를 전달하고, 이것이 신경가소성을 일으켜 푸르키네 세포의 아웃풋을 교정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머신러닝에서 말하는 지도학습의 개념과 일치하며, 따라서 소뇌는 지도학습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뇌영역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문제는 이 이론이 실제 데이터와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보통 지도학습이라고 하면 동물이미지들과 같은 고차원 데이터가 인풋, 어떤 동물인지 분류레이블같은 저차원 데이터가 아웃풋이 됩니다. 그런데, 소뇌피질의 인풋인 이끼섬유들은 다양성이 매우 적은, 즉, 저차원 활동을 보여주고, 반면 아웃풋인 푸르키네 세포들은 너무나 다양한, 즉, 고차원 활동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다양성이 정보처리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기존에 잘 이해되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이번 연구는 튜빙겐 대학의 피터 티어 교수님 연구실에서 얻은 실험데이타를 바탕으로, 푸르키네 세포 활동의 다양성이 사실은 소뇌의 정보처리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힌 의의가 있습니다. 2019년 잠시 방문했을 때, 티어 교수님 팀은 신속안구운동 과제를 수행하는 붉은 털 원숭이들의 소뇌에서 이끼 섬유와 푸르키네 세포의 활동 데이터를 얻고 있었는데, 제가 분석방법을 제안하면서 공동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머신러닝의 차원축소기법을 통해, 데이터를 몇개의 잠재변수들로 설명할 수 있는 소위 신경다양체 모델을 찾은 것인데요, 이를 통해 푸르키네 세포의 다양성이 안구운동의 속도와 지속시간이라는 두 변수들의 표현들을 내포하고 있고, 이 표현들의 관계가 등반섬유가 유도하는 신경가소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그 달라진 관계가 안구운동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전 연구들에서는 푸르키네 세포가 운동속도 같은 하나의 변수만 조정한다고 보았으나, 저희 연구는 소뇌가 여러 변수들간의 관계를 기억하고 그것을 교정하는 과정을 통해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는 행동 조절을 이루어질 수 있게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상 등으로 근육 하나가 지장을 받는다면, 소뇌는 다른 근육들을 조절해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움직임을 만든다는 것이죠. 또한, 소뇌에서 신경다양체 분석을 처음으로 수행한 최초의 연구라는 점도 뜻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쉽고 재밌고 많은 것을 발견하며 연구할 수 있는데, 왜 진작에 해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지금도 많이 이용되고 있긴 합니다만, 신경다양체는 소뇌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뇌영역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개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OIST)는 창립 12년 째의 신생 대학입니다. 일본정부의 오키나와 진흥책의 하나로 설립되어, 학부가 없는 대학원중심, 학과/학부가 없는 연구실 단위 조직, 외국인 50%이상 교수진, 주 언어가 영어인 점 등 특이한 차별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연구중심 대학입니다. 2020년 네이처 인덱스에서 선정한 기관규모 대비 연구 아웃풋 랭킹에서 EPFL 다음으로 세계 9위를 차지해 세간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중 에릭 데 슈터 교수님이 이끄시는 계산신경과학 연구실 소속인데, 실험시설이 없고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적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신경세포/신경회로의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머신러닝/AI를 활용한 실험 데이터 분석법 개발에 특화되어 있는 연구실입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저는 원래 이론물리학으로 박사를 받았는데, 워싱턴 주립대의 에이드리안 페어홀 교수님과의 좋은 인연으로 신경과학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뇌는 제가 공부했던 어떤 물리학적 대상 이상으로 심오한 주제이지만, 새로운 데이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구체적인 연구대상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이번 연구도 그랬지만, 어떤 연구를 시작했을 때 그 결론이 기존의 이론에 따른 처음의 예상과 너무나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연계에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그 연구대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자부심이자 보람입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신경과학은 아직도 엄청난 속도로 진화하는 분야라,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론에 관심이 있다면 직접 실험 경험을 쌓아 보기를 추천하고, 실험연구를 위주로 하고 있다면 계산적 모델링 등 이론적인 부분에도 많이 공부해보시길 권장합니다. 특히 생물학의 전통적 트레이닝을 받은 학생들이 프로그래밍을 통한 데이터 분석 및 모델링 등에 취약한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제대로 공부하여 기초를 탄탄히 하는 것을 당부 드립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이번 연구에서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후속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소뇌 신경회로의 과립세포 등 여러 부분들이 어떤 식으로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소뇌의 기능에 간여하는지 소뇌 신경회로의 컴퓨터 모델로 밝히고자 합니다. 그리고, 소뇌가 제어이론에서 말하는 “내부모델”의 역할을 한다는 가설이 있는데, 저희 결과의 많은 부분이 이 가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경회로 모델을 통해 어떤 식으로 소뇌가 “내부모델”로 기능하는지 규명하는 것을 큰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내부모델”은 현재 AI/로보틱스 연구에서도 중요한 테마이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들이 신경과학 기반의 AI, 소위 neuroAI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무엇보다 오랫동안 저를 신뢰해주시고 아낌없는 연구 지도와 후원과 격려를 해 주신 OIST의 데 슈터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또 공동연구 제안 때 저를 믿고 선뜻 승낙해주신 피터 티어 교수님과, 같이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논문을 쓴 공동저자 악샤이와 준야에게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함께 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항상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며 공동연구를 해왔던 타이페이 의대의 명지환 교수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소뇌
# 계산신경과학
# 신경다양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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