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미생물은 인체의 모든 표면에 존재하며 그중 대다수는 장관계, 특히 대장에 존재합니다. 장내 미생물균총(마이크로바이오타, microbiota)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미생물을 받으며 정착하기 시작하여, 평생 동안 인간의 면역, 대사체계의 발달과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최근 많은 연구를 통해, 장내 마이크로바이오타의 균형이 깨지는 현상과 다양한 질병의 연관성이 보고되었고, 몇몇 미생물은 직접적으로 병을 일으킨다고도 알려졌는데요. 대중에게도 친숙한 내용으로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가 위암을 일으키는 원인균이라는 사실로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습니다. 성인의 대장에는 무려 1만여종, 총 40조 마리(?)에 달하는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장내 미생물의 방대한 종류와 수, 그리고 끊임없는 숙주와의 상호작용을 생각하면, 위암뿐만 아니라 염증성 장질환이나 대장암과 같은 다른 장관계 질병과 마이크로바이오타의 연관성을 추측해보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2010년대 초반, 대장암 조직에서 푸조박테리움 뉴클리어텀(Fusobacterium nucleatum)이 특이적으로 발견된다는 논문을 시작으로, 대장암을 촉발 또는 가속화하는 세균에 대한 스크리닝 및 후보 미생물의 발암기전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대장암의 시그니처 균주들을 활용하여 환자들이 불편해하는 대장내시경을 하지 않고도 분변만 가지고 간편한 암진단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유망한 결과를 내기도 하였으며, 최근에는 장 마이크로바이오타가 면역관문억제제의 치료효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보고되면서, 진단부터 치료과정에서의 활용에 이르기까지 높은 임상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받아들여 지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과 서울대병원 박지원 교수님 연구실로 이루어진 공동연구팀은, 대장암을 진단 받고 치료를 앞둔 환자 333명의 수술전 분변을 제공받아 16S rRNA 시퀀싱을 통해 미생물 군집분석을 수행하고, 이후 3-4년의 추적관찰을 통해 예후 인자로 활용할 수 있는 분변 미생물을 탐색하였습니다 (그림 1).
그림 1. 연구개요
그 결과 프리보텔라 속(Prevotella genus)이 많고, 특정 알리스티페스 균주(Alistipes-assigned Bacteroides sp.), 디알리스터 인비서스(Dialister invisus), 피라미도박터 피스콜렌스(Pyramidobacter piscolens)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 발견된 그룹에 비해 무진행 생존율(progression-free survival)과 종합 생존율(overall survival)이 유의미하게 좋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 이중 프리보텔라는 인간의 두 가지 장타입(엔테로 타입; enterotype) 중 하나를 대표하는 공생균으로서, 섬유질이 풍부한 채식 위주 식단을 섭취하는 사람에게서 많이 발견되는데요. 그간 통계적으로 채식이 대장암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확립된 것에 반해, 채식에 의해 증가하는 프레보텔라와 대장암의 관계는 지금까지 확실한 근거가 있지 않았지만, 이번 연구 결과가 대장암 예후 측면에서 그 공백을 채워줄 수 있었습니다.
이 연구는 재미있게도 서울대병원 박지원 교수님과 제가 우연히 머신러닝 스터디 그룹을 함께 하며 인연이 닿아 공동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대장암 환자의 분변 마이크로바이오타에 대한 일반적인 커뮤니티 분석을 목표로 한 다소 평범한 내용이었으나 이후 예후 정보를 접목하여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꾸준히 찾고 공부하려는 자세가 좋은 논문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연세대학교 미생물유전체 연구실은 김지현 교수님의 지도 아래 환경, 식물, 인간의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시퀀싱 기술을 기반으로 한 뛰어난 in silico 분석 인프라 및 인적자원과 함께, 실험을 통한 증명이 가능하며, 교내외 다양한 실험실과의 교류 및 협력을 통해 참신하고 재미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대장암센터 박지원 교수님 연구진은 진료/치료 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심에도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300명이 넘는 규모의 대장암 환자군을 모아주시고, 분변시료와 다양한 메타데이터를 확보 해주셨습니다. 이번 논문도 서울대학교 병원의 임상의 선생님들의 노고와,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의 분석이 함께한 좋은 협력연구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양한 종류의 인체 시료(혈액, 분변, 조직 등)와 이에 대한 멀티오믹스 분석(blood chemistry, histology, transcriptome, microbiome, metabolome)을 통해 한 발 더 나아간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마이크로바이옴은 유전자 정보와는 달리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러한 가변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극심한 개인차가 분석을 어렵게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적절한 외부 개입을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을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인체 생명활동을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도구로서 활용할 가능성을 함께 제공하는데요. 프리보텔라 균주가 대장암 예후에 미치는 긍정적인 가능성에 기반하여, 대장암 환자에게 프리보텔라를 키우는 채식을 권장할 수 있고, 예후의 지표 미생물을 측정하는 키트나 16S rRNA 시퀀싱 분석을 통해 일선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예후를 보다 정확히 예측하여 미리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평생 변하지 않는 유전정보와는 달리, 외부 환경의 변화 및 개입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오타는 건강증진을 위한 수단이자, 맞춤형 의료(precision medicine)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정보층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모든 연구가 저마다의 가치와 쓰임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구결과가 임상적으로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특히 보람을 느낍니다. 현재의 노력이 인류의 건강과 행복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앞으로도 재미있는 연구생활을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제가 대학원생일 때 큰 울림을 주고 지금도 종종 되새기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오늘의 실패에서 내일의 실패로 빠르게 넘어가는 과정이다” 실험이 매번 성공할 수 없고, 분석 결과가 매번 가설을 뒷받침할 수는 없습니다. 일상의 시행착오에 지나치게 낙담하지 않고 빠르게 다음 과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대학원생 생활과 이후 연구생활을 건강하게 치루게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지치지 않고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취미를 가지는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운동이든, 게임이든, 모임이든 잠시나마 복잡한 머리 속을 환기시켜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적으로는 논문이든 연구자 모임이든 자기가 친숙하지 않은 분야와 자주 소통하여 관점을 확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는 지식 선에서 당연하다고 느낀 것이 다른 관점에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을 제시해주는 것이 연구의 창의성과 깊이를 더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인간 마이크로바이옴과 질병의 연구는 아직까지 상관관계, 연관성 탐색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메타분석, 종단분석(longitudinal analysis), 멀티오믹스 분석 등을 통해 연구의 신뢰도와 재현성을 제고시키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저 또한 이러한 흐름에 맞춰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의 깊이와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정진하고 있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해프닝처럼 시작된 연구가 이렇게 좋은 결과로 끝맺음 될 수 있었던 것에는 김지현 교수님의 배려와 박지원 교수님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또한, 밤늦게까지 함께 공부하며, 연구의 기회를 만들어준 김재식, 이현권, 장래근 학생, 그리고 연구실에서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송주연 박사님, 이보영 박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타지에서 홀로 아이 셋을 키우면서 직장까지 다니는 아내를 보면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이진영 사랑해!).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갈 남은 인생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얻습니다. 언제나 묵묵히 믿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부모님과 누나, 장모님, 장인어른, 처가 식구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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