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주로 골수에 존재하면서 일생 동안 다양한 종류의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는, 발생 과정에서 난황(yolk sac), AGM, 배아간(fetal liver)을 거쳐 출생 전후에 골수에 안착을 하게 됩니다. 골수 안에서 이러한 조혈모세포의 기능과 분화를 조절하는 다양한 미세환경 (microenvironment 또는 niche)은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인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성체 시기의 뼈와 지방세포 및 뼈 재생의 근원이 되는 Leptin receptor를 발현하는 중간엽 기질세포(mesenchymal stromal cells)가 조혈모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중요한 niche로도 작용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Leptin receptor+ 중간엽 기질세포는 출생 이후에 비로소 만들어지는데, 실제로 조혈모세포의 골수 내 생착 및 증식은 그보다 이른 시기, 즉 후기 배아 발달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조혈모세포를 조절하는 또다른 미세환경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배아의 골수와 성체의 골수 내 미세환경을 단일세포 유전자 분석을 통해 비교하였고, 그 결과 성체 골수의 중간엽 기질세포가 없는 배아 골수에서는 혈관 내피 세포, 특히 동맥 혈관 내피세포가 Wnt ligand를 포함한 다양한 niche factors를 발현하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혈관 내피 세포의 기능은 조혈모세포가 골수 내에 정상적으로 생착하여 증식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다양한 마우스 모델과 in vitro 실험들을 통해 증명하였습니다. 이 연구는 발생 과정에서 줄기세포를 조절하는 미세환경이 세포 및 분자적 수준에서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하면서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로서, 조혈모세포의 생성 및 증식과 관련된 잃어버린 퍼즐 조각(missing piece)을 찾은 것이라고 소개드릴 수 있겠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Insight must precede application.” (지식이 응용을 앞서야한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Max-Planck Institute)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 연구 기관입니다. 3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단일 기관 세계 1위, 2위는 미국 하버드대), 우리나라 전체 기초연구사업비 2배 가까운 예산을 매년 집행하는 그야말로 넘사벽 연구소입니다. 기초과학 연구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각각의 독자적인 연구 주제와 분야를 가진 약 80여개의 연구소들이 독일 전역에 흩어져 있으며,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등을 다루는 연구소들도 존재합니다.
독일 뮌스터(Muenster)시에 있는 막스 플랑크 분자 생의학 연구소(Max-Planck Institute for Molecular Biomedicine)는 약 30개 나라 150여명의 과학자들이 모인 international team으로, 현재 3개의 department와 5개의 연구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로 줄기 세포 및 혈관의 생성과 기능에 관련된 기초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2012년 9월, 이곳 막스 플랑크 분자 생의학 연구소에 처음 포닥으로 나올 때는 3년에서 길어도 5년 정도를 예상했는데, 어느덧 햇수로 10년째(!!) 입니다. 박사학위 과정 동안 마우스 genetic 모델을 이용한 연구들을 꾸준히 해왔고, 연구 자체도 재미있었고, 나름 어느정도 자신도 있었지만, 독일에 온지 2년쯤 지났을 때 지도교수님이신 Ralf H. Adams 교수님께서 저에게 Bioinformatics를 직접 배워서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경험이 거의 없는 분야인데 나더러 박사과정을 한번 더 하라는 소리냐?! 라고 반문했더니, 그렇다라고 답변하셨습니다... 말이여 방구여 궁시렁 궁시렁 이러다 포닥 기간만 더 길어지는 거 아닐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투정하다 문득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부터 같은 연구소에 Bioinformatics를 하는 연구 그룹 Juanma Vaquerizas (지금은 Imperial College London로 이직) 랩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며 생소했던 프로그래밍 언어들을 배우고 익혀 나갔습니다. 하리보 젤리와 초콜릿이 등록금이었다 카더라.
그러다 보니 한가지 깨달은 게 있었는데, 순수하게 web lab 일만 하는 동료들은 제가 그들과 데이터를 보는 같은 관점(insight)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dry work을 하는 bioinformatician들은 제가 그들과 같은 언어(language)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저와 하는 collaboration이 효율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일의 진척도 빠르고, 동시에 여러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해 지면서 점점 제가 하는 연구 업무 자체가 bioinformatics로 완전히 전향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2016년 즈음 bulk RNA-seq 데이터의 여러가지 한계로 인해서 고민하다 샘플을 단일 세포 수준에서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single cell RNA-seq이 생물학 여러 분야에 대세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노를 젓고 있었는데 물이 들어 옴. 제가 하는 연구 업무도 차츰 변화하여 단일세포 유전자 분석을 거의 main으로 동시에 수십 개가 넘는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는데, 막스 플랑크 내에서의 공동연구 뿐만 아니라 전세계 다양한 대학/기관의 연구자들과도 연계가 되었고, BD Biosciences와 같은 글로벌 의료 기업과도 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판데믹이 한참이던 2021년에는 막스 플랑크 분자 생의학 연구소 안에 연구 그룹으로 Single Cell Multi-Omics Laboratory를 꾸려 따로 독립을 하였고, 올해에 제 랩이 다시 막스 플랑크 core facility로 등록이 되면서 lab head로 permanent job을 갖게 되었네요(응?). 포닥 기간 길어질까봐 걱정했더니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빨리 영년직으로 독립해서, 그 어느 때보다 일이 많고 바쁘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여러가지 주제의 연구들을 즐겁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논문 한편을 마무리할 때 마다 번-아웃 증상이 있곤 했는데, 이번 논문은 제가 실적 심사나 재계약에 대한 염려 1도 없이 출판하게 된 첫 논문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역시 과학은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읍, 읍!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연구 업적으로 보면 워낙 뛰어나신 분들도 많고 딱히 제가 연구자로서 성공 사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연구하는 것 자체를 즐겁고 행복하게 느끼는 것은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지금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학위 과정과 포닥 기간 동안에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실험 결과와 논문 IF에 휘둘렸기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네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제 경험만 놓고 본다면, 몇가지를 내려놓고 몇가지를 우선순위에 두었던 선택들이 있었습니다.
내려놓았던 것은,
- 저 스스로 세팅해 둔 계획과 타임라인들 (몇 년 안에 어떤 논문을 내고 어느 대학 교수가 되어서 언제쯤 안정적인 생활을 하겠다 등)
- 예측 가능한 성과와 효율을 좇아 선택한 연구 주제
- 다른 동료나 연구자들과의 비교 (물론 경쟁사회에서 실적이나 평가에 있어 비교 우위에 서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당장 내가 하고 있는 업무나 연구에 도움이 되진 않았습니다.)
우선순위에 두었던 것은,
- 내 밥그릇을 챙기는 것 보다 먼저 좋은 동료가 되는 것 (성격이 좋은 동료가 아니라 실제로 함께 일할 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 동료. 사실 포닥이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데 게으르거나 주저하지 않기
- 나와 내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기
등등 입니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앞으로 생명과학 분야에서 bioinformatics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에 있는 연구자 누구나 익히고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직접 이 기술들을 익히는 것을 너무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짧게는 현재 revision 중인 다른 주저자 논문들이 몇 편 더 있어서, 하나씩 마무리 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제는 저 혼자서 단독으로 수행하는 연구는 거의 없고 국내외 여러 기관과 많은 훌륭한 연구자 분들과 함께 크고 작은 공동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는데, 특히 앞으로는 기초연구 이외에도 희귀 난치성 질환에 대한 임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실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진단 및 치료법 개발 연구에 매진해 보려고 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젊은 과학자에게 있어서 좋은 PI를 만나는 것 만큼 큰 행운이 또 있을까요? 한글로 된 이 인터뷰 글을 읽어보실 리 없겠지만, 연구자로서뿐 아니라 저의 인생에서 가장 큰 기회와 전폭적인 지원과 분에 넘치는 신뢰와 응원을 주신 Ralf H. Adams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 공동연구를 통해 늘 새롭게 많이 배우고, 도전 받고, 자극 받고 있는데, 함께 열심을 내고 있는 모든 동료 선후배 연구자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늘 곁에서 든든한 내 편이 되어 주는 가족들, 아내와 세 딸들에게도 깊은 감사와 사랑의 인사를 전합니다. 힘든 코로나19 판데믹 시기에 정서적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포고 단톡방 멤버들(자, 힐, 쭈, 작, 루, 엘, 곤, 역, 운, 레)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제 삶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scRNA-seq
#hematopoietic stem cell
#bone marrow ni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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