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요즘은 힘들지만, 여름에 꼭 가봐야 하는 곳은 ‘바다’일 겁니다. 제가 어릴 적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간 해안가에는 집 근처 시장에서 보던 수산물보다도 훨씬 다양하고 많은 생물이 있었습니다. 생물의 이름은 잘 몰랐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물을 주워담던 기억이 납니다. 호기심 반, 우쭐함 반으로 친구에게 자랑하기 위해 생물의 이름과 생김새를 눈에 익히기 시작했죠. 자연스럽게 점점 많은 종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따개비와 삿갓조개의 분류학적 차이가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왜 따개비는 절지동물로, 삿갓조개는 연체동물문으로 분류된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제가 공부하는 분야를 ‘분류학’이라고 생각할 것 같네요.
사실 분류학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생겨나고 인류의 문명과 함께 발전해 온 학문 분야입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식용이 가능한 동식물을 구분해야 했고, 문명이 발전하고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자원에 대한 관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종의 형태와 생태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축적되고 우리는 주변환경과 생물정보의 관계도 분석을 하게 되었죠. 저도 개체나 개체군 수준에서 생물이 환경과 어떤 관계가 가지는지, 어떻게 변하는지 등에 대한 공부를 해왔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주로 ‘생태학’에서 다루기 때문에, 저는 자연스럽게 분류학과 생태학을 함께 공부하게 됐습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게에 대해 공부해서 게박사란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브릭에 소개된 논문은 한국에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된 게류에 대해 지난 60년간 기록된 자료를 전수조사하여 한국산 게류가 247종에 이른다는 것을 밝힌 논문입니다. 본 논문의 특징은 기존에 분류학적 측면에서 다루어왔던 체크리스트를 생태정보와 함께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즉 한국산 게류에 대한 생태-체크리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류가 출현한 해역과 서식처의 환경 특성에 대한 기술을 함께 제시했다는 점에서 분류학과 생태학이 결합된 논문이란 점에서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본 연구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드리자면, 첫째, 한국산 게류는 우리나라 삼면의 바다 중에서 남해에서 가장 많은 종이 출현했고, 둘째, 남해 중에서도 제주도에 가장 많은 게류가 서식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그림 1). 셋째, 남해에만 나오는 종이 127종에 이르러 남해의 독보적인 해양생물다양성을 확인했고, 넷째, 조하대와 조간대에 걸쳐 서식하는 종이 273종임을 확인하여 게류의 서식분포 범위와 특성에 대한 해석도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 바위와 같은 암반에 서식하는 게류도 106종에 이른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혔습니다.(그림 2).
그림 1. 한국 게류의 지역별 출현종수 및 대표 우점종.
분류학과 생태학은 오랜 역사를 가진 기초학문 분야에 속하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고 실생활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분류학과 생태학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많은 분이 이미 알고 있는 ‘생물다양성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에 대응하기 위한 분류학과 생태학 분야 연구자의 노력도 주목받고 있지요. 해양생물자원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 투자도 점차 늘어나고 있고요.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공유(Access Benefit Sharing)’는 이제 글로벌 이슈가 됐습니다. 이제 국가 간의 생물자원에 대한 전쟁이 시작됐고, 생물주권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우리는 한국산 생물종에 대한 자원관리를 체계적으로 만들어가게 됐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만큼 분류학과 생태학의 중요성도 커진 것입니다. 한국은 2000년대 초기까지도 국가의 정책이 보전보다는 개발에 치우쳐져 있었지요. 하지만 근래에는 개발보다는 보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많은 사람이 자연을 가꾸고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한 사례로 ‘역간척’을 들 수 있겠네요. 과거 간척을 통해 망가진 해안과 훼손된 해양생태계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복원사업이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죠.
최근에는 공공기관과 회사에서도 ESG경영 (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 대기업의 경영 전략에서 찬밥이던 환경 정책이 이제 주인공이 된 것을 보면 새삼 생태학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탄소중립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보고 듣는 단어가 바로 카본, 이산화탄소일 것입니다. 탄소를 색깔로 표현한 블랙카본(불완전연소 물질), 그린카본(육상의 탄소흡수원), 블루카본(바다의 탄소흡수원)과 같은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여기서 그린카본과 블루카본과 같은 탄소흡수원을 많이 늘리는 것이 탄소중립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그린카본과 블루카본 연구에서도 분류학과 생태학적 연구는 필수입니다. 어떤 종과 서식처가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하고 제거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생물의 종류와 분포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서점에 가보면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가 있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분류학과 생태학은 스테디셀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체계적인 연구와 자료의 축적이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림 2. 한국 게류의 지역별, 서식지유형별, 서식지기질별 출현종수.
이번 논문을 진행하면서, 게류의 생태정보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멸종위기야생생물 게류 4종의 서식지 분포 조사와 종별 서식지 유형도 함께 정리하게 됐죠. 갯게는 겨울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고, 그래서 굴 내부를 산업용내시경으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달랑게가 해변을 가득 메우는 우이도에서는 마찰기로 내는 소리를 녹음하기도 했구요. 개체생태 연구를 진행한 것인데, 학위과정 동안 실험실 표본, 도감, 논문으로 머물렀다면, 이번 논문을 준비하면서 필드에서 생생한 게류의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그림 3).
그림 3. 한국의 게류.(A: 갯게얼굴, B: 갯게 동면모습, C: 달랑게 소리발생 행동, D: 우이도 달랑게 집단서식지).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대학교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지도교수 김종성)은 바다와 생물간 상호작용에 대한 “생태적 현상(즉, 해양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을 규명하는 연구를 합니다. 최근에는 과학적 자료에 근거하여 해양정책의 방향과 전략을 제시하는 연구로 발전했고요. 일명, “해양생태계서비스(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 즉 바다생태계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사회경제적 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브릿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의 연구 주제는 크게 세가지로 1) 해양생물의 분류 및 생태 구조 연구, 2) 해양생물의 생산성 및 먹이망 등 생태 기능 연구, 3) 환경변화에 따른 해양생태계의 반응 및 회복 등 생태계 건강성 연구가 있습니다. 특히 국내 연안에만 초점을 맞춰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호주, 캄보디아 등 전세계의 바다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에 있으며 캐나다, 미국, 중국, 호주 등 세계 유수대학 연구진과의 교류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융복합 해양연구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https://benthos.snu.ac.kr) 홈페이지에 이달의 바다, 이달의 생물 연재코너를 비롯, 다양한 연구와 활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한국에 서식하는 게류를 연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책을 통해서는 알기 어려운 사실을 찾고 배우게 됩니다. 우이도 해변 모래사장에 달랑게가 빼곡하게 서식한다는 기사가 나오면, 예전에는 ‘와 많다’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곳에 가서 주변환경, 다른 생물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으니 말이죠. ‘왜 다른 종류의 게는 보이지 않고, 달랑게만 서식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죠. 연구는 하면 할수록 질문만 많아지고 점점 해결해야할 일은 산더미처럼 불어나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림 4. Zehntneriana tadafumii Lee et al., 2015.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분류학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신종을 기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종이 동물이명(Synonym) 처리되지 않는다면, 명명자의 이름이 평생 학명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대대손손 이름이 역사에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하고 즐거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림 4의 Zehntneriana tadafumii는 박사학위 과정 중에 발견하여 신종으로 기록했는데, 세계에 족적을 남겼다는 보람을 가지게 했고, 그 자부심이 지금도 계속 공부하는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와 남해 일부지역에 서식하는 Leptodius affinis의 분류학적 고찰을 하던 시기에 우연히 똑같은 연구 진행하던 싱가폴 연구자를 만나 서로 도와서 연구를 즐겁게 마무리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Malcolm Gladwell의 ‘아웃라이어’에서 ‘1만시간의 법칙’을 언급했습니다. 하루 3시간씩 집중하면 10년 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주변환경과 본인의 의지, 능력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연구에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지만, 인내와 노력만으로는 연구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엔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수 없다’는 말처럼 연구는 즐거워야 합니다. 주변 교수님들과 연구자를 보면 지적 호기심이 엄청 높아서 연구를 즐기시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인내로 이겨내려 하지 마시고, 호기심으로 연구를 즐겨보세요.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게류를 통한 보다 많은 연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특정지역에 서식하는 종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연구와 집단간의 격리나 분산 등이 있었는지에 관한 연구, 집게의 형태에 따라 사용법이나 먹이 선호도가 달라지는 것에 관한 연구, 무려 50년전에 만들어진 게류 관련 도감을 새롭게 정리해내는 일, 그리고 한국내 해양저서생물들의 생태학적 연구, 한국 내 섬의 해양저서무척추 군집에 대한 연구, 섬 생물들과 기후변화와의 연계성 연구 등 생태학적 연구 등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 것 같네요.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이번에 소개된 논문은 자료 준비만 3년이 넘게 걸렸고, 자료를 분석하는 데만 다시 1년을 보냈습니다. 공저자 모두 많은 도움을 주었고, 우리 모두가 즐긴다는 생각으로 4년여에 걸쳐 본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지원과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신 김종성 교수님께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타 분야로 넘어오면서 부족한 부분을 해결하는데 도와준 서울대학교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의 후배박사님들, 그리고 석박사과정 학생들에게도 지면을 통해 고마움을 전합니다.
서울대학교 해양저서생태학 연구실 가족, 2021년 12월 연구성과보고회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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