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저희가 발표한 논문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포유류 모델에서 텔로미어가 유전체 내의 다른 서열로 대체될 수 있음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안적인 텔로미어 유지기전 활성화 전후의 세포들의 특징을 genomics, epigenomics, transcriptomics, proteomics 방법론으로 상세히 비교 및 분석했습니다. 이전까지는 포유류 텔로미어가 단순반복서열로만 구성되거나 약간 변형된 구조만을 가진다고 여겨졌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완전히 다른 서열이 주된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텔로미어는 대부분의 진핵 생물이 가지는 선형 염색체의 말단 부위를 지칭하는데, 말단 부위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말단을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많은 생물의 텔로미어가 단순한 반복 서열과 그에 대한 결합 단백질의 복합체로 구성됩니다. 텔로미어 결합 단백질들이 DNA 손상을 인지하는 신호 체계를 억제함으로써 실제로 끊어진 부위와 동일하게 생긴 텔로미어가 지속적으로 DNA 손상 반응을 활성화하는 상황을 막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DNA 복제기구가 선형 DNA 말단을 완전히 복제할 수 없기 때문에 DNA 복제가 일어나고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일정한 길이의 텔로미어가 손실될 수밖에 없습니다. 텔로미어 길이가 일정 수준 이하가 되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 영구적인 세포주기 정지 상태에 들어가고 이를 세포 노화(cellular senescence)라고 부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텔로미어를 세포 분열의 타이머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속적으로 분열해야 하는 생식세포나 줄기세포의 경우에는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텔로머레이즈라고 하는 역전사 효소가 담당합니다. 세포 노화에 의해 부여된 분열의 한계를 벗어나 제멋대로 분열하고 있는 암세포의 경우에도 대부분 텔로머레이즈 활성화를 통해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텔로미어 유지 기전의 획득이 반드시 포함되는 이유입니다.
대부분의 암세포는 텔로머레이즈를 통해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하지만, 약 15%의 암세포는 텔로머레이즈의 활성 없이도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텔로머레이즈 유전자가 삭제된 효모 모델에서도 보고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텔로머레이즈 없이도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하는 기전을 통칭하여 대안적인 텔로미어 유지기전(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 ALT)라고 불러왔습니다. ALT는 연구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폭넓게 발견되었는데, 초파리는 레트로트랜스포존으로, 양파과의 식물은 rDNA와 satellite repeat을 이용해 텔로미어를 구성합니다. 텔로머레이즈는 단순반복 서열을 더하는 효소이다 보니 위와 같이 독특한 텔로미어 구성을 가지는 생물들은 텔로머레이즈 독립적인, 즉 ALT에 해당하는 기전으로 텔로미어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텔로미어의 내용물과 유지 기전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암세포에서 발견되는 ALT 현상의 특이한 점은 단순 반복 서열로만 구성된 텔로미어를 가진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른 모델에서는 특이한 구성의 텔로미어를 가지는 사례가 존재했는데, 암세포에서는 유독 그런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인간 세포에서는 단순 반복 서열 기반의 텔로미어 시스템이 상당히 다듬어진 형태로 진화했고 대안적인 구조가 등장하기 힘든 것인지 막연하게 생각되어 왔습니다.
약간 거슬러 올라가보면, 텔로미어는 저희 연구실의 핵심적인 연구 주제 중 하나였고, 초기에는 예쁜꼬마선충 모델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실험실의 대표적인 논문 중 하나가 텔로머레이즈가 삭제된 예쁜꼬마선충 모델에서 ALT를 이용해 생존하는 개체를 찾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연에서는 텔로머레이즈를 사용하던 생물이 온전히 ALT를 사용해 생존하고 세대를 이어나가는 현상은 다세포 생물로서는 처음 발견된 현상이었습니다. 또한 ALT 개체가 단순히 텔로미어 반복서열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체 내의 독특한 주형 서열을 가져와서 사용한다는 점, 예쁜꼬마선충의 strain에 따라 다른 주형 서열을 사용한다는 점을 보고했습니다. 저는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한 유전학을 통해 새로운 생명 현상을 발견하는 연구 과정에 흥미를 느꼈고, 텔로미어 팀의 구성원으로서 후속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집중했던 부분은 ALT로 생존하는 예쁜꼬마선충에서 텔로미어의 결합 단백질을 찾는 작업이었습니다. 텔로미어의 구성 서열이 달라져 있으므로 결합하고 있는 단백질도 달라져 있을 거라고 예상했고, 그렇다면 DNA 서열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핵산-단백질 복합체 수준에서 ALT 텔로미어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접근 방식으로는 당시에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PICh (proteomics of isolated chromatin loci)라는 기술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PICh는 특정한 세포나 조직에서 DNA-단백질 복합체를 추출하고, 특정한 DNA에 대한 probe를 사용해서 복합체를 당김으로써 해당 DNA 영역에 결합하는 단백질들을 종합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기법입니다. 요구되는 예쁜꼬마선충 세포의 양도 상당하고 필요한 시약 및 물품들을 다 직접 구비해서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전체 프로토콜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게 되는데 까지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주로 유럽에서 개최되는 국제 텔로미어 학회에 참석해서 PICh를 직접 셋업한 저자와도 만날 기회가 있었고 학회 이후에도 이메일을 통해 연락하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3년 정도의 시간을 PICh 결과를 얻는데 썼지만 결과적으로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세포주가 확립되지 않은 예쁜꼬마선충에서 품질 좋은 DNA-단백질 복합체를 다량으로 얻고 그 중에서 원하는 부분만 affinity를 이용해서 분리해 낸다는 것이 쉬운 실험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후로 다양한 방식으로 ALT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들의 목록을 만들고 실제로 ALT에서 역할을 하는지 조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공적인 결과는 없었습니다. 약 5년 정도의 시간동안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완성된 연구 결과는 커녕 논문을 시작할 만한 데이터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연구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능력, 남아있는 흥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찾아온 기회는 예쁜꼬마선충에서 발견된 ALT 개체와 아주 유사해 보이는 사례가 몇 년 전에 생쥐배아줄기세포 모델에서 발표되었다는 것을 찾은 것입니다. 텔로머레이즈가 삭제된 생쥐배아줄기세포가 세포 노화를 극복하고 생존하는 경우를 발견했으며, 그 중 일부의 세포에서 텔로미어 반복서열이 아닌 것이 말단에 있는 것 같다는 정도의 내용이었습니다. 예쁜꼬마선충 논문의 핵심 저자이면서 저의 사수였던 김천아 박사님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생쥐배아줄기세포 논문의 저자이신 히로유키 니다 교수님과 공동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니다 교수님께서는 텔로머레이즈가 삭제된 생쥐배아줄기세포를 ALT가 활성화되기 전부터 세대별로 잘 정리해서 저장해 놓으셨지만 더 이상의 연구는 진행하지 않고 있던 상황이라 공동 연구 제안을 기쁘게 수락해 주셨습니다. 저 또한 두번째로 찾아온 기회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심기일전하고 새로운 모델을 이용한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연구 모델을 바꾸는 선택은 옳은 것이었지만, 그 과정은 나름대로의 모험이라 할 만했습니다. 학부생으로 실험을 처음 배우던 때의 마음으로 세포를 다루는 법, 유전학 기법을 적용하는 법을 배우면서 셋업해 나가고 처음 접하는 실험 장비들에도 익숙해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만한 점은, 예쁜꼬마선충을 연구하며 얻었던 실패의 경험과 수년 간 읽어왔던 논문의 지식들의 도움을 상당히 받았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트러블 슈팅을 거치며 새로운 실험 기법을 익히고 나니, 예쁜꼬마선충에서는 할 수 없었거나 하기 힘들었던 실험을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다양한 전문성을 지닌 분들과 공동 연구를 할 기회가 생기면서 여러 종류의 빅데이터를 생산하고 분석하는 과정 및 의미 있는 방향으로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을 가까이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genomics (whole genome sequencing), epigenomics (ATAC sequencing), transcriptomics (bulk RNA sequencing과 single cell RNA sequencing), proteomics (TMT-labelling을 이용한 quantitative proteomics) 결과를 종합적으로 논문에 실을 수 있었습니다.
ALT 생쥐배아줄기세포의 텔로미어를 구성하고 있는 주된 서열은 특정 염색체의 텔로미어 바로 안쪽에 존재하고 있는 서열이었고, mTALT (mouse template for ALT)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ALT가 활성화되기 전에 mTALT는 두개의 복사본이 존재했는데, 하나의 복사본의 양쪽에 텔로미어 반복서열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텔로미어 반복서열로 감싸진 것만 ALT 활성화 후에 다른 염색체 말단으로 증폭되어 퍼져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여러 생쥐 strain 중 일부(저희가 사용한 배아줄기세포의 parental strain도 포함)에서만 2개 이상의 mTALT 사본이 관찰되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strain의 세포를 이용했다면 또다른 형태의 mTALT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제가 집중한 실험은 핵심 후보 유전자를 추리고 역유전학적으로 기능을 조사한 후 ALT 현상과의 연관 관계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Proteomics 결과와 single cell RNA sequencing 결과를 중심으로 후보 유전자를 고르고 기능을 테스트하던 중에 HMGN1이라고 하는 단백질이 ALT 현상의 유지에 필요하다는 결과를 얻었고 기존에 알려진 HMGN1에 대한 논문을 기반으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HMGN1은 linker 히스톤인 H1과 경쟁하며 nucleosome과 DNA의 상호작용을 약화시키고 chromatin을 느슨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결과 HMGN1 주변의 전사를 활성화시킬 수 있고, DNA 손상 이후의 복구 과정에도 관여합니다. 이런 지식을 기반으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HMGN1이 ALT 텔로미어에도 결합하며, 텔로미어 내에서 생산되는 non-coding RNA인 TERRA의 발현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TERRA는 텔로미어 DNA와 상호작용하여 RNA-DNA hybrid 구조 (R-loop)를 생성하는데, 이 R-loop의 존재에 의해 텔로미어 내부에 instability가 발생하고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텔로미어의 길이 유지 기전이 작동할 것이라는 모델까지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생쥐배아줄기세포 모델에서 일반적인 반복서열과 전혀 다른 유니크한 서열로 텔로미어가 재구성된 사례를 찾았으므로 인간 세포에도 비슷한 현상이 존재할 수 있는지가 다음 관심사입니다. 현재까지 인간 섬유아세포를 불멸화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 서열이 텔로미어로 끼어 들어가있는 사례는 보고된 바 있지만, 유전체 내부의 서열이 텔로미어를 대체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저희 논문의 결과를 통해 판단할 때 포유류 세포의 텔로미어 시스템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새로운 내용으로 변화할 잠재력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후속 연구를 진행한다면, 염색체의 위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유전체의 진화 능력에 대해 더욱 많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되돌아 보면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러한 기회가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에게 실험을 가르쳐 주시고 함께 공부하며 늘 연구자로서의 모범이 되어 주셨던 김천아 박사님, 대부분의 인포매틱스 분석을 도맡아 진행해 주신 박대찬 교수님, 정량적 단백질체 실험을 멋지게 진행해 주신 김종서 교수님, 오랜 기간 헤매고 뒤늦게 연구를 완성한 제자를 너그러이 기다려 주신 이준호 지도 교수님,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데 다양한 도움을 베풀어 준 공동 연구자들, 그리고 연구의 진행을 관심있게 지켜 봐주고 활발히 논의해 준 텔로미어 팀원들 및 유전과 발생 실험실 구성원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함을 전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실험실에서 학부생 아르바이트로 실험실 생활을 시작한 후,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실험실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한 유전학과 발생학 관련 주제들이 핵심 주제였습니다. 노화, 대사, 스트레스 반응, 선천적 면역, 행동 연구 등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으로 연구를 진행했었고 현재에도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신경 생물학(신경 퇴행성 표현형 조절 연구, 특정 뉴런의 발생 과정 연구, 예쁜꼬마선충의 행동 연구)과 텔로미어 연구에 많은 인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전자현미경 데이터를 대량으로 모아 선충의 특정 발생 단계를 중심으로 신경망의 연결 지도를 완성하는 연구, 다양한 선충의 유전체 지도를 직접 만들고 분석하는 연구 등으로 관심 주제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지도 교수님 이신 이준호 교수님께서 새로운 주제와 기술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시는 덕분에 자유롭고 다양성이 높은 연구실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랩미팅에서 다양한 분야의 최신 동향을 접하고 토론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학위 과정을 진행하며 깊이 공부하게 되는 주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폭넓은 시야를 갖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흔히들 하는 말로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부생 때부터 박사 학위를 취득한 지금도 늘 가지고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공감하면서도 정작 어떤 것이 좋은 질문인지에 대한 질문은 쉽게 답을 얻기가 힘듭니다. 요즘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현대 과학은 분야를 막론하고 세분화되어 있고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전문성을 요합니다. 특정 분야에서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해결된 질문이 무엇인지, 해결되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 합의가 모아진 질문이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해결을 시도해볼 수 있는 질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가능한 한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단계는 다른 연구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영역으로 확장이 가능한 질문을 직접 생산하는 단계일 텐데, 아마 평생에 걸쳐 고민하게 될 영역으로 생각합니다.
작년부터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제가 진행하는 연구가 사회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 전까지는 기초과학 연구를 진행하며 즉각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인류의 지식에 모래알 만한 것 하나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는 있습니다만, 개인의 지적인 흥미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사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주제들이 많이 있을 것이고 그런 분야에 집중해 보는 것도 연구 활동 중에 꼭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저도 아직 성장하고 있는 연구자이기 때문에 조언을 줄 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말씀드릴 수 있다면, 제가 생각할 때 연구자가 갖추면 좋을 덕성 세 가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갖추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좋은 연구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연구를 “잘”하는 것과 “열심히”하는 것, 그리고 “즐겁게”하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셋 다를 갖추고 싶다는 욕심을 냈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과 주변을 관찰하며 느낀 점은 하나의 덕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결국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는 세 가지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점입니다. 반대로 어느 한 가지 면에서 특출 나다고 할 만한 경우, 롱런하며 좋은 연구를 하시는 분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 제가 바라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 연구자를 평가하거나 객관화할 수 있는 지표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가끔씩 여러 가지 이유로 연구가 잘 안 풀린다고 느껴질 때, 지금 나에게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돌아보는 경우에도 위의 세 가지 측면이 도움이 됐습니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신경 쓰면 지금의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셀프 설문 정도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우선, 발표한 논문의 후속연구 방향을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핵심적으로 남아있는 질문은 mTALT로 이루어진 ALT 텔로미어가 어떤 결합 단백질들과 함께 새로운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 mTALT가 주형으로 선택될 수 있었던 주요한 특징은 무엇이었는지, ALT가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유전자 네트워크의 변화는 무엇인지 등입니다. 또한, ALT의 활성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저희 모델의 장점을 살려 ALT의 3D genome signature라고 할 만한 특징을 포착하기 위해 Hi-C 기술을 이용한 실험을 계획중 입니다. 각각이 흥미로운 질문이고 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실험실의 텔로미어 팀 후배들과 함께 공부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후의 포스닥 과정을 진행할 해외의 연구실을 물색하는 중입니다. 아직까지 주제를 확실히 정한 것은 아니지만 ALT 분야에서의 연구 경험을 살려 유전체의 진화, DNA metabolism, 암 생물학 등에 폭넓은 관심을 두고 있고, 개인 맞춤형 치료나 유전 정보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과 같은 주제도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연구를 진행하면서 스스로의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과 다른 연구자들과의 협업에 대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한때는 최신의 기술이었던 실험 기법들이 개별 랩 수준에서 일상적으로 수행되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데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반대로 상당한 전문성을 요하는 기술이나 지식이 관련된 영역이라면 좋은 공동 연구자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일해야 하는데, 좋은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좋은 연구자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 연구실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방향에서 자기 개발의 동력을 얻었습니다. 실험실 선배들과 예쁜꼬마선충의 생물학을 소개하는 “벌레의 마음” 단행본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과학을 주제로 소통하는 즐거움을 배웠습니다. 한때는 텔로미어 팀의 막내로, 그리고 현재는 고참으로 있으면서 팀을 만들고 함께 일하는 과정의 의미를 항상 고민하고 되새깁니다. 후배들이 각자의 연구를 잘 마무리하는데 행운이 따랐으면 좋겠고 저 또한 어느 위치에 있든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힘쓰고 있을 모든 과학자 분들의 무운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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