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인간에서의 통증 연구 및 치료는 그 막대한 중요성과 사회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측정 대상이 되는 통증 자체의 주관성과 모호함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왔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가 신경생물학적 기전에 기반한 객관적 통증 측정 기술의 개발입니다. 최근 들어, 살아있는 인간의 뇌의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인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fMRI)과 기계학습 (machine learning)을 결합하여 개개인의 주관적인 통증 경험을 뇌의 활성화 패턴에 기반해 읽어내려는 mind-reading의 시도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13년과 2017년 제 지도교수님이신 우충완 교수님과 그 advisor이신 Tor Wager 교수님께서는 짧은 시간 (약 10초) 동안의 열 통증을 느낄 때 나타나는 뇌의 활성화 패턴에 기반하여 개개인의 통증을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들을 개발하신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존 연구들에서 사용되었던 매우 짧은 시간의 통증은 임상적으로 흔한 만성 통증 질환의 핵심적인 특성인 통증의 “지속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어, 그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의문이 늘 있어왔습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건강한 참가자에게 캡사이신 (capsaicin)을 통해 실험적으로 “지속적 통증”을 유발하고 개개인이 느끼는 이 지속적 통증의 세기를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를 개발하려는 새로운 노력의 일환입니다. 저희의 바이오마커는 3개의 서로 다른 지속적 캡사이신 통증 데이터셋에 걸쳐 높은 수준의 민감도와 특이도를 보이는 데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허리 통증을 겪는 환자군의 통증 정도 예측 및 허리 통증 환자군과 정상 대조군과의 감별을 모두 유의미한 수준의 정확도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했던 지속적 통증이라는 주제가 통증 중개연구에 있어 새로운 sweet spot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에피소드: 본 논문은 처음 submission한 곳에서는 review도 없이 광속 reject을 통보 받았습니다. 별 생각 없이 다음 submission 준비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희 지도교수님과 그리고 공동 교신저자이신 Tor Wager 교수님께서 과학 저널이 아닌 의학 저널에 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해주셨고, 덕분에 살아 생전 submission 해볼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저널에서 review를 받아보기도 하고 (결국 reject 당했지만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타겟을 Nature Medicine로 변경해서 결국 publish에 성공했습니다. 본인의 연구가 어떤 저널의 scope에 맞는 지를 잘 생각해서 준비하는 것이 실패를 최소화하고 결과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저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뇌과학이미징연구단 (https://cnir.ibs.re.kr/html/cnir_en/)에서 대학원생 및 전문연구요원으로서 복무하고 있습니다. 뇌과학이미징연구단은 총 4대 (!!!)의 MRI (3T, 7T, 9.4T, 15.2T)와 in-vitro, in-vivo (rodent 및 non-human primate), in-silico (high performance computing cluster) 연구를 위한 환경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그 중 제가 속해있는 COCOAN lab (https://cocoanlab.github.io/)에서는 우충완 교수님 지도 하에 주로 통증과 감정과 연관된 뇌의 표상을 fMRI를 사용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매우 자유로운 수평적 분위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며, 모든 랩 멤버들이 굉장히 협력적인 분위기로 활발히 디스커션하고 저희 지도교수님은 도전적인 주제에 대한 지원과 지도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Computational, data-driven approach를 통한 신경과학 연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번쯤 저희 연구실에 관심 가져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본 논문은 제가 입학 후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로 올해 출판까지 거의 4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 기간을 돌이켜보면 데이터 획득부터 분석, 논문 작성에 이르기까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인간 fMRI 연구의 경우 이런 어려움이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더하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연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raw data에서부터 분석까지 쌓아 올리고, implication과 limitation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모델링과 후향적 테스트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더 나은 과학을 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늘 제 지도교수님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한빛사에서 정말 훌륭한 신경과학 연구자분들이 이미 좋은 조언들을 많이 남겨 주셨기 때문에, 여기서는 저처럼 의사 면허 취득 후 바로 연구 경험을 하시고 싶으신 분들께 혹시 도움될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시는 의대생 분들이 계신다면 진심을 담아 응원합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이 특히 의대생 분들에게 있어 쉽지 않은 결정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학습된 공포 반응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생 끝에 결과를 확인할 때의 짜릿함과, 내 연구가 과학의 최첨단에서 boundary를 아주 살짝이라도 push했다는 기쁨은 말로 다하기 힘듭니다. 물론 백그라운드 때문에 처음 시작 할 때 다른 학생들에 비해 고생할 각오는 좀 하셔야 합니다만 (게임으로 비유를 들자면 마검사같은 애매한 직업을 골랐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저것 배우긴 했는데 그 깊이가 얕아서 실제 연구에 써먹을 만큼 알지는 못합니다) 나만의 색깔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동료들과 계속 디스커션하면서 모자란 부분들은 적극적으로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저 또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현재 지속적 통증에 동반되는 뇌의 네트워크 수준에서의 변화를 기술하는 연구가 논문이 완성되어 곧 투고할 예정에 있으며, 졸업 전까지 통증 연구에 있어서 fMRI 기반 바이오마커의 임상적 유용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개개인 수준에서 규명하는 personalized medicine 연구를 계획 중에 있습니다.
졸업 이후에는 병원에서 다시 전공의 수련을 받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fMRI에 기반해 신경과/정신과적 질환의 생물학적 기전 발견 및 치료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인생이 운이라는 것을 날마다 느낍니다. 삶의 중요한 매 순간마다 부족한 저를 도와주신 분들을 정말 우연히 만난 운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서 즐겁게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대학원 첫 학기에 컨택도 없이 난생 처음 만난 저를 거둬주신 우충완 교수님, 교수님께는 연구 뿐만이 아니라 학자로서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늘 배우고 있습니다. 늘 헌신적으로 지도해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졸업하는 날까지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완성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를 연구단으로 인도해주신 김성기 단장님, 그리고 김윤복 박사님, 5년 전 이 BRIC 사이트에 올렸던 막연한 진로 고민 글에 단장님과 박사님께서 연락을 안 해주셨다면 평생 연구의 즐거움을 몰랐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제게 입학부터 지금까지 아낌없는 배려와 지도를 해주신 단장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과학자의 길로 인도해주신 연세대 의대 김형범 교수님, 지금은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늘 감사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같이 지내며 늘 웃음과 스스럼없는 디스커션을 해주는 저희 코코안 랩 식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제 대학원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부모님, 형과 동생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제 곁에서 가장 큰 지지가 되어주고 힘들 때 용기를 주는 여자친구에게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신경과학 연구의 시작을 가능하게 해주시고 이런 인터뷰의 기회를 주신 BRIC에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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