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지구 자전주기인 24시간에 맞추어 거의 모든 생명체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생명체들이 자체적인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으며, 낮과 밤의 시작을 스스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사실 생체시계는 세포단위에서 존재하는 것이라 우리 몸의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지만, 포유류에서는 오랜시간 동안 시상하부에 있는 시교차상핵(SCN)만이 가장 중요한 시계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시교차상핵은 우리가 아침이 되면 햇빛과 상관없이 알아서 깨도록 생활리듬의 시계 역할을 해줍니다.
이번 연구는 다른 뇌부위에도 강력한 생체시계들이 존재하며, 특히 맥락얼기(choroid plexus)의 시계는 시교차상핵에 영향을 주어, 자고 깨는 시계의 주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맥락얼기가 저희의 관심을 끈 것은 단순히 커다란 리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시교차상핵 보다도 큰 리듬이었는데, 그 이유가 확실치 않았습니다. 시교차상핵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맥락얼기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며, 맥락얼기의 기능이 24시간 주기로 활성화된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그룹에 의해 맥락얼기 시계가 발표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 또한 다른 프로젝트들에 참여하느라 맥락얼기 시계에 대한 해석은 나중으로 미루어야 했습니다.
마침 저희가 '마지막 시계유전자'라고 칭했던 Chrono를 현재 KAIST에 있는 김재경 교수와의 공동연구로 발표하게 되는데, 일견 맥락얼기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전자 그리고 하나는 대뇌 조직이지만, 둘 다 눈에 띌 정도로 커다란 진폭의 진동을 합니다. 그럼에도 시계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들은 아니라는 점 또한 둘의 공통점입니다. 하지만 맥락얼기의 시계가 없으면 시교차상핵의 시계도 그 주기를 바꾸게 됩니다. 즉, 없어서 안되는 존재는 아니지만, 없으면 안되는 존재이기도 한 셈입니다. 이전까지는 시교차상핵의 시계가 다른 주변들의 시계를 일방적으로 조절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사실은 주변의 시계도 시교차상핵의 시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이번 연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발견입니다.
생체시계 분야는 시간(chronos)과 생물학(biology)을 합쳐 시간생물학(chronobiology)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첫 발견은 300년전쯤에 이루어졌으나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세계대전 전후로, 작년에야 노벨 생리의학상을 처음으로 배출한 젊은 분야입니다. 특이하게도 독일과 일본에서 상당한 연구가 이어져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구그룹이 늘고 있으며, 대만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수면과 생체시계는 연관은 있으나 서로 독립적인 현상으로, 생체시계는 특히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생리현상들의 조절에 밀접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대 쪽에서 많이 관심을 갖는 분야인 것 같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처음 맥락얼기에 생체시계가 있다는 사실은 2013년 일본의 이화학연구소(RIKEN) 산하 뇌과학연구소(Brain Science Institute)에서 뇌 전체의 생체시계들을 훑어보다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생물학 실험은 뇌과학연구소에서 이루어졌고, 이후 수학적인 분석들을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OIST)과 독일 베를린의 고등과학원(Wissenschaftskolleg zu Berlin) 그리고 훔볼트 대학(Humboldt Universität)에서 진행하였습니다. 마지막 시뮬레이션과 퇴고작업은 타이페이의학대학(TMU, Taipei Medical University)과 쌍화병원(Shuang Ho Hospital)에서 하였습니다. 5년간의 연구이다 보니 그렇기도 했지만, 이 과정에서 참 많은 기관에 소속을 두게 되고 도움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본 연구는 일본과 독일간의 공동교류를 위한 펀딩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후 일본문부과학성에서 과학연구비라고 불리는 연구비 보조를 두 개 받게되어 기금의 부족없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이화학연구소는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의 독자적인 연구를 방해하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연스레 발견한 현상을 끈기있게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은 여기에 더해 효율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따라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발명한 Moran's I라고 불리는 분석론은 중간에 다른 논문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지금 속해있는 TMU는 타이페이 명문의 사립대로 최근 뇌과학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였습니다. GIMBC(Graduate Institute of Mind, Brain, and Consciousness)라는 국제 대학원을 만들어 자유로운 기초과학적 풍토를 조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학생과 교수진을 대부분 외국인으로 하고 모든 강의와 토론을 영어로 진행하며, 특히 의대의 자원을 이용하면서 신경과학과 인지과학, 그리고 철학을 연계하는 대학원 과정을 전액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학생들의 응모를 바랍니다 (
http://gimbc.tmu.edu.tw/그리고
http://consciousbrain.tmu.edu.tw/index.php?lang=3 을 참조).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생체시계는 낮과 밤에 따른 조도의 변화와 상관없이 작동합니다. 따라서 시계 그 자체의 특성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최소 48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자신의 생체리듬은 망가지면서 실험 대상의 생체리듬을 연구해야 하는 역설이 있는 셈입니다. 어둠속에서 생체시계를 보다 보면, 생명체는 언제나 리듬속에서만 살아있는게 아닌가 깨닫게 됩니다. 심장이 1초 미만의 시간에 한번 뛰듯, 자고 깨는 일과도 하루의 시간을 두고 일어납니다. 이런 일과가 사라지는 순간이 죽음이 오는 순간이라면, 생명은 단지 하루하루의 쳇바퀴를 도는 활동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생체시계, 혹은 시간생물학 분야는 종사자들이 강한 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학문분야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많은 학자들이 포진해 있기는 하지만, 일본이나 독일, 네덜란드, 영국도 못지않은 전통과 학자들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국가에 있더라도 해외의 다른 네트워크와 교류하기가 비교적 쉬운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유학 대상 국가를 고려할때 그만큼 선택지가 넓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시간생물학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발전시켜 나갈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물학 분야는 점점 거대과학화하고 있으며 비싼 장비와 자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생체시계는 어떤 시스템에서도 관찰 가능하며, 큰 예산과 장비 없이 수학을 포함한 여러가지 접근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습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지금까지의 실험결과에서 얻게된 몇가지 수학적인 아이디어들이 있습니다. 동물실험실을 준비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일단은 이를 발전시켜 보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후에 남은 실험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고자 합니다. 지금은 생체시계를 주로 연구하고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신경과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의식(consciousness)에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의식의 정도가 정량화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생명활동의 일부인지 혹은 기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를 연구해 나가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돌아보니 2001년에 포항공대의 학부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이 길에 들어와, 시교차상핵을 통해 생체시계 공부를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간 여러나라의 여러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하는 행운을 가져왔지만, 누구보다 12년이나 함께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OIST의 그룹리더 홍성호 박사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남기고 싶습니다. 연구가 하나의 여행이라면, 길고 긴 어려운 시간이 있었어도 결국은 추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거품과 함께 밤바다의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가던 오키나와 Moon Beach의 파도를 추억하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