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먼저 화학자로서 생명과학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을 소개할 기회를 주신 BRIC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자연은 수십억년을 이어져 온 진화 과정의 결과로 구조가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활성을 가지는 천연물을 매우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이를 인간의 지성으로 최대한 따라잡고자 하는 전합성 (Total synthesis)은 화학자들에게 큰 도전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학문이며 잘 이루어진 전합성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예술로서 평가 받기도 합니다. 또한,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천연물의 구조-활성 관계 (Structure-Activity Relationship) 연구를 통한 신약 후보 물질 도출을 위해 효율적인 합성 경로 개발은 필수적입니다. 예를 들어, 실제 임상에서 연구되고 있는 매우 복잡한 구조의 천연물인 Bryostatin 1, Ingenol, Phorbol 등을 얻기 위해서 기존 합성법으로는 대략 40~60 단계를 거쳐야 했으므로 물질 자체의 공급에서부터 큰 제약이 있었으나 최근 15~20단계만에 수 g 단위로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보고되어 앞으로 새로운 신약으로의 개발을 기대하게 합니다.
제가 합성을 목표로 했던 고리형 펩타이드인 ohmyungsamycins A와 B는 일전에 한빛사에 소개된 바 있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오동찬 교수님 연구실에서 분리 보고된 물질이며 이들의 항결핵 활성 및 그 작용 기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오고 있었습니다. 고리형 펩타이드 계열의 천연물 합성의 경우 선형의 펩타이드 (Linear peptide)를 먼저 합성 후 거대고리화 반응 (Macrocyclization)을 통해 최종 화합물을 얻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러나 선형 펩타이드의 서열에 따라 고리화 반응의 반응성이 천차만별이며 ohmyungsamycin의 경우 특히나 반응에 방해를 줄 수 있는 덩치가 큰 아미노산들로 구성되어 있어 합성 계획의 수립에 깊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많은 선행 연구들을 접해본 결과, 목적하는 천연물 고리의 입체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분자내 수소 결합을 최대한 이용하여 선형 펩타이드가 고리화 반응 전에 미리 구부러진 구조를 이루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고, 이를 ohmyungsamycin에도 적용하여 turn을 유도할 것으로 생각되는 펩타이드 서열을 선정했습니다. 심도 깊은 NMR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자 모델링으로 예상했던 부분이 실제 beta turn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했으며 합성 또한 잘 진행 되었고, 이 결과를 이용하여 ohmyungsamycin B의 구조 교정 및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간단한 유도체도 합성하여 보고할 수 있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본 연구는 前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및 現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의 생리활성분자 합성 및 개발 연구실을 이끌고 계시는 서영거 교수님의 지도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저희 실험실은 천연물 전합성 뿐 아니라 의약화학적 접근을 통한 신약후보물질 발굴에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유기화학자로서 신약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제가 입학할 때만 해도 구성원이 15명이 넘는 큰 실험실이었지만 교수님께서 서울대학교에서 정년을 하신 후에는 총 저 포함 총 4명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차의과학대학교에 둥지를 틀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모든 합성학자들이 그렇겠지만 합성의 핵심 단계 (Key step)가 성공했음을 나타내는 NMR 스펙트럼을 얻었을 때, 최종 단계를 진행 후 알려진 천연물의 NMR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스펙트럼을 눈으로 보았을 때 뛰던 가슴의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3년 반 동안 고민했던 시간들이 한번에 보상받는 듯 했던 그날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세상에 내 놓기 위한 준비를 하며 조금이라도 더 명확하게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고민 끝에 figure 하나 하나가 완성되어 가던 매 순간들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아직 배우는 입장에서 조언이라는 것을 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른 연구도 마찬가지겠지만 나의 타겟 화합물을 정하고 그것을 정복하기 위한 과정은 최소 2년 이상 길게는 5년, 10년도 걸리는 끈기 없이는 해 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반응 양상이 배웠던 것들과 달라 한참을 헤맬 때, large-scale 반응이 실패해 수 g의 화합물을 잃어버릴 때와 같은 시련들을 이겨낼 수 있는 끈기가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 같습니다. 일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다른 삶과의 밸런스를 잘 조절해 가며 지치지 않고 나아갔으면 합니다. 전합성은 목적 화합물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면서 유기화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모두 접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지금 눈앞의 산을 한번 오르고 나면 synthetic methodology, chemical biology 등 유기화학이 이용되는 한에서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연구 범위를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초보 연구자로서 항상 다음엔 어떤 일을 해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행 연구의 ‘구멍’을 잘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시판되는 약물들은 효소의 기질이나 수용체의 리간드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여 설계된 저분자 약물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 몸의 생명 현상은 단백질 사이의 상호작용 (Protein-Protein Interactions, PPIs)을 통해 훨씬 많은 수가 조절되며 전통적인 저분자 약물은 이를 타겟으로 하기 어려운 단점을 안고 있습니다. 제가 익숙하게 다뤄 온 고리형 펩타이드는 대표적으로 PPI를 조절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해서 약물로 다룰 수 있는 생명 현상의 범위를 확장시켜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먼저 정년 후에도 연구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여전히 저희를 이끌어 주시는 서영거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좁은 시야에 갇혀 연구를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한발 물러나서 넓게 보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고 항상 깊게 새기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또한 부족한 저에게 학문적으로, 인간적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신 모든 실험실 선, 후배님들 역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좀더 편한 삶을 살 수도 있을 전문직의 길을 내려놓고 오래 돌아가야 하는 길을 선택한 큰아들을 전적으로 믿어 주신 부모님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을 동생에게 가족에 많이 신경 못써 죄송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