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우리는 아직 우리의 뇌 속에서 생각과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또한 그 생각이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일련의 과정들을 잘 모릅니다. 뇌과학자들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떤 신경세포들이 언제 활성화되는지, 어떻게 상호연결을 하고 있는지 등을 밝혀내기 위한 수많은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정 행동을 하는 동안 행동에 참여하는 신경세포를 시공간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표지(labeling)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를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은 이제 신경과학계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으며, 이번에 발표된 논문은 이에 한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문에서 소개된 Cal-Light(Calcium and Light-Induced Gene Handling Toolkit)는 빛과 칼슘을 동시에 이용해 특정 행동을 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를 표지하고,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는 기술입니다. 청색광과 칼슘 농도를 동시에 인지해서 활성화된 신경세포 내에서만 형광을 나타내는 리포터 유전자를 발현시킬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은 원하는 때에만 빛을 켜고 끔으로서 시공간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활성화된 신경세포만을 그림처럼 색깔로 시각화시키는 방법이고, 또한 광유전학에서 널리 쓰이는 특정 단백질들을 이용한 스위치 방식 (채널로돕신과 할로로돕신 리포터)을 통하여 이미 표지된 신경세포들만의 활성을 강화 또는 억제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 기술을 통해 뇌를 구성하는 수많은 신경세포 중 궁극적으로 특정 행동에 참여하는 신경세포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세포들과 행동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핵심 기술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뇌과학자들은 이제 Cal-Light를 이용하여 신경세포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고, 더 나아가 어떤 신경회로가 사고와 행동을 이끌어 내는지에 대한 이해를 더 잘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제가 아는 것만 해도 전세계 서너개 그룹에서 동일한 컨셉의 기술개발을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에 있어서 우리만 유일하게 진행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 연구가 조금 더 빨랐을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운이 매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Cal-Light와 굉장히 유사한 FLARE(Fast Light- and Activity-Regulated Expression)라는 기술이 같은 날, 같은 저널, 같은 이슈에 우리 논문과 나란히 출판 되었습니다. 지난 해 우리 연구소에서 FLARE의 교신저자인 Dr. Alice Ting의 세미나가 열렸을 때, Cal-Light와 너무나 똑같은 기술개발 및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우리 연구진 모두가 적잖이 놀랐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연구의 진도는 우리가 앞서 있었지만, 상대는 소위 업계에서 빅가이로 통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미나 후 그룹리더 디스커션을 통해 논문 투고시 함께 내서 평가받자고 구두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마지막 논문 투고 전 Alice Ting 그룹으로부터 논문 투고 준비가 미흡하니 시간을 좀 더 달라는 연락이 왔었고 이후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우리 그룹은 약속된 날짜까지 기다린 후 논문을 투고하였고, 마침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논문개제일 당일 우리 연구진은 또 한 번 놀랄수밖에 없었습니다. Alice Ting의 논문이 Cal-Light와 함께 출판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 논문은 우리보다 논문 투고 날짜가 약 이 주일 먼저였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상했다가 게재 수락은 Cal-Light가 닷새 빨랐다는 것을 확인하고나서 그나마 마음이 놓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 연락을 계속 기다리다가, 같은 날 같은 저널이 아닌, 다른 저널에 그들보다 더 늦게 논문이 발표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현재 제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이곳은 Max Planck Florida Institute for Neuroscience (MPFI)입니다. 이곳은 독일의 저명한 Max Planck Institute의 미국 브랜치이며 신경과학 분야로 특화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총 여덟 명의 그룹리더(두 명의 디렉터 포함)들이 있는 작은 규모의 연구소이지만, 소위 NSC라고 불리는 유명저널 및 자매지에 일 년에도 수 편씩 논문이 게재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 연구소의 자랑인 네 군데의 코어 퍼실리티 (Electron Microscopy, Light Microscopy, Mechanical Workshop, Molecular Biology)는 전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미 각국 연구소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코어랩의 헤드들이 여기에서 연수를 받아서 갈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독일 정부로부터 우리 연구소의 뛰어난 연구성과에 대한 포상금 차원으로 한화 230억원 정도를 매년 추가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재정적 바탕하에서 이루어지는 연구 자율성 보장이 연구소를 더욱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내 토종 박사라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는데, 이곳 MPFI는 미국인들이 이방인으로 느껴질 정도로 정말 다양한 국가의 인종이 함께 일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연구자들은 신이 난 상태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크고 긍정적인 설렘이 있는 곳입니다. 연구소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커피머신 앞입니다. 365일 무료로 제공되는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은 연구소내 많은 과학자들을 커피머신 앞으로 이끌고 있으며 그 앞에선 출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다양한 주제로 자유로운 디스커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모든 데이터는 소중하며 언젠가는 꼭 쓰일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가능한 한 자세히 폴더별로 정리를 해놓고 있습니다. 또한 무엇이든 떠오를 때마다 메모하는 습관은 제가 연구활동을 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지독한 경험지상주의자입니다. 무조건 해봐야지만 알 수 있다는 무식한 모토가 저를 신경과학도의 세계로 입문하게끔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경험주의자들은 실패가 많고, 목표를 달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과학 앞에 나이없고, 과학 앞에 부끄러운 것은 없습니다. 저에게는 연구소의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이고, 그들 모두에게 배울 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늘 묻고 배우려 하고 그들의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려 합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그것을 겸허히 드러내며 상대방과의 교감을 통해 더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과학자로서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첫째, 처음 MPFI에 박사후과정으로 왔었을 때, 새벽 늦게까지 너무 일만 해서 다른 랩의 외국인 포닥들한테 뒤에서 욕도 먹고, 위화감 조성한다는 얘기를 들었던적도 있습니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보니 제 자신이 점점 시키는 일만 기계적으로 해내는 숙련된 테크니션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걸 느낀 다음부터 저는 매일 실험 시작 전 아침 하루에 한시간씩 책상에 앉아 연구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무엇인가를 노트에 계속 씁니다. 논문을 빠르게 읽습니다. 데이터든 연구계획서든 언제 어디서나 제출할 수 있는 준비를 해놓습니다. 누구에게나 3분간 제가 하는 일을 설명할 수 있게 연습을 해놓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박사과정 때 깨달았던 것을 포닥을 나와서야 깨달았습니다. 저와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면 얼른 헤어나오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하지 말라는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올바른 시스템 속에서 올바른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과학자라는 직업이 현실과 일정 부분 단절된 면이 있습니다. 하루 중 실험하고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도로변 풀냄새 맡을 기회도 많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일상에는 풍부한 일들과 많은 인간관계가 존재합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고립된 셈이니 연구에만 너무 몰두하지 말고 주변과 소통을 많이 할 것을 권합니다. 결국에는 주변 연구자들과 협력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늘 이런 것들이 저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힘이었습니다.
셋째, 최근 신경과학 분야는 전공, 기초 및 임상연구, 학계와 산업계 등 모든 경계가 불분명하고 또 그만큼 분야간 진입장벽이 낮아졌습니다. 우리 연구소의 일례를 들자면, 실제로 동물실험을 최소화 한 채 방대한 양의 생체내 신호로 이루어진 빅데이터만 분석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도 여럿 있습니다. 물리학, 전기공학 출신 과학자들도 아주 많습니다. 모든 것이 매우 다양한 가운데 공통점은 서로 각기 다른 툴을 사용하여 그들만의 신경과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신경과학의 트렌드도 빨리 움직이고 있고 다양한 학문을 모두 아우르는 연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융합학문을 이용한 새로운 기술개발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물론, 급류에 휩쓸려 가듯 트렌드를 따르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으나 너무 경외시 해도 도태되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면 항상 국제적인 안목과 감각을 유지하고 첨단에 서있을 수 있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자신도 항상 변화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작금의 과학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Cal-Light를 이용하여 특정 행동에 관여하는 신경세포들을 정확히 관찰하고, 조절할 수 있으며 또한 특정 신경회로와 행동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연구할 수 있게 된 만큼 우울증,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신경정신질환이나 질병들에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박스 밖에서 생각하려면 박스가 있어야 합니다. 기초과학이 올곧게 서야 그 위의 기반 산업 역시 탄탄해질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혁신은 꾸준한 투자와 탄탄한 기초가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이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도록 개개인의 과학자들이 학계가 직면한 문제 및 발전가능한 시스템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석박사과정 8년동안 호원경, 이석호 선생님과 함께 연구하고, 또한 연구자로서 훈련받고 그 때 배웠던 지식과 경험들이 지금에 와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 때부터 과학자 대 과학자로 대우를 해주신 호원경, 이석호 선생님께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이곳 미국 시스템 속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는 권형배 박사님을 만나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면서 연구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과학자로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를 항상 신뢰해주시고, 뛰어난 리더란 무엇인가를 몸소 실천해서 보여주고 계신 권박사님, 항상 존경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성과는 이동민 박사님의 독보적인 스마트함, 원천기술,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일들이었습니다. 300가지가 넘는 초기 버젼의 컨스트럭을 테스트하고 그 중 최적의 컨스트럭을 만들어 내신 기술개발자이신 이동민 박사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박사님의 원천기술과 숨은 노력들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또한 학부생이지만 저와 한 팀으로 일하며 끝까지 많은 도움을 준 Patrick이 없었다면 이렇게나 빨리 끝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원찬 박사님, 정강훈 박사님, 최준호 박사님을 포함한 랩원들의 소중한 디스커션과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항상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제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가장 든든한 내 편인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