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에볼라(Ebola), 에이즈(HIV), 독감 바이러스(Influenza)들은 모두 동물들로부터 유래한 인간 바이러스들입니다.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의 단백질 등을 이용해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되었는데, 숙주 또한 진화 과정에서 이를 회피하는 방식을 습득해 왔겠지요. 이런 과정에서 '종간 벽(species-specific barrier)'이 형성되었을 것이고, 이를 연구하여 축적한 데이터들은 병원성 바이러스의 전염을 통제하는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입니다(제 연구가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실제 동물원 사육사들과 인간의 가장 가까운 종인 유인원들 간의 바이러스 전염이 종종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번에 발표한 연구결과는 단순포진 바이러스(Herpes Simplex Virus 1, HSV-1)의 복제에 숙주세포의 NBS1이라는 단백질이 어떻게 종간 전염의 barrier로 작용하는지를 밝힌 논문입니다. NBS1은 원래 세포의 DNA 손상복구에 관여하는 주요 단백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바이러스의 replication에도 이 단백질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게 최근 알려졌었지요. 인간과 여러 유인원의 NBS1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시작한 다양한 실험들로부터 원래 기능인 DNA 손상복구에는 종간의 차이가 없지만, HSV-1의 감염성에는 차이를 보임을 확인하였고 이는 NBS1의 특정 구간의 단백질 비정형 구조(intrinsically disordered structure)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습니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제가 주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콜로라도 대학(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의 바이러스 진화 유전학자인 Dr. Sara Sawyer 그룹에서 도움을 요청해 공동연구를 하던 중에 어찌하다 보니 제가 만든 데이터양이 압도적으로 많았고(데이터양에 비례한 저자 자격의 우선권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비정형 구조의 차이가 중요할 것이라는 저의 아이디어가 논문 제목으로까지 쓰이게 되면서 1차 논문 드래프트에서 2 저자였던 제가 교신저자와 1 저자의 배려로 공동 1 저자로 승격되었습니다.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저를 배려했는지 아니면 저의 간절한 기운과 시선이 뒤통수에서 느껴져 어쩔 수 없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운이 좋았던 거지요. 1 저자의 크레딧을 나눠 가질수 없다고 마음에도 없는 거절을 할까 고민도 잠깐 했었지만, 미생물학 분야의 최고 저널인 Cell Host & Microbe에 투고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제가 소속된 기관은 펜실베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이하 UPenn)와 Children's Hospital of Philadelphia (이하 CHOP)입니다. UPenn은 미 동부 9개 아이비리그 대학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익히 아실 것이고, CHOP은 어린이 전문병원인데 대다수의 교수급 인력들이 이 두 기관에 소속되어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가 미국의 오래된 역사 도시 중의 하나여서 최초라는 타이틀이 많은데 UPenn은 미국 최초의 병원을 보유한 종합대학이며 CHOP은 세계 최초의 어린이 전문병원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이 두 기관 모두 연구 중심의 우수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암 전문연구소인 Wistar Institute와 UPenn medical school 그리고 CHOP은 공동으로 Biomedical Postdoctoral Program을 운영하며 박사후연구원(이하 포닥)들의 연구활동 및 교육, 복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학 분야는 연구자 규모와 실적 면에서 세계 어느 연구소와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만큼 연구하기 좋은 곳입니다(라고 PI의 연구제안서에 적혀 있더군요. 물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저는 Dr. Matthew Weitzman과 일하고 있습니다. 샌디에고에 있는 Salk Institute에 처음 랩을 꾸려 DNA virus가 숙주세포의 DNA damage response를 활성화 시킴을 발견하고 다양한 관련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5년전 필라델피아로 옮겨와(왜왜왜!! 샌디에고에 그냥 있지 왜!!! 캘리포니아에 살아보고 싶었다고!!!) 한국에서 온 성실한 포닥(접니다)과 함께 새로운 랩을 꾸리기 시작해서 지금은 6명의 포닥과 2명의 대학원생, 2명의 테크니션, 2명의 학부생(이들은 UPenn Wharton school 학생들로 전공이 경영학입니다. 지금은 제가 이들을 가르치지만, 훗날 이들이 창업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과학자를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은 과학자를 장래희망으로 꼽았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저는 꿈을 이뤘습니다(이제 두 번째 꿈인 대통령이 되는 것만 남았습니다).
모든 연구들이 그렇지만 관찰한 현상은 확실한데 그 이유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많지요. 이번 연구에서도 메커니즘의 실마리를 찾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래전에 박사과정 시절 지도 교수님을 따라 대전의 KRIBB에서 열렸던 워크숍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 접한 분야가 단백질의 비정형구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분야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저 이틀 동안 세미나를 통해 이런저런 연구 결과들을 재미있게 보았고 구조 예측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웠었습니다. 그런데 7년도 더 지난 지금, 그때의 경험이 결정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지요. 다양한 직간접의 경험이 기대하지 않던 큰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쁜 실험 스케줄에도 캠퍼스에서 열리는 다양한 강연과 세미나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될 수 있으면 생각을 바꾸시고 꼭 하고 싶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십시오. 그리고 많이 해보십시오. 해보지 않으면 그 결과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해보나 마나 실패가 보이는 연구들도 물론 있습니다. 지도 교수님이나 동료들과의 많은 대화와 토론이 이런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 교수님의 오피스 문턱을 많이 넘나들수록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을 할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진리(?)를 오래전에 알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성숙한 과학자가 되어있었을 겁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현재는 HSV-1의 ICP0라는 바이러스 단백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단백질은 전사활성인자(transactivator)이며 단백질 분해를 유도하는 ubiquitin E3 ligase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이 단백질의 표적을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제 딸이 태어날 때 시작한 일이라서 딸 이름을 따 'Claire Project'라고 거창하게 명명도 했는데 요즘 일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19개월 딸이 떼를 많이 쓰기 시작하고 말도 잘 안 듣기 시작했는데 프로젝트명을 바꾸고 싶군요.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바이러스 E3 ligase에 의해 ubiquitination 되는 단백질들은 프로테오좀(proteasome)을 통해 분해가 되기 때문에 숙주의 면역기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최근 저는 ICP0가 많은 숙주 세포 단백질들의 비분해성(non-degradative) ubiquitination을 유도함을 발견하였습니다. 단순히 단백질 분해를 통한 숙주 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더욱 다양한 방식의 단백질 변형(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을 통해 매우 정교하게 숙주 세포를 조절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바이러스에 의해 ubiquitination이 유도되는 숙주 세포 단백질들의 기능 변화를 밝히고자 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한창 실험 중이던 프로젝트가 다른 그룹에 의해 추월당해 낙담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구 위에는 나와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한 사람이 50명은 있고 그들 중 5명은 실제 실험으로 구현을 시도하며 2명은 실험에 성공하고 1명이 먼저 논문을 출판한다.' 그 한 명이 되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연구에 몰두하는 모든 포닥 및 대학원생들을 응원합니다.
원래 미국의 철학과 문화가 그러하기도 하지만 어린이 전문병원에 있기 때문에 더욱 가까이서 보고 느끼는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보호 의무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지난 4.16 세월호 비극으로 인해 제 인생의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즘도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어린아이들의 안타까운 사건 사고들에 대해 우리 어른들이 깊게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지구가 매우 덥습니다. 자연환경이 많이 망가졌지요. 빙하가 녹고 있고 북극곰은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연구활동을 하면 필연적으로 많은 플라스틱웨어 쓰레기들이 나옵니다. 유독성 폐기물들도 많이 나오지요.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가장 쉬운(?) 일은 실험 성공율을 높여 실험 폐기물들의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머리를 잘 굴려보면 단 하나의 일회용 파이펫으로도 세포 계대 배양의 전 과정을 마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 달래와 딸 유나, 힘이 되어줘 고맙고, 아버지, 어머니,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가족들, 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고동락하는 동료 한인 박사님들 모두 건승을 기원합니다. 과학자로서의 삶에 첫발을 내딛게 도와주시고 풍족한 토양 위에 연구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신 안진현 교수님과 채호준 교수님 감사합니다. 두 분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철학이 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방금도 "all good?"을 외치며 지나가는 보스 Matt에게도 감사 인사와 함께 내년 연봉 협상에서 제가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다소 장난스러운 표현들에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퍽퍽한 실험실 생활에 지친 여러분께 작은 웃음 드리고 싶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록일 201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