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제 전공분야는 신경과입니다. 이렇게만 들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과인지 알기 어려우실 테지요. 중풍도 보고, 간질발작도 보고, 파킨슨 병이나 손 떨리는 것도 보고.. 이렇게 설명하면 '아~'하고 이해가 되는 듯 합니다. 수술은 안 합니다.
그 중에 저는 신경이과/신경안과 (Neuro-otology/Neuro-ophthalmology) 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냥 어지럽고, 머리 아프고, 사물이 두 개로 보이면 제가 진료해 드릴 수 있습니다. 무척 재미있는 분야입니다. 그리고 매우 어렵습니다. 텍스트를 50번쯤 읽어도 문장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어떤 천재 같은 분이 이런 문장을 그것도 영어로 쓰셨을까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이해 안 되는 문장을 머리 속에서 계속 굴리고 있다 보면, 어느 날 응급실로 찾아 온 환자가 '그건 이런 거거든' 하고 실사로 보여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정말 로또 맞은 기분이 듭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런 마약 같은 기분에 낚여서 한숨 한 번 크게 내쉬고 다시 일어나고 그러나 봅니다.
아무튼, 저희 분야에선 눈을 보고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병적 또는 생리적 현상을 판단하는데요, 진정 '눈은 마음의 창' 이라 하겠습니다. 즉, 많은 신경계 질환에서 눈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위치 등에 이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잘 관찰하고 분석하면, 불확실한 현상을 진단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질환의 예후를 알 수 있어, 실제, 신경과 다른 분야와의 협동 연구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신경과 여러 영역 중에서도 주목 받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분야입니다. 즉, 밝혀진 것보다 밝혀야 할 것들이 많고, 설명된 것보다 설명되어야 할 것들이 많으며, 치료된 것보다 치료해야 할 질환이 더 많은 셈이죠. 저희 스승님도 '십 년 넘게 눈깔만 봤는데, 아직도 첨 보는 환자가 있다.' 하실 정도니까요. 남들이 이미 다 해놓을 것을 그냥 저냥 따라가고만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처음 보는 게 나타나서 쪽팔린다 생각하지 않으실 분이라면 충분히 재미있어질 분야입니다.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는… 돌이키면 눈물만 나는 슬픈 이야기들입니다.
제 논문의 큰 줄기는 전정안 반사 (vestibulo-ocular reflex, VOR)의 central modulation 과 연관된 것인데요, 지금보단 조금 젊어서 충만한 패기만으로 시작했던 작업입니다. 사실, 그때 전 VOR 의 'V'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거든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주제는 제 선대 전임의 선생님들께서 몇 번 투고하셨다가 reject된 (물론 제 논문에선 접근 방식도 다르고, 환자군도 좀 더 구체화되었습니다.) 것이었더랬죠. 어찌되었든,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도 연구결과가 나쁘지 않아 맨 처음엔 매우 훌륭한 모 저널에 무작정 투고해 보았는데요. 정확하게 6일만에 받은 불길한 메일은 'With regret…'으로 시작되는 내용의 것이었습니다. 짤린 것을 너무 속상해 하지 말라는 듯, 본 저널의 Impact factor가 신경과 영역 저널 중에선 1,2 등이라는 내용의 길고 긴 위로와 함께 말이죠.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워낙 쎈 데 냈으니깐.' 그렇게 스스로를 토닥이며, 다음 저널에 투고하였습니다. 한 달이 넘도록 짤림 메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투고한 지 두 달 째 되던 때, 기다린 시간만큼이나 길고 꼼꼼한 Review 와 함께 reject 메일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 짤렸을 때와는 달리, 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내 논문이 어때서..! 그리고 슬펐습니다. 처음으로 쓴 Original article 인데, 완전 소중한 내 논문이 장차 구천을 떠돌게 될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왜 또 짤렸는 지 Reviewer 들의 의견을 차근차근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중간 몇 번 더 울컥울컥하였으나, 결국, 전 제가 고슴도치 엄마였단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Reviewer 들이 지적한 대로, 한치도 벗어나지 않게 한자한자 정성들여 논문을 고쳐 나갔습니다. 열 달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그렇게 새로 태어난 논문은 예전의 그 논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욕심이 났습니다. 미친척하고 첫 번째 냈던 저널과 비슷한 Impact factor 를 가진 저널에 내어 보기로 합니다. 매도 처음 맞는 몇 대가 따끔할 뿐, 갈수록 무뎌지는 법입니다. '이번에도 짤리면 비SCI저널에 내지 뭐.' 제 스승님이 투고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길고 지루한 과정은 '뚝심'으로 통하시던 스승님마저도 지쳐버리게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Accept.. 감사합니다. 우주의 모든 신들께 정말 감사 드립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분당서울대병원입니다. 신경이과/신경안과 분야가 너무 공부하고 싶어 수많은 용서를 구하면서, 와서 일하게 된 병원입니다. 병원이 크고 환자가 많은데다, 교수님들이 젊은 편이셔서 모두들 연구와 진료에 대한 투지로 이글거리십니다. 옆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저절로 함께 이글거리게 됩니다. 와서 보시면 거짓말이 아니란 걸 아시게 됩니다. 교수님들 사이나 교수님과 전임의, 전공의 간에도 격이 없어, 의사 소통이 빠르게 이루어 지고, 환자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도 쓸모 없는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계획을 확실히 정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과간, 과내 공동 진료와 연구가 허물없이 잘 이루어져 연구하기에 좋은 병원입니다.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매일매일을 보람과 자부심으로 산다 하면, 당연히 거짓입니다. 오히려 좌절과 고통이 더 지배적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으므로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이 글을 몇 명의 의사분들이 읽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제가 아직 누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저 모르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거나, 숨기려고 아는 체 얼버무리지 않고, 모르겠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모르는데 어쩌라고'는 아니구요, 알 수 있을 때까지 텍스트와 저널을 찾고, 환자에서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더 해보고 싶은 것은 너무 많습니다. 모든 시험 공부가 당일치기로 결정되는 것처럼, 신경이과 전임의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인지, 이것도 좋겠다, 저것도 괜찮겠다 싶은 아이디어들이 자꾸자꾸 떠올라 마음이 괴로울 지경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저의 계획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또 할 수 있을지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저에게 주어진 일에 맞추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입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감사의 말씀들이겠죠. 우선, 이 시점에서 이렇게 글을 쓸 기회를 주신 BRIC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사실 지금 저에겐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을 마무리하여 요약정리 해야 할 시간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무리 작업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지, 그냥 보람찬 마무리가 될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머리 속에서만 시끄럽게 와글대던 생각과 고민들을 글을 쓰면서 하나씩 바닥에 펼쳐 두고 보니, 소리가 조금은 수그러드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저희가 충분히 연구할 수 있게 소중한 담당 환자들을 설명하고 설득해 주신 분당서울대병원 뇌신경센터 배희준, 한문구 교수님, 늘 시집 못 가고 있다며 절 딸처럼 걱정해주신 박성호, 김종민 교수님, 늘 아끼고 챙겨주시는 김상윤, 박경석 교수님, 감사 드립니다. 제가 이 분야를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신 전범석 과장님, 노재규, 이광우, 윤병우 교수님, 그리고 본원 서울대병원 교수님 모두 감사 드립니다. 검사실에서 환자들 토하는 것 손으로 받아가며 같이 고생한 오세원 선생, 뭔가 막히는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 준 김효정 선생, 고맙습니다. 그리고… '논문은 두 줄 띄워 쓰기'부터 가르쳐 주신 '뚝심' 김지수 교수님, 정말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어느 곳에 가 있더라도 항상 교수님 말씀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