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이번 연구는 불소화된 단백질 표면과 주변을 감싸는 물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주제로 삼아, 분자 수준의 미시적 시공간에서 물리화학, 생물리학적으로 접근하였습니다. 불소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체분자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소의 여러가지 독특한 성질 덕분에 불소와 관련된 연구만 다루는 잡지가 따로 있을 정도로, 화학자들은 불소가 포함된 수많은 분자들을 개발해 왔습니다. 산업적, 의약학적으로 중요한 응용의 예로는 가소성 성형물질(plastics)과 냉각제(refrigerants), 화재 지연제(fire retardants), 마취제(anesthetics) 등을 들수 있습니다.
불소와 관련된 여러 특성 중에서도 불화탄화수소(fluorinated hydrocarbons)의 배타적인 용해도는 특히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대상입니다. 이를테면 불화탄화수소계 물질은 소수성(hydrophobic)으로 알려져 있지만 과불화탄소(perfluorinated carbon) 화합물들은 탄화수소(hydrocarbon) 화합물로 이루어진 용매에도 거의 녹지 않습니다. 만약 물과 헥산(hexane), 과불화헥산(perfluorohexane)을 한 용기에 섞어 두면, 서로 녹아들지 않는 특성때문에, 곧 세개의 다른 층으로 나누어집니다. 테프론(teflon) 코팅된 후라이팬의 개발이 바로 이러한 불화탄화수소 화합물의 특성을 잘 살린 상용화의 한 예라 생각됩니다.
생물학·생화학적 관점에서 불화탄화수소 화합물의 초소수성(hyper-hydrophobicity) 혹은 친불소성(fluorophilicity)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러한 특수한 용해도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연구의 한 분야는, 바로 아미노산에 불소를 도입하여 열적, 화학적 측면에서 단백질의 구조안정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바 입니다. 아니러니하게도, 가장 전기음성적(electronegative)인 불소가 포함된 (생)화합물들의 강한 소수성은 소위 극성 소수성(polar hydrophobicity)이라 불려 왔고, 이는 유기·의약화학계에서 아주 중요한 특성으로 믿어져 왔지만 분자 수준의 메커니즘에 관해서는 연구가 미비한 실정입니다. 본 연구는, 단백질 공학(protein engineering)에 있어서 불소의 유용한 물리·화학적 역할을 밝히고자, 단백질 표면에 도입된 불화 아미노산잔기(fluorinated amino acid residue)와 물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펨토-피코초로 대변되는 분자운동의 시간영역대에서 분광학적 실험방법으로 탐구해 분자수준에서 규명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칼텍(Caltech;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은 엘에이(LA)의 북쪽에 위치한 파사데나(Pasadena)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간혹 한 여름에 매우 더운 날씨가 지속되기도 하지만, 낮은 습도와 일년 내내 펼쳐진 푸른 하늘 덕분에 대체로 쾌적한 기후를 자랑합니다. 거의 일년내내 즐길 수 있는 야외 활동과 주변의 다양한 인종의 이민문화는 가끔씩 고되고 지루해 지는 연구생활에 활기를 불어 넣기에 충분합니다. 칼텍에는 약 1000여명의 학부생, 2000명 정도의 대학원생 및 박사후 연수생(postdoc)들이 약 300명 정도의 교수들과 함께 이공학 분야에서 강도 높은 교육과 첨단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3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왔습니다.

Wilson South Parking Structure 옥상에서 바라본 Broad Center 및 Beckman Institute의 모습
제가 속해 있는 칼텍산하의 Physical Biology Center for Ultrafast Science and Technology(이하 UST)에는 199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아메드 즈웨일(Ahmed H. Zewail) 교수의 지도하에 전세계에서 모인 대략 20명의 과학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UST는 여러가지 광학 및 전자광학적 분석법을 통해 물리 및 화학, 생물학 전반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약 10여대의 펨토초 레이저(femtosecond laser), 3대의 전자현미경(electron microscope), 4대의 진공챔버(vacuum chamber), 수퍼컴퓨터 등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펨토초 시간분해능(time resolution)을 지닌 형광·흡광(pump-probe fluorescence·absorption) 분광법이나, 순간온도변화(temperature jump) 분광법등 다양한 분광학적 접근법과 전자현미경학(electron microscopy)과 같이 전자 회절을 이용한 구조학적 분석법에 펨토초 레이저를 기술을 도입한 동역학 연구방법 등이 있습니다.

UST 초고속전자현미경 그룹 및 즈웨일 교수
3.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이 곳에 처음 도착하여 맡은 일은 홀로 기존에 창고와 같이 쓰이던 연구실을 깨끗이 비우고, 다른 연구실에 남아 있는 레이저 및 광학부품, 검출장비 등을 모아 새로운 펨토초 분광장치를 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머물던 한국의 연구실 문화와는 달리 이곳에는 인수인계를 맡아줄 선임자도 이미 떠나고 없었고, 초고속 분광기에 관한 경험도 없었기에 매우 막막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두달에 걸쳐, 논문등을 통해 펨토초 형광분광기법의 원리 및 설계에 관해 공부하고 필요한 광학 지식등을 주변의 동료한테서 배워 장비를 완성한 후 첫 실험 데이터를 성공적으로 얻었을 때의 감동과 성취감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이러한 노력과 경험 덕분에 이번 논문과 같은 흥미진진한 연구도 진행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시간분해 투과전자현미경(time-resolved 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의 개발 및 응용과 같은 더욱 도전적인 연구과제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언젠가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시간분해 단층촬영기법(tomography) 개발에 관한 논문을 각고의 노력 끝에 투고한 직후 즈웨일 교수와 시가를 같이 피우며 소회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즈웨일 교수께서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물이 반쯤 담긴 유리컵을 보았을 때, 담긴 물이 보이는가 아니면 비어 있는 나머지 반이 보이는가?" 즉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새로운 학문의 길을 창출하는 것은 매우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일깨워 주는 조언이었습니다. 자신 앞에 놓인 난관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과 도전정신으로 적극적으로 부딪힐때 비로소 더욱 큰 성취감과 보람찬 결과물로 보답받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5.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박사후 연수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선임연구원으로서 UST에서 연구활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화학적 현상의 메커니즘 규명을 위해 현재까지는 분광학적 방법을 주로 이용해 왔지만, 앞으로는 원자·분자 수준의 구조분해능을 지닌 전자현미경의 장점에 시간분해 분석법을 접목하여 단백질 접힘/풀림 등의 근본적인 주제에 보다 직관적으로 접근해 보려 합니다. 이는 본 연구소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합니다. 현재 꾸준한 진전을 보았으며, 몇가지 난관들을 극복하면 머지 않아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기대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문의 길은 매우 도전적이고 흥미진진하지만, 결코 순탄하지도 않습니다. 주변에는 탁월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연구의 길을 접은 선후배, 동료, 학우들도 적지 않았기에, 이곳에서 여태까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본인을 매우 축복 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항상 아낌없는 응원과 지원을 마지 않으시는 부모님과 가족에게 비로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한명의 학자로 훈육해 주신 서울대 화학과의 장두전 교수님과 동반자적 입장에서 끊임없이 연구를 독려해 주신 즈웨일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