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인터뷰
Cedars-Sinai Medical Center
Ventricular fibrillation (심실세동)이란 급사를 일으키는 부정맥입니다.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전체사망률 2위이며 (미국에서는 1위), 이중 50% 이상이 급사로 나타나지요. 급사 고위험군 환자에 대한 치료로 체내형 제세동기와 같은 기구를 이식하는 방법들이 나오고 있지만, 워낙 고가 장비인지라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환자들이 부담스러워 한답니다. 이번에 출간된 논문은 전극도자 절제술이란 간단한 시술을 통해서 치사성 부정맥을 막아보려는 연구입니다. 더불어서 심실세동의 전기역학에 있어서 해부학적 구조물의 중요성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아직은 동물실험 단계여서 임상에 적용하긴 이르지만 한국에서 인체에 좀 더 가까운 동물을 대상으로 정밀한 실험을 계획 중입니다.
- 논문을 내기까지의 과정과 어려움, 극복해낸 이야기,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
사실 이 논문은 다른 연구 도중 우연히 발견된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미국에 도착한지 사흘만에 아파트에 짐도 채 풀기 전에 지도교수를 찾아 갔더니,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으냐? 오늘부터 실험할 준비는 되었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나는 의사이고 임상적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지요. 그래서 시작한 첫 프로젝트가 낮은 에너지로 조율 (pacing)을 하면서 세동 전기역학을 보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밤낮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데이터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심실세동이 항상 일정한 위치에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pattern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lab meeting에서 이 부위를 고주파 에너지로 지져보겠다고 이야기 했답니다. 다들 심실세동을 고주파 에너지로 지져 없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지라, 눈만 껌벅 거리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죠. 그런데, 지도교수가 뭐든지 희안한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럼, 한번 해보지, 뭐." 하시더니, 병원 부정맥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고가 첨단장비들을 본인이 직접 빌려다가 지원을 해 주더군요. 처음엔 괜한 얘기 꺼냈다가 뒷감당 못할 일을 저지른게 아닌가 걱정을 했었는데, 막상 실험을 해 보니 제 가설이 보기 좋게 적중했답니다. 그때의 희열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지요. 재미난 에피소드는 수도 없이 많지요. 사자같이 으르렁 거리는 미국 토끼에게 물린 이야기, 도시락으로 싸간 김치냄새 때문에 대피소동이 벌어진 이야기, 학회 초록이 당선이 안 된 덕분에 다른 학회에서 Young Investigator Award 받은 이야기, 등등. 더불어 찡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돈이 없어서 햄버거 사달라고 조르는 딸을 야단치던 일, 데이터가 들어있는 노트북 컴퓨터를 도둑맞고 절망하던 일, 비자 문제 때문에 꿈을 못 이루고 귀국하는 유학생과의 가슴 아픈 대화….
2. 현소속 기관 또는 Cedars-Sinai Medical Center 연구실에 관한 소개
Cedars-Sinai Medical Center는 UCLA affiliate hospital로 Beverly Hill에 사는 갑부나 Hollywood 배우들이 찾아오는 미국에서 최고급 병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Hollywood 배우를 한번도 못 보았는데, 제 아내의 해석은 아마도 제가 영화를 자주 안 봐서 아는 배우가 없어서 일거랍니다.) 특히 부정맥 분야는 UCLA와 한 팀이 되어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의료문제인 급사 (sudden cardiac death) 연구의 NIH SCOR (Specialized Center of Research)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기초 부정맥 연구팀은 저의 지도교수인 Dr.Peng-Sheng Chen을 중심으로 지난 10년간 150편 이상의 SCI논문이 나오는 매우 productive lab입니다. 주 연구 프로젝트는 cardiac sympathetic nerve sprouting, optical mapping, high density mapping을 이용한 VF dynamics 연구, sudden cardiac death model, thoracic vein hypothesis and atrial fibrillation dynamics 연구 등으로, 임상연구와 직결된 프로젝트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기초분야에 3명의 faculty, 임상분야에 3명의 faculty 아래서 15명의 fellow 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3. 실험실에서의 연구생활 이야기, 외국에서의 연구생활 이야기…
영화에 나오는 외국 연구소를 보면 매우 딱딱하고 답답할 것 같은데, 사실 제게는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정해진 2년 동안에 좋은 열매를 얻어가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한국에서 하는 식으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일 했습니다. 한 2개월이 지난 어느 금요일 늦은 저녁, 지도교수가 텅 빈 연구실에 일부러 찾아 왔더군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너는 2년 후 귀국하면 또 바쁜 병원생활에 시달릴 텐데,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냐? 솔직히 말하면 내년 재계약 때 까지는 봉급을 올려주긴 어렵다." 라고 말하더군요. 그제서야 이분도 저를 파악하느라 많이 고민하셨고, 여기 문화는 한국과 전혀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옆의 lab에 와 있던 한국 분은 너무 일을 열심히 한다고 정신과 의사 면담을 추천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턴 주말엔 절대 병원에 안 나가고 집에서 일(?)했죠. 그리고 나서야 깨달은 것인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창조적 지성은 잠시 쉴 때 나오도록 지으셨더군요.
4. 과학자를 희망하는 후배 연구자나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제가 출국할 때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이 메일로 보내 주셨어요. "함부로 꿈을 갖지 말아라. 왜냐하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는 덧붙여 조언 하고 싶습니다. "신중히 생각하시고 반드시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도전하십시오. 그리고 나의 노력만으로 안 되는 부분은 기도하십시오." 둘째는, 유교적 사고방식으로 윗 분 앞에서 주눅드는 모습은 절대로 안됩니다. 항상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째려보면 안됨), 자신감 있게 말해야 신뢰가 형성됩니다. 세째는, 외국사람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입니다. 언어와 문화는 다를지언정, 그들의 심리, 정서, 그리고 사리판단 기준도 거의 비슷합니다. 되도록 양보하면서 많은 친구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많은 연구업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요, 훗날 더 큰 업적을 위해서라도 친구는 중요합니다. 결국에 남는 것은 업적이 아니라 사람이 더 큰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5.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아직 연구업적이 많지도 않은 제게 '한국을 빛낸 사람'이란 명예로운 호칭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격려로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제 비젼은 한국 의료 실정에 맞는, 또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연구성과를 얻는 것입니다. 너무 열심히 희생적으로 일하면서도, 정작 아플 땐 돈 때문에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는 한국인, 한국사회의 모순을, 조금이나마 극복해 보려는 것이 저의 소박한 꿈입니다. 감사합니다.
| Received for article December 30, 2003 |
등록일 200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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