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암을 일으키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약 20-25% 정도의 암이 바이러스와 연관 되어 발생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간암과 자궁경부암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몇몇 백혈병과 림프종, 구강암, 피부암, 카포시 육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파필로마 바이러스 (Papillomavirus) 인데,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이 이미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고, 그 중 소수는 암으로 진행 됩니다. 거의 모든 자궁경부암, 그리고 약 30%의 구강암과 몇몇 피부암이 이 파필로마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고, 이 외에도 곤지름이라는 성병과 유두종 등 다양한 피부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파필로마 바이러스는 분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가장 아래층의 피부 세포에만 감염이 되는 반면, 감염이 가능한 바이러스는 분화가 완전히 이루어진 가장 윗층의 피부 세포에서만 생산 되어집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의학적으로 중요한 바이러스임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의 번식 과정이 복잡해서 실험실에서 다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 하였습니다. 그래서, 쥐에 사람의 피부를 이식하거나 인공피부를 만드는 몇 주에 걸친 노력으로 극소량을 만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중요한 실험이나 백신/치료제 개발 등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C형 간염 바이러스도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이번 달에 Science와 PNAS에 바이러스 생산 성공했다는 논문이 발표 되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가 이번에 개발한 것은 간단한 세포 배양을 통해 단 이틀 만에 기존의 방법보다 적어도 2000배 이상의 파필로마 바이러스를 생산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정도의 양은 치료제 개발을 위한 대규모 스크리닝이 가능한 양입니다. 또한 기존의 방법과는 달리,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다른 형태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치료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제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번 논문은 그냥 길가다가 주운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원래는 이 파필로마 바이러스를 효모에서 대량 생산하기 위해 시도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어서 포기하기 직전이었는데, NIH에 있는 존 쉴러(John T. Schiller)가 파필로마 바이러스의 껍질을 이용해서 DNA를 package 하는데 성공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실험실로 초대하게 되었고, 기술에 관련된 정보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쉴러는 이 방법으로는 파필로마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도 되는 크기의 DNA를 package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파필로마 바이러스의 유전자 중 우선 순위가 낮은 부분부터 잘라 내어 여러가지 다른 크기의 유전자를 만들어 실험했고, 쉴러의 예상과는 달리 파필로마 바이러스의 전체 유전자를 다 package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제가 한 일은 남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그냥 한번 해 본 것 뿐이었습니다.
3. 본 연구가 이루어진 기관 또는 연구소에 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위스컨신대학은 하버드, 스탠포드와 함께 미생물학에 있어서는 최고 수준의 연구를 자랑하는 학교입니다 (US News and World Report). 특히, 바이러스에 관련된 분야에서는 미국을 이끌어 가는 중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캠퍼스 안에 거의 모든 연구 분야들과 자원들이 잘 집적 되어 있고, 매디슨은 또한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고 자녀들을 양육하기 좋은 도시로 늘 손 꼽히고 있기 때문에 연구에 집중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 제가 소속 되어 있는 맥아드 연구소(McArdle Laboratory for Cancer Research)는 노벨상 수상자인 하워드 테민(Howard Temin), 귄터 블로벨(Gunter Blobel) 등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연구소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연구 수준 뿐만이 아니라 학생과 박사후 연구원들을 교육하며 미래의 과학자를 길러 내는 일에도 성심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http://mcardle.oncology.wisc.edu/
4.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하면 할수록 재미 있는 것이 연구 활동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밟아 보지 못한 땅을 밟는 그 짜릿한 기분을 느끼며 그 일들을 통해 작으나마 인류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아주 행복합니다.
5.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연구 그 자체 보다 다른 부수적인 요소들(즉, 연구를 통해 얼마나 유명해 질 것인가? 돈은 얼마나 벌 것인가? 등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 집중력도 떨어지게 되고, 쉽게 흥미를 잃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에 흥미를 가지면서 노력한다면, 유명한 과학자가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최소한 재미있고 행복하게 과학자의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저 또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로를 선택할 때에는 학교나 교수의 명성 보다는 사람의 됨됨이를 먼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교수라고 무조건 그 연구실에 들어 갔다가 심적으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얻는 것이 없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그보다는 그 교수의 철학과 얼마나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지, 연구에 대한 열정이 정치적인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등 교수의 가치관과 성품에 따라 내 평생을 이끌어 나갈 만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 연구실 출신의 선배들이나 주위 사람들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6. 연구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 감염과 같이 암을 일으키는 요인에 계속 노출 되지만, 실질적으로 암이 생기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면역 작용을 비롯한 많은 세포 인자들이 이러한 차잇점을 가지고 온다고 보고 있는데, 구체적인 연구를 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 수백명의 암 환자로 부터 얻은 조직을 가지고 암 발생에 미치는 바이러스의 역할과 호스트의 역할을 연구 중 입니다. 또한, 새롭게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바이러스를 가지고, 바이러스의 초기 감염에 미치는 유전인자들을 스크리닝하는 작업도 진행 중입니다.
7.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지난 봄, 하워드 휴즈 의학 연구소(HHMI) 미팅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들이 새롭게 추진하는 재넬리아 팜 연구소(Janelia Farm)에 관한 소개를 들을 시간이 있었습니다. 물리학, 컴퓨터 과학, 수학과 생물학이 연계된 새로운 분야에 사람을 뽑아서 워싱턴 DC 근교에 새롭게 설립한 연구소에서 전혀 다른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한다는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계획이었습니다. 이미, 노벨상 수상자인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가 상임 연구원으로 오기로 했고,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을 추진 중인 톰 체크(Tom Cech)와 제럴드 루빈(Gerald Rubin)은 "우리도 이 일이 얼마나 모험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몇 십년 후에 이 연구소에서 수십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단 한 편의 논문도 출간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이런 일을 시도하겠습니까?"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도전 정신이 세계 최고의 하워드 휴즈 의학 연구소를 이루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 한국도 연구를 직접 수행하는 과학자이던, 이 연구를 뒷받침하는 투자가나 정부 관계자이던,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이런 일을 시도하겠습니까?" 하는 도전 정신으로 수십년, 수백년을 바라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Received for article June 24,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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