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 인터뷰
일반적으로 신약의 개발은 질병 메카니즘 규명, 약물 스크리닝, 약물 후보의 최적화 (lead optimization), 동물 독성 테스트를 비롯한 임상전 테스트, 1, 2, 3차 임상 테스트, FDA 심사, 약물 조제법의 최적화 및 대량 생산의 과정을 거치는데, 약 10 - 15년이 걸리는 길고 모험적인 과정입니다.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 2백만 개 이상의 약물 후보들의 효과를 테스트하며, 대략 1조 7천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계들을 거쳐서 개발되어진 신약 조차도 미처 밝히지 못한 독성으로 인해서 시장에서 철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COX-2 저해제로서 강력한 진통제로 알려진 머크(Merck)사의 Vioxx가 심혈관계 독성으로 인해서 작년에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되었습니다. 앞으로 Vioxx로 인해 사망한 많은 환자 가족들의 머크사에 대한 천문학적 비용의 손해 배상 소송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약으로 인한 독성은 개발을 하는 회사는 물론이고, 약을 복용하는 환자 모두에게도 무서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가능한 이른 개발 단계에서 약물의 독성을 파악하고 후보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통 우리가 약을 복용하면 ADME (Absorption, Distribution, Metabolism, and Excretion)의 단계, 즉 소장을 통한 흡수, 혈관을 통한 분산, 간장(liver)에서의 대사, 신장에서의 배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약물들의 독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도 간장에 존재하는 약물 대사 효소들의 구성 비율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약물 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cytochromes P450는 50개가 넘는 isozymes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환자 개개인 마다 구성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약을 복용하더라도 약효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연구에서는 cytochromes P450 (CYP3A4, CYP2B6, CYP1A2 등)를 유리 기판 위에 고정화한 후에 항암제의 대사 산물들을 칩 위에서 직접 생산하고, 곧바로 암세포와 반응시켜서 약의 효능을 확인할 수 있는 MetaChip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바이오칩을 개발하였습니다.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P450 효소를 포함한 MetaChip은 약물 후보들의 대사 산물이 미치는 개인별 독성을 빠르게 검색할 수 있고, 새롭게 개발되는 약물들 중에서 어떤 약물 후보를 임상 실험까지 해야 하는지 검증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또한 암세포 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들과 약물 대사 물질들 간의 반응을 통해서 신약이 인체의 각 부위에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 및 효과를 미리 예측함으로서 약물의 과다 투여로 인한 환자의 사망(adverse drug reaction)을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 외에도 화학 물질의 대사 반응과 세포 독성 테스트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MetaChip을 이용하여 매년 새롭게 만들어지는 화학 물질(xenobiotics)의 인체 독성의 간접 테스트, 식품 및 환경 독성 모니터링, 유해 화학 물질 생산 공정의 안전성 테스트 등 광범위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 논문을 내기까지의 과정과 어려움, 극복해낸 이야기,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
이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상온에서 대부분의 활성을 잃어버리는 cytochromes P450를 효과적으로 기판 위에 고정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고정화된 효소의 활성을 높이기 위해서 실험계획법을 바탕으로 활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인자들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최적의 조건을 도출하는 작업이 매우 길었습니다. 그리고 반응들이 나노리터(nL)의 극히 미세한 부피 내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마이크로리터(μL) 이상에서 진행되는 반응들과는 달리 물의 증발이 매우 빨리 일어나서 곤란을 겪었습니다. 또한 칩 위에서 생산한 대사 산물(metabolite)들이 아주 불안정한 중간 산물이었기 때문에 이것들이 과연 제대로 생성이 되었는지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암세포에 전달해서 항암 작용을 나타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고민을 했습니다. 논문에서 사용한 스탬핑(stamping) 방법은 샤워를 하던 중 떠오른 아이디어로서, P450 칩과 세포 칩을 따로 만들어 도장을 찍듯이 하면 대사 산물이 중간에 없어지지 않고 효과적으로 암세포 속으로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데서 착안했습니다.
처음 연구를 구상해서 MetaChip이 생각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1년 전의 일이었고, 그 이후로는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한 지루한 반복 및 추가 실험의 나날이었습니다. 거의 15번이 넘는 수정 작업 후에 Nature Biotechnology에 제출하였으나 리젝트(reject) 되었을 때, 2년 간의 연구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조바심도 났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 연구의 파급 효과가 인정되어서 Proc. Natl. Acad. Sci. USA에 커버로 실리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3. 현소속 기관, 연구실에 관한 소개 |
[PNAS 표지] |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 (RPI)는 1824년 설립된 교육 기관으로서 미국 내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공과대학입니다. 특히 RPI는 대학에서 연구 개발된 새로운 기술들을 기업에 전달하여 성공적으로 상업화시키는 산업 현장과의 파트너쉽으로 유명합니다. 같이 연구를 하게 된 Dordick 교수는 MIT 생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University of Iowa의 교수 및 Center for Biocatalysis and Bioprocessing의 부소장을 역임하면서 유기상 효소 반응의 세계적인 대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1998년 RPI 화학공학과 학과장으로 옮긴 후에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통해서 효소 테크놀러지와 고분자 화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현재 생물공학 분야의 정상급 저널로 알려진 Biotechnology and Bioengineering의 associate editor 및 다른 6개 저널의 editorial board, 여러 회사의 기술 고문을 역임하고 있으며 Who's Who in America에 저명 과학자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Dordick 연구실에는 모두 8명의 포닥과 15명의 학생들이 열심히 맡은 바 연구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RPI의 Dordick 교수와 UC Berkeley의 Clark 교수는 Solidus Biosciences, Inc.를 창업했으며, 저도 창립 멤버로서 회사에서 Senior Research Scientist로서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NIH에서 이번 연구와 관련한 연구제안서(STTR project)가 통과되어서 창업 자금을 지원 받았으며, 여러 엔젤들과 접촉하여 펀딩을 받으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연구를 더욱 확장해서 모든 약물 대사 효소를 포함하는 진정한 MetaChip을 개발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약물 후보 (lead compound)의 구조 최적화에 사용될 수 있는 Multizyme Chip 또한 개발 중에 있습니다.
4. 연구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저는 기초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응용 연구를 하는 공학자로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맡은 바 소임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 Solidus Biosciences, Inc.를 통해서 꿈꾸어 오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앞으로 저의 조그만한 연구가 신약 개발을 앞당기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연구를 하는 한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5.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예비유학생들이나 후배연구자들을 위해 한 말씀 해 주신다면?
무한 경쟁 시대를 맞이하여 전 세계에서는 우수한 연구 인력 확보를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선진국에서는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 막대한 예산을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있고, 다른 나라와 효율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서 미래의 유망 분야를 전공한 우수한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선발하여서 보다 많은 혜택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수한 연구원들에게는 국경이 없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어떤 나라에서도 일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사람은 연구원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는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끝없이 공부해야 하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난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금전적인 보상만 생각한다면 작금의 이공계 기피라는 현상은 분명 피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대한 보람, 성취욕, 사회에 대한 기여,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생각한다면 연구도 한번쯤 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생각한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남보다 잘 할 수 있고, 무엇이 보다 중요한 연구 분야일까 고민하여 새로운 길을 찾고자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끊임없이 도전하십시오. 자신을 한계라는 테두리 속에 가두려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뜻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길이 있다고 믿으시고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꿈꾸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래도 없지 않을까 합니다. 보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연구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연구하면서 국제적인 역량도 쌓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일본에서의 2년 간의 연구를 마쳐갈 즈음 미국으로 가서 새로운 분야의 연구를 시작해 보느냐, 한국에서 안정적인 일을 하느냐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때, 오직 아내만이 작은 물에서 안주하려 하지 말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낯설고 힘든 외국 생활에도 묵묵히 잘 따라준 그녀가 사랑스럽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희들을 걱정해 주시는 부모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로 혼자 설 수 있도록 많은 지도와 편달을 해 주신 은사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Received for article January 27,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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