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인터뷰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습성 연령관련황반변성(neovascular 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 nAMD)은 노인에서 비가역적 시력 저하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망막질환입니다. 항-VEGF 치료의 도입으로 비정상적인 혈관신생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장기적으로 망막하 섬유화(subretinal fibrosis)가 발생하며 현재 이를 직접적으로 예방하거나 되돌릴 수 있는 치료법은 제한적입니다. 최근 nAMD 연구는 단순히 혈관신생을 억제하는 것을 넘어, 만성 염증, 면역세포의 상태 변화,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 ECM) 재형성, 상처 회복 실패, 섬유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광수용체 손상을 함께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Granzyme B (GzmB)는 원래 세포독성 T세포와 자연살해세포가 표적세포를 제거할 때 사용하는 세린 단백질분해효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GzmB는 perforin과 독립적으로 세포외 공간에 존재할 수 있으며, ECM 단백질과 세포 간 연결 단백질을 절단하여 염증, 혈관 기능 이상 및 조직 재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세포외 GzmB가 nAMD의 후기 병리인 망막하 섬유화와 망막 신경세포 손상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조사하였습니다.
2단계 레이저 유도 망막하 섬유화 생쥐 모델에서 GzmB 결핍 생쥐는 대조군보다 섬유화 병변이 작았고, 특히 노령 생쥐에서 이러한 보호 효과가 뚜렷했습니다. 또한 GzmB 결핍은 병변 내 비만세포(mast cell) 축적 감소와 광수용체 세포 사멸 감소와 연관되어, GzmB가 염증성 미세환경뿐 아니라 광수용체 생존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전체 섬유화는 감소했지만 CD206+/α-SMA+ 대식세포는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이는 대식세포-근섬유아세포 전환(macrophage-to-myofibroblast transition, MMT)이 항상 동일한 의미의 ‘병적 섬유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서로 다른 대식세포 상태를 포함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사람 망막색소상피세포(RPE)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세포외 GzmB는 상처 회복을 지연시키고, TGF-β 신호전달, 상피-중간엽 전환(EMT), 염증, 혈관신생 및 세포 간 상호작용과 관련된 전사체 변화를 유도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처음부터 망막하 섬유화를 연구하는 완성된 ‘정답’을 알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 복잡한 병리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야 할지 배우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병변 크기뿐 아니라 ECM, 면역세포, 광수용체 손상, RPE 상처 회복, 전사체 변화 등 생물학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질문들을 하나씩 따라갔습니다. 오히려 예상과 맞지 않았던 MMT 결과가 대식세포의 기능적 이질성이라는 새로운 해석으로 이어졌습니다. 앞으로는 세포외 GzmB의 병적 활성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전략과 함께, 염증에서 섬유화 및 신경퇴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다 세포 및 질병 단계 특이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중요한 연구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2. 본 연구의 한계점 및 추가적으로 검증 또는 해결해야 할 과제는?
몇 가지 중요한 한계점이 있습니다. 첫째, 2단계 레이저 모델은 지속적인 망막하 섬유화를 연구하는 데 유용하지만 어떠한 생쥐 모델도 사람의 황반 섬유화를 완전히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생쥐에는 황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체 기증 안구 조직과 임상적 관련성이 높은 인간 유래 세포 또는 조직 모델에서의 추가 검증이 중요합니다.
둘째, 본 연구에서는 전신 GzmB 결핍 생쥐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질병의 각 단계에서 어떤 세포가 중요한 GzmB 공급원인지 완전히 규명할 수 없었고, 면역세포 내부에서 작용하는 세포독성 GzmB와 세포외 단백질분해 활성을 갖는 GzmB의 기능을 완전히 분리하기도 어렵습니다. 향후에는 세포 특이적 유전자 조작 모델과 세포외 GzmB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저해제를 이용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셋째, MMT는 CD206과 α-SMA 등의 표지자 동시 발현을 바탕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세포 계통이나 실제 기능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계통추적(lineage tracing), 단일세포 및 공간 분석을 통해 보호적, 회복적 또는 섬유화 촉진성 대식세포 상태를 보다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RPE 실험에는 ARPE-19 세포를 사용했기 때문에, 일차 인간 RPE, iPSC 유래 망막세포, 오가노이드 또는 ex vivo 조직을 이용한 후속 검증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세포외 GzmB 억제가 조직학적 섬유화와 세포 사멸을 줄이는 것을 넘어 실제 망막 기능과 시기능을 보존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3.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UBC) 안과 및 시각과학과에서 Joanne Matsubara 교수님의 지도 아래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팀은 연령관련황반변성을 비롯한 망막 퇴행성 질환에서 염증, 혈관 변화, 세포외기질 재형성 및 신경세포 손상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GzmB같은 면역세포 유래 단백질 분해효소가 망막의 미세환경을 변화시키고 질병의 진행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David Granville 교수님의 연구팀과 협력하여 세포외 GzmB의 단백질 분해 기능과 조직 재형성 기전을 연구하였고, Matsubara 연구팀의 망막 및 황반변성 연구 전문성과 결합하여 Gzm B가 망막하 섬유화와 신경세포 손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습니다. 또한 의공학 분야의 공동연구자인 주명진 교수님과 연구진의 도움으로 자체 개발한 광간섭단층혈관조영술(optical coherence tomography angiography, OCTA) 시스템을 이용하여 생쥐 망막하 병변의 혈관 구조를 비침습적으로 영상화할 수 있었습니다. UBC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안과학, 신경과학, 면역학, 병리학, 의공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자유롭게 협력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이러한 환경에서 연구하면서 하나의 질환을 특정 세포나 단일 신호경로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기보다, 면역세포, 혈관, 세포외기질, 망막색소상피세포 및 신경세포가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연구 방향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4.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연구를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처음에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던 결과들이 하나의 생물학적 이야기로 연결될 때입니다. 이번 연구에서도 단순히 ‘GzmB가 없으면 섬유화가 감소한다’는 결과만으로 끝났다면 흥미가 훨씬 제한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만세포 축적, 대식세포 상태, ECM 재형성, RPE 상처 회복, 전사체 변화, 그리고 광수용체 생존을 함께 살펴보면서 세포외 면역 단백질분해효소가 조직 전체의 미세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연구가 안과학, 신경과학, 면역학, 혈관생물학, ECM 생물학과 섬유화 연구를 연결한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는 원래 신경퇴행과 신경 회복을 공부하면서 연구를 시작했지만, 망막질환을 연구하면서 신경세포 자체뿐 아니라 그 주변의 혈관, 면역세포, 세포외기질 및 상처 회복 환경이 신경세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상 밖의 결과를 억지로 기존 가설에 맞추기보다 그 결과가 새로운 질문을 만들도록 두는 과정이 과학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연구와 교육이 서로 분리된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UBC 대학에서 신경과학을 가르친 경험은 복잡한 현상을 기전적으로 설명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는 훈련이 되었으며, 이러한 경험이 제 연구를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5.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첫째, 연구기관의 명성만 보기보다는 지도교수와의 관계, 연구 주제의 적합성, 그리고 지적 독립성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인지를 중요하게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기관에서의 경험은 분명 가치가 있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그 환경이 나를 더 좋은 과학자로 성장시키고 궁극적으로 나만의 질문과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해 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 과학적 의사소통 능력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를 권합니다. 유학을 준비한다면 영어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질문을 만들고, 발표하고, 논문과 연구비 제안서를 명확하게 쓰며, 서로 다른 배경의 연구자들과 자신의 과학을 논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연구 질문이 요구한다면 학문 분야의 경계를 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실험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어떤 질문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예상 밖의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됩니다.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이나 경력 초기에 받은 평가가 자신의 가능성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연구자의 강점은 환경과 경험에 따라 뒤늦게 발견되기도 합니다. 호기심을 잃지 말고, 꾸준히 연구하며, 좋은 멘토와 동료를 찾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만의 과학적 정체성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6.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단기적으로는 세포외 그랜자임이 망막질환에서 신경혈관 기능장애, 만성 염증, 병적 조직 재형성, 섬유화 및 망막 신경세포 손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합니다. 현재 Granzyme K (GzmK)의 nAMD 병태생리적 역할을 연구하고 있으며, GzmK가 질병의 진행 및 만성화 과정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여러 세포 및 동물모델을 이용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영국 노팅엄대학교(University of Nottingham)의 Felicity de Cogan 박사 연구팀과 협력하여, 세포외 GzmB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안약 형태의 치료 전략이 황반변성의 병적 혈관 변화와 섬유화를 억제할 수 있는지 평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Acta Neuropathologica에 발표한 종설에서는 GzmA, GzmB, GzmH 및 GzmK가 신경퇴행과 신경염증에 관여하는 기전을 세포 내 세포독성, 수용체 매개 신호전달, 세포외 단백질분해, 면역 증폭이라는 틀로 정리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제가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연구의 방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면역세포 유래 세포외 단백질분해효소가 신경계의 혈관, 세포외기질 및 염증성 미세환경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그 결과 신경조직이 퇴행하는지, 흉터를 형성하는지, 또는 회복하는지를 연구하는 독립 연구실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망막은 이러한 질문을 연구하기에 매우 강력하고 실험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중추신경계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며, 향후에는 시신경 손상과 신경 회복을 포함한 다른 신경계 모델로도 연구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7.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제가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민 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BRIC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매우 뜻깊었습니다. 제가 다시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제 연구가 먼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소개된다는 점도 재미있고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연구자 및 학생들과 세미나, 학회, 공동연구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릴 때 저는 과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학생으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연구자로 성장하는 과정이 더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학생들과 젊은 연구자들이 과학적 능력은 어린 나이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며, 한 시점의 평가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호기심, 끈기, 자신에게 맞는 연구환경, 좋은 멘토와 동료, 그리고 계속 배우려는 태도는 한 사람의 연구 경로를 크게 바꿀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부터 신경과학, 망막질환, 면역학, 혈관생물학, 섬유화와 세포외 단백질분해효소를 하나의 연구 프로그램으로 연결할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경험을 거치며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는 지점이 오히려 제 연구를 가장 잘 정의하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과학은 긴 과정이고,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이 나중에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연구 질문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등록일 202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