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인터뷰
KAIST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세포 안에는 막으로 둘러싸이지 않은 여러 종류의 응축체(biomolecular condensate)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스트레스 과립, 핵소체, P-body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액체-액체 상분리(LLPS)라는 물리화학적 현상을 통해 형성됩니다. 지난 10여 년간 LLPS는 생화학 및 생물리학의 핵심 화두였으며, 최근에는 이 과정의 이상이 신경퇴행성 질환 및 암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지면서 질병 기전 연구와 신약 개발의 중요 표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최근 AI 발전과 더불어 상분리 분야에도 기계학습 기반 예측 도구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미노산 서열만으로 상분리 여부를 예측하는 모델들이 발표되며 큰 진전을 이루었으나, 기존 모델들은 환경 요인을 반영하지 못하고 정적인 예측에 머무른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실제 세포 환경 내 상분리는 농도, 온도, 용매 조성 등에 따라 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바로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같은 단백질이라도 환경에 따라 상분리 거동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학습시킨 조건 인지형 모델 LLPSense를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조건 인지형 모델은 환경에 따른 가변적 예측뿐만 아니라, 단백질 간 상분리 경향성을 훨씬 섬세하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기존 모델은 두 상분리 단백질을 단순 양성 샘플로 동일하게 처리했지만, LLPSense는 특정 단백질이 더 낮은 농도나 다양한 조건에서도 상분리를 일으킨다는 정보를 학습하여 해당 서열의 기여도를 정밀하게 파악합니다. 또한 제한된 양성 데이터에 과적합(overfitting)되는 문제를 완화함으로써, 단일 아미노산 잔기(residue) 수준의 해상도와 양방향 예측(상분리 억제 및 촉진) 정확도를 유의미하게 개선했습니다.
앞으로 이 분야는 단순한 상분리 여부 판별을 넘어, 특정 조건에서 상분리 거동을 정밀하게 조절하고 설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저희 역시 논문에서 모델 기반 돌연변이 설계를 통해, 고온에서 상분리가 일어나는 UBQLN4의 거동을 역전시키는 실증 결과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AI 기술이 병리적 상분리를 조기에 진단하거나, 원하는 특성을 가진 인공 응축체를 설계하는 합성생물학의 핵심 도구로 확장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본 연구는 KAIST 화학과 정용원 교수님 연구실과 기계공학과 윤국진 교수님 연구실의 협력 연구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정용원 교수님의 분석생화학 연구실은 생체분자 응축물 관련 뛰어난 성과를 내온 곳입니다. 단백질 조립체와 다가 상호작용(multivalent interaction) 연구에 강점을 지니고 있는데, 이 다가 상호작용이 바로 상분리의 핵심 원동력입니다. 이 기초 연구를 기반으로 약물 전달이나 진단 기술로 연구 범위를 확장해 왔으며, 이번 연구를 시발점으로 바이오-AI라는 새로운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윤국진 교수님께서 이끄시는 Visual Intelligence Lab(VILAB)은 컴퓨터 비전, 로보틱스, 머신러닝 등을 기반으로 지능형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실입니다. 자율주행부터 생성형 AI, 멀티모달 언어모델까지 현실 세계를 재구성하고 상호작용하는 첨단 AI 기술을 다룹니다. 윤국진 교수님은 최근 KAIST 인공지능대학원 학장 겸 AI연구원장으로 취임하시며 KAIST의 AI 연구를 이끄는 핵심 역할을 맡고 계시기도 합니다.
사실 이번 연구는 저와 VILAB 소속 강민준 학생의 소소한 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희는 경남과학고등학교 동기이며 대학원 생활을 동고동락한 친구 사이입니다. 식사를 하며 연구 이야기를 나누다 "생물학적 상분리 현상에 AI를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파헤치게 되었습니다. 마침 관련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던 시기였기에, 생화학자의 관점에서 기존 모델들의 한계와 발전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이것이 LLPSense라는 결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대학원 생활 초기, 빠르게 발전하는 AI 분야를 보며 그쪽을 전공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소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잘하는 생화학에 AI를 적극적으로 융합해 보자"는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게 되었고, 이를 실제 연구로 구현해 냈습니다.
사비를 들여 직접 워크스테이션을 구축하고, 모델 개선을 위해 공동 연구를 진행한 강민준 학생과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았지만 과정 자체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중간에 모델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하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완성된 모델의 예측 결과가 실제 실험 결과와 일치했을 때 느낀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제 전공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AI 기술을 성공적으로 융합해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연구자로서 이제 막 의미 있는 첫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바이오 AI 분야는 물론 저 자신 역시 앞으로 배울 점과 성장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발전 가능성 자체에서 연구에 대한 큰 흥미와 동기부여를 느끼며, 앞으로 펼쳐질 연구 활동에도 깊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바이오-AI는 앞으로 개척하고 나아가야 할 영역이 무궁무진한 분야입니다. 바이오나 AI 중 어느 한 분야만을 전공했더라도 이 거대한 흐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따라서 두 분야의 융합에 흥미가 있다면 도전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연구를 진행하며 배운 점 중 하나는 대표적인 바이오-AI 성과인 알파폴드(AlphaFold)도 그 바탕에는 구조생물학과 유전학자들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단백질 구조 데이터베이스와 공진화 개념이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인공신경망의 발전에도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큰 영향을 미쳤듯, 인간이 쌓아 올린 지식과 AI 기술은 단방향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냅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AI와 함께할 때 그 깊이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두 영역을 잇는 유연한 태도와 호기심을 갖춘다면 매력적인 연구 여정이 될 것입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이번 논문을 첫걸음 삼아, 앞으로 더욱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과학적 난제들을 해결해 나가고자 합니다. 현재 제출을 완료했거나 투고를 준비 중인 후속 논문들이 여럿 있어 당분간은 포스닥(박사후연구원) 과정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이제 막 첫 삽을 뜨기 시작한 연구 과제들과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의 이번 연구처럼 바이오-AI 모델 개발이나 관련 융합 연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편하게 연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 강민준 학생은 단백질 과학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거의 없었음에도, 단백질 언어 모델 임베딩 적용을 제안해 모델의 핵심 기초를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해주었습니다. 또한 이동혁 학생 역시 학습 데이터 정제와 실험 전반을 헌신적으로 서포트해 주었습니다. 거창한 시작이 아니더라도 좋으니, 바이오와 AI의 융합에 흥미와 열정을 가진 많은 분들의 관심과 연락을 기대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무엇보다 저의 도전적인 연구 방향을 깊이 신뢰해 주시고,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정용원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신속하고 정확하게 데이터셋을 정리하며 연구 완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준 이동혁 학생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등록일 2026.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