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인터뷰
가천대학교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인간의 의사결정에 숨겨진 인지 메커니즘과 계산적 과정을 탐구하는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 및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 영역입니다.
이번에 발표한 논문은 인간의 충동성을 대변하는 지표 중 하나인 '지연 할인(Delay Discounting)'의 개인차를 뇌과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입니다. 지연 할인이란 미래의 더 큰 보상보다 당장 눈앞의 작은 보상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기보다 당장 소비를 즐기거나, 다이어트 중에 눈앞의 야식을 참지 못하는 행동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즉 지연 할인율이 높을수록 즉각적인 유혹에 취약한 '충동성'이 높은 것으로 해석되며, 이는 도박이나 약물 중독, ADHD 등 다양한 정신질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기존 의사결정 연구들이 주로 대뇌피질이나 선조체에 주목했다면, 본 연구는 뇌의 정교한 정보 중계소인 '시상(Thalamus)'에 주목했습니다. 정상인을 대상으로 확산텐서영상(Diffusion tensor imaging)과 확률적 트랙토그래피(Probabilistic Tractography) 기법을 활용해 시상을 대뇌피질 연결 영역별로 정밀하게 세분화한 결과, 내측 전전두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과 연결된 시상 부위의 부피가 클수록 지연 할인율(충동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특히 이 결과는 지연할인율을 계산하는 다양한 수학적 행동 모델을 적용했을 때도 동일하게 나타나 신뢰성을 입증했습니다. 다시 말해, 뇌의 특정 보상 전달 경로가 개인의 선택과 인내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이 특정 시상-대뇌피질 연결망을 타깃으로 하는 비침습적 뇌 자극 치료 프로토콜을 개발함으로써, 중독이나 ADHD 등 충동성 관련 정신질환 환자들을 위한 임상적 응용 및 치료 표적 개발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연구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초기 분석에서 내측 전전두피질 연계 시상 영역의 부피가 충동성과 직결된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을 때, 혹시 특정 모델에서만 나타나는 우연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결과의 신뢰성을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수학적 행동 분석 모델을 총동원해 혹독한 반복 검증을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모델을 적용해도 강력하고 안정적인 통계치가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모니터로 그 결과를 직접 마주했던 순간의 전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사실 그때, 이 결과는 소위 High-impact 저널에 발표될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희망이 마음 한구석에 피어올랐던 것 같습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본 연구는 제가 이끌고 있는 가천대학교 심리학과의 CANDY 연구실(Cognitive Affective Neuroscience of Decision-making in Youth)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교신저자인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신경경제학 및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논문은 각자의 영역에서 뇌영상 및 의사결정 연구를 활발히 이어가고 있는 우수한 연구자들과 뜻을 모은 공동 성과입니다. 우선 미국 컬럼비아 의대 섭식 장애 센터의 윤영우 정신과 전문의(제1저자; https://www.bryanyoonmdphd.com/home)는 의사결정 메커니즘과 정신질환의 신경생물학적 기전을 뇌영상 기반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이번 논문에서 특별히 결과 정리 및 해석 그리고 임상적 활용에 대한 논의에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또한 뇌영상 AI 기업 뉴로핏의 박현규 박사(공저자)는 뇌영상을 통해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질환을 연구하고 있는 역량 있는 연구자로, 본 연구에서 특별히 확산텐서영상 자료 분석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자들이 현재 소속된 기관은 모두 다르지만, 뇌과학을 사랑한다는 점과 정신신경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신 권준수 교수님의 제자들이라는 아주 특별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다가 이렇게 후배들과 다시 뜻을 모아 공동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각자가 가장 잘하는 전문 분야를 맡아 최선을 다했기에 이처럼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치열하게 공부했던 대학원 시절의 초심과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연구하는 내내 무척 즐거웠으며, 학술적인 성과를 넘어 연구자로서의 열정과 끈끈한 동료애를 다시금 확인한 참 따뜻하고 뜻깊은 여정이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하나의 논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역시나 쉽지 않은 여정임을 다시금 절감합니다. 연구 프로포절을 작성해 연구비를 수주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한 뒤 최종 게재에 이르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매 순간이 고단한 연구 활동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연구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 연구 역시 데이터 수집과 분석 과정에서 주변 동료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토록 힘든 여정이었기에, 이번 논문은 저에게 무엇보다 값지고 특별합니다. 세계적인 탑티어 저널이자 대학원 시절부터 늘 동경해왔던 Molecular Psychiatry에 교신저자로서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어 개인적으로 더욱 깊은 감회와 의미로 다가옵니다.
특히 이번 연구는 해외의 거대 데이터셋이나 유명 대가의 이름에 기대지 않고, 제가 직접 실험을 디자인하고 연구비를 따내어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뤄낸 성과입니다.
글로벌 학계에서 저희가 생산한 데이터와 연구 역량을 온전히 신뢰하고 인정해 주었다는 점에서 저와 윤영우 박사는 연구자로서 엄청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번 성과는 저희 연구 인생에 있어 매우 값진 출발점이 되었으며, 앞으로 나아갈 연구 여정에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에게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분야를 아는 것'입니다. 대학원이나 유학 생활을 지탱하는 힘은 결국 연구에 대한 순수한 흥미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논문을 읽어보거나 관심 있는 연구실을 직접 경험해 보기를 권합니다. 특히 가고 싶은 연구실이 있다면 "내가 연락해도 될까"라는 생각으로 주저하지 말고, 교수님께 적극적으로 연락해 보십시오. 지레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용기가 여러분의 미래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연구에 발을 들인 후에는 '동료의 중요성'과 '마라톤 같은 성실함'을 늘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융합 학문 분야는 익혀야 할 지식도 방대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분석 기법이 매일같이 발표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주변 선후배, 교수님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연구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오랜 여정이 요구되는 마라톤입니다. 매일 열심히 해도 목적지가 보이지 않아 지칠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지속하다 보면 분명 목표한 곳에 닿게 될 것입니다. 만약 슬럼프가 온다면 처음 연구의 재미를 느꼈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그 기억이 다시 앞으로 나아갈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전 인터뷰에도 이야기했지만, 연구실 생활을 하며 겪는 학문적, 정신적 고비는 누구나 비슷합니다.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때로는 술 한잔 나누며 진로와 인생을 고민할 수 있는 좋은 동료를 만드십시오. 함께 의논하는 과정에서 유익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힘들었던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도 합니다. 지금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귀한 존재임을 잊지 말고, 함께 즐겁게 완주하시길 응원합니다. 10년 혹은 20년 뒤에 학계의 든든한 파트너로서 다시 뜻을 모아 그들과 공동연구를 하게 되는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약 8년 전 한빛사 인터뷰에서 동일한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인간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예측하는 신경마커 연구의 일환으로 지연 할인에 관한 뇌과학적 규명을 진행 중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오랜 시간 묵묵히 연구에 매진하며 지연 할인 관련 논문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고, 마침내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한빛사에 소개될 수 있는 결실을 보게 되어 감회가 매우 새롭습니다. 과거의 약속을 멋지게 증명해 낸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의 핵심 계획은 당시 언급했던 위험 내성(Risk Tolerance)과 이번에 성과를 거둔 지연 할인 연구의 스펙트럼을 실제 임상 현장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정신증 고위험군 및 조현병, 약물 중독, 그리고 ADHD 환자군 등 임상 환자를 대상으로 위험 내성 및 지연 할인율에 대해서 심층 연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선행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환자들의 행동(의사결정)을 변경시키는 치료법을 개발함으로써, 그동안 쌓아온 기초 연구 성과들이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치료 표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연구의 지평을 넓혀갈 계획입니다.
더불어, 최근에는 소비자의 무의식적 반응과 선택을 뇌 지표로 예측하는 소비자 신경과학(Consumer Neuroscience) 분야의 연구도 활발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신경경제학적 모델을 실제 시장과 소비자 행동 예측에 접목함으로써, 뇌과학 연구가 우리 사회와 산업 전반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실천적 이정표를 세워나가고자 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과 남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습니다.
먼저, 저자들이 뇌과학자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시고, 평생의 학문적 동반자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은사 권준수 교수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올립니다. 아울러 본 연구의 핵심인 행동 과제 및 행동 자료 분석 코드를 공유해 주신 Joseph Kable 교수님(펜실베니아 대학교 심리학과)과 이상일 교수님(보스턴 대학교 심리 및 뇌과학과), 그리고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묵묵히 힘을 보태준 많은 동료 연구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연구자의 길을 묵묵히 믿고 지지해 준 저자들의 부모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 아내이자 든든한 동료인 한지연, 언제나 삶의 큰 기쁨이자 에너지가 되어주는 상윤, 상효, 그리고 늘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시는 장인, 장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사실 본 연구의 제1저자인 윤영우 박사가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하며 제게 대신 청하여 교신저자인 제가 대표로 하게 되었습니다. 윤 박사는 인터뷰 대신 다음과 같은 과분하고도 따뜻한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정위훈 교수님과의 연구는 '낭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과의 연구는 제가 실생활에서 불현듯 궁금해하던 생각들을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서 참 즐겁습니다. 실제로 약 2년 전 다니엘 카너먼 교수님께서 타계하셨을 때 정 교수님과 그분의 연구들과 저서들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뇌영상 기법으로 증명해 가는 과정이나,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연구 등 항상 참신하고 새로운 궁금증을 최신 기법으로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 즐겁습니다."
윤 박사와 저의 인연은 그가 학부생 인턴으로 연구실에 발을 들였을 때, 사수와 부사수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15년 전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며 연구에 몰두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의대 레지던트를 마치고 적지 않은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밤샘 당직과 연구를 병행하며 변함없는 열정과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보여주는 그에게서 늘 큰 감동과 자극을 받습니다. 이번 Molecular Psychiatry 저널에 최종 게재 승인을 받기까지 여러 차례 혹독한 수정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 지치고 힘든 과정 속에서도 윤 박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었기에 지금의 값진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름을 일일이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저자들이 연구에 매진하는 동안(특히 윤 박사가 지치고 힘들 때) 조용히 '빛'이 되어주고 한 줄기 이삭처럼 따뜻한 위로와 '웃음'을 전해준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하나의 학술적 결실이 맺어지기까지는 오랜 기간 연구 환경을 지탱해 주는 안정적인 재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본 연구가 무사히 완수될 수 있었던 것 역시 국가연구비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연구비를 지원해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연구자가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안정적으로 몰두할 수 있도록 든든하고 지속적인 연구 지원 사업이 확대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에는 윤 박사의 간곡한 사양으로 제가 대표로 인터뷰에 응했지만, 현재 함께 진행 중인 후속 연구에서 또 한 번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되면 그때는 반드시 윤 박사가 직접 인터뷰를 맡기로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기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저희는 앞으로도 성실히 연구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등록일 202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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