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인터뷰
서울아산병원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본 연구는 급성 뇌출혈 수술 후 발생하는 중환자 관련 코르티코스테로이드 부전(Critical Illness-Related Corticosteroid Insufficiency, CIRCI)에 대한 다기관 전향적 코호트 연구와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HYPER study)을 결합한 연구입니다.
CIRCI는 중환자에서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의 기능 이상으로 인해 급성 질환 상황에서 적절한 코르티솔 반응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패혈증이나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ARDS) 환자에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만, 신경외과 수술 후 중환자에서의 CIRCI에 대해서는 그동안 체계적인 연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급성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출혈 자체에 의한 뇌손상, 수술에 따른 스트레스 반응, 그리고 중환자실에서의 혈역학적 불안정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CIRCI 발생 위험이 높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근거 기반의 진단 및 치료 전략이 부재한 상황이었습니다.
저희 연구에서는 전국 8개 대학병원 신경중환자실에서 497명을 스크리닝하여 255명의 수술 후 환자를 대상으로 고용량 코르티코트로핀 자극검사(HDST)를 시행하였고, 그 결과 25.1%(64명)에서 CIRCI가 진단되었습니다. CIRCI 진단 환자 61명을 대상으로 하이드로코르티손과 위약을 무작위 배정하여 투여한 결과, 1차 평가변수인 30일 신경학적 기능(mRS) 개선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으나, 기계환기 기간(중앙값 5일 vs. 10일, p=0.032)과 중환자실 재원기간(중앙값 5일 vs. 13일, p=0.038)이 유의하게 단축되었습니다. 또한 심각한 부작용의 증가 없이 안전하게 투여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분야의 연구 동향을 보면, 기존의 대규모 임상시험인 CRASH trial에서 외상성 뇌손상 환자에게 고용량 메틸프레드니솔론을 투여했을 때 사망률이 오히려 증가한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부신 기능 평가 없이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투여한 것이 핵심적인 한계였습니다. 저희 HYPER 연구는 이와 달리, CIRCI로 정확히 진단된 환자에게만 생리적 용량의 하이드로코르티손을 투여하는 “정밀 의료(precision medicine)” 접근법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향후 이 분야는 신경중환자 치료에서 내분비적 관점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특히 뇌손상 후 HPA 축 기능 장애의 조기 진단과 이에 대한 맞춤형 호르몬 보충 요법은 이차 뇌손상 예방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COVID-19 팬데믹이었습니다. 2020년 3월에 환자 등록을 시작했는데, 곧바로 팬데믹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다기관 연구 특성상 각 기관의 중환자실 운영이 코로나 환자 대응으로 전환되면서 환자 등록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연구 초기에는 연구 코디네이터들이 프로토콜 교육과 검체 수집을 진행해야 했는데, 병원 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원격 교육과 화상 회의를 통해 이를 대체해야 했습니다. 4년여에 걸친 환자 모집 기간 동안 연구팀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임해준 덕분에 연구를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를 지치지 않고 수행해 준 이정희, 정소영 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본 연구는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 치료분과를 중심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는 국내 최대 규모의 뇌혈관 및 신경중환자 치료 센터로서, 연간 약 5,000건 이상의 신경외과 수술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0년대 중반부터 신경중환자 치료(Neurocritical Care) 분과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뇌출혈, 뇌경색, 외상성 뇌손상, 뇌종양 수술 후 중환자 등 다양한 신경중환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이번 HYPER 연구는 서울아산병원을 포함한 전국 8개 대학병원 신경중환자실이 참여한 다기관 연구입니다. 참여 기관으로는 강북삼성병원,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단국대학교병원, 한양대학교병원,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서울대학교 분당병원이 함께했습니다. 각 기관의 신경외과 중환자 전문의들이 긴밀하게 협력하여 표준화된 프로토콜 하에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신경중환자 치료 분야는 환자의 생사가 시간 단위로 결정되는 매우 긴박한 영역입니다. 급성 뇌출혈이나 중증 뇌손상 환자를 수술하고 난 후에도 중환자실에서의 집중 치료가 환자의 최종 예후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번 HYPER 연구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보람은, 그동안 진료 현장에서 막연히 의문을 품고 있던 문제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중환자실에서 뇌출혈 수술 후 환자들이 예상보다 혈압이 불안정하거나 회복이 더딘 경우를 종종 경험하면서, “혹시 부신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임상적 의문이 이 연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 의문을 다기관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이라는 가장 높은 수준의 근거로 검증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자부심입니다.
신경외과 영역에서 출발한 연구가 중환자 의학 전체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신경중환자 치료라는 비교적 새로운 세부 전문 분야에서 독자적인 연구 주제를 발굴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의 연구로 발전시킨 경험은 앞으로의 연구 활동에 큰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신경중환자 치료(Neurocritical Care) 분야는 신경외과, 신경과, 중환자의학, 등 여러 전공 영역이 융합되는 학제간 분야입니다. 따라서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에게는 자신의 주 전공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접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쌓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연구적 측면에서는, 임상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문제에서 연구 주제를 발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 HYPER 연구도 진료 과정에서 느낀 임상적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자분들이 BRIC을 많이 보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임상 연구와 기초 연구의 접점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CIRCI의 병태생리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거나, HPA 축의 기능 회복 기전을 탐구하는 것은 기초과학 연구자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영역입니다.
유학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다기관 임상시험의 설계와 수행 경험이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국제적으로 신경중환자 치료 분야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임상 연구 방법론에 대한 수요가 높습니다. Good Clinical Practice (GCP) 교육을 이수하고, 가능하다면 진행 중인 임상시험에 참여하여 실무 경험을 쌓는 것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환자를 직접 보면서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경험이 장기적으로 연구자로서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현재 HYPER 연구의 후속 연구로 여러 방향의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번 연구에서 하이드로코르티손이 기계환기 기간과 중환자실 재원기간을 유의하게 단축시켰으나, 1차 평가변수인 30일 신경학적 기능 개선에서는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이는 연구의 검정력(statistical power) 부족에 기인할 수 있어, 향후 더 큰 규모의 다기관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능적 예후를 1차 평가변수로 하되, 충분한 표본 수를 확보한 확증적 임상시험(confirmatory trial)을 설계할 예정입니다.
둘째, 이번 연구에서 하이드로코르티손 투여 후 ACTH 수치가 유의하게 상승한 점에 주목하여, HPA 축의 회복 기전을 심층적으로 규명하는 중개 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특히 신경중환자에서 CIRCI의 발생 기전이 시상하부-뇌하수체 수준의 손상에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신 자체의 기능 저하에 의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향후 치료 전략 수립에 중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셋째, 본 연구에서 밝혀진 CIRCI의 위험인자(외상성 경막하출혈, 경막외출혈, 기계환기, 신선동결혈장 수혈)를 바탕으로, 고위험 환자를 조기에 선별하여 부신 기능 검사를 시행하는 임상 프로토콜을 각 참여 기관에 도입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신경중환자 치료에서 내분비적 접근을 표준화하는 가이드라인 수립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이번 HYPER 연구를 수행하면서 가장 감사했던 것은 다기관 연구에 참여해 주신 전국 8개 기관의 공동 연구자분들의 헌신입니다.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환자 모집과 데이터 수집을 묵묵히 수행해 주신 각 기관의 연구팀이 없었다면 이 연구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연구를 통해 느낀 것은, 신경중환자 치료라는 분야가 단순히 수술 후 관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전신적인 생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관리해야 하는 고도의 전문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뇌출혈 환자를 수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의 내분비적, 면역학적, 혈역학적 관리가 환자의 최종 예후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신경외과 의사로서 더 나은 진료를 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등록일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