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사인터뷰
KAIST
1. 논문관련 분야의 소개, 동향, 전망을 설명, 연구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식물은 활발하게 이동할 수 없지만 다양한 화학물질을 통해 고착생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수분매개자를 유혹하는 향기나 색소를 합성하기도 하고, 해충을 직접 죽일 수 있는 독성 물질도 만들 수 있죠. 이처럼 식물이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는데 활용하는 특수한 화학물질을 "이차대사물질(secondary metabolites, specialized metabolite)"이라고 합니다. 이차대사물질은 대부분 생리활성을 갖거나 흥미로운 화학적 특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오랜 기간동안 경험적으로 의약품, 향료, 염료, 접착제, 기호식품, 방부제, 살충제 등으로 활용해 왔으며 우리 일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차대사물질 연구는 식물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인류 생활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도 연구 영역을 쉽게 확장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구조의 이차대사물질이 식물체 내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합성(biosynthesis)"라고 합니다. "생합성 경로(biosynthetic pathway)"를 규명한다는 것은 최종 이차대사물질이 어떤 중간체(intermediates)를 거쳐 형성되는지, 그리고 각 단계의 화학적 변환을 매개하는 효소가 무엇인지까지 체계적으로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 이차대사물질 중 알칼로이드(alkaloids)의 생합성 경로 규명은 대표적인 생화학 난제로 꼽힙니다. 이들은 생합성 전구체도 다양하고, 서로 다른 경로에서 생합성 된 중간체가 필요하기도 하며, 각기 다른 알칼로이드의 분자 골격을 합성하는 효소가 모든 식물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효소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늘날 생합성 경로 연구진들은 식물의 유전체/전사체/대사체를 분석하는 첨단 기법과 생화학적 실험 뿐 아니라 유기화학적 지식에 근거한 생합성 가설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택솔(taxol)을 비롯한 각종 천연물 유래 항암제나 모르핀(morphine)과 같은 유명 알칼로이드의 생합성 경로가 속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생합성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이차대사물질도 존재하며, 특히 동아시아 고문헌에 존재하는 약초의 약용 성분의 생합성 경로 규명은 미흡한 상황입니다. 이런 분자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유기화학적 합성이나 추출에 의존해야 하는데, 핵심 생합성 경로를 규명한다면 더욱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천연물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저희는 광대싸리(Flueggea suffruticosa)라는 한반도 자생 관목에 함유된 세큐리네가 알칼로이드(securinega alkaloids)의 생합성 경로를 규명하였습니다. 특히, 비로신A/B(virosine A/B)라는 세큐리네가 알칼로이드가 황산전이효소(sulfotransferase)에 의해 분자 골격이 재배열되어 각각 알로세큐리닌(allosecurinine)과 세큐리닌(securinine)으로 전환된다는 것이 본 연구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황산전이효소는 기질에 황산기(SO42-)를 도입하는 효소로, 물질의 용해도를 증가시켜주거나 분해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알칼로이드의 분자 골격을 전환하여 새로운 형태의 알칼로이드로 전환시키는 기능의 발견은 최초입니다.
2. 연구를 진행했던 소속기관 또는 연구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와 김태인 학생이 속한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김상규 교수님 연구실은 식물의 화학생태학을 분자적 수준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식물의 이차대사 관련한 실험과, 유전자의 기능을 식물체 내 혹은 시험관 내에서 수월하게 검증할 수 있으며, 이차대사물질이 활발하게 합성되는 조직에서 단일세포전사체 분석을 통해 후보 유전자를 선별하는 실험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강규민 박사님이 속한 카이스트 화학과 한순규 교수님 연구실은 천연물을 유기화학적인 방법으로 합성하는 연구실입니다. 유기화학적 기법을 총동원하여 자연에 미량 존재하는 천연물을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방법을 구축하기도 하고,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과 합성경로를 모방하여 실험실에서 천연물을 합성하기도 합니다. 특히, 세큐리네가 알칼로이드의 화학적 특성과 합성 방법 연구 결과를 10년 이상 축적해 온 세큐리네가 알칼로이드의 전문가이시기도 합니다.
저희가 속해 있는 카이스트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공존하며, 서로 협력하여 연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한 연구였기에 좋은 성과로 발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 연구 활동 하시면서 평소 느끼신 점 또는 자부심, 보람
저희 교수님 오피스에는 "힘든 길도 여럿이 가면 즐겁다" 라는 글이 붙어있습니다. 생합성 경로 규명은 후보 전구물질과 유전자를 일일이 검증하는 번거로운 실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오답과 실패 중 단 하나의 정답과 성공만이 있기 때문에, 무수한 실패를 겪는 힘든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동료들과 함께 했기에 무수한 실패를 극복하고 즐겁게 답을 찾았다는 점이 뿌듯하고 기쁩니다. 이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앞으로의 연구에서도 활용하겠습니다.
4.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후배들 또는 유학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저 또한 아직 풋내기로서 이런 말을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생합성 경로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생명과학 뿐 아니라 많은 화학적 지식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생명과학자로서 이 분야에 도전하신다면 유기화학과 분석화학적 지식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분야를 전문가 수준으로 수련하기는 어렵고, 어떤 부분에서는 효율적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와 다른 분야에서 연구하는 동료들과 많은 디스커션을 나누기를 권합니다. 다른 분야 사람의 연구 내용을 편견 없이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자신의 연구와 접점을 찾을 수도 있고, 자신의 분야에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아이디어나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망설임 없이 시도하고 조정하다 보면 크고 작은 발견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5. 연구 활동과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이번 논문은 식물의 이차대사물질 분야 중 "식물이 이차대사물질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비슷한 주제를 계속 연구해 나가고 싶습니다. 저는 박사후연수기간동안 식물 내 존재하는 일차대사물질이 어떻게 이차대사물질로 생합성되는 지에 대해 연구하려 합니다. 이차대사물질이 일차대사경로의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생합성되기 시작하는지, 식물이 어떻게 일차대사와 이차대사의 분기점 부분을 조절하고 있을지에 대해 더 연구하면서 이차대사물질에 대한 견해를 쌓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 삶과 밀접하면서 흥미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식물을 찾아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정진해서 식물의 대사 경로를 분자적 수준에서 이해하는 전문가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6. 다른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
이 연구는 오랜 인연을 쌓아 온 두 친구의 순수함과 재미에서 출발했습니다. 강규민 박사와는 12년 동안 같은 기관에서 수학한 동문이자 오랜 벗인데, 같이 밥 먹거나 맥주 마시면서 나눈 담소에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각자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박사과정 주제가 있었음에도 광대싸리라는 식물이 어떻게 이 물질을 합성하는지 알아내고싶다는 생각에 남는 시간에 짬을 내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초반에는 광대싸리 식물을 구하기 위해 렌트카를 빌려 학교 일대를 다니기도 하고, 작은 나무를 캐서 학교 주말농장에 옮겨 심어보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한 이후로는 동위원소로 표지한 중간체 후보를 식물 내에 전달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시도해보기도 했고, 넣어준 전구체가 최종 산물로 만들어지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일찍 보기 위해 LC-MS/MS 앞에서 크로마토그램만 쳐다보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시간이 즐거운 시간이었고, 흥미와 재미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좋은 논문으로 마무리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과학과 유기화학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를 직감하신 김상규 교수님, 한순규 교수님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지원해주신 덕분에 가볍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정식 과제가 되고, 두 연구실의 전문적인 동료들이 팀을 이뤄 훨씬 완성도 높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광대싸리 유전체 조립과 단일세포전사체 분석을 도맡아 수행하여 후보 유전자를 선별하는데 큰 도움을 준 또 다른 벗 김태인 학생을 비롯해 모든 광대싸리 프로젝트 팀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밖에도 연구가 진행되는 모습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응원해준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연구를 소중한 우리 가족과 동료들에게 바칩니다.
등록일 202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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