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게도 남편이 포닥으로 일하고 있던 학교에서 저도 포닥 생활을 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시작하였는데,
(남편이 3년 전 먼저 미국에 와 포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이라 포닥 중단을 고민하면서도 향후 진로에 대해 걱정이 많아 답답하고 절박한 마음에 글 남깁니다.
제가 일하는 곳의 PI는 미국에서 수 십 년 동안 사신 한국인이시고, 소수의 포닥(all Asian)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랩입니다(실적은 좋은 곳이긴 합니다).
PI는 평일에 랩에 있는 시간 동안은 온전히 benchwork만 하길 원하시고, 데이터 분석, 논문 읽기 및 공부는 퇴근 후 저녁 혹은 주말에 알아서 하기를 원하는 분입니다.
거의 랩에 계속 상주하시면서 모든 실험 스텝 하나하나에 다 관여를 하는 등 숨 막히는 micromanaging에 자유도가 완전 제로인 곳입니다.
포닥 각 개인이 2개 이상의 project를 담당하길 원하시는 분이라 업무량도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제가 하고 있는 세포 실험 특성상 주말에도 하루에 3-4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데이터 분석까지 시간을 쏟고 나면 주말이 다 지나가있습니다.
(주말에 최대한 덜/안 나오기 위해 실험 계획을 세워서 보여드리면 과학하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며 온갖 비난의 화살이 돌아옵니다.)
분야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정상적이지 않은 범주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상황 때문에 모든 집안일은 남편이 99% 담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Day 1부터 8개월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저는 (조금의 과장 없이) 일주일에 거의 7일을 일하고 있는 상태이고, 2주 내내 점심도 못 먹고 매일 12시간 넘게 일한 적도 있었습니다.
박사 학위 때의 분야와 다른 곳의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서 공부할 시간이 필요한데, 체력 및 정신적 여력이 뒷받침 되지 않아 학문적 성장이 완전히 멈춰진 상태입니다.
남편과 시간 보내는 건 사치가 되어버렸구요.
실험 후 충분히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음 실험에 적용할 새도 없이 그냥 계속 데이터를 생산해내기 위한 실험을 계속 하고 있으니 제가 뭐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과학에 대한 흥미, 논문 실적에 대한 동기부여, 학계에 대한 열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데이터 분석을 위해 잠시 실험을 하루 이틀 쉬겠다, 업무량이 과하다 좀 이해를 구한다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너가 비효율적이어서 못 해내는거다라는 대답 뿐이었고, 저는 어떻게든 일을 적게 하고 싶어하는 애로 낙인이 찍혀 버렸습니다.
모든 의사소통은 영어로 하고 있는데, 영어 실력을 깎아내리는 건 애교 수준이고 숨 쉬듯이 내뱉는 인격 모독(가족 욕 빼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욕은 다 들어본 것 같습니다.)에 깊은 우울감에 빠져 저 자신 뿐만 아니라 남편 및 동료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곳에서의 포닥 중단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저런 점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1) 이력서에 경력으로 한 줄이라도 쓰려면 1년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도저히 1년까지 버틸 엄두도 안 날 뿐더러, 1년을 채워서 데이터를 많이 만든다 하더라도 최소 논문을 submit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2) Second postdoc을 하게 된다면 굳이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데, 사실 이 곳에서 이미 아무 소득 없이 시간은 보냈고, 박사 학위 과정 동안의 논문 실적도 소박해서 채용이 잘 될지 고민입니다.
3) 저도 남편도 1년 단위의 계약 만료 시점이 내년 봄이고, 남편의 귀국도 하나의 고려 요소이기에 마냥 저만 생각해서 당장 계약 종료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한 두 달 이내에 계약을 종료하고 귀국해서 남편 비자의 배우자 비자로 전환한 후에 다시 일단 미국으로 들어와 남편과 있으면서 구직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 경우에 커리어에 공백이 좀 생긴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
정말 긴 글이 된 것 같네요. 제가 너무 제 감정에 치우쳐서 결정을 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여러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