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당 오피니언
노벨상 타령 1
순수진실 (과기인)
몇일전 우리나라의 가장 권위(?)있는 신문중 하나인 조선일보에 전문가 컬럼을 보았다.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66] 아, 2024 노벨상 (chosun.com)
컬럼에는 “노벨 생리의학상은 마이크로RNA(miRNA)의 유전자 조절을 규명한 빅터 앰브로스와 게리 러브컨에게 돌아갔다. 마이크로RNA 분야를 개척한 김빛내리 교수와 인공지능을 통한 단백질 연구 선구자인 백민경 교수가 아깝게 노벨상을 놓쳤다는 보도도 있었다. “ 라고 적혀있다.
언급된 김빛내리교수와 백민경교수가 뛰어난 학자일수는 있겠으나 아깝게 노벨상을 놓쳤다는 기사에는 실소를 금할수 없었다. 우리 과학자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뛰어난 학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모두 노벨상 후보가 아니라는 것을.
과학에 무지한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과기부 공무원들이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의 정책을 진행하고자 가공(?)의 노벨상 후보들을 여러명 만드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그런 식으로 IBS를 만들고, 소수의 연구자에게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몰아주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곧 한국인도 노벨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꿈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면서 세금을 그렇게 사용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아마 매년 노벨상을 받는 10월달만되면 이렇게 온 언론이 노벨상 0명을 타령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할듯 하다. 정치인들 관점에서 해결책은 “과학에 돈을 많이 투자하고, 과학자들에게 월급을 많이 주고 대우를 잘해주고, 국제 네트워킹을 잘 만들수있게 국제공동연구비도 늘리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람들과 인맥도 쌓고 로비(?)도 하게 해서 노벨상을 받게 유도하자”라는 관점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은 호기심이 학문발전의 원동력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 호기심을 순수하게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연구비를 수행해보면 2 또는 3년후 단계 평가때까지 “상위 10% 안에들어가는 저널에 논문을 몇편 내어야한다”와 같은 정량적 지표로 들어가 있다. 내가 호기심으로 시작한 연구가 무조건 주어진 시간내에 정해진 계획대로 수행되어서 원했던 결과가 나와서 특정저널에 논문이 발간되어야지만 연구비를 유지할수 있다면, 호기심을 순수하게 유지할수 있을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자의 순수한 호기심을 잃지 않게 사회 (정치, 언론, 연구비시스템, 사회인식)가 운영된다면 우리나라는 그 어느나라보다 과학강국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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