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당 오피니언
N 일 잘하는 죄 3
limasierra76 (비회원)
어느 조직에나 존재하지만 누구도 쉽게 수면 위로 올리지 않는 역설이 하나 있다. 바로 ‘일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현상(Workload Paradox)’이다. 이 비극은 비단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위 과정이나 포닥들이 치열하게 구르는 대학 연구실(Lab)부터 첨단 기술을 다루는 기업의 R&D 현장에 이르기까지, 성과와 생산성이 강조되는 모든 조직에서 동일하게 반복된다.
프로젝트가 실패해서는 안 될 때, 급박한 위기가 터졌을 때 리더나 지도교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검증된 에이스에게 향한다. 탁월한 해결 능력과 높은 책임감을 갖춘 인재에게 주요 업무와 리서치 과제가 가중되는 것은 리더 입장에서 어쩌면 당연한 선택처럼 보인다.
물론 조직 운영에서 모든 것을 오직 단기 성과나 결과만으로 평가하자는 뜻은 아니다. 극단적인 성과주의는 조직의 공동체 의식을 해치고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수년간 축적된 숙련도와 경험의 가치를 인정해야 할 때가 있고, 개인의 다양한 상황을 밸런스 있게 고려한 인사 정책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특정 누군가에게 일이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큼은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숱한 위험과 불확실성 속에서 수많은 구성원을 두고 굳이 그 사람에게 일이 쏠린다는 것은, 그가 탁월한 '일잘러'임을 이미 조직과 동료들이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효율성의 이면에는 뼈아픈 불공정이 숨어 있다.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일수록 일의 가짓수와 난이도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실력이 훌륭하다는 이유로 더 큰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일 잘하는 죄(Performance Penalty)'가 성립하는 순간이다. 이로 인해 정작 조직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에이스는 끊임없는 업무 과중과 중압감 속에서 번아웃(Burnout)을 겪으며 무너져 간다.
이때 조직의 리더들이 에이스에게 던지는 상투적인 위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묵묵히 하다 보면 언젠가 주변에서 결국 알아봐 줄 거야", "조금만 참아, 반드시 빛을 볼 날이 올 거야" 같은 무책임한 말들은 에이스의 지친 마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리더의 무능과 회피를 드러낼 뿐이다. '언젠가'라는 막연한 기약으로 현재의 불평등을 덮으려 하는 순간, 에이스는 조직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게 된다.
우선 '일잘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그들이 단순히 일이 많아서 지치는 것만은 아니다. 진짜 그들을 무너지게 만드는 것은 ‘성과와 책임에 비례하지 않는 보상 체계’와 ‘조직의 경직성’이다.
많은 조직이 여전히 낡은 규정에 갇혀 있다. "아직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음 진급 연차까지 연한이 남아서", "특정 학위나 자격 요건이 부족해서"라는 온갖 관리상의 핑계로 합당한 대우를 미룬다.
하지만 뛰어난 인재들이 조직에 요구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자신의 기여도가 정확히 측정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빠른 승진, 그리고 확실한 권한이 부여되는가이다. 말뿐인 위로와 조직의 룰이라는 이유로 대우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에이스들은 조용히 이탈을 준비한다. 더 심각한 것은 에이스가 떠난 이후에 남아있는 조직의 문화다. 일을 잘해봐야 과중한 부담만 짊어진다는 시그널이 팽배해지면, 조직은 빠르게 하향 평준화의 늪에 빠진다.
리더는 결단해야 한다. 단순히 업무를 나누어 주는 배분자나 막연한 말로 달래는 방관자가 아니라, 여러 정황을 밸런스 있게 고려하되 확실히 증명된 성과와 신뢰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우를 집행하는 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
업무 몰림 현상의 직시와 의미 파악: 업무가 쏠리는 현상은 그 사람이 에이스라는 확실한 증거다. 리더는 이를 방치하지 말고 현장을 파악해 실질적인 업무 조율과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막연한 기약 대신 입체적이고 확실한 보상: 연차와 경험 등의 가치를 존중하되, 관습적인 허들에 갇혀 에이스의 기여를 깎아내리지 말고 성과와 헌신에 걸맞은 즉각적이고 파격적인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에이스를 보호하는 조직 구조 확립: 일 잘하는 사람에게만 과도한 짐이 집중되어 지치지 않도록 울타리가 되어주고, 그들의 기여기회가 조직 전체의 자산으로 승화되도록 유기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탁월한 성과와 헌신에는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대우가 따른다"는 명제가 실현되지 않는 조직은 지속될 수 없다. 여러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직을 이끄는 핵심 인재를 막연한 말로 방치하지 않고 확실하게 보호하며 날개를 달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리더가 조직의 생존을 위해 다해야 할 가장 엄중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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