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당 오피니언
초기 바이오텍 리더십의 치명적 실수 3
limasierra76 (비회원)
바이오텍 스타트업이 범하는 가장 흔하면서도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는 바로 경영진(Executive Team) 전체를 빅파마(Big Pharma) 출신 인사들로만 채우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실수는 펀드레이징에 대성공하여 초기 자금이 넉넉하게 확보된 스타트업일수록 더 빈번하고 극심하게 일어난다. 통장에 찍힌 수백억 원의 자금과 화려한 빅파마 임원진의 레주메(Resume)는 겉보기엔 완벽한 성공 방정식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회사를 조기에 사지로 몰아넣는 위험한 조합일 수 있다.
스타트업 생존의 대전제는 단순하다. 스타트업은 첫째도 효율, 둘째도 효율이다.
풍족한 초기 자금은 속도와 집중을 위한 무기여야지, 거대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거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해도 본질적으로 스타트업은 시한부 자원을 가지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유기체다. 효율성을 잃은 자본은 아무리 커도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바로 이 지점에서 투자자의 눈에도 명확한 경고 신호(Red Flag)가 잡힌다. 내가 투자자라면, 초기 단계 회사임에도 빅파마 출신의 화려한 간판으로만 리더십이 채워진 곳에는 선뜻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투자자가 기대하는 핵심 가치는 ‘자본 효율성(Capital Efficiency)’과 ‘실행 속도(Speed of Execution)’다. 화려한 이력서가 가져다주는 착시는 잠깐이지만, 효율을 무시한 조직 구성이 가져올 고정비 폭탄과 비효율은 회사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
빅파마 출신 인재들의 개인적 역량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스타트업이라는 유기체가 성장하는 궤적’과 ‘빅파마라는 거대 조직이 작동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있다.
빅파마 출신 리더들은 모호함 속에서 유연하게 생존 전략을 짜본 경험(Zero-to-One)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회사의 성장 단계별로 "지금 이 시점에 진정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우선순위화하는 데 서툴다. 대신 풍족한 초기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경험했던 빅파마의 조직 구조를 그대로 복제하려 든다. 기능을 다채롭게 갖춰 놓아야 빅파마처럼 일할 수 있고, 그래야 결과가 나온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본의 여력이 있어 모든 기능을 사들이고 세팅할 수 있다 한들, 그 기능들의 대부분은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전혀 필요가 없다.
실제로 극초기 바이오텍의 본질은 신약 후보물질의 발굴과 비임상 데이터 검증(PoC)에 있다.
이 시기에는 당장 가동할 필요도 없는 **임상 운영 팀(Clinical Operation Team)**을 미리 세팅하거나, 자체적인 생산/제조(CMO/CMC) 관리 인프라를 비대하게 구축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임상 진입까지 수년이 남았는데 임상 전문가들을 모셔두고, 외부 CRO/CMO 아웃소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막대한 고정비를 지출하는 것은 '효율'이라는 스타트업의 대전제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핵심 마일스톤 도달에 직결되지 않는 부서와 인프라를 '언젠가 쓰일 것'이라는 이유로 미리 갖춰놓는 순간, 풍족했던 초기 자금은 속절없이 녹아내린다.
고정비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의사결정은 빅파마처럼 느려지며,
정작 후보물질을 검증하고 가치를 입증해야 할 핵심 R&D에 쓰여야 할 자원이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간다.
결국 회사는 가장 중요한 다음 라운드 투자 유치나 기술 이전(L/O) 같은 마일스톤을 달성하기도 전에 스스로 만든 비대한 조직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조기에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초기 바이오텍의 리더십에는 반드시 스타트업의 야전(野戰)을 경험해 본 리더가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이들은 '효율'이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고의 전략임을 체득한 사람들이다.
지독한 자원 효율성과 우선순위 설정 (Ruthless Prioritization)
스타트업 경험자는 제한된 자원 속에서 '당장 살려야 할 기능'과 '나중에 구축해도 될 기능'을 명확히 구분한다. 당장 필요 없는 임상이나 생산 인프라 대신, 비임상 데이터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자원을 올인한다.
모듈형 사고와 가벼운 조직 운영 (Lean Mindset)
모든 기능을 내재화(In-house)하려 하지 않고, 외부 CRO, CMO, 파트너십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조직을 가볍고 빠르게 유지한다. 덩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키우는 데 집중한다.
단계적 성장에 대한 정확한 시퀀스 이해
어떤 시점에 어떤 인재와 기능이 추가되어야 하는지 그 순서(Sequence)를 정확히 안다. 빅파마의 프로세스를 통째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단계별 성장에 맞춰 조직을 모듈식으로 붙여나간다.
빅파마에서의 훌륭한 경력과 시스템 구축 능력은 훗날 파이프라인이 실제 임상 단계에 진입하고 조직이 거대해질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하지만 Zero에서 One을 만드는 초기 단계에서는 화려한 빅파마의 타이틀보다, 가난하고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며 '효율의 극대화'를 경험해 본 스타트업 리더의 야성과 냉철한 현장 감각이 훨씬 더 절실하다.
투자자의 관점에서도, 그리고 회사의 생존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초기 자금이 넉넉할수록 방심하지 않고, 빅파마의 '겉모습'을 복제하는 대신 바이오텍 본연의 '속도와 효율'을 지켜낼 수 있는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초기 바이오텍이 잔인한 밸리 오브 데스(Valley of Death)를 무사히 건너는 유일한 길이다.
[9/17-18 판교] ODC26 오가노이드 디벨로퍼 컨퍼런스 개최 및 사전등록 안내 (현장 참가 무료)